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24장: 요한복음 8~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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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10장

요한복음 8~10장 소개 및 연대

요한복음 8~10장은 구주의 성역 기간 중 유대인 지도자들의 적대가 극심하던 시기를 보여 준다. 구주께서는 말꼬투리를 잡아 덫으로 옭아매려 하는 그들의 시도에 대응하여, 음행 중에 잡혀 온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그녀에게 연민을 보이셨다.(요한복음 8:1~11 참조) 예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선언하시고, 나중에는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임을 설명하셨다. 그때마다 분노한 적대자들은 돌을 들어 그분을 죽이려고 했다.(요한복음 8:52~59; 10:29~39 참조)

구주께서는 초막절 동안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자신의 신성과 사명을 사람들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빛과 어둠(요한복음 8:12 참조), 자유와 죄의 속박(요한복음 8:31~36 참조), 진리와 오류(요한복음 8:40~46 참조) 등 서로 대비되는 것을 비유로 드셨다. 진리는 상대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치신 후 눈이 먼 것과 보는 것이라는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영적 맹인에 대해 가르치신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요한복음 9:39~41 참조) 또한, 요한복음 10장에서 우리는 선한 목자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도둑, 삯꾼, 양을 위협하는 이리와 비교해 볼 수 있다.(요한복음 10:1~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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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과 연대표

요한복음 8~10장 주해

요한복음 8:1~11.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구주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그분 앞으로 끌고 왔다. 그들은 모세 율법에 따라 그녀를 돌로 쳐야 하느냐며 예수님께 여쭈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그들이 예수께 이 질문을 한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음행한 여인을 예수께 데려감으로써, 다음과 같은 올무를 그분에게 놓았다. (1) 만일 모세 율법에 동의하여 그녀를 돌로 쳐야 한다고 하면, (ㄱ) 그분은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는 형벌을 다시 제정하는 것을 옹호하는 듯 비쳐짐으로써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또한 (ㄴ) 로마제국에서 [금지한] 것을 명함으로써 널리 행해지고 있는 민법에 저촉될 것이다. (2) 만일 그분이 모세 율법에 동의하지 않고 돌로 쳐서 죽이는 것에 못 미치는 어떤 것을 주장한다면, 그분은 율법을 왜곡하고, 과거의 신성한 관례에서 이탈하며 그것을 경멸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을 것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1965–73], 1:4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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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그리스도

음행 중에 잡힌 여인

요한복음 8:7~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구주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요한복음 8:11) 하신 말씀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가르쳤다. “이 문맥에서 정죄하다라는 단어는 분명히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옥스 장로는 예수께서 여인의 죄를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회개할 시간을 허락하시고 최후의 심판은 나중에 옴을 인정하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여인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으며, 이는 그분이 당시에 그녀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리지는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주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라고(요한복음 8:15) 말씀하신 것에서 그 의미는 확실해집니다.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은 회개할 시간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로 치려 하던 이들에게서 배척을 받으며 보냈을 시간 대신 말입니다.”(“‘Judge Not’ and Judging,”Ensign, Aug. 1999, 8)

이와 비슷하게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구주께서 그 여인에게 하신 말씀에 관하여 이렇게 가르쳤다. “그분은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죄를 지은 여인에게 죄스러운 생활을 버리고 죄를 더 이상 범하지 말며 생활을 변화시키라고 명하셨다. 주님께서는 ‘여인아 가서 회개하라’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죄를 버리는 첫 단계를 시작하라는 것을 뜻하는 말씀이었다.”(용서가 낳는 기적[1969], 153쪽)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서는 음행한 여인이 구주의 권고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준다. “그러자 그 여인은 그 시각부터 하나님을 찬미했으며, 그분의 이름을 믿었더라.”(Joseph Smith Translation, John 8:11)

예수님과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의 기사를 마음속에 더 잘 그려 볼 수 있도록, LDS.org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성경 비디오에 나오는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Go and Sin No More]”(3:22)를 시청한다. 이 비디오는 요한복음 8장 1~11절을 다룬다.

