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12장: 마가복음 5~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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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7장

마가복음 5~7장 소개 및 연대

마가복음 5~7장마가복음 1~4장에서 소개된 주제들을 전개한다. 구주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에 대한 마가의 기록은 구주께서 지니신 큰 연민을 드러내고 구원의 계획에 대한 영원한 진리들을 가르쳐 준다. 구주에 대한 반대(마가복음 2:1~3:7 참조)는 침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이후로 격심해졌으며(마가복음 6:14~29 참조), 그 사건은 구주의 수난과 죽음이 임박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많은 제자들이 순교하게 될 것을 나타내는 전조가 되었다.(마가복음 8:34~35; 10:38; 13:11~13 참조) 일부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에게서 계속 결점을 찾았고, 구주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그들의 전통을 더 중시한다고 꾸짖으셨다.(마가복음 7:1~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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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연대표

마가복음 5~7장 주해

마가복음 5~7장. 구주께서 베푸신 기적들은 영원한 진리를 가르친다

마가복음 5장 1~43절, 6장 30~44절, 7장 31~37절에 언급된 기적들은 구주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신성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성스러운 가르침의 한 부분을 이루었다. … 기적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베풀어졌다.(마태복음 11:4~5; 요한복음 2:11; 10:25; 20:30~31) 그런 기적 중 다수는 죄의 결과와 죄의 치유, 신앙의 가치, 불결함에 대한 저주, 사랑의 율법 등과 같은 신성한 진리를 가르치는 상징적인 의미를 띠기도 했다.”(Bible Dictionary, “Miracles”) 따라서 구주께서 베푸신 기적을 공부하는 유익한 방법은 각 기적이 그 사건 자체보다도 더 큰 무언가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기적을 통해 확인되는 진리, 즉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에 관한 구체적인 진리를 찾아보는 것이다.(마가복음 5:1~20 주해, 마가복음 5:22~24, 35~42 주해, 마가복음 5:25~34 주해 참조)

마가복음 5:1~20. 예수 그리스도께서 귀신들을 쫓아내고 그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시다(또한 마태복음 8:28~34; 누가복음 8:26~39 참조)

마가와 누가는 이 기적이 일어난 장소를 거라사로, 그리고 마태는 가다라로 밝히고 있지만, 분명한 점은 그 기적이 일어난 장소가 이방인들이 거주했던 갈릴리 바다의 동쪽 해안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지역에 있었던 돼지 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방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었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모세 율법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레위기 11:1~8 참조) 귀신 들린 사람은 자신을 “군대[Legion]”라고 불렀는데, 신약 시대에 이 단어는 주로 3천 명에서 6천 명의 병사로 구성된 로마 군대의 한 단위를 지칭하였다. 마가와 누가는 그 “군대”라는 이름이 그 사람에게 “많[은]” 귀신이 들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명확히 밝혀 주었다.(마가복음 5:9; 누가복음 8:30)

예수님이 쫓아내시자, 귀신들은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 기적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진리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복음서 저자들은 도둑맞은 집, 즉 이 영적 존재들이 차지한 육체에서 그들을 쫓아낸 이 특별한 사례를 상세하게 서술하여 다음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

(1) 루시퍼의 왕국에서 오는 실제 존재인 악령은 글자 그대로 인간의 몸으로 들어간다.

(2) 그러면 그들은 육체적 행위를 제어하는 등 그 육신을 지배하게 된다. …

(3) 악한 영들에 사로잡힌 사람은 가장 격심한 정신적 및 육체적 고통을 받게 되고 가장 비열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다음 세상에서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는 이들에게 부과되는 영원한 고통을 상징한다.

(4) 그 악령들은 전세의 … 예수님을 기억한다.

(5) 루시퍼의 부하들은 육신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 매우 커서, 인간의 육체를 훔치려 할 뿐만 아니라 짐승의 몸에도 들어가고자 한다.

