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23장: 요한복음 5~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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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7장

요한복음 5~7장 소개 및 연대

요한복음 5~7장은 교리상으로도 내용이 풍성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초래한 적대와 적개심 등 그분에 대한 사람들의 갖가지 태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구주께서는 38년간 투병해 온 사람에게 “일어나 …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신 후(요한복음 5:8),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모두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5:21~29 참조) 또한 그분은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회를 통해 자신이 생명의 떡, 즉 영생의 근원임을 가르치셨다.(요한복음 6:35, 48 참조) 하지만 한때 제자였던 많은 이들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요한복음 6:66) 예수님의 신분과 목적에 관하여 사람들의 견해가 점점 더 분분해지는 가운데, 초막절 축제에서 그분은 당신의 말에 충실히 순종하는 사람만이 그분의 신분과 가르침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음을 선언하셨다.(요한복음 7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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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과 연대표

요한복음 5~7장 주해

요한복음 5:2~4. 베데스다 못

베데스다라는 단어는 “자비의 집” 또는 “은혜의 집”으로 번역할 수 있다.(Bible Dictionary, “Bethesda” 참조) 예루살렘에서 시행된 고고학적 발굴 작업으로 고대 성전 구역의 북문 바로 바깥에 있는 베데스다 못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그 북문을 거쳐 희생양을 성전 경내로 이끌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요한복음 5: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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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못

오늘날의 베데스다 못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치유 효과가 있다는 그 못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했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면, 파동이 일어난 후 물속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치유된다는 관념은 순전히 미신이었다. 치유를 일으키는 기적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1965–73], 1:188)

요한복음 5:5~15. “네가 낫고자 하느냐”

구주께서는 베데스다 못에서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치셨으며, 그 사람은 즉시 완쾌되었다. 감리 감독으로 봉사하던 메릴 제이 베이트먼 감독은 베데스다 못에서 있었던 치유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개인적인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데스다라는 못에 있던 절름발이가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자신보다 더 강한 누군가를 필요로 했던 것처럼(요한복음 5:1~9 참조) 우리도 비통함과 슬픔과 죄로부터 우리 영혼을 온전해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한 기적에 의지해야 합니다. … 그리스도를 통해 상한 마음이 치료되고 평안이 근심과 슬픔을 대신하게 됩니다. … 이사야는 구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4~5) …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에서의 구주의 속죄는 매우 개인적이고 무한한 것이었습니다. 영원히 효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무한한 것이었으며, 사람들 각자의 고통과 고난과 질병을 구주께서 느끼셨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없애 주고 우리의 짐을 덜어 주는 방법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내적으로 치유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분의 왕국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 심앙심이 더욱 커져서 우리 각자가 온전해지길 기원[합니다.]”(“내부로부터 치유할 수 있는 권세”, 성도의 벗, 1995년 7월호,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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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못

베데스다 못, 칼 에이치 블로흐

요한복음 5:16~47. 비난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구주의 가르침

구주께서 베데스다 못에서 병자를 낫게 하신 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구주를 죽이려 했다.(요한복음 5:10, 16, 18 참조) 구주께서 자신을 반대하는 유대인 특권층을 대상으로 길게 전하신 가르침이 요한복음 5장 17~47절에 기록되어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이 중요한 말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구주의] 대답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것은 영원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중대한 문제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설교였다.”(예수 그리스도, 213쪽)

요한복음 5:18.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들은 구주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그분을 박해했다.(요한복음 5:18 참조)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구주께서 지상 성역을 베푸는 동안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과 동등[하다!]’ 이는 엄청난 신성 모독이거나 경이로운 진리,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중간은 없으며, 절충의 여지도 없다. 제시할 만한 다른 가능성도 없다. 예수님은 신성한 분이시거나, 그게 아니라면 신성을 모독한 것이었다!