요한복음 8:12; 9:5. “나는 세상의 빛이니”

구주께서는 성전에서 계속 가르치시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다.(요한복음 8:12)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음 세 가지 면에서 “세상의 빛”이 되신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이십니다. 이는 그 빛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나아와 광활한 우주를 채우[기]’(교리와 성약 88:12)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면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비춰 주는 모범을 보이시고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에 세상의 빛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선을 행하도록 권고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빛입니다.”(“세상의 빛이요 생명이라”, 성도의 벗, 1988년 1월호, 68~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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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갈래로 나뉜 대형 촛대

초막절 기간에 높이가 50규빗(22.25미터) 되는 여러 갈래로 나뉜 대형 촛대들이 성전 뜰을 비추었다.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실 무대가 되었다.(요한복음 8:12) 또한, 요한복음 7:1~14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8:13~20.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이 두 분의 증언

구주께서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증언하시자 바리새인들은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증명하는 증언은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대응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모세 율법에 실려 있고 그들이 매우 잘 아는 증인의 법을 언급하셨다.(신명기 19:15; 요한복음 8:13~20 참조) 이 문제에서는 반박할 수 없는 두 분의 증언, 즉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증언이 있었으므로 증인의 법은 충족되었다.

요한복음 8:21~24.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구주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자신을 믿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왕국에 거할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4:2~3; 17:24; 요한계시록 3:21; 교리와 성약 27:18; 132:23 참조) 구주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에게 나아와 결국에는 자신이 있는 곳에 함께 있도록 권유하시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 권유를 무시하고 “죄 가운데서 죽[게]” 된다.(요한복음 8:21, 24) 즉, 그들은 회개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속죄를 통해 깨끗함을 입지 못하게 된다. 구주께서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은(요한복음 8:22) 구주를 받아들이라는 권유와 그분을 받아들일 기회를 알면서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요한복음 8:28~29, 54~55.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상에 살았던 사람 중 다음과 같이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나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한복음 8:29) 그러므로, 그분은 “다른 사람처럼 말하지 아니하셨으며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나니, 이는 누구도 그를 가르칠 필요가 없었음이더라.”(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3:25[경전 안내서]) 예수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셨다. 구주께서 완전하시며 죄 없는 삶을 사신 것에 관해 통찰을 더 얻으려면, 히브리서 4:15; 베드로전서 2:21~22; 교리와 성약 20:22; 히브리서 7:26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께서 전하신 가르침을 마음속에 더 잘 그려 볼 수 있도록, LDS.org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성경 비디오에 나오는 “예수께서 선언하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Jesus Declares: I Am the Light of the Worl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4:26)를 시청한다. 이 비디오는 요한복음 8장 12~56절을 다룬다.

요한복음 8:30~3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구주께서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명에 관하여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이 믿[었다.]”(요한복음 8:30) 그분은 자신을 믿는 이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말에 계속 순종한다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그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8:30~31 참조)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구주께 계속 순종한다면 진리의 지식과 자유를 얻게 된다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순종은 참된 자유로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계시된 진리에 순종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

자유와 해방은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과 영의 속삭임에 순종했을 때 우리에게 오는 소중한 은사입니다. … [계시된 진리의 원리들에] 대한 순종은 참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예비하신 잠재 능력과 영광에 이르도록 해 줍니다.”(“순종: 자유에 이르는 길”, 성도의 벗, 1999년 7월호, 55, 56쪽)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어떤 점에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를 언급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짓 교리의 파멸적인 힘으로부터의 자유, 욕구와 욕망이라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죄라는 족쇄로부터의 자유, 모든 악과 부도덕한 영향력 및 모든 규제와 제한하는 힘으로부터의 자유, 오직 승영한 존재들만이 충만하게 누리는 무한한 자유로 계속 나아가는 자유.”(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456–57)