(6) 악령들은 자신들이 결국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지옥으로 내던져질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7) 반항적이고 세속적인 사람들은 기적을 목격하더라도 진리로 개심하지는 않는다.

(8) 악령으로부터 깨끗하게 된 사람들은 주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증거함으로써, 그 증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분을 믿도록 이끄는 사명을 다할 수 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1:3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령을 쫓아내신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하려면, 마가복음 1:23~27, 34; 3:11, 14~15, 22~30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5:19. “집으로 돌아가 … 네 가족에게 알리라”

많은 경우에, 구주께서는 자신이 치유해 주신 사람에게 그 기적을 소문내지 말라고 명하셨다.(마가복음 8:30 주해 참조) 하지만 귀신 군대를 쫓아내신 후에는 그 치유된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라고 말씀하셨다.[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에는 가족이 아니라 ‘친구들’(friends)로 나옴—옮긴이] 아마도 이것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영향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데가볼리 지역에서 그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가복음 5:22~43. 두 가지 기적적인 병 고침에 대한 이야기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시는 이야기 중간에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을 낫게 하신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마가는 이런 방법으로 사건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이 그 두 가지 기적을 함께 생각해 보도록 권장했을 것이다. “회당장 중의 하나인”(마가복음 5:22) 야이로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겠지만, 이름 없는 그 여인은 버림받은 사람이었을 것이다.(마가복음 5:25~34 주해 참조) 그 두 가지 기적은 구주께서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연민하시며, 또한 그들을 치유해 주실 권능이 있으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가복음 5:22~23. 회당장

예수님 시대에 회당은 야이로와 같은 회당장의 지시하에 장로 평의회에서 관장했다. 야이로는 유대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지만 구주를 지극히 경외했다. 마가복음 5장 23절에 묘사된 안수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집행하는 병 고침 의식과 동일하다.

마가복음 5:22~24, 35~42.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시다(또한 마태복음 9:18~19, 23~26; 누가복음 8:41~42, 49~55 참조)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신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기록상의 단 세 가지 사례 중 하나인데,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그분이 온 인류에게 다시 생명을 가져다주실 위대한 부활을 기대하게 된다.(또한 누가복음 7:11~15; 요한복음 11:38~44 참조) 각각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구주께서 슬퍼하는 이들을 다정히 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를 분석하며 그 이야기에서 구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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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 그레그 케이 올슨

“이 구절 외에는 경전 어디를 보아도 이 사람[야이로]이나 그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그가 예수님과 잠시 나눈 만남으로 그에 대한 기억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구주의 손길이 닿아 생각과 행동이 크게 변화되고, 새롭고도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이끌림을 받지 않았다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의 삶이 기억되었습니다. …

‘내 어린 딸’이라고 말하는 야이로의 떨리는 목소리는 구주 앞에서 무릎 꿇은 이 지체 높은 사람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영혼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후 그는 다음과 같이 신앙을 표명합니다.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마가복음 5:23] 이것은 비통에 젖은 아버지의 신앙에서 나온 말일 뿐만아니라 예수께서 손을 얹으시면 무엇이나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께서 부부에게 손을 얹으시면 그들은 곧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예수께서 가족에게 손을 얹으시면, 가족은 생명을 받게 됩니다. …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자, 예수님은 어린 소녀의 손을 잡아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모든 사람을 새롭고 더 나은 삶으로 일으켜 세워 줍니다.”(“경전 읽기”, 성도의 벗, 1980년 3월호, 96쪽)

야이로의 딸에 대한 경전 이야기를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도록, LDS.org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성경 비디오에 나오는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시는 예수[Jesus Raises the Daughter of Jairus]”(3:26)를 시청한다. 이 비디오는 마가복음 5장 22~24, 35~43절을 다룬다.

