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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과: 교회가 미주리주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다


제121과

교회가 미주리주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다

소개

1837년과 1838년,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다른 지도자들은 힘든 시기 중에도 교회를 인도했다. 경제적인 난관과 탐욕, 결점 찾기, 박해의 결과로, 일부 저명한 교회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와 미주리주 북부 지역의 성도 중 10퍼센트에서 15 퍼센트의 성도가 배도했다. 오하이오의 충실한 성도들은 미주리주 북부 지역의 성도들과 연합하기 위해 이주를 시작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이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하고 배우며, 이 시기 동안 받은 계시에 대한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수 제언

배도와 파웨스트 시

배도와 박해의 시기 동안 충실한 성도들이 미주리주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다음 질문을 칠판에 적는다. 어려움과 시련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을 잃게 만드는가? 또한 칠판에 오하이오주 커틀랜드 및 미주리주 북부 지역의 다른 정착촌들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를 그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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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주에서 미주리주까지의 지도

학생들에게 칠판에 있는 질문에 답해 보라고 하며 공과를 시작한다. 학생들이 그들의 통찰을 나누고 나면, 1837년과 1838년에 걸친 시련의 시기에 많은 성도들도 바로 이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수업에서는 이런 어려운 사건들과, 성도들이 그 사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관해 배우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학생들에게 우리가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킬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고 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이 과는 그들이 교리와 성약 113~123편에서 공부하게 될 계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해 줄 수 있다.

지도에서 미주리주를 가리킨다. 1833년에 성도들이 미주리주 잭슨 군에서 쫓겨났을 때, 이웃의 주 클레이 군 주민들은 성도들이 단지 잠시 동안만 머물기를 기대하면서, 많은 성도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고 도움을 베풀었다. 그러나, 성도들이 그곳에서 거의 삼 년 동안 기거하자 주민들은 성도들에게 그 군을 떠나라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도에서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를 가리킨다. 커틀랜드 성전이 헌납된 그 다음 해인 1837년, 성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시험하는 시련을 경험했다고 설명한다. 여러 저명한 교회 지도자를 비롯하여 많은 성도들이 배도하고 교회를 떠났다.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눈다. 각 그룹에게 다음 역사 요약 중 하나의 복사본을 준다. (반의 규모가 크다면, 학생들을 네 개나 여섯 개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에 다음 요약문을 하나씩 나눠 준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은 학생들을 토론에 참여시킬 수 있다.) 각 그룹에게 요약문을 함께 읽고, 요약 마지막 부분에 있는 질문을 토론하라고 한다. 각 그룹에서 한 사람에게 토론을 이끌라고 지명하고, 그룹마다 나중에 반원들과 나눌 원리를 하나씩 적게 한다.

역사 요약 1—커틀랜드에서의 배도

1837년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의 성도들은 재정적인 난관에 부딪혔다.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좀 더 재정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은행과 유사한 회사를 세우고 그것을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Kirtland Safety Society]라고 불렀다. 이 시기에 널리 퍼진 경제 공황의 여파로 전국의 많은 은행들이 파산했다.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도 1837년 가을에 파산했다. 은행에 투자했던 이백여 명은 거의 전 재산을 잃었고, 조셉 스미스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그 누구보다도 손해가 막심했다.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교회 자본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었음에도, 일부 성도들은 그것을 교회 은행 또는 선지자의 은행이라고 여겼으며, 그들에게 닥친 재정 문제에 대해 조셉 스미스를 비난했다. 일부 성도들은 심지어 그를 타락한 선지자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성도들은 은행의 파산으로 돈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 안에 충실하게 남아 선지자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 (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학생 교재, 제2판 [교회 교육 기구 교재, 2003], 171~174쪽 참조)

많은 성도들 사이에 결점 찾기와 배도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갔다. 브리검 영은 일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조셉 스미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새로운 선지자를 임명하기 위해 모였던 한 사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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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검 영 회장

“십이사도 가운데 몇 사람과 몰몬경의 증인, 그리고 교회의 다른 역원들이 성전 다락방에서 평의회를 가진 일이 있었다. 그들이 논의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선지자 조셉을 폐하고 데이비드 휘트머를 교회 회장으로 임명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 나는 벌떡 일어나서 분명하고 강력한 태도로, 그들에게 조셉은 선지자이며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마음대로 조셉을 매도하고 중상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지자를 폐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다만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를 스스로 포기하고 선지자와 하나님께 자신을 묶어 놓은 줄을 끊고 지옥으로 떨어질 뿐이라고 했다.”(Manuscript History of Brigham Young, 1801–1844, ed. Elden Jay Watson [1968], 15–16)

1838년 6월까지 대략 200명에서 300명정도의 성도가 배도하여 교회를 떠났는데, 여기에는 사도 네 명, 몰몬경의 세 목격자, 제일회장단의 일원이 포함되어 있었다.(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177쪽 참조) 그렇지만 브리검 영이 그랬듯이, 대부분의 성도들은 신앙이 시험을 받던 그 시기를 잘 헤쳐 나갔다. 주님께서 성도들을 강화해 주셨고, 성도들은 자신의 간증을 충실하게 지켰다. 이 배도의 시기에 교회를 떠난 사람 중 몇몇은 이후에 다시 돌아와서 주님의 교회에 재합류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올리버 카우드리, 마틴 해리스, 룩 존슨, 그리고 프레드릭 지 윌리엄스가 있었다.