요한복음 8:33~36. 하나님의 아들은 모든 사람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었던 일부 유대인들은 그분께서 자신이 가르친 진리를 따르면 자유를 얻게 된다고 단언하신 것에 무척 놀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공표했다.(요한복음 8:33) 즉,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도 영적으로 속박된 적이 없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그런 혈통을 지닌 자신들이 어떻게 영적으로 예속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8:34) “범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단 한 번의 죄보다는 죄를 계속 짓는다는 의미를 띤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중독성이 있는 약물의 사용에 대해 말씀하면서, 우리의 선택의지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예속의 한 양상, 또한 다른 종류의 죄를 계속 짓는 것에서 기인할 수 있는 예속의 한 양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에는 시험해 본다는 사소한 생각에서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시도해 본다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습관에서 의존으로, 의존에서 중독으로 발전합니다. 점차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습관에 매이는 것은 느끼기도 힘들 만큼 작은 것이나, 결국은 그 습관이 떼어 버릴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하게 되어서야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

선택의지, 즉 선택하는 능력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우리 창조주의 영의 자녀인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앨마서 13:3; 모세서 4:4 참조) 그것은, 생명 그 자체만큼이나 귀중한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러나, 흔히 선택의지는 잘못 이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나, 일단 그와 같이 선택하고 나면, 우리는 그러한 선택의 결과에 매이게 됩니다.”(“중독을 원하는가 자유를 원하는가”, 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6~7쪽) 죄를 계속 지을 때 따르는 결과에 대해 더 이해하려면, 요한1서 3:6~9 주해를 참조한다.

그런 후 구주께서는 종, 즉 “죄의 종”은 주인이 원할 경우에만 집에 머물러 있으나 아들, 특히 “하나님의 아들”은 합법적인 신분으로 “영원히 거”하게 된다고 선언하셨다.(요한복음 8:3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죄를 통해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적법한 지위를 부여하시고 그들이 “참으로 자유로”운 상태(요한복음 8:36), 즉 인류의 가장 큰 원수인 육체적 및 영적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되게 하신다.

요한복음 8:37~52.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유대인 지도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한 권리가 있음을 넌지시 드러내자, 구주께서는 그들이 숭상하는 조상들의 행위를 본받지 않는다며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성약의 자녀들처럼 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 앞에 서서 진리를 말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죽이려고 했다. 창세기에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행위와 대조되는 아브라함의 몇몇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들을 복음으로 개종시켰다.(창세기 12:5 참조) 그는 다툼을 피했다.(창세기 13:7~9 참조) 그는 하나님께 순종했다.(창세기 12:1~9; 15:1~6; 22:1~19 참조) 그는 하늘의 사자들을 환대했다.(창세기 18:1~8 참조) 그는 엄청난 신앙을 행사했다.(창세기 22:1~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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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지도자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의 의로운 행위를 본받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분노했다.(요한복음 8:31~40 참조)

구주께서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행위를 지적하며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라는 말로 그들을 꾸짖으셨다.(요한복음 8:41) 구주께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이 악마의 “자식” 또는 추종자임을 암시하는 말씀을 하시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격노하여 앙갚음을 하기 위해, 자신들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다는 말을 했다.(요한복음 8:41) 그것은 예수님이 사생아라고 여기며 모욕하는 말이었다. 마리아가 임신했을 당시 마리아와 요셉은 합법적으로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욕은 예수께서 인생에서 어떤 취급을 감당해 내셨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분은 여러모로 욕설을 듣고 핍박을 받으며, 자신을 그릇되게 평하는 온갖 악한 말을 들으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아신다.(마태복음 5:11 참조)

