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52장: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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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 소개 및 연대

요한과 유다는 교회가 배도로 위협받던 시기에 이 서한을 썼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지 겨우 몇십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거짓 교사들은 사도들이 가르친 것과 다른 “교훈[교리]”을 가르치고 있었다.(요한2서 1:9~10 참조)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요한1서 4:1~3 참조) 현지의 교회 지도자인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았다.(요한3서 1:9~10 참조) 요한은 거짓 교리를 가르친 사람들을 “적그리스도”로 과감히 분류했으며(요한1서 2:18, 22; 4:3), 교회 회원들에게 거짓을 피하고, 자신과 함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을 누리도록 권유했다.(요한1서 1:3) 유다는 성도들에게 “가만히 들어온”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경고했다.(유다서 1:4; 또한 15절 참조) 요한과 유다는 부활하신 구주를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충실한 사람들에게 거짓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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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연대표

요한1서 소개

왜 요한1서를 공부하는가?

요한1서는 교회에 배도가 확산되던 시기에 작성되었다. 이 서한에서 요한은 교회 안에 배도의 영향력이 위험할 정도로 퍼지고 있음을 언급했으며, 사도로서 성도들에게 어둠과 함께하지 말고 안전한 복음의 빛 가운데에서 머물라고 경고했다. 요한이 이 서한에서 논박한 거짓 가르침들이 오늘날 세상에 만연한 거짓 가르침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현대의 교회 회원들은 요한1서를 공부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 가르침을 더 잘 식별하게 되고, 요한의 권고를 따름으로써 진리 안에 거하여 주님과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요한1서는 누가 기록했는가?

이 서한에서 요한1서의 저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일찍이 2세기에 기독교 학자들은 최초의 십이사도 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요한이 저자라고 밝힌 바가 있다. 어떤 주석자들은 요한1서부터 요한2서 및 요한3서와 요한복음 간의 유사성을 언급하면서, 그 기록들은 모두 한 사람이 쓴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더욱이, 세 개의 요한서를 쓴 저자는 부활하신 구주를 목격했다. 따라서 그는 분명 사도 요한이었을 것이다.(요한1서 1:1~4; 4:14 참조) 요한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21장에서 “요한복음은 누가 기록했는가?”를 참조한다.

요한1서는 언제, 어디에서 기록되었는가?

요한은 생애의 상당 부분을 팔레스타인에서 보냈으나 주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된 이후 팔레스타인은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적대적인 지역이 되었다. 전언에 따르면, 요한은 말년에 에베소에서 살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요한1서와 요한2서, 요한3서는 에베소에서 쓰였을 수도 있다. 신약전서 주석자들은 일반적으로 요한1서가 주후 70년과 100년 사이에 쓰였다고 믿는데, 이는 아마도 1세기 후반의 몇 년간이었을 것이다.

요한1서는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

요한1서의 독자는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글의 형식상, 요한1서는 기독교의 특정 회중에게 보내는 서한이라기보다는 교리적인 글이나 논문에 더 가깝다. 요한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서한을 썼으며(요한1서 1:3~4; 2:12~14 참조), 이는 아마도 소아시아(오늘날 터키)에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사료에 따르면, 요한은 주후 1세기 후반에 그곳에 살면서 성역을 베풀었다고 한다. 거짓 교사들은 그 지역에 있는 성도들 간에 분파, 즉 분열을 조장했다.(요한1서 2:18~19, 22, 26; 4:1 참조)

당시에 특히 인기를 얻고 있었던 철학은 가현설[Docetism, 도체티즘]이었다. 가현설은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로 알려진 좀 더 큰 사상운동의 일부분이었다. 여러 형태의 그노시스주의가 주장하는 핵심 가르침은 영은 전적으로 선하고, 육신을 포함한 물질은 전적으로 악하다는 것이었다. 그노시스주의 추종자들은 구원이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보다는 영이 육신을 의미하는 물질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서라기보다는 특별한 지식(영적 인식[gnosis])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었다.

가현설 추종자들은 예수님의 영적 본질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분이 실제로 육신을 입고 지상에 오셨다는 개념을 부인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불멸하며, 모든 것을 아시고, 비물질적인 존재라고 믿었으며, 물질적인 세상과 육신을 부정하고 악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신성한 아들이기에 인간이 겪는 한계를 경험하실 수 없다고 믿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글자 그대로 육신을 입고 태어나신 것도 아니고, 실재하는 몸에 존재하거나 피를 흘리거나 고통을 겪거나 죽거나 눈에 보이는 부활체로 살아나거나 하지도 않으셨으며, 다만 그런 것들을 하신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가현설은 “~처럼 보이다” 또는 “~인 듯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dokeō에서 파생되었다.

요한은 이런 거짓 가르침들을 논박하면서, 구주께서 육체로 존재하셨음을 증언했다.(요한1서 1:1~2; 4:2~3, 14; 5:6 참조)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육체를 입고 지상에 오셨으며, 고통을 받고 돌아가심으로써 구속을 이루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사랑하셨으므로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했다.

요한1서에는 어떤 뚜렷한 특징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최초의 사도 중 한 사람이었던 요한은 부활하신 구주를 본 특별한 목격자였다. 요한은 이 서한의 서두에서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만져 보았다고 말했다. 요한은 이 개인적인 간증을 전한 후에 독자들에게 자기 자신과, 그리고 그와 함께 성역을 베풀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을 누리라고 권고했다.(요한1서 1:3) 요한1서의 중심 주제는 사랑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요한1서의 주제인 하나님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모든 개인적인 의로움을 뒷받침하는 토대이다.