무한하고 영원한 의미에서 본다면 그 당시에는 아직 아니었지만,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하시며, 출생에 따른 상속자이시고,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물려받아 소유하게 될 운명이라는 의미에서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당시에 그분이 승영한 상태가 되어 그분들의 손으로 만드신 만물을 영광 중에 다스리지는 않으셨으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자신의 이름을 맡기고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주셨다는 의미에서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The Mortal Messiah: From Bethlehem to Calvary, 4 vols. [1979–81], 2:71)

요한복음 5:19~21, 23. “아들이 …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구주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사명에 대해 계속 가르치시면서, 자신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으며,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행했다고 밝히셨다.(요한복음 5:19)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아버지, 즉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의 참된 본질을 보여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하려고 지상에 오셨습니다.] … 그러한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지상에 오셔서 엘로힘의 위치에서 그분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대로 말씀하시고, 그분이 행하시고자 하는 대로 판단하고, 봉사하시며, 사랑하고 경고하시며, 인내하고 용서하시는 이런 모든 것들은 여러분이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너무도 위대한 임무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자녀의 특성이 될 충성과 결단으로 예수께서는 거기에 따르는 임무들을 이해하실 수 있었으며 또한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그 후, 칭찬과 명예가 주어지기 시작했을 때, 그분은 겸손하게 모든 칭송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셨습니다.[요한복음 5:19; 14:10 참조]”(“하나님의 위대하심”,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70~71쪽)

요한복음 5장 19~21, 23절에 기록된 구주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일이 또한 아들의 일이라고 가르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간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해야 한다. 그러한 가르침들은 아버지와 아들 간의 완전한 통일성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요한복음 5:22, 27, 30.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가르치면서, 하늘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고 증언하셨다.(요한복음 5:22, 27)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판자가 되실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속죄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홀로 힘들게 얻으신, 무한하고 영원한 결과를 가져온 이기심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속죄를 통해 구주께서는 죽음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마지막에 구속주의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리하이는 그의 아들 야곱에게 ‘ 거룩하신 메시야의 공덕자비은혜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 면전에 거할 수 있는 육체가 하나도 없[다]’고 가르쳤습니다.[니파이후서 2:8]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어떤 사람도 가질 수 없는 공덕을 소유하셨습니다.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기 전에 하나님, 곧 여호와이셨습니다. … 우리의 주님은 온전하고 죄 없는 삶을 사셨고 따라서 공의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그분은 사랑, 동정심, 인내, 순종, 용서, 겸손을 포함하여 모든 속성에 있어서 완전하십니다. …

저는 구주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헤아릴 수 없는 대가의 고통을 치르시고 우리의 구속주요 중보자이자 마지막 심판자가 될 권리를 취하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평안과 행복을 확실하게 해 주는 속죄”,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42쪽)

요한복음 5:25, 28. 구주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겠다고 가르치셨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장로는 구주께서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하신 예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 자신이 또한 죽은 자들에게도 전파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5:25 참조] 베드로는,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때까지의 사이에 이 일이 일어났음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베드로전서 3:18~19 참조]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은 구주께서 영의 세계를 방문하여 ‘의로운 [영들] 가운데에서 … 자기 군대를 조직하사 사자들을 임명하시고 권능과 권세를 입히시고 그들로 나아가 복음의 빛을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 가져 가도록 임무를 맡기[시는]’ 것을 시현으로 목격했습니다.[교리와 성약 138:30]”(“죽은 자의 구속과 예수님에 대한 간증”,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10쪽)

요한복음 5:26. 육체적 죽음을 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또한 요한복음 10:17~18 참조)

칠십인 회장단에서 봉사하던 시절에 메릴 제이 베이트먼 장로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어떻게 “자기 속에 생명”을 가지셨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모로부터 죽음의 씨를 상속받는 필멸의 인간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필멸의 어머니와 불멸의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마리아에게서 받은 죽음의 씨는 그분이 죽을 수 있음을 뜻했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서 무한한 생명을 상속받은 그분에게 죽음이란 자유 의사에 따른 행동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5:26)”(“모두를 위한 모형”,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75쪽)