요한복음 8:42~52.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구주께서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더라면 자신을 사랑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요한복음 8:42)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숭배하는 신은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이며, 모든 거짓의 아비인 악마였기 때문이었다.(요한복음 8:44 참조)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이렇게 나온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까닭은 너희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John 8:47)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에 응하여, 예수님을 모든 백성 중 가장 천하며 유대인 혈통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불렀으며, 그분이 악령이 들렸다고 말했다.(요한복음 8:48 참조) 이 지도자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를 거부했다.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고대의 다른 모든 선지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쳤으며, 경전에서도 그 사실을 명백하게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한복음 8:53~5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나타내고자 “스스로 있는 자[I Am]”라는 칭호를 사용하셨다.(출애굽기 3:13~14 참조) 구주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I am]”라고 말씀하심으로써(요한복음 8:58), 동일한 칭호로 자신을 언급하셨다. 그분은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바로 그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리고 우리 경륜의 시대를 포함하여 모든 시대의 선지자들과 이야기하신 여호와임을 선언하셨다.(교리와 성약 29:1; 38: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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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로 바친 이삭

제물로 바친 이삭, 제리 하스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이 자신의 때를 보고 기뻐했다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8:56 참조) 그 일은 아브라함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산에서 그분을 보았을 때 일어났을 것이다.(창세기 22:14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 산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이삭을 대신하여 숫양이 제물로 바쳐졌듯이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셨다.(창세기 22:13 참조)

요한은 예수께서 “나는[I am] …”이라고 선언하신 경우를 여러 차례 기록했다. 다음 도표에는 요한복음에서 “나는[또는 내가]”이 나오는 구주의 중요한 말씀 일부가 실려 있다.

요한복음 참조 성구

“나는[I Am] …”이 나오는 말씀

성취

6:35, 48, 51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속죄하려 자신을 바치셨다. 그분은 우리를 영적으로 먹이신다.

8:12; 9:5

“나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다. 그분의 말씀과 모범을 따른다면, 우리는 영적 어둠 속에서 걷거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8:5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여호와이시다.

10:7, 9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 우리의 문을 지키고 있는 목자처럼 우리를 보호하신다. 누구도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그분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10:11, 14

“나는 선한 목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그분은 우리 각자를 개별적으로 아신다.

10:36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의 자녀 중 장자이며(교리와 성약 93:21 참조) 육신을 입은 독생자이시다.(요한복음 1:14 참조)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육체적 죽음 및 영적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은사를 주셨다.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다. 그분의 속죄 덕분에 우리는 모두 부활할 것이며 우리의 충실함을 통해 영생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15:1, 5

“나는 참포도나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을 의지한다. 우리는 오직 그분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요한복음 8:59. 그들이 돌을 들어 그분을 치려 했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했다. 즉,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해한 그들은 돌을 들어 그분을 치려고 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주장을 신성모독으로 여겨, 그분을 돌로 쳐서 죽이려 했다. 이것은 신성모독에 대한 형벌로서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다.(레위기 24:16 참조)

요한복음 9:1~12. 우리의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드러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맹인들을 고쳐 주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메시야에 대해 널리 가르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가 지상에 오시면 맹인들의 시력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었다.(누가복음 4:18; 이사야 29:18; 35:5; 42:7 참조)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게 되셨을 때, 제자들이 그분께 여쭈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요한복음 9:2) 제자들의 질문은 당시 유대교에서 믿던 두 가지 개념, 즉 고통은 죄악의 결과라는 개념과 어떤 형태로든 현세 이전의 삶이 존재했다는 개념을 반영한다.

이에 구주께서 하신 대답은 장애와 같이 필멸의 삶에서 역경을 겪는 사람이 반드시 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 준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한복음 9:3) 예수께서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 나의 일을 마칠 가 오면 나는 아버지께로 가리라.”(Joseph Smith Translation, John 9:4)

그 상황에서 구주의 제자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인간이 겪는 고통의 원인과 목적을 궁금하게 여길 때가 있을 것이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우리가 주님에 대한 신앙으로 역경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시험을 받기 위해 이곳에 보내졌습니다. 범사에는 상대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되는 것을 통해, 어려움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침으로써 배우고 성장합니다. … 주님이 우리의 역경을 우리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성별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축복하기 위해 활용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만났을 때 이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후 옥스 장로는 요한복음 9장 2~3절을 인용했다.]

