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29장: 앨마서 30~31장


“제29장: 앨마서 30~31장,” 몰몬경 학생 교재 (2009), 212~220쪽.

“제29장,” 몰몬경 학생 교재, 212~220쪽.

제29장

앨마서 30~31장

소개

앨마서 30~31장은 예수 그리스도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사상을 다룬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몰몬경은 두 가지 기본적인 면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는 도구 역할을 합니다. 첫째, 몰몬경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이 분명하고도 알기 쉽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

둘째, 몰몬경에는 그리스도의 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몰몬경은 거짓 가르침을 뒤집어엎고 논쟁을 잠재웁니다.(니파이후서 3:12 참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겸손한 사람들은 몰몬경을 읽으면서 오늘날 성행하는 사악한 가르침과 기만과 악마의 술책에 대항할 힘을 얻습니다. 몰몬경에 나타난 배도 형태는 오늘날 일어나는 배도와 유사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몰몬경을 만들게 하시어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거짓된 교육, 정치, 종교, 철학 개념을 똑바로 이해하고 그에 대항하여 싸우는 방법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성도의 벗, 1975년 8월호, 40쪽)

코리호어가 어떻게 니파이 백성의 신앙을 멸하려 했는지 공부하면 우리 시대에 발생하는 그와 같은 파괴적인 논쟁을 더 잘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앨마가 코리호어에게 어떻게 대응했는지 공부하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앙을 파괴시키려 하는 이들로부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도록 더 잘 준비될 것이다.

해설

앨마서 30장. 현대의 코리호어

  • 칠십인으로 봉사했던 제럴드 엔 런드 장로는 현대에도 코리호어와 같은 사람이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 세상에는 코리호어가 가르친 것과 비슷한 철학들이 만연합니다. 책과 영화, 텔레비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학교 교실에서, 그리고 때로는 우리 시대에 있는 여러 교회에서 그러한 철학들이 가르쳐집니다. ……

    …… 우리는 몰몬이 코리호어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완전한 기사를 우리에게 전하도록 영감 받았다는 증거를 분명하게 봅니다. 코리호어의 가르침은 오래된 교리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고속 인쇄와 위성시대에도 만연한 사상입니다.”(“Countering Korihor’s Philosophy,” Ensign, July 1992, 20)

앨마서 30:6. 적 그리스도

  • 경전 안내서에는 적 그리스도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구원의 참된 복음 계획을 가장하고 공개적으로나 은밀하게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 또는 물건. …… 큰 적 그리스도는 루시퍼이나 그는 영적 존재와 필멸의 존재 양편으로 많은 보조자를 거느리고 있다.”(“적 그리스도”, 250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적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이다. 즉 참된 복음, 참된 교회, 참된 구원의 계획에 반대한다.(요한1서 2:19; 4:4~6) 적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것과는 다른 형태로 인간에게 구원을 제공한다. 시렘(야곱서 7:1~23), 니허(앨마서 1:2~16), 코리호어(앨마서 30:6~60)는 니파이 백성들에게 그들의 망상을 전파한 적 그리스도들이다.”(Mormon Doctrine, 2nd ed. [1966], 39~40)

앨마서 30:7, 11.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는 금하는 아무런 법이 없었으니”

  •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는 금하는 아무런 법이 없었[는데]” 코리호어는 어떤 근거로 체포되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사이야 왕은 포고문을 발행하여 “누구든지 믿지 아니하는 자[가]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자들 중 아무라도 핍박”(모사이야서 27:2)하는 것은 니파이인 법에 어긋난다고 선포했다.

    분명히, 코리호어는 자신의 믿음을 따를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교회를 파괴하려 했기 때문에 그는 모사이야 왕의 포고문을 범한 것이다. 많은 제이라헤믈라 백성들이 코리호어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반면, 생애 대부분을 코리호어와 같은 믿음에 따라 살았던 암몬 백성들이 “그를 그 땅에서 끌고 나가게”(앨마서 30:21; 또한 8~20절 참조) 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암몬 백성은 코리호어의 가르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앨마서 30:12~18. 코리호어의 전략