요한복음 5:28~29.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 나오리라”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은 요한복음 5장 29절을 깊이 생각하던 중에 교리와 성약 76편이 된 시현을 받았다. 이 시현을 통해 그들은 온 인류의 부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교리와 성약 76:11~19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기록했다. “지금껏 받은 여러 계시로 미루어 보아 사람의 구원에 관한 많은 중요한 점들이 성경에서 빠졌거나 성경이 편찬되기 전에 분실되었음이 명백하였다. 남아 있는 진리를 살펴보면 만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육체로 있을 동안에 행한 행위에 따라 보상을 주신다면 성도들의 영원한 집을 뜻하는 하늘이라는 말은 하나 이상의 여러 왕국을 내포하고 있음이 자명한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요한복음을 번역하는 동안 나 자신과 리그돈 장로는 다음 시현을 보았다”(교리와 성약 76편, 머리말)

요한복음 5장 29절은 의로운 사람이든 불의한 사람이든 온 인류가 부활하게 됨을 확인해 준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구주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셨을 때, 그분은 누구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 지상에 살았던 모든 의인과 악인을 위해 사망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일요일은 올 것입니다”,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29쪽)

요한복음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예수님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은 경전 연구를 통해 영생을 얻게 된다고 믿었기에 경전을 공부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는도다.]”(요한복음 5:39; 기울임체 추가) 구주께서는 이런 그릇된 믿음을 바로잡고자 하셨다. 그분은 유대인들이 경전을 최종 권위로 여기나, 정작 경전은 영생이 경전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얻게 되는 것임을 증거한다고 가르치셨다. 유대인들은 또한 경전이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자신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진리와 생명의 궁극적 근원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데려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근원이심을 인정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한복음 6:68)

요한복음 5:39~40. 경전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경전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의 근원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경전]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요한복음 5:39)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알고 이해하려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든 이에게 영감을 줍니다. 경전에는 역사, 교리, 이야기, 설교 및 간증이 풍부하게 담겨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에 대한 그분의 육체적, 영적 사명에 궁극적인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첫 번째 성약은 성경의 구약전서이며 그것은 구주의 오심, 그분의 숭고한 생애, 그리고 그분의 자유케 하는 속죄에 관해 예견하고 예언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두 번째 성약은 성경의 신약전서로서, 이것은 그분의 탄생과 생애, 성역, 그분의 복음과 교회, 속죄, 그분의 부활뿐 아니라 사도들의 간증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세 번째 성약은 몰몬경으로서, 이 또한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고하고, 그분의 구원으로 이끄는 속죄에 관한 성경의 기사를 확인해 주며, 그런 다음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구의 다른 한쪽인 서반구를 방문하신 사건을 말해 줍니다. 모든 몰몬경 표지에 인쇄되어 그 목적을 분명히 말해 주는 부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성약’입니다.

이들 세 경전 모두는 각각 주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계시하여 주신 위대하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온전한 말씀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들에는 … 그리스도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성경의 기적”, 리아호나, 2007년 5월호, 8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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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 위에 놓인 경전

요한복음 5:44. 사람의 영광을 구함

요한복음 5장 44절에 기록된 구주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한 우리의 신앙은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의 영광을 구하려고 애쓰면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마음의 중심을 그리스도에게 두지 못하게 되며, 그리하면 사람은 구원을 잃게 된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201)