영성의 렌즈를 통해 인생을 볼 경우, 우리는 하나님 사업의 많은 예들이 그분의 자녀들이 겪는 역경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의 역경과 다른 사람들의 역경을 통해 우리에게 축복의 기회를 주시고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이러한 원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거듭해서 ‘범사에 주 네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하신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교리와 성약 59:7)”(“범사에 감사하라”, 리아호나, 2003년 5월호, 97~98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 관하여 이렇게 가르쳤다.

“장애자인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님들이 스스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하고 자문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모든 고통은 어떤 면으로든 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생겨났다는 개념을 배워 왔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같은 생각을 바로잡아 주실 때까지는 초기 제자들 중에서도 그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9:1~3)

장애와 연관지어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어떤 장애자는 부주의나 학대 행위로 인하여 생겨나며 어떤 경우는 부모가 약물 중독에 걸린 결과로 생겨날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은 무고한 자에게도 찾아듭니다.”(“물의 동함”, 리아호나, 1991년 7월호, 7~8쪽)

요한복음 9:4~38. 점진적으로 영적 시력을 얻음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 예수께서는 진흙을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그 즉시 기적적으로 시력을 얻었지만, 그 치유와 치유를 해 주신 분에 대한 이해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커졌다. 시력을 얻은 즉시, 그는 “예수라 하는 그 사람”에게 고침을 받았다고만 이야기했다.(요한복음 9:11) 그 후에는 자신을 고쳐 주신 분이 “선지자니이다”라고 말했다.(요한복음 9:17) 좀 더 지난 후에는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요한복음 9:33) 마침내, 그는 결연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받아들였다.(요한복음 9:35~38 참조) 이 용기 있는 제자의 개종은 우리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개종은 하나의 과정이며, 한 순간에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믿는 사람은 복음의 은혜를 서서히 깨닫는다.”(The Mortal Messiah: From Bethlehem to Calvary, 4 vols.[1979–81], 2: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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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

삽화: 로버트 티 배렛

요한복음 9:15~16. 예수님에 관한 분쟁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쳐 주신 후, 사람들 사이에서 그분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며 분쟁이 생겼다. 요한은 초막절 동안과 초막절 직후에 있었던 이런 분쟁을 몇 차례 언급했다.(요한복음 7:12, 43; 9:16; 10:19 참조) 이후에 구주께서는 이런 분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9:39)

요한복음 9:22, 34~35. 회당에서 출교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회당은 수많은 유대인 공동체를 위한 종교 및 사교의 중심 역할을 했다. 회당은 영적 가르침을 받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으며, 교육 및 사교의 기회도 제공했다. 회당은 유대인 사회에서 필수적인 것이었기에 출교된다는 것은(요한복음 9:22, 34~35 참조) 파문되어 종교적 공동체의 회원 자격을 잃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그것은 문화 및 사교 모임에서 추방됨을 의미했다. 이런 위협은 분명히 가혹한 것이었기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부모는 이 기적에 대해 알아보려는 조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요한복음 9:35~38.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적 및 영적 맹인을 고치시다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은 맹인이 출교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께서는 그를 찾아내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가르치셨다. 이렇게 하여, 구주께서는 그가 더욱 분명히 “보[도록]” 도우셨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구주께서 주신 육체적 및 영적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제 시력이 두 번 주어졌습니다. 한 번은 선천적 소경에 대한 회복이며 다른 한 번은 하나님의 영원한 보좌로 승천하시기 전의 왕 중 왕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인 눈과 영적인 눈을 모두 소생시키셨습니다.”(“기사를 행하신 하나님”,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20쪽)

요한복음 9:39~41. 영적 시력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진다

구주께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신 후, 몇몇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자신들도 “맹인”인지를 물었다. 이에 구주께서는 비유를 들어 “맹인”인 사람, 즉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죄가 없”다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9:41) 반면에 “보는” 사람, 즉 구주와 그분의 신성한 사명에 관하여 충분한 증거를 받아 그분이 누구인지를 마땅히 알았어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보는” 사람들 가운데 속해 있었으므로,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었다. 영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스스로 맹인이 되는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10:1~18.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시다

