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및 교회 역사
파웨스트

“파웨스트”, 교회 역사 주제

“파웨스트”

파웨스트

후기 성도가 잭슨군에서 쫓겨나고 3년이 흐른 1836년에 미주리주 입법부에서는 인적이 드문 지역에 콜드웰군이라는 새로운 군을 조성하여 후기 성도가 그곳에 정착할 수 있게 하려 했다. 성도들은 그곳에 토지를 매입하고, 파웨스트라는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1 1838년 4월에 주님께서는 조셉 스미스에게 파웨스트를 “거룩하고 성별된 땅”이 되게 하여 성도들이 그곳에 모여 성전을 짓고 당신께 예배드리게 하라는 계시를 주셨다.2

1836년부터 1839년까지 5천 명의 성도들이 파웨스트와 그 주변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1838년 3월에 조셉 스미스가 파웨스트에 도착한 이후 그곳은 교회 본부로 자리잡게 되었다.3 선지자는 파웨스트에 거주하는 동안 일곱 편의 계시를 받았고, 이는 훗날 교리와 성약에 수록되었다. 이러한 계시 가운데 특히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라는 이름을 밝히셨고, 십일조의 법을 제정하셨다.4

파웨스트 정착지는 본래 미주리주 잭슨군에 시온을 세우기 위해 만든 정착 계획인 “시온 성 구획도”를 본떠 만들어졌다.5 1838년 7월 4일에 성도들은 이 새로운 도시에서 성전 모퉁잇돌 네 개를 놓고 헌납했다.6

Missouri. Caldwell Co. Far West

미주리주 파웨스트에 있는 성전 모퉁잇돌과 기념비.

하지만 성전 건축 작업은 더 진행되지 못했다. 1838년 가을에 콜드웰군을 비롯하여 인근 지역에서 성도들을 상대로 자행되었던 폭도들의 폭력 행위는 이내 대규모의 무력 충돌로 번졌다. 미주리주 주지사 릴번 더블유 보그스는 주 민병대에 파웨스트를 포위하여 미주리주에서 성도들을 쫓아내라고 명령했다. 주 민병대 사령관 새뮤얼 디 루카스 장군은 파웨스트 외곽에서 성도 대표단을 만나 조셉 스미스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이 항복하여 체포에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도시 전체를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대표단이 파웨스트로 돌아왔고, 대표단 일원 중 한 명이었던 조지 엠 힝클은 조셉에게 루카스가 “회담을 제의했다”고 했다. 하지만, 조셉을 체포하려 한다는 루카스의 의중은 설명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루카스와의 대담을 수락한 조셉과 다른 이들은 즉시 체포되어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고, 결국 수감된 채로 재판을 기다리게 되었다.7

Expulsion of the Saints

1838년 11월, 파웨스트 투항 장면 그림.

조셉 스미스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성도들은 미주리주를 떠나라는 요청에 따라 파웨스트를 중심으로 미주리주를 떠나기 시작했다. 조셉이 받은 계시 중 하나는 1839년 4월 26일에 십이사도에게 파웨스트를 떠나 영국으로 선교 사업을 하러 가도록 지시하는 내용이었다.8 교회의 반대 세력 중에는 자신들이 이 신성한 지시의 성취를 막았다며 으스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십이사도가 영국으로 선교 사업을 떠나기 전에 브리검 영을 비롯한 다른 사도들은 밤을 틈타 파웨스트 성전 부지로 돌아와 정해진 날에 계시가 성취되도록 했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