  • 한 복음 학자는 코리호어의 철학이 현대 철학과 얼마나 많이 일치하는지를 설명했다. “코리호어는 모든 문제에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기를 고집하고, 모든 것을 “과도하게 흥분된 생각의 결과”(앨마서 30:13~16)로 여겼다. 코리호어는 옛 전통과 원시적인 미신의 압제에 대항하는 강력한 개혁 운동을 벌였다. 그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실상은 그렇지 아니한 일을’(앨마서 30:16) 믿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그들 조상의 어리석은 전통’(앨마서 30:31)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리호어는 옛 압제로부터 벗어나도록 새로운 도덕관을 주창했다.(앨마서 30:17~18, 25) 제사들의 착취(앨마서 30:27)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쟁취하여 모두가 ‘자신의 것을 사용’(앨마서 30:28)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앨마서 30:18)이라는 간단 명료한 자연주의를 전파했다. 또한 그 법칙에 따라 완전한 물질주의를 주창했다. ‘각 사람은 피조물의 경영을 좇아 이 생을 살아[야]’(앨마서 30:17)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이어 아주 분명한 자유방임주의 철학을 전파했다. ‘각 사람은 자기의 재능대로 번영하며, 각 사람은 자기의 힘대로 정복하며,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범죄가 아니라[고]’(앨마서 30:17) 말하면서 옳고 그름은 성공과 실패라는 자연 철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인간 행동에 나타나는 일종의 적자생존의 법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옛 도덕관과 감정 억제를 제거하자는 이 주장들을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로 그들의 간악함 중에 그 머리를 들게 하였으니, 참으로 많은 …… 자들을 이끌어 내어, 음행을 범하게 하였[다.]’(앨마서 30:18) 이 해방 정신 이외에도 코리호어는 어떠한 반대도 허용하지 않는 투쟁적 열의를 부추겼다. 이는 곧 모든 반대 의견을 ‘어리석은’(앨마서 30:13~14; 앨마서 30:31) 것이라 여기며 광란적이고 비정상적인 생각의 증거라고 말하는(앨마서 30:16) 현대 이데올로기의 뚜렷한 특징이다. 앨마가 생각하는 자유 국가는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사회인 반면에(앨마서 30:7~12) 코리호어는 모든 사람이 코리호어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는 사회를 자유 국가라고 여겼다.(앨마서 30:24)”(Hugh W. Nibley, Since Cumorah, 2nd ed. [1988], 379~380)

앨마서 30:15~16. 코리호어의 그릇된 가르침

  • “너희가 보지 못하는 일을 너희가 알 수 없나니”라는 코리호어의 가르침은 모든 사상과 지식이 경험에서 오며 경험으로 실험할 수 있고, 우리는 오직 느낄 수 있는 감각, 즉 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듣고, 맛보는 것을 통해서 경험한 것들만 알 수 있다는 철학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와 연관된 영적 경험은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미각을 통해 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코리호어의 철학에 심취한 사람들은 영적 경험을 무의미하다고 치부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영적인 것은 대체로 일반적인 오감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경험에 대해 설명했다.

    “제가 총관리 역원이 되기 전에 제게 큰 영향을 미친 경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비행기에서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사람 옆에 앉았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글로 출판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간증을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선생님이 틀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압니다!

    그러자 그는 반박했습니다. ‘선생님은 모르십니다. 아무도 그것을 모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굴하지 않자 변호사인 그 무신론자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아마 간증이란 주제에 관해 종지부를 찍을 만한 질문이라 생각한 듯합니다. ‘좋습니다.’ 그는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아는지 제게 말씀해 보십시오.’

    저는 대답하려 했습니다만 사실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젊은 선교사 여러분은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사람들이 여러분이 모든 것에 대해 즉각 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멸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 당황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 조소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워서 돌아서기도 합니다.(쇠막대와 넓은 건물과 조롱을 기억하십니까? 니파이전서 8장 28절을 보십시오.)

    제가 증거라는 말을 사용하자 그 무신론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기도, 분별, 신앙도 똑같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선생님은 사실은 모르시는 겁니다. 만일 아신다면 어떻게 해서 아시는지 말씀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간증을 현명하게 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습니다. 그 다음에 바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한 다음 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계시의 영이 전하는 첫 번째 알림에 유의할 때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깨끗한 예지가 여러분 안으로 흘러 들어 오는 것을 느낄 때, 그것으로 여러분은 급속하게 관념이 전환될 수 있으며 …… 하나님의 영을 알고 이해함으로써 여러분은 계시의 원리 안에서 성장하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됩니다.’(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조셉 필딩 스미스 편, 146쪽)

    아이디어가 마음에 떠올랐고 저는 그 무신론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금이 어떤 맛인지 아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는 ‘당연히 알죠.’ 하고 대답했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소금을 맛보셨나요?’

    ‘지금 막 비행기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였지요.’

    저는 ‘선생님은 단지 소금 맛이 어떤지 안다고 생각하실 따름이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금 맛이 어떤지 압니다.’