요한복음 6장.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구주의 성역

니파이인들을 방문하신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신명기 18장 15, 18~19절에 언급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말씀하셨다.(제3니파이 20:23 참조) 구주의 성역과 모세의 성역 간의 중요한 유사점은 요한복음 6장과 출애굽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유월절 기간에 일어났는데(요한복음 6:4 참조), 유월절은 모세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건이었다.(출애굽기 12장 참조)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로마의 공식 명칭인 디베랴 바다로 불렸음)를 건너가시자, 큰 무리가 그분을 따라갔다.(요한복음 6:1~2 참조)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인도에 따라 홍해를 지나 광야로 들어갔다.(출애굽기 12:38; 13:18 참조) 예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기적적으로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셨다.(요한복음 6:5~14 참조) 모세는 하늘에서 기적적으로 내려온 만나로 백성들을 먹였다.(출애굽기 16:3~4; 요한복음 6:31 참조) 무리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분은 그들을 떠나 그날 밤에 갈릴리 바다를 직접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가셨다.(요한복음 6:15~21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따라 밤새 홍해를 건넜다.(출애굽기 14:21 참조) 무리를 먹이신 다음 날,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선언하셨는데(요한복음 6:22~65 참조), 이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에 빗대어 볼 수 있다.

모세의 성역과 구주의 성역 간에 가장 두드러지는 유사점 중 하나는 “I Am”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분의 이름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여쭈었을 때, 주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 THAT I AM]”라고 대답하셨다.(출애굽기 3:13~14) 요한은 구약 시대에 구주의 명칭 중 하나로 알려진 “I Am”을 반복적으로 기록했으며, 모세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을 이스라엘 백성이 알도록 그 명칭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요한은 구주께서 “나는[I am] 생명의 떡이니”라고 선언하셨다고 기록했다.(요한복음 6:35, 48, 51; 기울임체 추가) 구주께서는 성역 동안 이와 유사한 “I am”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하셨다.(요한복음 8:12; 10:9, 11; 11:25; 14:6; 15:1 참조)

요한복음 6:1~14.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6:32~44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6:15. 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으려 했는가?

구주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대중 사이에서 그분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요한은 일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고 기록했다.(요한복음 6:15) 당시에 예수님이 사람들의 눈에 매우 고귀한 존재로 비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통적으로 오래된 숙원을 성취하신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랍비들이 가르친 전통 가운데 대중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던 한 가지는 메시야가 오시면 하늘의 떡으로 백성들을 먹이시리라는 것이었다. … 게다가 메시야가 오시면 그분이 자신의 강림을 알리기 위해 이 엄청난 기적을 반복해서 행하시리라는 믿음도 사람들 사이에 확고해 있었다. 랍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신 첫 번째 구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하셨듯이, 메시야이신 두 번째 구주께서도 다시 한 번 이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게 하실 것이다.’[Cunningham Geikie, The Life and Words of Christ(1886), 516–17]

따라서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몇 배로 늘리셨을 때, 전통적으로 염원해 왔던 그 징후가 주어진 것처럼 여겨졌다. 그분의 대중적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분으로 보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분은 메시야이므로 왕으로서 나라를 통치하셔야 했던 것이다.”(Mortal Messiah, 2:367–68)

요한복음 6:16~21. 물 위를 걸으심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릴 바다 위를 걸으신 내용을 보려면, 마태복음 14:22~33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6:26~27.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요한복음 6장 3~14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께서 기적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시자, 그 음식을 먹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더 많은 음식을 주시기를 원했다. 하지만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 있는 떡”이며 그들은 자신이 제공한 영적 음식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 후, 그분의 제자 중 다수가 더는 그분을 따르지 않았다.(요한복음 6:26~27, 66 참조)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 이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작은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 있는 위험성을 일러 줍니다. 그 위험이란 우리도 일시적인 성공이나 학식으로 참으로 중요한 영생의 떡으로부터 멀어져 실질적으로, 영적으로 영양 미달이 되거나 고의로 영적인 식욕부진에 빠지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고대의 어리석은 갈릴리인들처럼 우리는 거룩한 음식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때 거절할지도 모릅니다. …