마가복음 5:25~34.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치유(또한 마태복음 9:20~22; 누가복음 8:43~48 참조)

마가복음에는 그 여인의 “혈루증”(마가복음 5:25)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세 율법에 따라 혈루증을 앓는 사람은 의식을 행하기에 불결하다고 간주하였으므로(레위기 15:19~33 참조), 그 여인은 질병을 앓았던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고 회당과 성전에서 배척되었을 것이다.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자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다고 말한 것은(마가복음 5:26) 그 여성이 자신의 상황으로 자포자기한 상태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구주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심으로써 (마가복음 5:31) 그 여인은 자신이 신앙을 행사했으며, 또한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밝힐 기회를 얻었다. 구주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고 답하셨다.(마가복음 5:34; 기울임체 추가) 이로써 구주께서는 여인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의 옷에서 기적적인 권능이 나와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잘못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또한, 이는 그녀가 이제 치유되었으므로 오랜 세월에 걸친 사회적 및 종교적 배척을 더는 받지 않아도 된다는, 여인의 이웃과 마을 사람들을 향한 선언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순결함과 완전함을 둘 다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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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지고 있는 여인

주님을 신뢰하라, 리즈 레먼 스윈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마가복음 5:28)

데니스 비 노인슈완더 장로는 칠십인의 일원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인이 구주께 나아갈 신앙을 어떻게 행사했는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중 속에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 표면적으로 여인은 군중의 여느 사람과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향해 나아갈 때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도들도 여인을 눈치채지 못했으며 그녀를 멈추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 여인에게는 그곳에 모인 무리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혼잡한 사람들 틈에 묻혀서 여인은 굳은 마음으로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으며 마음에는 구주께 나아간다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치유하실 권능을 가지고 계시며 자신을 염려하시고 자신의 필요를 돌보시리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한 가지 면에서 여인은 군중과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구경하기 위해 모였으나 이 여인은 치유받기 위해 왔습니다. …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이라는 군중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사람들 틈에서 주님께로 나아온 여인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단 한번의 손길이 고통받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고 우리 내면의 필요를 충족해 줄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인생의 모든 경우에서 조용히, 결의에 찬 태도로 구주를 향해 나아갑시다. 그분이 우리를 염려하시고 돌보심을 믿으며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하실 권능이 그분에게 있음을 믿는 신앙으로 그렇게 합시다.”(“무리 중의 한 사람”,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101~103쪽)

마가복음 5:30.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갔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또한 누가복음 8:46 참조)

흠정역 영어 성경 및 레이나발레라역 스페인어 성경을 포함하는 몇몇 성경들에는 마가복음 5장 30절에서 그 여인이 치유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능력[virtue]”(스페인어는 virtud)이 나갔다고 번역되어 있다. 그리스어 원전 신약전서에서 virtue에 해당하는 단어는 dunamis이며, 그 말은 “권능” 또는 “힘”을 의미한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신권 소유자가 의식을 집행할 때 쓰는 “능력”, 또는 영적인 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한 가지 일화를 기록했다. “제데디아 엠 그랜트 장로는 내가 어젯밤에 아이들을 축복하는 동안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에서 힘이 빠진 까닭을 물었다. 나는 내가 축복하는 아이들을 루시퍼가 멸하려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모습을 보았으며, 그래서 지상에서 그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 줄 축복을 그들에게 봉인하고자 온 신앙과 마음을 다해 애를 쓴 까닭에, 너무나 많은 능력이 나에게서 나가 그 아이들에게로 갔고, 나는 약하게 되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해 주었으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의 경우를 들어 이야기했다. (누가복음 8장) 여기서 가리키는 능력은 생명의 영이다. 그러므로 큰 신앙을 행사하여 병자를 축복하거나, 어린아이들을 축복하거나, 확인 의식을 하는 사람은 쉽게 약해진다.”(History of the Church, 5:303)

마가복음 5:35~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딸이 죽었다는 뜻밖의 소식에 야이로가 얼마나 참담했을지는 그저 상상으로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엘 앤더슨 장로는 그 참담한 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이로에게 주신 위안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는 의심이나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에도 신앙을 지키는 것이 포함된다는 중요한 원리를 가르쳤다. “역경, 고난, 의혹, 의심—이러한 것들은 필멸의 삶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는 빛과 진리로 가득한 거대한 영적 저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신앙은 우리의 마음속에 동시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신앙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5:36]”(“여러분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14쪽)