하나님의 모든 목적과 계획은 그분의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에 기반을 둔다.

만일 사람들이 그 사랑을 자신의 삶에서 실현한다면, 그들은 주님처럼 되고 그분과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3:371)

개요

요한1서 1~5장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간증을 확고히 하고, 독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비슷한 기쁨과 사귐을 경험하도록 권유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변호자이시다. 요한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의인들은 그분처럼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인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물과 피와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가르쳤다.

요한1서 주해

요한1서 1:1~3. “태초부터” 사도의 증언

요한은 어떻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만져 보았는지를 이야기했다. 요한은 분명히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증거로서 이 편지를 쓰고 있음을 독자들이 이해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누가복음 24:36~39; 사도행전 1:3 참조)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구원에서 그분이 맡으신 역할에 대한 요한의 간증은 교회 안으로 스며들고 있는 거짓 가르침을 강하게 논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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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에게 말하고 있는 요한

연극 세상의 구주에 나오는 한 장면. 요한은 자신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분을 만져 보았다고 말했다.(요한1서 1:1 참조)

요한1서 1:3.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요한은 자신이 이 편지를 쓰는 한 가지 목적이 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고, 그런 후 차례로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했다.(요한1서 1:3) 사귐[Fellowship]은 친교, 협력, 일상생활 공유라는 개념을 포함한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이생에서 주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은 성령의 동반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 그리고 영원한 세상에서 그분과 사귐이 있다는 것은 그분처럼 되는 것으로, 곧 그분이 소유하고 창시하신 영생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3:374)

요한은 하나님 아버지 및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을 누리려면, 우리도 그분들처럼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 가운데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적용하고, 우리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계명을 지키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요한1서 1:5~10; 2:3~11 참조)

요한1서 1:5~10. 어둠 대신 빛 가운데 행함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라고 적었다.(요한1서 1:5) 하나님이 빛이라는 개념은 요한의 다른 기록과 다른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요한복음 1:4~9; 8:12; 9:1~5; 고린도후서 4:6; 교리와 성약 50:23~24; 88:49~50, 67~68 참조) 하나님과의 사귐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행하기 위해 죄의 어둠에서 떠나야만 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죄가 없다고 말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요한1서 2:1. “나의 자녀들”

요한은 자신이 성역을 베풀었던 지역의 교회 회원들을 “자녀들”이라고 부르곤 했다.(요한1서 2:1, 12, 18, 28; 3:7; 4:4; 5:21) 이 용어는 애정을 표현하는 말의 하나로 보이며, 바울이 디모데를 자기 아들로 불렀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디모데전서 1:2, 18; 디모데후서 1:2 참조) 하지만 요한1서 2장 14절에 나오는 “아이들”은 교회 회원들의 실제 자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주의하도록 한다. “자녀들[little children]”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13장 33절[“작은 자들”로 번역되어 있음–옮긴이]과 교리와 성약 78편 17절[“어린아이들”로 번역되어 있음–옮긴이]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

요한1서 2:1~2; 4:10. 우리의 변호자와 화목 제물

요한은 구주를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와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라고 칭했다.(요한1서 2:1~2) 대언자는 다른 사람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의로우셨으며 다른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한 공의의 요구를 충족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할 자격이 되신다.(히브리서 7:25~26; 니파이후서 2:9; 교리와 성약 29:5; 45:3~5 참조)

화목 제물은 하나님의 총애 또는 호의를 되찾기 위해 치른 희생 제물을 말한다.(요한1서 2:2; 4:10 참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총애를 되찾게 해 주는 희생 제물이시다. 구주께서는 온 세상의 축적된 죄에서 비롯된 고통을 견디어 내셨다. 그러나 구주의 속죄가 가져다주는 충만한 유익은 오직 진실로 회개한 사람들만이 얻게 될 것이다.(교리와 성약 18:10~12; 19:16~19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신 것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로마서 3:25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1서 2:3~6.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

요한1서 2장 3~6절에 표현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은 요한의 기록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구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한복음 15:10)

요한1서 2:8~11. 빛은 어둠을 쫓아낸다

이 서한에서 요한은 거듭해서 빛과 어둠을 대조하고 독자들에게 빛 안에 거하도록 권유했다. 요한은 빛을 사랑과 관련짓고 어둠을 증오와 관련지었다.(요한1서 2:9~11 참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그리스도의 빛은 우리의 삶을 비추게 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삶에서 어둠을 내쫓고 빛 가운데에서 걷는 방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어렸을 때 우리는 빛을 밝힘으로써 어둠을 물리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따금 저녁때 부모님이 외출하셨을 때, 우리는 집안의 모든 불을 켜곤 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인 법칙인 동시에 영적인 율법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빛과 어둠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빛은 어둠을 쫓아냅니다. 빛이 존재하면, 어둠은 패배하여 달아나야만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빛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한 어둠이 빛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신의 영적인 빛이 존재한다면, 사탄의 어둠은 달아납니다.