… 우리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초기 사도들의 경험에 동참할 것을 바랍니다. 그들 또한 생명의 떡을 갈망했으며, 돌아가지 않고 주님께 와서 그분과 함께 머물렀으며, 주님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안전과 구원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요한복음 6:68 참조]”(“주리는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성도의 벗, 1998년 1월호, 65쪽)

구주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6:32~44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6:32~35, 48~51. “하늘로부터 [온] 참 떡”

여러 문화에서 주식인 떡[빵]은 구주와 그분의 가르침이 우리 삶에서 담당해야 하는 주요 역할을 이상적으로 잘 나타내는 비유의 대상이 된다. “생명의 떡”에 대해 가르치셨을 때, 예수님은 청중의 배경을 활용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종교적 역사를 하나의 교수 도구로 활용하셨다.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생명의 떡 설교는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준비하던 시기에 일어났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유월절 기간에 애굽에서 해방된 것과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기억하기 위해 무교병을 먹었다. 구주께서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가르침에 활용하셨다. 이 설교를 할 때 구주의 말씀을 듣던 청중 다수가 바로 전날 그분이 기적적으로 제공하신 떡을 먹었던 오천 명의 무리 가운데 속해 있었다.(요한복음 6:1~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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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

가버나움의 맷돌

구주께서는 또한 청중의 지리적 위치도 고려하셨다. 이때 구주께서는 가버나움에서 가르치셨는데, 이 지역은 빵 제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가버나움에서 더 많은 제분 기구가 유물로 발견되었다. 군중이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제공된 만나를 언급하자,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주신, 같은 하나님이 이제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셨음을 상기시키셨다.(요한복음 6:32)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떡을 줄 수는 있으나, 자신은 또한 “생명의 떡”으로서(요한복음 6:48) 자신이 주는 영적 자양물을 취하려 하는 이들에게 영생을 줄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이셨다.(요한복음 6:51 참조)

요한복음 6:44, 65.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구주에게 나아오도록 어떻게 도우시는가?

구주께서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설교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분의 아들에게로 오도록 도우시는 방법들을 강조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구주에게로 “이끌” 것이다. “이[끈]”다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처럼 마음을 끌어들이거나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것이다.(요한복음 6:44; 모사이야서 3:19 참조)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구주께로 갈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신앙을 갖거나 회개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위해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요한복음 6:65; 고린도전서 12:3; 니파이후서 31:19 참조)

요한복음 6:51~58. “살아 있는 떡”을 먹음

일부 독자들에게는 구주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비유가 깜짝 놀랄 말이겠지만, 구주께서는 자신이 “먹고” “마[신다]”라는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셨다.(요한복음 6:58, 63 참조) 예수께서는 자신이 말하는 방법으로 먹는 것이 “[구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셨다.(요한복음 6:57) 구주의 말씀은 또한 그분이 마지막 만찬에서 제정하신 성찬 의식의 전조가 되었다.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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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빵을 들고 계시는 그리스도

성찬 빵을 들고 계시는 그리스도, 델 파슨. 그분은 살아 있는 떡이시다.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를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단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본질의 일부로써 지속될 수 있는데, 이는 마치 인간이 먹는 음식이 그의 신체 조직에 동화되는 것과 같다.

…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 즉 예수를 인류의 구주로서 철저히 무조건으로 받아들임을 상징하는 것인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에 관한 비유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이로써 그의 인격체의 신성과 그가 전세에서 존재한 영원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확증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만찬인 성찬은 구주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정하여 주신 것으로 구주를 기억하여 떡과 물을 취함으로써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상징을 영속시켜 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복음의 법과 의식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예수 그리스도, 347~348쪽)