마가복음 5:38~40. “울며 심히 통곡[하는 사람들]”

예수님 시대에는 가족 구성원이 죽으면 큰 소리로 울부짖고 통곡하며 슬퍼하는 것이 유대의 관습이었다. 야이로의 가족과 같이 부유하거나 저명한 가문에서는 함께 통곡해 줄 사람들을 고용하기도 했다.(예레미야 9:17~18; 아모스 5:16 참조) 야이로의 집에는 전문적으로 통곡을 해 주던 사람들이 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고, 예수님이 기적적인 치유를 하시는 동안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나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마가복음 5:40 참조)

주께서 어린 소녀를 살리시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소녀의 부모와 베드로, 야고보, 요한뿐이었다. 이 다섯 사람의 신앙이 보상을 받을 때, 예수님을 비웃던 사람들은 그분을 더 잘 알고 그분의 권능을 목격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마가복음 5:41. 예수님이 아람어로 말씀하셨다

아람어는 주후 1세기에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언어이며, 구주께서도 그 언어로 말씀하셨다. 마가는 구주께서 실제로 그 어린 소녀에게 말씀하신 아람어를 기록했다.(마가복음 5:41 참조) 달리다[Talitha]는 “어린 소녀”(그리고 어린 소녀가 다정한 모습을 보일 때 적용되는 애칭이었을 것임)를 뜻하는 아람어이며, 굼[cumi]은 “일어서라” 또는 “일어나라”고 명령하는 아람어이다. 구주께서 그 말씀을 하시자, 어린 소녀는 즉시 깨어났다.

마가복음 6:1~4.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심

예수님이 나사렛 주민들에게서 배척당하신 내용을 더 잘 이해하려면, 누가복음 4:22~30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6:5, 13; 7:32. 안수례와 기름 부음으로 치유하심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안수례로 사람들을 치유하는 내용이 다른 복음서보다 더 많이 나온다.(마가복음 1:41; 5:23; 6:5; 7:32; 8:23~25; 10:16; 16:18 참조) 마가복음은 구주의 사도들이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축복했다는 언급이 나오는 유일한 복음서이다.(마가복음 6: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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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을 고치시는 그리스도

맹인을 고치시는 예수 그리스도, 샘 롤러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오늘날에도 성경 시대와 마찬가지로 신권 권능을 통해 기적적인 병 고침이 이루어진다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병자 축복을 위해 신권 권세를 사용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러한 기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경전에 기록된 것처럼 기적적으로 병 고침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며, 여러분 중 많은 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

구약전서에는 신권 권세로 부여하는 축복 중 일부로서 기름을 붓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기름 부음은 성결하게 하는 과정으로 마련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그러한 성스러운 행위로 일어날 결과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축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약전서에는 예수님의 사도들이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는 내용이 나옵니다.(마가복음 6:13) 야고보서에는 신권 권세로 병자 축복을 하는 과정에서 기름 부음이 다른 요소들과 함께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와 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야고보서 5:14~15)

… 장로들이 아픈 사람에게 기름을 붓고 기름 부음을 인봉할 때, 그들은 주님께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축복을 부어 주실 수 있도록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병 고침”, 리아호나, 2010년 5월호, 48쪽)

마가복음 6:7~12. 십이사도를 보내심

구주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십이사도를 보내신 것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마태복음 10:1~5 주해, 마태복음 10:2~4 주해, 마태복음 10:5~6 주해, 마태복음 10:9~10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6:11.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위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0:14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6:13. 올리브 기름의 상징