… 우리는 빛과 어둠의 세력 간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복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멸망당할 운명에 처해 있었을 것입니다.”(“어둠에서 나와 그의 놀라운 빛으로”, 리아호나, 2002년 7월호, 77~78쪽; 교리와 성약 93:39 참조)

요한1서 2:18~19, 22, 26; 4:3. 적그리스도

요한은 성도들 가운데 있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말하면서,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다고 경고했다.(요한1서 2:18) 적그리스도란 “구원의 참된 복음 계획을 가장하고 공개적으로나 은밀하게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다.(경전 안내서, “적그리스도”, scriptures.lds.org) 구주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들”이 일어날 것을 경고하셨다.(마태복음 24:24)

요한1서 2:20, 27. “거룩하신 자에게서 [받은] 기름 부음”

요한은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지를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짓 개념을 거부하고자 애쓸 때 “거룩하신 자에게서 [받은] 기름 부음”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임을 성도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요한1서 2:20)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 성구에 나오는 “기름 부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글자 그대로 기름 부음[unction]이란 의료용 기름을 사용할 때처럼 기름을 붓는 행동을 말한다. 비유적으로는 높은 곳에서 오는 기름 부음, 즉 그것을 통해 성신의 은사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요한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한1서 2:20) 이는 그들이 성신을 받았으며, 그리하여 그들에게 계시와 지식의 영이 깃들게 되었다는 의미이다.”(Mormon Doctrine, 2nd ed. [1966], 812–13)

요한1서 3:1~3.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분처럼 될 잠재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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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그랜드 알 클로슨. “[예수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것이다.]”(요한1서 3:2)

요한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불렀으며,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요한1서 3:1~2) 이 성구는 성경에 나오는 많은 구절 중 하나로, 사람에게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될 잠재력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마태복음 5:48; 요한복음 10:34; 로마서 8:17; 요한계시록 3:21 참조)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로마서 8:17 주해를 참조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지상 생활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복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신학에서 볼 때, 지상 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의 우리의 운명을 실현하도록, 즉 그분처럼 되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 성경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묘사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묘사하기도 합니다.(로마서 8:16~17) 또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며(로마서 8:17)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게 된다고(요한1서 3:2)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지상 생활의 목적은 육신을 얻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복음의 율법과 의식에 순종함으로써, 승영 또는 영생으로 불리는 영화로운 부활된 해의 왕국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는 것임을 믿습니다.

… (영생 또는 하나님으로서의 생의 운명은 신격화나 신으로서 받들어짐에 관한 고대 기독교의 교리나 신조를 연구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익숙한 것입니다.) …

… 우리의 신학은 하늘의 부모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최상의 염원은 그분들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계획 에 따라, 이 모든 것은 아버지의 독생자요, 주님이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가능합니다.”(“배도와 회복”, 성도의 벗, 1995년 7월호, 85~86쪽)

옥스 장로는 초기 기독교 교리인 신격화를 언급했는데, 이는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많은 기독교 저자들은 사도들이 죽은 후에도 이 교리를 계속 가르쳤다. 예를 들어, 키프리아누스(대략 주후 200~258년) 감독은 이렇게 적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되려 하셨던 존재로, 이는 인간이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 그리스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본받기만 한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될 존재이다.”(“The Treatises of Cyprian,” 6.11, 15,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eds., The Writings of the Fathers Down to A.D. 325: Ante-Nicene Fathers, 10 vols. [1994], 5:468–69)

요한1서 3:4. 죄의 정의

요한은 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내렸다. “죄는 불법이라.”(요한1서 3:4)

요한1서 3:6~9. 죄 안에 계속 머물지 말라

흠정역 요한1서 3장 6절에는 이렇게 나온다. “범죄하는 자마다 그[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한1서 3장 6, 8~9절의 조셉 스미스 역에는 범죄하는 사람과 죄 안에 계속 머무는 사람 간의 차이점이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죄 안에 계속 머무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안에 계속 머무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누구든지 죄 안에 계속 머물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머무심이라. 또 그는 죄 안에 계속 머물 수도 없나니 이는 그가 하나님에게서 나서 저 약속의 성령을 받았음이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1 John 3:6; 3:8; 조셉 스미스 역, 요한1서 3:9[경전 안내서])

요한은 또한 죄 안에 계속 머무는 사람들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대조했다.(요한복음 15:1~11 참조)

요한1서 3:11. “서로 사랑할지니”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라는 말은 요한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이다.(요한1서 3:11) 그는 구주께서 이 원리를 가르치시는 것을 직접 들었다. 그분은 지속적인 사랑의 근원이 되신다. 구주께서는 “태초부터” 사랑을 가르치셨으며, 지상 성역의 마지막 날 밤에도 다시금 그 가르침을 주셨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한복음 15:12)

요한1서 3:13~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요한은 교회 회원들이 강한 반대를 겪고 있음을 알았기에, 독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격려했다.(요한1서 3:13) 그런 다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신의 형제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쳤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중에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내야 하는 경험이나,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대까지 견뎌 내야 하는 경험을 아직 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언젠가 그런 상황에 처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는 용기와 정중함이 필요합니다.”(“제자 됨의 대가와 축복”, 리아호나, 2014년 5월호, 6쪽)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도 다음과 같이 유사한 가르침을 주었다. “‘세상의 소금’인 우리는 ‘세상의 빛’이며 우리의 빛이 감추어져서는 안 됩니다.(마태복음 5:13~16 참조) 사도 요한은 이로 인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요한1서 3:13 참조) 그래서 변화하겠다고 성약을 맺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할 성스러운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화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문화로 진입하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에게 격려를 보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1서 3:18)”(“회개와 변화”,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40쪽)

요한1서 3:22. 우리가 구하는 바를 받음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해야 한다.(요한1서 3:22) 경전 안내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및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미 기꺼이 허락하고자 하지만, 우리가 구해야만 얻을 수 있는 축복들을 받기 위한 것이다. 축복을 받으려면 그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거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Bible Dictionary, “Prayer) 우리가 드린 기도에 대해 응답을 받는 것에 관하여 더 알아보고 싶다면, 다음 성구들을 참조한다. 니파이전서 15:8~11; 앨마서 26:22; 제3니파이 18:20; 교리와 성약 46:30; 50:29~30; 88:63~64.

