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및 교회 역사
일라이자 에이블

“일라이자 에이블”, 교회 역사 주제

“일라이자 에이블”

일라이자 에이블

일라이자 에이블(아벨 또는 에이블스라고 표기되기도 함)은 초기 교회 회원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으며, 조셉 스미스의 생애 동안 신권에 성임되었던 몇 안 되는 흑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Able, Elijah

일라이자 에이블의 초상화.

에이블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1808년부터 1812년 사이에 메릴랜드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부모의 이름은 불분명하다.1 그의 부모는 서로 인종이 달랐던 것 같다. 1850년 미국통계국의 자료에는 에이블의 조부모 중 한 명이 흑인이었다고 나와 있으며, 그보다 더 나중 자료에 따르면 그의 조부모 중 한 명이 흑인이었다고 한다.2

에이블은 미국이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시기에 성장했다. 남부 주에서는 아프리카 흑인 혈통을 지닌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것이 허용되었다. 북부 주에서는 노예 제도가 불법이긴 했지만, 이곳의 백인은 일반적으로 흑인을 사회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겼으며, 다른 인종과의 결혼은 위법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회복된 복음은 “검거나 희거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니파이후서 26:33)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1832년 9월, 이즈키엘 로버츠라는 이름의 백인 교회 회원이 북부의 오하이오에서 에이블에게 침례를 주었다. 오하이오는 흑인과 백인이 다소 자유롭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에이블이 교회 본부가 있는 커틀랜드로 이주한 뒤, 그의 삶은 다른 성인 남성 회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멜기세덱 신권에 성임되었으며, 조셉 스미스 일세에게서 축복사의 축복을 받았고, 칠십인에 성임되었다. 1838년에 에이블은 뉴욕과 캐나다로 선교 사업을 떠났다. 그 이후 그는 일리노이주 나부에서 성도들과 합류했다.

1842년에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이주해 목수로 일하며 그곳의 지부에서 활동했다. 1847년에는 메리 앤 애덤스라는 흑인 후기 성도 여성과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다.3 에이블 가족은 1853년에 유타로 이주했다. 그 이후 30년간 에이블은 솔트레이크시티 와드에서 활동하며, 솔트레이크 성전 건설 공사에 참여하고, 오하이오로 또 다시 선교 사업을 떠났다.

에이블이 유타에 도착하기 1년 전인 1852년에 브리검 영은 흑인 남성에게 신권 부여를 금지하는 정책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에이블은 신권 직분과 자격을 유지했지만, 성전 엔다우먼트를 받고 메리 앤과 인봉되기 위해 브리검 영에게 허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되었다. 에이블은 1879년에 또 한 차례 요청했으나 당시 회장이던 존 테일러는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4 에이블은 1884년 12월 25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충실하게 남았다.

20세기 초반, 에이블이 지닌 흑인 신권 소유자로서의 자격은 대부분 잊혀졌다. 훗날 몰몬 역사학자들은 에이블의 성임, 회복된 복음에 대한 그의 신앙, 초기 선교사로서의 봉사 등을 재발견했다.

관련 주제: 제인 엘리자베스 매닝 제임스, 인종과 신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