요한복음 6:60~69. “[어려운] 말씀”이 제자들을 시험하다

요한복음 6장에는 구주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극변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절정에 올랐던 그분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졌다. 바로 전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요한복음 6:15 참조) 어떻게 다음날 그분을 버릴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요한복음 6:66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렸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어려운 복음 교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을지라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예수께서 처음에 강한 교리(경전에서는 ‘[어려운] 말씀’으로 언급되어 있음)를 전파하시기 시작하자, 그분을 따랐던 사람들 대다수가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 (요한복음 6:66) 그분의 교리가 실제로 어려운 일을 행하도록 요구하자마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현세적인 사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하기가 주저하게 되지만 들려주어야만 하는 ‘[어려운] 말씀’들이 있다. 그런 말씀은 인기가 없다. … 진리는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주거나, 지루하게 하거나, 아니면 그저 불편함을 안겨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진리에 대한 반응일 뿐이며, 그런 반응이 진리 자체의 실체를 변경하지는 못한다. … 잘 생각해 보면 … 어려운 말씀은 세상적인 것들을 더 쉽게 내려놓게 해 줄 수 있다. …

니파이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지식을 깨달으려’ 하지 않아서 비탄에 잠겼다. (니파이후서 32:7) 교리가 복잡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복음은 너무도 분명하고 단순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단호하게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아, 구주의 메시지에 담긴 소중한 진리들을 깊이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Wherefore, Ye Must Press Forward[1977], 6–7, 22)

요한복음 7:1~14. 초막절의 구주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모세 율법에 따라 해마다 세 가지 큰 순례 축제를 거행했으며, 축제 기간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그 세 가지 축제는 각각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칠칠절, 또는 오순절), 수장절(초막절)이었다.(출애굽기 23:14~17; 신명기 16:16 참조)

신약 시대에 초막절은 그 축제 중에서도 “가장 크고 즐거운” 명절로 여겨졌다. 현대의 9월과 10월에 거행되는 “이 행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고(레위기 23:43) 그해 모든 산물의 수확을 경축하였다.(출애굽기 23:16)”(Bible Dictionary, “Feasts”) 일주일간 계속되는 이 축제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로 지은 초막에서 거주했다.(레위기 23:42~43; 느헤미야 8:14~15 참조) 이 기간에는 다른 종교적 축제 기간보다 더 많은 희생 제물이 성전에서 바쳐졌다.

요한복음 7장에 기록된 행사들은 초막절 기간에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주변 지역을 피해, 그분이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갈릴리 지역에 머물러 계셨다. 예루살렘 주변 지역은 그분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한복음 7장 1절에 언급된 “유대인들”은 유대인 대중이 아니라 유대인 지도자들이다. 3절에 언급된 “그 형제들”은 예수님의 이부형제들을 말한다. (예수님의 이부형제들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13:55~56 주해사도행전 1:14 주해를 참조한다.) 예수님의 이부형제들은 그분에게 초막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가자고 재촉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안 가겠다고 하셨지만, 이후에 은밀히 축제에 가셔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요한복음 7:1~14 참조)

초막절 기간에는 물과 빛이 중요한 상징물로 사용되었으며 구주께서는 이 상징물들을 비유로 사용하여, 자신을 메시야로 믿도록 사람들을 일깨우셨다. 이 축제 기간에 늦은 밤과 이른 아침까지 무도회나 그 밖의 행사가 열리는 동안 성전 산에는 (여러 갈래로 된) 네 개의 커다른 금촛대가 성전 경내를 비추었다. 높이가 50규빗(약 22.25미터)인 이 네 개의 금촛대는 축제 기간 동안 빛을 비춰 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어둠 속에서 걷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했다. 이 축제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의식은 날마다 행해지는 의식 행렬이었다. 거기에는 지명된 제사장 한 명이 실로암 못에서 금주전자에 물을 길어, 제물로 바쳐진 아침 포도주와 함께 성전 제단의 바닥에 있는 은수반에 붓는 절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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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다시 여는 히스기야