요한1서 4:1~3; 요한2서 1:7. “영을 다 믿지 말고”

당시 교회 내의 일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이 없으셨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요한은 이런 사람들을 “적그리스도의 영”을 지닌 “영들”로 언급했다.(요한1서 4:1~3 참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고 죽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라고 권했다.(요한1서 4:1) 이 경우에 참된 교사를 분별하는 판단 기준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요한1서 4:2) 가르치는지 아닌지에 있었다. 또한, 이와 유사한 거짓 가르침이 존재했다는 것은 바울의 글에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골로새서 2:8~9 참조)

요한1서 4:7~11.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이라는 말은 요한1서 4장에 20번 이상 나온다. 요한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의 독생자라는 선물로 나타난 바 되었다고 가르쳤다.(요한1서 4:7~9; 또한 요한복음 3:16~17 참조)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도 이와 유사한 가르침을 전했는데, 그는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을 증명해 보이고자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말했다.

“따라서 주린 자를 먹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위선자를 꾸짖고 신앙을 호소하시는 것,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 하고, 오래 참고 선함으로 가득 찬’ 하나님 아버지의 길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Lectures on Faith, 42] 그분의 생애를 통해, 특히 그분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보여 주는 내 자신의 자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니라’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

그리고 거룩한 사도 직분의 영으로 저는 고대에 이 직분을 가졌던 사람들처럼 말씀드립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1서 4:10~11] 그리고 그분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하나님의 위대하심”,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72~73쪽; 또한 요한복음 3:14~17 주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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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자와 함께하신 그리스도

일어나 걸으라, 사이먼 듀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역 곳곳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크나큰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요한1서 4:12. 하나님을 봄

흠정역 요한1서 4장 12절에는 이렇게 나온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되.” 이 성구의 조셉 스미스 역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말은 오해임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 “믿는 자 외에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경전 안내서) 요한은 계속해서 이렇게 가르쳤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한1서 4:12) 요한은 직접 하나님 아버지를 목격했다.(요한계시록 5:1; 교리와 성약 67:11 참조)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다음을 참조한다. 요한복음 14:23; 사도행전 7:56; 교리와 성약 93:1; 조셉 스미스—역사 1:16~17; 요한복음 1:18 주해.

요한1서 4:18.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한이 편지를 썼던 교회 회원들에게 두려움은 그들이 겪는 적대 행위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라고 적었다.(요한1서 4:18)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이 어떻게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교리적인 가르침으로 기억되는 분인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고통에 빠진 한 이웃의 가족에게 큰 친절을 보였습니다. 그 가족은 정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가 되기 전, 젊은 아버지였던 그는 디프테리아란 무서운 전염병에 걸린 이웃의 큰 고통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족은 교회 회원이 아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친절과 자비를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상호부조회는 그 가족을 도울 사람을 찾으려 애썼으나, 전염병에 걸린 그 가족을 도우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임스 형제가 도착했을 때는 한 명의 유아가 이미 죽었고, 두 명의 다른 어린 자녀들이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즉시 일을 시작하여 오염된 집을 깨끗이 하고 어린아이를 묻을 준비를 하고 다른 아픈 아이들을 씻기고 돌보면서 하루 종일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온 그는 간밤에 자녀 한 명이 더 사망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 애는 내 목에 매달려 때로는 내 얼굴과 옷에 대고 [병균으로 가득 찬] 기침을 했다. … 하지만 난 그 애를 떼어 낼 수 없었다. 그 애가 죽어가는 30분 동안 나는 그 어린 생명을 안고 마루를 오갔다. 그 애는 오전 10시에 고통 속에서 죽었다.’ 세 자녀들도 24시간 내에 모두 사망했습니다. 그 뒤 그는 가족을 도와 장례 준비를 하고 장례식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가 했던 이 모든 것은 낯선 가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위대한 친절의 본보기가 아니겠습니까!” (“친절의 미덕”, 리아호나, 2005년 5월호, 28쪽)

요한1서 5:2~3.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은 요한1서 4장에서 사랑에 관한 가르침을 더 전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그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일이며, 그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님을 일깨워 주었다.(요한1서 5:2~3) 조셉 비 워스린 장로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계명에 순종할 때, 순종은 더는 무거운 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숙고하십시오. 그분의 멍에를 메십시오. 이해하고 순종하려 노력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5:3] 주님을 사랑할 때, 순종이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습니다. 순종은 즐거움이 됩니다.”(“큰 계명”,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30쪽)

요한1서 5:4~5. “[그가] 세상을 이기느니라”

요한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요한1서 5:4~5 참조) 세상을 이긴 사람들이 받는 축복에 관해서는 다음 성구들을 참조한다. 요한계시록 2:11, 17, 26~28; 3:5, 12, 21.