요한복음 10장에는 구주께서 전하신 중요한 설교가 담겨 있다. 이 설교에서 그분은 자신을 양을 돌보는 선한 목자로 비유해서 말씀하셨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목자들의 역할을 언급함으로써 구주께서 어떻게 “선한 목자”인지에 대한 통찰을 이렇게 전했다.(요한복음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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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을 인도하는 목자

이스라엘의 한 목자가 양들에 앞서서 걷고 있다.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느니라.]”(요한복음 10:4)

사진 촬영: 제임스 제프리

“예수님 시대에, 팔레스타인의 목자는 자신의 양을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현대의 양치기와는 달리 그때의 목자는 양 떼 앞에서 걸었습니다. 그는 양 떼를 인도하였습니다. 목자는 양 하나하나를 알고 있었고 보통으로 각 양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양은 그의 목소리를 알고 있었고 그를 믿었으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양을 부를 때면, 양은 목자에게로 왔습니다. (요한복음 10:14, 16 참조)

밤이 되면 목자는 그의 양을 양사라 불리는 우리에 넣었습니다. 양사 주위에는 높은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고, 들짐승과 도둑이 넘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 울타리 위에는 가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굶주린 들짐승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양 가운데로 들어와 양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자신의 양을 사랑하는 참된 목자와 단지 월급과 임무 때문에 일을 하는 고용된 목자를 구분시킵니다.

참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양 가운데 들어가서 양의 안전을 위해 싸웠습니다. 반면에, 고용된 목자는 양보다 우선 자신의 개인적 안전을 생각하고 대개 위험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 곧 참된 목자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그 시대의 이러한 상식적인 예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의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내놓았습니다. (요한복음 10:17~18 참조)” (“신권에의 부름: ‘내 양을 먹이라’”, 성도의 벗, 1983년 7월호, 70쪽)

예수께서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하신 말씀은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백성을 돌보셨다는 배경 지식을 토대로 이해해야 한다.(시편 23:1; 80:1; 이사야 40:10~11; 에스겔 34:11~16, 23 참조) 예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로 선언하심으로써 자신이 여호와였음을 다시금 증거하셨는데, 그것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의 성취였다.

요한복음 10:7, 9. “내가 문이니”

이스라엘의 목자는 양 우리의 입구에 서서 우리로 들어가는 양을 한 마리씩 면밀히 살펴보며, 필요할 경우 상처도 치료해 주었다. 밤을 지내기 위해 양들이 울타리 안으로 모이면, 목자는 약탈자나 도둑이 양을 해칠 수도 있는 길을 막기 위해 그 문 입구에 누워 잠을 자곤 했다. 구주께서는 “내가 문이니[라]”라는 말씀으로, 기꺼이 “양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겠다는 뜻과(요한복음 10:7, 15), 결국 누가 하늘 왕국에 들어가게 될 것인가는 당신께서 결정하게 되리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몰몬경의 선지자 야곱은 문에 대한 유사한 비유를 사용하여, “그 문을 지키시는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며 “그가 아무 종도 거기 두지 아니하”신다고 말했다.(니파이후서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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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우리

양 우리의 문 쪽을 보고 있음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니파이후서 9장 41절을 언급하면서 구주께서 “팔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심을 알려 주는 몰몬서 6장 17절을 인용했다. 그런 후 그는 주님께서 문에 서서 안으로 들어올 사람을 결정하시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분은 ‘팔을 벌리고’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그 모습은 너무나 감격적이어서 지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 그 모습은 우리 마음의 한복판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임박한 재회이고, 시간과 공간 속의 한 순간이며, 그와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재회는 실제로 일어납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그분은 팔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But a Few Days”[address to CES religious educators, Sept. 10, 1982], 7; si.lds.org)