성전을 다시 여는 히스기야, 티 시 더그데일. 성전 제단의 제사장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군중이 마지막으로 물을 붓는 의식을 다 치르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7:37) 그분의 말씀은 스가랴 14장 8절에서 메시야가 오실 때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날 것이라고 했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튿날인 안식일에 구주께서는 이른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가셨다. 축제 기간에 네 개의 커다란 금촛대가 세워졌던 곳 부근에서 구주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다.(요한복음 8:12) 모든 이에게 빛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 7:14~36.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초막절 기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일부 유대인들은 그분이 자신들의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가르치실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워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교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그 교리를 적용하는 사람들은 그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7:14~17 참조) 이 가르침에 대해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복음 원리들에 순종하고 그것에 따라 생활할 때 그 원리들에 대한 간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주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기도의 효과에 대한 간증은 겸손하고 진실된 기도로 얻게 됩니다. 십일조에 대한 간증은 십일조를 바침으로써 얻게 됩니다. … 저는 여러분이 영적인 빛과 진리와 지식을 찾고 받아들이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계속 노력한다면, 분명히 그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신앙으로 계속 전진할 때 여러분의 신앙은 커질 것입니다.”(“[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조서”,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22쪽)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거부했는데, 이는 그분이 모세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모세 율법은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오면서 부패해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사람의 병을 고치셨다는 이유로 그분에게 분노했다. 그 일은 당시의 모세 율법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요한복음 5:8~9; 7:21~23 참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의 전통에 따라 판단하지 말고 의롭게 판단하라”라고 가르치셨다.(Joseph Smith Translation, John 7:24) 이것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중요한 교리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특정 전통을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구주의 가르침을 듣고서 그분을 메시야로 믿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도우신다는 것을 알았던 바리새인들은 관리를 보내 그분을 체포하게 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곧 그들이 자신을 찾아도 찾지 못하게 될 것이며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7:30~34 참조) 구주께서 요한복음 7장 34절에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8:21~24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복음 7:37~39. “생수”

구주께서는 자신을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7:38) 그 표현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내면에 “생수”가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제사장이 초막절에 했던 것처럼 제단에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의 속에서 기적적으로 솟아 흘러나올 것이다. 이 비유는 성신의 은사를 적절하게 묘사한다.

요한복음 7장 39절에서 요한은 구주께서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언급하신 “생수”가 성신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는데, 성신의 주요 사명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개역개정판 성경에 “성령”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에는 “Holy Ghost[성신]”로 나옴—옮긴이] 구주께서 드신 “생수”의 비유는 물이 중요한 영적 진리를 상징한다는 이스라엘의 오랜 전통을 활용한 것이었다. 고대 근동 지역은 건조한 기후로 물을 얻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일이었으며, 물이 부족했기 때문에 물은 귀중한 자원이자 강력한 상징물이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기적적으로 바위에서 물을 얻게 하심으로써 호렙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셨다.(출애굽기 17장; 민수기 20장 참조) 구약전서의 선지자들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은 주님의 영, 보살핌, 치유력을 상징하기 위해 물을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했다.(이사야 41:17~18; 58:11; 예레미야 2:13; 에스겔 47:1~12 참조)

구주께서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들 속에 “생수”를 갖게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성신]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한 사실을 나타냈다.(요한복음 7:39) “경전에는 완전히 설명되어 있지 않은 어떤 이유로, 성신은 아직 예수께서 필멸의 육신으로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충만하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요한복음 7:39; 16:7)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성신이 오지 않았다는 언급은 당연히 예수님이 지상에 사셨던 그 특정 경륜의 시대만을 국한해서 의미한다. 그 이전에 있었던 여러 경륜의 시대에서는 성신이 영향력을 미쳤음이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아직은 주어지지 않은 성신의 은사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신의 은 침례 요한의 성역 동안과 예수님의 성역 동안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그 두 분이 가르친 진리에 대한 간증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마태복음 16:16~17; 또한 고린도전서 12:3 참조)”(Bible Dictionary, “Holy Ghost”)

요한복음 7:50~51. 니고데모

니고데모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요한복음 3:1 주해를 참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