요한1서 5:6~8.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요한1서 5장 7~8절에 나오는 몇몇 문구는 아마도 주후 4세기 즈음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 문구는 그렇게 덧붙여진 것이 분명하다. “하늘에서는 아버지, 말씀, 성신이라 그리고 이 셋은 하나이니라 그리고 땅에서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흠정역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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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물, 피, 성령[영]은 우리의 육체적 및 영적 출생과 관련이 있다.(요한1서 5:6~8 참조)

이 단어들이 요한이 남긴 최초의 기록 내용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가 추가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성구는 그리스도의 피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속죄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실제 고통의 일부였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필멸의 육신을 입지 않으셨다는 가현설의 거짓 가르침을 논박한다.(요한1서 1:7; 5:6 참조) 물, 피, 영은 육체적 출생, 영적인 거듭남, 그리고 구주의 속죄 희생과 연결된다. 다음 표는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모세서 6:59~60 참조)

육체적 출생

영적 거듭남

구주의 속죄 희생

아기는 자궁에서 물에 에워싸여 있다.

침례는 침수로써 집행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에 창으로 찔린 옆구리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육신의 생명이 핏속에 있다.

임부는 해산할 때 피를 흘린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속죄의 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필멸의 상태로 태어나는 각 사람은 문자 그대로 하늘 부모의 자녀이며, 전세에서 영체를 받았다.

성신은 정결하게 하는 권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속죄의 희생과 완전하신 영성을 통해, 우리는 다시 태어나고 영적으로 성결해질 수 있다.

요한2서 소개

왜 요한2서를 공부하는가?

이 서한에서 요한은 교회 내에 영향을 끼치는 배도에 대한 염려를 나타냈다. 동시에 그는 굳건하고 충실하게 남은 교회 회원들에 대해 느끼는 기쁨도 함께 표현했다.(요한2서 1:1 참조) 이러한 기쁨은 고대와 현대의 교회 지도자들이 주님께 충실히 남아 있는 성도들에 대해 느끼는 기쁨과 감사를 보여 준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적그리스도들이 속임수를 쓰더라도 그 동안 이뤄 왔던 영적 발전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상기시켰다.(요한2서 1:8 참조)

요한2서는 누가 기록했는가?

저자는 자신을 “장로”로 언급했는데(요한2서 1:1), 전언에 따르면 그는 사도 요한이다. 어휘, 문체, 주제 면에서 요한1서 및 요한 3서와 거의 일치하기에, 대부분의 주석자들은 동일 작가가 이 서한들을 썼다는 결론을 내린다.

요한2서는 언제, 어디에서 기록되었는가?

신약전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요한2서가 주후 70년과 100년 사이에 쓰였다고 믿는데, 이는 아마도 1세기의 마지막 몇 년 사이일 것이다. 요한2서가 어디에서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요한2서는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

요한2서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쓴 서한이다.(요한2서 1:1) 이 서한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였기에, 다수의 주석자들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가 실제로는 기독교인 회중을 가리킨다고 결론짓는다.(요한2서 1:13 참조) 교회를 지칭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여성형으로, 교회를 여성으로 의인화하는 것은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에베소서 5:25~27, 32; 요한계시록 12:1~4, 17; 요한계시록 19:7~8 참조) 그 외에도,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이 실제 요한의 아내와 가족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요한은 분명히 요한1서와 똑같은 목적으로 이 서한을 썼다. 그는 거짓 가르침에 대응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자 그대로 육신을 입고 지상에 오셨다고 간증했으며, 이와 다르게 가르치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로 분류했다.(요한2서 1:7) 그는 그리스도께는 육신이 없다고 가르치는 회원들을 회중으로부터 내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요한2서 1:10 참조)

요한2서에는 어떤 뚜렷한 특징이 있는가?

이 서한에서 요한은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했다. 요한은 교회 회원들에게 그런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거나 그들과 교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개요

요한2서요한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이 참되고 충실한 것을 기뻐했다.(요한2서 1:1) 그는 적그리스도들에 대해 경고했다.

요한2서 주해

요한2서 1:1~5. “택하심을 받은 부녀”

요한은 자신을 “장로”로 언급했다. 그가 편지를 쓴 대상인 “택하심을 받은 부녀”는(요한2서 1:1 참조) 교회의 지부를 칭하는 비유적인 표현이거나 아니면 글자 그대로 여성 회원, 어쩌면 그의 아내를 말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 경륜의 시대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아내인 에머 스미스도 “택함을 받은 여인”으로 불린 바가 있다.(교리와 성약 25:3) 요한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알고서 기뻐했다.