요한복음 10:16.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몰몬경에 실린 진리들이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 주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가르치셨을 때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다른 양들”이(요한복음 10:16) 누구였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성경에는 설명이 담긴 관련 성구가 나오지 않는다. 주석자들은 이 성구를 다른 내용과 관련이 없는 별개의 말씀으로 간주하며, ‘다른 양들’은 아마도 한 목자 아래에서 유대인 무리로 인도되어야 할 이방인 국가들일 것이라고 제안하는 데 만족해한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유대인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했다.”(The Vitality of Mormonism [1919], 151)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니파이인들에게 성역을 베푸시면서, 그들이 바로 “이 무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그들도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이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라고 말한 양들이라고 말씀하셨다.(제3니파이 15:21~24 참조)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몰몬경에서 가르치는 그런 추가적인 진리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모든 양을 알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현재 중동이라 부르는 곳에서 행하신 구주의 성역과 더불어, 몰몬경에는 그분께서 미대륙의 니파이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가르치신 기록이 있습니다.(제3니파이 11~28장 참조) 이곳에서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루살렘 땅에 들지 아니한 다른 무리를 방문하라고 자신에게 명하셨음을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제3니파이 16:1; 요한복음 10:16 참조) 또한 ‘[자신의] 음성을 듣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제3니파이 16:2~3 참조) 수세기 전에 예언된 대로(니파이후서 29:12 참조) 구주께서는 미대륙에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들에게 [자신을] 보이러 [가며] 이는 저들이 아버지께는 잃어버린 바 되지 아니함이니, 아버지께서는 친히 어디로 데려가셨는지 아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제3니파이 17:4)

몰몬경은 주님께서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의 위대한 증거입니다. 그것은 ‘그가 모든 국민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니파이전서 13:42) 주님께서는 선지자 니파이를 통해 ‘너희는 민족이 하나 이상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인 내가 만인을 창조하였음과 내가 바다의 섬들 위에 있는 자들을 기억한다는 것과 내가 위로 하늘에서와 아래로 땅에서 다스리며, 나의 말을 사람의 자녀들에게, 참으로 땅의 모든 민족들 위에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니파이후서 29:7)”(“모든 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리아호나, 2006년 5월호, 79~80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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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땅에 계신 그리스도

풍요 땅에 계신 그리스도, 사이먼 듀이

요한복음 10:17~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릴 권능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시 취할 권능도 가지고 계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필멸성과 불멸성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누가복음 1:31~35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10:22~23. 수전절

예수께서는 수전절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셨다.(요한복음 10:22~23 참조) 수전절은 하누카 또는 빛의 축제로도 알려져 있다. 하누카는 히브리어로 “헌납”을 의미한다. 이 기념제는 주전 165년경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헌납하고 성전 제단을 새로 쌓은 것을 경축한다. 주전 168년에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이 전사들을 이끌고 와서 성전을 더럽혔으며, 유대인의 종교를 말살하려 했다. 그러나 한 제사장 가문이(그중에서 유다 마카비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음) 이끌었던 자유의 투사들은 유대인 해방 전쟁에서 수리아인들을 격퇴했다. 탈무드에는 성전을 탈환했을 때 마카비 가문이 소량의 기름이 든 병을 하나 발견했는데, 기적적이게도 그 기름에 붙인 불이 8일 동안 타올랐다는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토대로 수전절은 대략 12월 초에 해당하는 키슬레브 달 25일에 시작하여 8일 동안 계속된다.

요한복음 10:26~29. 주님의 양은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구주께서는 자신의 양들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면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0:27; 또한 교리와 성약 50:41~43 참조) 브리검 영(1801~1877) 회장은 “우리는 어떻게 선한 목자의 음성과 낯선 이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찬 사람이 하늘의 진리를 말할 때, 양들은 이것을 들으며[교리와 성약 29:7 참조], 주님의 영이 이들의 가장 깊숙한 영혼으로 관통하여 영혼의 깊은 곳에 내려앉는 것입니다. 성신의 간증에 의해서만이 빛이 그들 안에 피어오르며, 그들이 스스로 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브리검 영[1997], 319쪽)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확언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충만한 진리와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언제 준비될지 알고 계시며, 복음을 나누는 것에 관해 우리가 그분의 지시에 귀 기울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준비된 사람들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라고 말씀하신 그분의 메시지에 응답할 것입니다.”(“복음을 나눔”, 리아호나, 2002년 1월호, 9쪽)

