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및 교회 역사
일리노이주 나부(커머스)

“일리노이주 나부(커머스)”, 교회 역사 주제

“일리노이주 나부(커머스)”

일리노이주 나부(커머스)

1830년대 후반에 미주리주에서 쫓겨난 후기 성도들은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인 퀸시와 그 주변에 피난처를 세웠다. 그들은 두 가지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즉, 함께 모여서 다시 도시를 세우고 박해를 무릅쓰든지, 아니면 대립을 피하기 위해 인구가 더 많은 지역에 흩어져 살아야 했다. 조셉 스미스는 모여 사는 것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라는 계명을 신뢰했기에 교회 지도자들에게 아이잭 갤런드에게서 대규모의 토지를 구입하게 했다. 그 땅은 미시시피강 옆에 있었으며,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인 커머스도 그 땅의 일부였다. 성도들은 곧 습지에 배수로를 만들고, 농작물을 심고 과수원을 가꾸며, 가옥과 도로를 건설하고, 사업체를 설립하고, 미국 전역과 영국에서 밀려드는 이민 개종자들을 맞아들였다. 조셉은 그 도시를 나부로 개칭했는데, 이는 “아름다운”이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히브리어 단어였다.1

조셉 스미스와 교회 지도자들은 강력한 도시 헌장을 주 정부에 요청하여 승인받았는데, 이는 그들이 이전에 겪은 불공정한 일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려는 희망에서였다. 조셉 스미스는 1842년부터 1844년에 사망하기까지 그 도시의 시장으로 재직했다. 전성기에는 그 도시의 인구가 1만 명에 육박했으며, 일리노이주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조셉 스미스가 1841년 1월에 받은 계시에는 성도들이 성전을 짓도록 다시금 노력하라는 계명이 담겨 있었다. 따라서 나부에서의 주된 활동은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장엄한 석재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성도들은 그 공사를 위해 노동력, 물품, 기금을 바쳤다. 그 계시에는 또한 그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나부 하우스를 지으라는 지시도 있었다. 넓은 야외 숲은 교회의 반연차 대회를 포함하여 대규모 공식 모임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주님께서는 나부에서 조셉 스미스를 통해 중요한 의식과 가르침을 소개하셨다. 죽은 자를 위한 첫 침례 의식이 미시시피강 근처에서 집행되었으며 이후에는 건축 중에 헌납된 나부 성전의 침례반에서 집행되었다. 첫 성전 엔다우먼트는 조셉 스미스의 붉은 벽돌 상점 2층 방에서 소규모의 사람들에게 주어졌으며, 처음으로 문서화된 복수 결혼 인봉을 포함하여 현세와 영원을 위한 첫 결혼 인봉은 성전이 완공되기 전에 개인의 집에서 집행되었다. 조셉 스미스는 생애 마지막 대회에서 힘 있는 가르침을 전했는데, 킹 폴레트 설교라고도 불렸던 이 가르침은 인간의 신성한 본성과 잠재력에 관한 것이었다.

나부는 또한 교회 조직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십이사도들이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부로 돌아온 후에, 조셉 스미스는 그들에게 교회의 제반사를 관리할 더 큰 권세를 주고 성전 의식을 위임했으며, 자신이 죽은 후에 교회를 인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켰다. 상호부조회는 1842년 3월 17일에 나부에서 조직되었으며, 조셉 스미스는 이를 완전한 교회 조직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라고 여겼다.

나부에서는 성도들의 인구가 많아지고, 포괄적인 도시 헌장과 견실한 도시 민병대가 있어서 성도들이 오하이오주와 미주리주에서 받았던 많은 박해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긴장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1842년부터 합법적인 신병 인도 절차 또는 납치를 통해 조셉 스미스를 미주리로 데려가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주변 지역의 일부 주민들과 한때 후기 성도였으나 불만을 품고 교회를 떠난 일부 나부 주민들 사이에서 교회에 대한 반대가 커져 갔다. 이런 어려움에 직면하여 조셉 스미스와 다른 이들은 더 먼 서쪽 지역에 추가로 정착촌을 세울 계획에 착수했다.

1844년 여름, 조셉과 하이럼 스미스는 나부에서 동쪽으로 약 32킬로미터 떨어진 일리노이주 카테지에서 살해당했다. 성도들은 선지자를 잃은 슬픔에 애도하면서도 십이사도가 조셉을 대신하여 교회를 이끄는 것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일리노이주를 떠나라는 거센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성전을 완공했으며, 그곳에서 수천 명이 엔다우먼트를 받았다. 그런 후, 1846년 2월부터 그들은 집과 성전을 뒤로하고 나부를 떠나기 시작했다.2

20세기 동안에 교회는 나부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사적지를 매입했다.3 이 중에는 성전 터도 있었는데, 그 성전은 화재와 토네이도로 파괴되어 결국 철거된 상태였다. 2002년에 교회는 그 부지에 일리노이 나부 성전을 재건축하여 완공했다.4 오늘날 나부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와 커뮤니티 오브 크라이스트(구칭 복원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관광지로서 전 세계에서 오는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두 교회의 회원들은 초기 역사를 반추하며 나부를 성스러운 장소로 공유하고 있다.

관련 주제: 일리노이주 퀸시 정착촌; 나부 성전; 나부의 여성 상호부조회; 킹 폴레트 설교; 나부 익스포지터; 조셉과 하이럼 스미스의 죽음; 교회 지도자 승계; 나부를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