요한2서 1:7~10.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요한은 독자들에게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고 경고했다.(요한2서 1:7) 요한은 성도들에게 만일 거짓 교사를 만나게 되면,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라고 충고했다.(요한2서 1:10) 요한은 성도들이 반대되는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예의마저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회중은 교회 회원들의 집에 모여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환대하는 관습에 따라 무심코 거짓 교사들을 회중 속으로 들이게 될 수도 있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현대의 교회 회원들에게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남자든 여자든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을 조심합시다. 이들은 혼자서 정한, 교회 교리의 선언자들이며, 자기들의 거짓 복음을 퍼뜨리고, 교회의 기본 교리에 도전하는 내용을 다루는 심포지엄과 그러한 서적과 일지의 출판을 후원함으로써 추종자들을 끌어들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을 반대하여 연설하고 출판하는 사람들과 자기들의 선동을 받는 자들의 영원한 복지를 전혀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

아마 가장 파괴적인 것은, 저들이 어떤 하나님도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속죄를 부인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구주의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요컨대 이 비난자들은 자기들의 선입견에 맞추어 교회의 교리를 재해석한 후 그리스도와 메시야로서의 그분의 역할을 부인하려 하고 있습니다.”(“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라”,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74~75쪽)

요한3서 소개

왜 요한3서를 공부하는가?

이 짧은 서한에서 요한은 교회 지도자들을 모반하던 시기에도 충실함을 잃지 않은 교회 회원 가이오를 칭찬했다. 요한의 가르침은 신약 시대에 교회에서 일어난 배도에 관한 통찰을 제공하고, 반대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교회 지도자들을 충실히 따르는 현대의 성도들에게 영감이 될 수 있다.

요한3서는 누가 기록했는가?

요한2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자신을 “장로”로 언급했으며(요한3서 1:1) 전언에 따르면 그는 사도 요한이다. 어휘와 문체 면에서 요한1서 및 요한 2서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석자들은 동일 작가가 이 서한들을 썼다는 결론을 내린다.

요한3서는 언제, 어디에서 기록되었는가?

신약전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요한3서가 주후 70년과 100년 사이에 쓰였다고 믿는데, 이는 아마 1세기 후반일 것이다. 요한3서가 어디에서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요한3서는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

요한3서는 교회의 충실한 회원인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였다. 요한은 가이오가 여러 지역을 다니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며 그리스도의 대업에 이타적인 헌신을 보여 준 점을 칭찬했다.(요한3서 1:5~8 참조) 요한은 또한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교회에서 현지 지도자였거나 아마 현지의 교회 회중이 모여 예배를 보도록 자신의 집을 내 주었을 것이다. 디오드레베는 요한과 그 외 교회 역원들을 공공연히 반대했으며, 심지어 교회 역원들을 맞이하려는 현지 교회 회원들을 교회 모임에 참석하거나 말씀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요한3서 1:9~10 참조) 요한은 가이오에게 계속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자신이 곧 그를 방문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요한3서 1:11~13 참조)

요한3서에는 어떤 뚜렷한 특징이 있는가?

요한3서에는 요한이 교회 안에 영향을 끼치는 배도를 염려했음이 드러나 있다. 또한 이 기록에서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요한이 느꼈던 기쁨을 엿볼 수 있다.(요한3서 1:4 참조)

개요

요한3서요한이 가이오를 칭찬했다. 가이오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푼 사람이다. 요한이 자신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고 기뻐했다.(요한3서 1:4) 그는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권력을 추구하며 방문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교회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요한3서 주해

요한3서 1:9~10.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권세를 거부하다

디오드레베는 현지 지부의 지도자이거나 교회 모임을 하도록 자신의 집을 제공했을 것이다. 요한은 디오드레베가 성도들 가운데 “으뜸되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요한과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의 권세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디오드레베와 같은 사람들에 관하여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적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그마한 권세를 가지자마자, 즉시 불의한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려는 천성과 기질이 있도다.”(교리와 성약 121:39; 또한 니파이후서 26:29 참조)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리 가운데는 우리를 감리하도록 부름받은 평의회 역원들보다 자신이 영적인 이해력이 더 뛰어나거나 더 학식이 있거나 더 의로울 수 있다는 일종의 교만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의회는 그들이 감리하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주님과 더 잘 조화를 이룹니다.”(Finding Light in a Dark World [1995], 121)

유다서 소개

왜 유다서를 공부하는가?

이 서한을 통해, 독자들은 주후 1세기 말 무렵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배도 세력에 관해 유다가 심각하게 걱정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유다서는 누가 기록했는가?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밝혔다.(유다서 1:1) 전언에 따르면,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부형제인 유다이다.(마태복음 13:55; 마가복음 6:3 참조) 유다는 예루살렘의 교회에서 활동적으로 생활하며 매우 존경받던 회원이었음이 분명하며, 또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선교 사업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사도행전 1:13~14; 고린도전서 9:5 참조) 유다가 초기 교회에서 중요한 지도자 직책에서 봉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의 서한을 신약전서 정경에 포함할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유다서는 언제, 어디에서 기록되었는가?

이 서한의 저자가 정말로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라면, 이 기록은 주후 40년과 80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다. 유다서가 쓰인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유다서는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

유다서는 충실한 기독교인, 즉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흠정역 영문판에는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성결케 되고(are sanctified by God the Father)’라고 나옴–옮긴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보낸 일반 서신이다.(유다서 1:1) 유다의 말에 따르면, 이 서한의 목적은 교회에 들어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거짓 가르침과 부도덕한 관행을 조장하는 사악한 교사들에 맞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유다서 1:3) 독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다서에는 어떤 뚜렷한 특징이 있는가?