경전 전체에 걸쳐 올리브 기름과 같은 물체는 성스러운 권능과 행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모든 예언적인 기록들을 보면 감람나무와 올리브 기름은 성스러움과 순결함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Answers to Gospel Questions, 5 vols. [1957–66], 1:152) 고대에 기름 부음은 성결하게 되는 것을 상징했다. 레위기 8장 12절에 묘사되어 있듯이, 모세는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성결하게 되면, 성신을 받게 된다.(앨마서 13:12; 제3니파이 27:20 참조; 또한 출애굽기 28:40~41; 29:36; 40:10~11; 레위기 8:12 참조)

올리브를 압착하여 짜내는 올리브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속죄의 보혈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올리브를 찧고 압착해서 기름과 식료품으로 만들던 곳인 그 동산은 히브리어로 ‘기름을 짜다’라는 의미의 겟세마네로 불렸습니다. 그곳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자기에게 나아오게 하려고 모든 사람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8:11] 그분은 모든 인류가 지은 죄의 짐을 짊어지셨으며,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모든 땀구멍에서 피를 쏟으셨습니다.”(“속죄”, 성도의 벗, 1997년 1월호, 35쪽)

마가복음 6:14~29. 침례 요한의 죽음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기 전까지 약 6개월 동안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후에도 헤롯 안디바의 명으로 투옥되기 전까지 약 6개월에서 9개월 동안 계속해서 그 일을 했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투옥되어 있는 동안 고대에 늘상 행해지던 방식대로 고문받고 채찍질당하며(마태복음 17:12~13 참조) 쇠사슬에 묶였을 것입니다. … 어린 소녀인 살로메의 춤을 보고 욕망에 사로잡힌 헤롯은 요한을 파멸시키려는 헤로디아의 흉악한 계략에 말려 들었고, 그는 토굴 감옥에서 9개월 내지 12개월 동안 갇혀 있던 요한을 불러내어 참수했습니다. (마가복음 6:17~29 참조) …

요한은 주님의 많은 종들이 그렇듯이 순교자로서 사망했습니다.“(Robert J. Matthews, “‘There Is Not a Greater Prophet’: The Ministry of John the Baptist,” Ensign, Jan. 1991, 16–17)

마가복음에서는 침례 요한이 행한 성역보다 그의 죽음에 관련된 내용이 더 강조되어 있다.(마가복음 1장 4~9, 14절마가복음 6장 14~29절과 비교한다.) 마가는 십이사도가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내졌다는 기록과(마가복음 6:7~13 참조) 그들이 귀환했다는 기록(마가복음 6:30 참조) 사이에 요한의 순교 기사를 삽입했다.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는 이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이야기의 서술이 잠시 끊긴다.” 그럼으로써 마가는 하나님의 종이 치를 수 있는 대가를 강조하려 했다. 침례 요한은 메시야에 앞서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기에, 악인의 손에 그의 생명이 희생된 일은 임박해 오는 구주의 고통과 죽음을 예시했고(마가복음 8:31; 9:31; 10:33~34 참조),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많은 제자가 맞게 될 박해와 폭행을 보여 주는 전조가 되었다.(마가복음 8:34~35; 10:38; 요한복음 15:20; 16:2 참조)

마가복음 6:17~20.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

로마를 방문한 헤롯 안디바는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헤롯은 헤로디아에게 빌립을 버리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청했다. 결국 그 일은 실현되었고, 헤롯 안디바는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이혼했다. 하지만 헤로디아와 빌립은 합법적인 이혼을 하지는 않았다. 이에 침례 요한은 그 결혼이 모세 율법에 위배된다고 비난했다.(레위기 18:16 참조) 그러자 헤롯은 요한을 잡아 감옥에 가뒀다.(마가복음 6:17~18 참조)

마태복음 14장 5절에서 알 수 있듯이, 헤롯은 요한을 죽이고 싶었으나 백성들에게 선지자로 추앙받는 그를 해치는 것은 헤롯에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에게 경배드리는 일을 준수하는 사람”임을 헤롯이 알았다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Joseph Smith Translation, Mark 6:21) 헤롯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고 있음에도 요한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요한의 지상 생활은 이렇게 끝이 났다. 헤롯은 자신의 끔찍한 선택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6:21~29, 34~44. 두 가지 잔치

마가복음 6장에는 다음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잔치가 대조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방종하고 방탕한 헤롯 안디바의 생일잔치는 침례 요한의 죽음으로 끝났으며, 구주께서는 기적적으로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셨다. 세상의 왕은 죽음을 가져왔지만, 왕 중 왕께서는 생명을 유지시키셨다.