커틀랜드에서 이런 고투를 벌이는 중에 배도자 몇 명이 조셉 스미스의 암살을 도모했다. 영의 경고를 받아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은 1838년 1월 12일 밤에 커틀랜드를 떠났다. 암살자들이 여러 날 동안 뒤를 쫓았으나 주님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셨다. 1838년 3월 14일, 그들은 가족과 함께 미주리주 파웨스트에 도착했다.

그룹 구성원들과 함께 다음 질문들을 토론한다.

  • 이 역사적 사건들에서 우리는 어떤 원리를 배울 수 있는가?

  • 이렇게 결점 찾기가 만연한 시기에 선지자에게 충실하게 남기 위해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했겠는가?

  • 신앙으로 시련을 견디어서 구주를 믿는 여러분의 신앙이 강해졌던 때는 언제인가?

  • 선지자를 따르는 것은 어떤 면에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보호가 되었는가?

역사 요약 2—미주리주 북부 지역의 지도력

1836년 여름 미주리주 클레이 군 주민들이 성도들에게 좀 더 영구적으로 머물 곳을 찾으라고 압박하고 있던 상황에서, 미주리 스테이크 회장단의 두 보좌였던 존 휘트머와 윌리엄 더블유 펠프스는 교회 자금으로 미주리주 북부 지역에 파웨스트라고 알려진 곳의 대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으로 이주하는 성도들에게 토지의 구획들을 제공하면서 약간의 이윤을 덧붙여 대지를 되팔았고, 그 이윤은 자신들이 챙겼다. 이런 행위와 다른 범법 행위를 못마땅히 여긴 미주리주의 고등평의회는 스테이크 회장단을 그 직분에서 제명시켰다.

조셉 스미스는 그런 조치를 취한 평의회의 손을 들어 주었고, 윌리엄 더블유 펠프스는 마음이 상했다. 1838년 11월에 펠프스 형제는 선지자에게 반대하는 성명서에 서명했다. 이 성명서는 조셉 스미스와 다른 사람들이 체포되어 그 겨울 동안 리버티 감옥에 수감되는 데 일조했다. 펠프스 형제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서 파문되었다.

감옥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 및 그와 함께했던 이들은 감금이라는 잔혹한 상황을 견뎌야 했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집에서 내쫓기고 여러 가지 면에서 학대를 당한다는 보고를 받고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미주리주의 폭도들은 주지사의 제재를 받지 않고 제이콥 하운스 소유의 방앗간에서 재물들을 파손하고 17명을 살해했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영혼의 괴로움을 느낀 윌리엄 더블유 펠프스는 조셉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썼다. 선지자는 이렇게 답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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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조셉 스미스

“형제님의 행동으로 우리가 큰 고통을 겪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그러나 고통의 쓴 잔은 비워졌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

형제님의 고백이 참되고 형제님의 회개가 진실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형제님에게 우정의 오른손을 내밀게 되어 기쁘며, 제게는 돌아온 탕자를 맞는 아버지의 기쁨이 넘칩니다. …

‘오소서, 사랑하는 형제여, 전쟁은 끝났으며,

처음 친구는 결국 다시 친구입니다.’”(History of the Church, 4:163–164)

그룹 구성원들과 함께 다음 질문들을 토론한다.

  • 여러분을 배반하고 여러분에게 고통을 안겨 준 친구를 용서하는 일은 왜 어려운가?

  • 조셉 스미스의 모범에서 우리는 어떤 원리를 배울 수 있는가?

  • 우리는 이 일화에서 어떤 교훈을 더 배울 수 있는가?

각 그룹들이 역사 요약을 읽고 토론할 시간을 가진 후, 그들에게 자신이 배운 역사와 찾아낸 원리를 반원들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그들이 가르칠 때, 관련 원리들을 칠판에 적으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원리들이 포함될 수 있다. 우리가 시험을 의심이 아닌 신앙으로 대처하기를 선택할 때, 우리의 간증은 강화될 수 있다. 우리가 선지자를 지지하고 그의 조언을 따를 때,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께 묶어 주는 영적 안전을 얻을 수 있다.(역사 요약—1 참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인간관계를 치유해 주실 수 있다.(역사 요약—2 참조)

학생들이 원리들을 찾아낼 때, 그들이 이 진리들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도와줄 확인 질문을 한다. 이런 질문에는 다음이 포함될 것이다.