일부 주석자들은 유다서와 베드로후서 간의 유사점을 주목하면서, 한 저자가 다른 저자의 글을 출처로 사용했거나 두 서한 모두 공통 출처를 토대로 기록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유다서 1장 4~9절베드로후서 2장에 나오는 표현과 실제로 유사하다. 그러나 베드로는 미래의 배도를 예언한 반면, 유다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배도에 대해 말했다.(베드로후서 2:1; 유다서 1:4 참조)

유다는 하나님과 그분의 종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날카롭고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 유다는 경전과 유대 외경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과거에 당신의 사업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셨는지를 언급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유다서의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성경을 통틀어 유일하게 유다만이 전세의 생활이 우리의 첫째 지체였다는 개념, 그리고 어떤 천사들은 전세에서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개념을 고스란히 보존해 두었다.

유다를 통해 우리는 미가엘과 루시퍼가 모세의 몸을 놓고 벌인 논쟁과 관련된 일부분의 지식을 얻게 된다.

오직 유다만이 인자의 재림에 관하여 에녹이 남긴 영광스러운 예언을 기록으로 남겼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3:415)

개요

유다서유다는 독자들에게 신앙을 옹호하도록 권면했다. 그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어 배도의 일을 퍼뜨리고 있다고 경고했다.(유다서 1:4) 그는 “지위[첫째 지체]”에 대해 가르치고,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설명했다.(유다서 1:6)

유다서 주해

유다서 1:1.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별개의 존재이시다

유다서 1장 1절에 나오는 유다의 말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별개의 존재라는 자신의 믿음을 전한다.

유다서 1: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유다는 자신이 원래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해 쓰려 했다고 언급했는데(유다서 1:3), 그것은 “구원이 선택받은 소수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Bruce R. McConkie,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416) 그러나 유다는 그 대신 독자들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다.(유다서 1:3) 여기서 유다가 말한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셨고, 나중에는 그분의 사도들이 가르쳤던 신앙[faith: 개역개정판에는 ‘믿음의 도’로 번역되어 있음-옮긴이]을 의미한다. 우리가 신약전서에서 읽는 바로 그 믿음의 도, 신앙은 우리 시대에 회복되어, 현재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윌포드 우드럽(1807~1898)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믿음의 도, 신앙을 추구한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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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포드 우드럽

젊은 사도 윌포드 우드럽 장로

“[저는] 신약전서를 읽었습니다. 저는 한 장 한 장, 그리고 한 절 한 절씩 읽었습니다. … 그것은 생명과 구원의 복음을 가르쳤으며, 하늘로부터 지상에 주어진 권능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선지자, 사도, 감독 및 교사로 구성된 교회 조직[에] … 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

이것들이 제가 배운 내용이었으며, 그것들은 제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어떤 성직자나 목사에 의해 그러한 것들이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 한번은 코네티컷에서 가끔 있었던 대집회 중 하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각 종파에서 온 사오십 명 가량 되는 목사들이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 이 모임에서는 누구나 말을 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무척 젊었습니다. 저는 일어서서 복도로 걸어나가 목사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왜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지 않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왜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고, 그분의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권능을 가르치는 종교, 병자를 고치고, 맹인을 보게 하고, 걷지 못하는 이를 걷게 하고, 여러분에게 성신을 주는 은사, 창세 이후로 나타난 은사와 은혜를 가르치는 종교를 위해 싸우지 않습니까? …’

모임을 감리하는 장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애하는 젊은 친구, 그런 모든 어리석은 것을 믿지 않는다면, 자네는 이 세상에서 매우 현명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일세.’”(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윌포드 우드럽[2004], 35~36쪽)

나중에 윌포드 우드럽은 하나님의 권세를 지닌 종인 제라 펄시퍼가 전하는 복음 메시지를 듣게 되었으며, 그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찾던 것임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며칠 후에 바로 침례를 받았다.

유다서 1:4~8. 과거의 죄인들

유다는 고대 교회에서도 배도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회원들 모르게 교회 안으로 들어와 거짓 교리들을 가르쳤다고 설명했다.(유다서 1:4 참조) 유다는 이런 반항적인 사람들을 구약 시대에 불순종으로 멸망한 백성들, 즉 애굽에서 인도되었으나 죄를 떨쳐버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과 소돔 및 고모라의 주민들에 비유하였다. 또한, 유다는 전세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탄을 따랐던 천사들을 예로 들었다.(5~8절 참조) 이런 예들을 통해 유다는 독자들에게 합당한 권세에 맞서 반항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나게” 했다.(5절)

유다서 1:6.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 천사들”

유다는 전세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루시퍼를 따랐던 영들에 관해 적으면서, 그들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 천사들”이라고 불렀다.(유다서 1:6; 또한 아브라함서 3:26, 28 참조)[여기에 나오는 “지위(first estate)”는 아브라함서에서 “첫째 지체”로 번역되어 있음—옮긴이] 여기에서, “지위[지체]”란 사람의 등급 또는 위치를 의미한다. 이 영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맞서 반항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누리던 지위를 잃고 지상 생활, 즉 둘째 지체로 오는 특권을 누릴 자격을 얻지 못했다.