마가복음 6:32~44. 오천 명을 먹이심(또한 마태복음 14:15~21; 누가복음 9:12~17; 요한복음 6:3~14 참조)

마가복음 6장 44절을 그리스어 원전에서 찾아보면, “오천 명”은 오천 명의 남자를 의미했다는 점이 분명하게 나온다. 마태복음 14장 21절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라는 말이 있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준다.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은 부활을 제외하고 사복음서 모두에 실려 있는 유일한 기적 중 하나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 기적에서 배우는 영원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능력이 소진하여 여러분을 도와주지 못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영적 교훈입니다.”(Trusting Jesus [2003],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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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두 마리와 광주리

물고기 두 마리와 동그란 떡이 담긴 광주리를 묘사한 모자이크. 이 모자이크는 오천 명을 먹이신 곳으로 전해지는 장소에 주후 5세기에 건축된 교회의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이 기적은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동정심을 보여 준다.(마가복음 6:34 참조)

칠십인의 제이 데븐 코니쉬 장로는 구주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다. “[그 이야기는] 구주께서 베푸신 속죄의 은혜에 대한 풍성함과 권능을 상징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 그분의 은혜는 참으로 풍성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 주고도 남습니다.”(“Learning How the Atonement Can Change You,” Ensign, Apr. 2002, 23) 다음과 같은 일련의 말씀과 행동을 주목해 보면 이 진리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1.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마가복음 6:37) 그들의 현재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명하셨다.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제자들의 대답에서 드러나는데, 그 대답은 마가복음에만 나온다. 그들은 그처럼 많은 사람을 먹이는 데 필요한 떡의 양이 “이백 데나리온” 어치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평범한 노동자에게 대략 8개월치 급료에 해당하였다.

  2. 구주께서는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알아보셨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마가복음 6:38) 제자들은 구주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3. 구주께서는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명하셨다.(마태복음 14:18)

  4.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구주께 드렸다.

  5. 구주께서는 제자들이 드린 음식을 축복하고 늘리셨는데, 기적처럼 필요한 양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우리와 구주의 관계와 관련된 한 가지 방식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완전함과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마태복음 5:48; 로마서 3:23 참조) 하지만 우리가 온 영혼을 구주께 바친다면, 그분이 베푸신 속죄의 은혜와 권능이 우리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 이상으로 베풀어질 것이다.(니파이후서 25:23; 옴나이서 1:26; 모로나이서 10:32~3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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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제자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지닌 소년을 발견한 제자들, 폴 만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구주께서 떡과 물고기를 늘리신 일은 우리가 그분의 교회에서 봉사할 때 비록 우리의 노력이 몇 개의 떡과 물고기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지더라도 그분이 우리가 행한 충실한 노력을 더 크게 해 주실 것을 보여 준다며 이렇게 가르쳤다.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 정도에 불과한 은사를 가진 무명의 사람들이 관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교회에서]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며 실제로 수천 명을 먹이며 봉사합니다. … 이들은 모든 보조 조직과 신권 정원회에 속한 수십만 명의 지도자와 교사들과 가정 복음 교사들과 상호부조회의 방문 교사들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겸손한 감독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분들도 있으나 그들은 부름을 영화롭게 하고 항상 배우며 주님과 와드 회원들을 섬기고자 하는 겸손한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

보잘것없이 시작한 이 교회가 오늘날 이같이 크게 발전한 주된 이유는 주님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이라고는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만을 가진 겸손하고 성실한 수백만 명의 충실함과 헌신입니다.”(“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5~6쪽)

