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및 교회 역사
윌포드 우드럽

“윌포드 우드럽”, 교회 역사 주제

윌포드 우드럽

윌포드 우드럽

윌포드 우드럽은 1889년부터 1898년 9월에 생을 마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제4대 회장으로 봉사했다. 코네티컷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1833년에 침례를 받았다. 그는 이스라엘 진영 원정대에 참가했으며 여러 차례 선교 사업을 했다.1 윌포드 우드럽은 1839년에 사도로 성임받은 뒤, 50년 이상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봉사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작성한 자세한 일지는 초기 교회 역사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남아 있다.

Wilford Woodruff

윌포드 우드럽의 측면 초상.

교회 역사부 제공

1837년, 우드럽은 피비 휘트모어 카터와 결혼했다. 1840년대에 그는 조셉 스미스가 가르친 복수결혼의 실행을 받아들여, 1846년부터 1877년 사이에 최소 7명의 여성들과 결혼했다. 그는 34명의 자녀를 두었다.2

1877년, 유타 세인트조지 성전이 완공되자 우드럽은 첫 번째 성전 회장으로 봉사하게 되었으며, 1884년까지 그 성전 회장으로 봉사했다. 1887년 존 테일러가 사망한 후 우드럽은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으로서 교회를 이끌었으며, 약 2년 후에 제일회장단을 재조직하고 교회 회장으로 지지받았다.3

1890년에 우드럽은 교회의 미래에 대한 계시를 간구한 뒤, 복수결혼 실행 종료를 선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라는 영감 어린 지시를 받았다.4 또한, 그는 1894년에 계시를 받아 교회 인봉 의식에 몇 가지 변화를 도입했으며, 성도들에게 조상들이 교회 회원이 아닐지라도 조상들에게 인봉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입양 인봉으로 개인이나 개인의 조상을 선교사나 교회 지도자에게 인봉하던 관습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우드럽은 유타 계보 협회를 설립하는 등 계보 조사의 진전을 위한 활동들을 개시했다. 또한, 우드럽 회장은 처음으로 독신 여성들에게 선교사 부름을 주며 자매 선교사 봉사의 새 시대를 열었다.

윌포드 우드럽의 생애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회복의 선지자들 동영상을 본다. 이 동영상은 history.ChurchofJesusChrist.org와 복음 자료실 앱에서 볼 수 있다.

관련 주제: 성명서, 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