  • 우리가 이 원리를 기억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 여러분은 이 원리를 친구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여러분은 언제 이런 원리의 예를 경험했거나 목격했는가?

학생들이 배운 원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그룹에서 찾아낸 원리 중 한두 개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런 다음, 공책이나 경전 학습 일지에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적으라고 한다.

  • 나는 오늘 이 원리(들)을 배웠으니 앞으로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

미주리 북부 지역에서 성도들을 추방으로 이끈 사건들

학생들에게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만한 선택을 하는 교회 회원을 본 적이 있다면 손을 들라고 한다. (그들에게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또한 학생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라고 할 수도 있다.

  • 우리의 말과 행동이 교회의 명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는 것은 왜 중요한가?

1838년 일부 교회 회원들의 말과 행동으로 미주리주 주민들이 후기 성도에 대해 가진 부정적인 감정이 격해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학생들에게 다음 역사 요약 복사본을 나누어 주고, 한 학생에게 그것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한다. 나머지 반원들에게는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교회와 교회 회원들에게 해가 된 성도들의 말과 행동들을 찾으라고 한다. 읽는 학생에게 매 단락마다 잠시 읽는 것을 멈추라고 할 수도 있다. 멈출 때마다, 학생들에게 다음 질문을 한다.

  • 소수 회원들의 어떤 말과 행동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야기했는가?

1837년과 1838년에, 파웨스트 성도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교회에 반감을 품고 파문된 교회 회원들이 교회와 지도자들을 상대로 고소하고 교회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런 반대자들에 대한 일부 성도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1838년 6월에 시드니 리그돈은 “소금 설교[Salt Sermon]”로 알려진 격렬한 연설을 했는데, 그는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성도들 사이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의미로 마태복음 5장 13절을 인용하며,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84명의 교회 회원들이 변절자들에게 그 군을 떠날 것을 명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2주 후인 7월 4일, 또 한 번 연설에 나선 시드니 리그돈은 그것이 “전멸시키는 싸움”이 될지라도 성도들은 자신들을 지켜 낼 것이라고 단언했다. “평화를 탄원하라”(교리와 성약 105:38)는 주님의 지시와는 모순되는 듯했음에도 이 두 연설의 원고가 모두 발행되었으며, 그것은 후기 성도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불안을 야기했다. (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191~192쪽 참조)

1838년 8월 6일에 일단의 성도들이 미주리주 갤러틴에서 투표하려고 했을 때, 미주리 주민들이 그들을 떠밀고, 그 지역 남성 한 명은 성도 중 한 명을 구타했다. 성도들이 맞서 싸웠고, 양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은 추가의 갈등과 위협을 야기했으며, 후기 성도와 미주리주의 이웃들 사이에 오해를 증폭시켰다.

이 시기에 샘프슨 아바드라는 개종자는 대나이츠[Danites]라는 습격 조직을 결성하여, 자기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비밀 서약을 하게 했다. 아바드는 그들에게 미주리 주민들에게 약탈하라고 지시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바드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지시가 제일회장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확신시켰다. 이후에 진실이 밝혀졌고, 아바드는 파문당했다. 아바드의 행동은 교회의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으며, 이로 인해 선지자가 리버티 감옥에 수감되었다.

1838년 10월에 일부 교회 회원들과 미주리주 민병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양쪽 진영에서 몇 명이 사망하였다. 그 전투에 대한 과장된 보고서가 미주리주 주지사인 릴번 더블유 보그스 주지사에게 전달되었고, 보그스 주지사는 근절령으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법령을 발행했다. “공공의 평화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몰몬을 적으로 간주하여 근절시키거나 주에서 추방하여야 한다.”(History of the Church, 3:175 재인용) 곧, 파웨스트 시는 성도들의 병력에 비해 5배 정도 수적으로 우세한 민병대에 둘러싸였다.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은 리버티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고, 겨울 내내 그곳에 갇혀 있었다. 나머지 성도들은 그 주에서 강제로 떠나야 했다.

  • 성도들이 겪은 일부 박해는 교회 회원들의 행동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식하는 것이 왜 중요하겠는가?

  • 이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동과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학생들이 대답하면, 다음 원리를 강조한다. 우리의 행동과 말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앨마서 39장 11절을 읽으라고 해도 좋다.)

학생 몇 명에게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가 교회에 관해 긍정적인 관점을 갖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본 경험을 나누어 달라고 한다.

수업 전에 칠판에 써 놓은 질문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수업을 마무리한다. 학생들에게 우리가 어려움과 시련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관해 오늘 배운 내용을 나누어 달라고 한다. 어려운 시기에 복음 안에서 충실하게 견뎠을 때 얻는 힘에 관해 여러분의 간증을 나눈다.