마가복음 6:46~53. 구주께서 풍랑이 거센 바다 위를 걸으셨다

마가는 제자들이 전날 목격한 기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언급했다. 구주께서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을 더 잘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4:27~31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7:1~13. 사람들이 거짓 전통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거나 경시할 수 있다

마가복음 7장 1~5절에 묘사된 손 씻기는 의식에 따라 청결을 위해 의례적으로 씻는 행위를 말한다. 모세 율법에서는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을 “정결”과 “불결”이라는 범주로 나누었다. 불결은 의식과 관련하여, 의례적인 면에서 정결하지 못함을 가리켰지만, 그것이 곧 비위생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부정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의례적으로 “불결한” 사람은 정결하게 될 때까지 일정한 종교적 및 사회적 활동에서 배제되었다. 신약전서 시대 때 의례적인 청결에 관심이 있던 유대인들이 마가복음 7장 1~5절에 묘사된 의례적인 씻기를 포함하여 많은 전통을 양산해 냈다. 예수님 시대에 이런 전통은 (성문이 아닌) 구전 형태로 존재하며 율법사에서 율법사에게로,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나 학생들에게로 전해졌다. 이후에 그 전통들은 성문 형태로 탈무드에서 통합되었다.

제자들이 이 전통적인 의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구주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공언하면서도 하나님의 계명보다 인간이 만든 전통을 더 우선시한다고 꾸짖으셨다. 그러한 모순은 위선이었다.(마가복음 7:6 참조) 이 위선의 한 가지 예로 바리새인들은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지켰다.(마가복음 7:10~13 참조)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을 의미했다.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명하셨는데도(출애굽기 20:12), 장로들의 전통에 따라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나 성전에 바치기로 마음먹은 돈이나 그 밖의 자원이 있다면, 그 자원을 “고르반”이라고 선언하고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데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와 같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인간이 만든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은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마가복음 7:6, 13 참조)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교회 회원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개인적, 가족적, 민족적, 국가적 관행을” 기꺼이 버려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양한 집단의 전통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분에 따르면 ‘외식하는 자’는 전통을 고집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입니다.[마가복음 7:6; 마태복음 15:7 참조] …

사람들의 전통이나 문화, 혹은 생활 양식에는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꾸어야 할 일부 관행이 불가피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결이 한 예입니다. …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늘 음행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원한 계명은 여러 나라의 강력한 전통 때문에 빈번히 무시되거나 거부되거나 조롱당해 왔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혼외 정사를 묵인하거나 권장합니다. 외설 문화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런 죄의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회개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이는 그분이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제3니파이 27:19)

또 한 가지 예는 정직입니다. 일부 문화는 거짓과 절취와 기타 부정직한 관행을 너그럽게 대합니다. 그러나 유화책이나 체면, 혹은 이익 추구 등 어떤 형태를 불문하고 부정직은 복음의 계명과 가치관에 위배됩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며 변하시지 않습니다. 변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회개와 변화”,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38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는 우리가 가족 및 문화적 전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맞추어 조정할 때 더 큰 행복과 평안을 얻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가르쳤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첫 번째 우선순위에 두고 그분의 가르침을 삶의 기초로 둘 때, 행복의 걸림돌을 제거하여 더 많은 평강을 얻게 된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가족이나 국가의 전통 혹은 관습이 하나님의 가르침과 상충하면, 이것들을 제쳐 두십시오. 하지만 전통과 관습 등이 그분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룰 때는 여러분의 문화와 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그것들을 소중히 하고 따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절대로 변경해서는 안 될 유산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한 유산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여러분의 존재에서 비롯됩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그와 같은 유산에 따라 여러분의 삶을 통제하십시오.”(“행복의 걸림돌을 제거함”, 성도의 벗, 1998년 7월호, 87쪽)

마가복음 7:4. 컵 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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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석 식기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주후 1세기의 석회석 접시와 컵

사진 촬영: 제임스 제프리

마가는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마가복음 7:4) 깨끗하게 씻는 의식을 포함하여 의례적인 정결 예식에 관한 유대인의 전통을 기록했다. 석회석 그릇은 다른 그릇보다도 의례적 청결함을 유지한다고 여겨서 귀하게 취급되었다.