우리는 구주의 양 우리에서 영원히 안전하며, 구주께서는 누구도 자신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지]” 못하며 “그들을 …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약속하셨다.(요한복음 10:28~29)

요한복음 10:30, 37~38.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구주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신(요한복음 10:30) 아버지와 아들의 화합은 하나의 목적과 공동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또한 고린도전서 3:6~8; 에베소서 5:31 참조) 조셉 에프 스미스(1838~1918) 회장은 구주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라고 하신 선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 지식과 진리와 지혜와 이해력과 목적에 있어서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들 가운데 거할 수 있게 주님과 하나가 되고 주님 안에 거하라고 권고하신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 성구를 이해하고 있으며, 일부의 사람들이 해석하고 있듯이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분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선포하거니와 그들은 한 분이 아니고 두 분이며, 두 육체요, 각기 별도의 개체이니 이것은 육신의 아버지와 아들이 각기 별도의 개체인 것과 같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에프 스미스[1998], 357쪽)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하나”인지에 대하여 더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17:11, 20~23 주해를 참조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후기 성도들은 신회의 화합에 관하여 경전의 가르침을 믿는다며 이렇게 단언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는 신앙개조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을 믿는다.’ 우리는 신회를 구성하는 이 신성한 세 분이 목적과 방법과 간증과 사명에 있어서 하나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동일한 자비심과 사랑, 공의, 은혜, 인내, 용서, 그리고 구속과 같은 신의 속성으로 충만함을 믿습니다. 진리가 아니기에 경전에 결코 언급되지 않은 삼위일체설, 즉 그분들이 하나의 물질로 결합되어 있는 세 가지 인격체라는 믿음을 제외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중요하고 영원한 특성에 있어서 그분들이 하나임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40쪽)

요한복음 10:31~3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에게 그들의 신성한 잠재력을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라고 선언하시자(요한복음 10:30 참조), 그 자리에 있던 유대인들은 그분이 자신의 신성을 선언하신 것을 알고서 돌로 그분을 치려고 위협하며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라고 말했다.(요한복음 10:33)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난에 대한 응답으로 시편 82편 6절을 인용하셨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나온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칠십인 회장단의 비 에이치 로버츠(1857~1933) 장로가 다음과 같이 설명한 대로, 그런 후 구주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믿는 경전에 인간이 신이라고 나오는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하여 자신을 신성모독으로 비난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하셨다.

“위의 대화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긴다는 비난에 맞서 그 발언을 부정하지 않으셨다는 점에 주목하자. 오히려 반대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율법에서, 하나님이 그들 중 일부에게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로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셨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유대인 율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이 신으로 불린다면, 그리고 그 사실이 언급된 성구를 파기하거나 부인 또는 부정할 수 없다면,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특별히 신성화된 자신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는 것에 대해 왜 유대인들이 불평하느냐고 반박하셨다.” (New Witnesses for God, 3 vols. [1909–11], 1:465–66)

구주의 대답은 또한 그분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신성한 잠재력을 믿으라는 권유이기도 했다. 그들이 구주를 따른다면 그분은 그들이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도우셨을 것이다.(베드로후서 1:4; 요한1서 3:2; 교리와 성약 76:50, 58~62 참조)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을 위한 위대한 모범이 되시며, 그분께서 인간의 구속주가 되도록 예임되었던 것처럼 인류도 그분과 같이 되도록 예임되었다고 믿습니다. …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하나님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영적으로 우리는 그분과 같이 될 수도 있으며, 지식과 예지, 지혜와 권능을 지니는 면에서도 그분과 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 오게 된 원대한 목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함인데, 이는 만일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하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공동 상속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에프 스미스, 152쪽)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는 잠재력에 관하여 더 많은 가르침을 알아보려면, 베드로후서 1:4요한복음 3:1~3 주해를 참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