칠십인 정원회의 일원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엘 라이오넬 켄드릭 장로는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이 쫓겨나게 된 전세의 사건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루시퍼는 선택의지라는 신성한 은사를 사용하여 자신을 영원한 저주로 몰아넣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대담하게 반대 입장에 서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의 첫째 지체를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아브라함서 3:28] ‘그가 천군의 삼분의 일을 그들의 선택의지로 인해 내[주 하나님]게서 돌이켜 떠나게 하였나니’[교리와 성약 29:36; 기울임체 추가] 그들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선택의지를 빼앗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영원한 율법에 역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시퍼와 그의 추종자들은 반항한 결과로 하늘에서 내쫓겼으며 영생의 축복을 박탈당했습니다.”(Our Moral Agency,” Ensign, Mar. 1996, 30–31)

유다서 1:7.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

소돔과 고모라는 고대에 서로 인접해 있던 도시였으며 사해 근방의 어느 지역에, 아마도 남쪽 끄트머리에 있었을 것이다. 유다는 이 두 도시가 멸망한 이유를 그 백성들이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는 죄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유다서 1:7; 또한 창세기 19:27~29 참조) “다른 육체를 따라 [간다]”라는 문구는 동성애 행위에 관여한 것을 의미한다. 동성애 행위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더 알아보려면, 로마서 1:26~27 주해를 참조한다.

유다서 1:9. 모세의 몸에 관하여 마귀와 다툰 미가엘

유다서 1장 9절에서는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몸]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었다고 나온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 성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전했다. “주석자들은 … 유다가 현재로서는 성서외경으로,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는 기록인 ‘모세승천기’를 인용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성서외경에는 모세가 변화되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려졌다는 교리가 드러나 있다. 그 기록은 ‘모세가 기록한 계시’를 다루는 것 같다. ‘그가 구름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그의 죽음은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았다. … 미가엘은 모세를 매장하는 책무를 받았다. 사탄은 매장을 반대했다. … 결국,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는 가운데 승천이 일어났다.’(R. H. Charles, The Apocrypha and Pseudepigrapha of the Old Testament, vol. 2, pp. 407–413.)”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421)

몰몬경을 통해 우리는 모세가 변화되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려졌음을 알게 된다.(앨마서 45:19 참조) 모세는 2천 년 후에 육신을 입고 변형의 산에 나타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안수하며 신권 열쇠를 주어야 했기에 그것은 필수적으로 일어나야 했던 일이었다.(History of the Church, 3:387 참조)

모세승천기와 같은 성서외경은 진본 여부나 타당성에 의문이 있어서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 기록들은 종종 상당한 가치를 지니긴 하지만, 모든 면에서 정확하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주님께서 외경에 관해 조셉 스미스에게 계시하신 내용을 알아보려면, 교리와 성약 91편을 참조한다.

천사장 미가엘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다음 성구들을 참조한다. 교리와 성약 27:11; 29:26; 88:112~115; 107:54; 128:20~21.

유다서 1:11. 가인, 발람, 고라

유다는 거짓 교사들을 반항적인 가인, 발람, 고라에 비유하였다. 이들은 각기 주님 보시기에 심각한 죄를 범했다.(유다서 1:11 참조) 가인은 자기 형제의 양 떼를 얻고자 동생 아벨을 살인했다.(창세기 4:8; 모세서 5:32~33 참조) 발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여 부와 영광을 추구했다.(민수기 22:5; 25:1~8 참조) 고라는 신권 직무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유로 모세에 대항해 반역을 일으켰다.(민수기 16:1~3, 31~35 참조) 각각의 경우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저지른 사악한 행위를 저주하셨다. 유다의 서한은 그의 독자들이 그 시대에 사악한 사람들을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시대에 유사한 배교자의 가르침을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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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인들의 식사 그림

로마에 있는 성 마르켈리누스와 베드로의 지하 묘지에 그려진 초기 기독교인들의 식사 모습. 유다는 “애찬”, 즉 성도들이 함께하는 식사에 “암초” 또는 오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유다서 1:12) 이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예배와 사교적 관례들이 부패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또한 고린도전서 11:18~34; 베드로전서 4:3; 베드로후서 2:13 참조)

유다서 1:14~16. 에녹의 예언

유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에녹의 예언을 기록했다. 유다는 성서외경인 에녹서를 인용했을 것이다. 그 책은 현재 정경에 들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세서에서 우리는 에녹이 마지막 때와 구주의 재림에 관한 지식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모세서 7:62~66) 일찍이,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에녹이 유다에게 나타났다고 기록하기도 했다.(History of the Church, 4:209 참조)

유다서 1:17. “너희는 …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유다는 독자들에게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유다서 1:17; 또한 제3니파이 12:1~2 참조) 엠 러셀 밸라드 장로가 말했듯이, 사도의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는 안전을 얻는다.

“현재는 어려운 시대로 예절, 정직, 성실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표준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 그러할 때에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의지할 수 있는 명확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편견 없는 음성은 없습니까? 오늘날의 혼란한 세상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도록 우리에게 항상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그러한 음성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한 음성은 살아 계신 선지자와 사도들의 음성입니다. …

오늘 저는 여러분께 한 가지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참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살아 있는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귀 기울이고 또 우리의 권고를 경청한다면, 여러분은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너희는 저의 말을 받아들이라”, 리아호나, 2001년 7월호, 79, 81쪽)

유다서 1:18~19. 마지막 때의 조롱하는 자들

유다서 1장 18~19절에서 유다가 언급한 조롱하는 자들이란 아마 그 당시에 기독교인들을 조롱했던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교회와 그 표준을 가장 적극적으로 조롱했던 이들은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이는 그들에게 성령이 없기 때문이다.(유다서 1:18~19; 또한 베드로후서 3: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