마가복음 7:6, 14~23. 마음의 청결

마가복음 7장 6, 14~23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구주께서는 제자들의 주의를 외적인 의식에서 마음의 상태로 돌리셨다.(특히 6, 19, 21, 23절 참조)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다음과 같이 강조되어 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이니, 이는 음식물이라. 그러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함이니,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Joseph Smith Translation, Mark 7:15) 이 관점에 대한 구주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5:8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7:21~22.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구주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순결한 상태가 되지 못하게 하는 나쁜 생각, 부도덕, 살인, 절도, 탐욕, 속임, 교만, 불경, 어리석음 등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여러 형태를 언급하셨다.(마가복음 7:21~22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쿠엔틴 엘 쿡 장로마가복음 7장 21~22절을 인용한 후, 사람을 더럽게 하는 “나쁜 것들” 중 하나인 현대의 “우매함”이라는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마가복음 7장 22절에 ‘우매함’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에는 ‘몰상식’하고 ‘자기 중심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지략이 없고’, ‘우둔하며’, ‘무지하고’, ‘이기적이며’, ‘경솔하거나’, ‘신앙이 없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전에서 그 단어는 지혜가 부족함을 의미합니다. 이 각각은 모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구주께서 더 심각한 다른 행동들에 ‘우매함’을 포함하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매함은 종종 더 심각한 범법을 일으키고 수반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농담을 생각해 보시고 그중 몇 가지가 적정선을 넘어서 상스럽고, 음란하며, 호색적이고, 외설스러운지 생각해 보십시오. 한동안 저는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는 경박하고 부도덕한 자기 과시에 대해 염려했습니다. 적어도 퇴폐적인 행실에 관여하고 그런 모범을 보이는 유명 연예인, 운동선수와 영화배우들, 그리고 인터넷 사용자들 말입니다. …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우리 가족과 친구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내며, 노숙자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고, 가난한 이들을 먹이며,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환경을 개선하며,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할 필요성이 많은 이 시기에, 어리석은 일들에 쏟는 시간은 참된 빛 안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Choices and Challenges[선택과 도전들]”[총관리 역원과 함께 하는 저녁 모임, 2009년 2월 27일]; si.lds.org)

마가복음 7:24~30. 이방인 여인의 딸을 치유하심

이방인 여인의 딸이 치유된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5:21~28 주해를 참조한다.

마가복음 7:31~37. 귀 먹은 사람을 치유하심

구주께서는 이 치유의 기적을 행하기 전에 그 귀 먹은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서 그의 귀와 혀를 만지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셨다.(마가복음 7:33~34 참조)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을 듣지도,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하는, 하지만 당신을 믿는 한 영혼을 대하고 계셨다. 그렇다면, 신앙의 율법에 따라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할지를 나타내기 위해, 귀 먹고 말 못하는 사람이 알고 이해하는 일반적인 몸짓을 사용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방법이 있겠는가?”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373)

구주께서 귀 먹은 사람과 하셨던 의사소통은 다음과 같은 경전의 가르침을 반영한다. “주 하나님께서는 이해력에 빛을 주심이니, 이는 그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를 따라 그들이 이해하도록 말씀하심이니라.”(니파이후서 31:3)

마가는 구주께서 말씀하시자 그 귀 먹은 사람이 곧바로 들을 수 있었고 “말이 분명하여졌”다고, 즉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마가복음 7:34~35 참조) 따라서 이 기적은 청각만을 회복한 것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귀 먹고 “말 더듬는”(마가복음 7:32)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구주께서는 이 사람이 곧바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도록 치유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