보충 및 배경 정보

커틀랜드에서의 배도 기간에 대한 설명

1837년 동안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의 일부 교회 회원들은 사악한 정신에 빠져들었다.

“이 시기에 모든 종류의 대지 및 부동산에 투기하는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만연했으며, 교회에도 이런 투기의 정신이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 정신은 악의적 추측, 결점 찾기, 분열, 그리고 배도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것은 마치 세상과 지옥에 있는 모든 세력이 그들의 영향력을 하나로 모아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단번에 무너뜨리려는 것 같았다.”(History of the Church, 2:487)

당시 커틀랜드에 살았으며, 이후 제2대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봉사했던 엘리자 알 스노우는 커틀랜드에서의 이 시절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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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 알 스노우

“겸손하고, 모든 의무를 다 수행할 만큼 충실했던 많은 사람들이, 신권의 모든 부름에 따라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들이 거만해졌으며, 그들의 마음은 교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적인 사랑과 정신에 도취하게 되자 주님의 영은 그들의 마음에서 물러갔습니다.”(Biography and Family Record of Lorenzo Snow [1884], 20)

브리검 영은 1837년의 교회 분위기와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보호하려던 자신의 노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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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검 영 회장

“이때에 여러 십이사도에게 스며들었던 투기, 불평, 배도의 영이 교회의 모든 정원회 속으로 빠르게 번져서 그 누구도 따라야 할 길을 명확하게 보기 힘든 상황이 널리 퍼져 있었다.

… 이것은 세상과 지옥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무너뜨리고자 연합하여 야기한 위기였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강한 자들의 신앙이 흔들렸습니다.

이 어둠의 기간 동안 저는 조셉 곁에 있었으며, 하나님이 제게 주신 모든 지혜와 권능으로 하나님의 종을 지지하고 교회의 정원회들을 단합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Manuscript History of Brigham Young 1801–1844, ed. Elden Jay Watson [1968], 15, 16–17)

커틀랜드에서의 재정 문제를 야기했던 요소들

18837년에, 커틀랜드의 일부 교회 회원과 심지어 몇몇 유명한 교회 지도자들의 마음이 탐욕에 사로잡혔다. 금화와 은화는 드물었다. 사람들은 그 지역의 여러 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를 사용했다. 성도들이 재정적으로 좀 더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은 은행과 유사한 회사를 세우고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Kirtland Safety Society]라고 명명했다. 많은 성도들이 새로운 은행의 채권을 사들였다. 회사가 문을 연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훗날 1837년의 공포라고 불리게 된 재정 위기가 뉴욕 시에서 시작되어 서부를 휩쓸었으며, 이로 인해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를 포함하여 수백 개의 은행이 문을 닫게 되었다.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불안정을 초래한 다른 요인들도 있었다. 다수의 다른 은행들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은행권 법화의 인정을 거부하고 몰몬을 반대하는 신문은 이 은행권을 쓸모 없는 통화로 낙인찍었다. 더욱이 소사이어티의 자본금은 주로 토지 형태로 되어 있었기에, 자체적으로 발행한 지폐의 상환 요구를 감당할 만한 금과 은과 같은 경화, 즉 정화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교회의 적들은 은행 예금 인출 소동을 일으키려고 소사이어티 발행 은행권을 충분히 확보해 두어, 소사이어티 최초의 은행권이 발행되고 나서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소사이어티가 어쩔 수 없이 고객에게 정화에 의한 지불을 중지하게 했다. 그 결과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은 오하이오주의 금융 관계 법령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조셉과 시드니는 각각 1,000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조셉 스미스는 은행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했지만, 결국 은행 운영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미숙한 데다 부정직하기까지 한 관리자들은 은행을 더욱 와해시켰다. 은행 회계원이자 조셉의 개인 서기였던 워렌 패리쉬는 20,000 달러 이상을 횡령했다.

커틀랜드에서 커져만 가는 투기의 영 또한 교회의 재정 문제를 가중시켰다. 사람들은 소사이어티에서 차입한, 현금이나 다름없는 어음의 유효성을 이용하여 전매를 통해 큰 차익을 얻고자 땅을 구입하기 위해 빚을 졌다.

1837년 가을에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문을 닫아야만 했다. 수백 명의 개인들이 투자했던 거의 모든 것을 잃었으며, 그 중에서도 조셉 스미스가 가장 큰 손실을 입었다.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교회 은행, 또는 선지자의 은행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일부 성도들은 그들의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 조셉 스미스를 비난했으며, 심지어 그를 타락한 선지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을 잃은 다른 많은 성도들은 신앙 안에서 계속 머물렀으며 선지자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 (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학생 교재, 제2판 [교회 교육 기구 교재, 2003], 171~174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