    ‘만일 제가 소금과 설탕을 각각 한 컵씩 주고 맛보게 한다면 어떤 것이 설탕이고 어떤 것이 소금인지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점점 어린애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물론 저는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소금 맛이 어떻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매일 경험하는 일이며 제가 아는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압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한 번도 소금 맛을 본 적이 없다고 가정하고 그 맛이 어떤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는 잠시 생각한 후에 더듬거리며 시도해보았습니다. ‘저, 그게 말이죠. 그것은 달지도 시지도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이러이러하지 않다고만 말했지 그것이 어떻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여러 번 시도했으나 그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소금을 맛보는 것과 같은 일상 경험도 말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한 번 더 간증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선생님은 그 간증을 비웃고 정말로 제가 안다면 제가 어떻게 아는지를 분명히 말할 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소금을 맛보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소금 맛이 어떻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지식이 어떻게 저에게 왔는지 더는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는데, 하나님은 계시고 그분은 진실로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단지 선생님이 모르신다고 해서 제가 모른다고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압니다!’

    저는 그가 헤어질 때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의지하시는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어요.’

    그 경험을 한 이래로 저는 제가 영적으로 아는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주님의 등불”, 성도의 벗, 1983년 10월호, 28~30쪽)

앨마서 30:17. 코리호어는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죄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 일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믿든, 복음은 상대적 가치 체계라는 것은 없다고 가르친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이 몰가치성으로 삶을 대하도록 허용하거나 심지어 조장하며 정부, 기업체, 개인 관계에서 부정직을 미묘한 형태로 조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몰몬경에서는 옳고 그름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열쇠는 몰몬경 안에서 찾을 수 있다.(모로나이 7:16~17 참조)

  • 각 사람은 “자기의 재능대로 번영하며, 각 사람은 자기의 힘대로 정복[한다]”는 코리호어의 철학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필요성을 차단시킨다.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범죄가 아니라”는 그의 철학은 인간에게 자기 중심적이며 상대적인 가치 체계를 일으킨다.

  •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코리호어의 가르침에 담긴 이기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기적인 사람 중에는 신성한 율법이란 없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그릇되게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니파이후서 2:13 참조)따라서 이기적인 사람들은 상황 윤리를 사랑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전적으로 재능과 힘대로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든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앨마서 30:17 참조)

    따라서 이기심에 따라 의식적인 행동을 하여 끔찍한 실책을 범하는 것도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권능을 구하다 타락한 가인은 아벨을 살해한 뒤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자유롭도다’(모세서 5:33; 또한 모세서 6:15 참조)

    그러므로 극한 이기심에 따른 최악의 결과로, 약대는 삼키며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심각한 균형 감각 상실을 꼽을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23:24 참조) 예를 들면, 오늘날 여러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부분적인 낙태 행위는 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심 때문에 팥죽 한 그릇이 잔칫상으로 보이고 은 30냥이 엄청난 보화로 보이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리아호나, 1999년 7월호, 27쪽)

앨마서 30:20~23.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

  • 대제사 긷도나는 코리호어와 맞서 그에게 왜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성에 반하는 말을 했냐고 물었다. 코리호어는 질문을 회피하고 신자들과 지도자들을 공격했다. 코리호어는 교회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자로 치부하려 했다. 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그에 반대되는 가르침을 주었다.

    “코리호어는 하나님의 종이 전하는 말씀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그릇된 주장을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태초부터 주장해 온 그릇된 내용입니다. 그 주장은 사실을 잘못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릇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고를 거부하면, 우리는 세상의 영향력에서 독립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영향력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완전하게 우리를 사랑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를 거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그분이 가지신 모든 것을 주시며 우리를 사랑의 팔로 안아 다시 본향 가족에게 돌아오게 하려는 완전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그분의 권고를 거절할 때,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고 미움을 싹트게 하려는 목적을 좇는 다른 권능의 영향력을 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도덕적 선택의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권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권리라기보다는 어떤 것이든 우리가 선택하는 영향력에 전념할 수 있는, 박탈 불가능한 권리입니다.

    선지자들의 권고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관한 선택은 훌륭한 충고를 받아들여서 그에 따른 유익을 얻을 것이냐 아니면 현재 상태에 만족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믿는 것 또한 그릇된 생각입니다. 선지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선택하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더욱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장차 영감 어린 권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약해집니다. 방주를 짓는 노아를 돕겠다고 결정할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노아가 맨 처음 부탁했을 때입니다. 그 후 노아가 계속해서 부탁할 때마다 거절한 사람들은 영에 대한 민감성이 둔해지고 말았습니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노아의 요구가 더욱 바보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고 말았습니다.”(성도의 벗, 1997년 7월호, 25쪽)

앨마서 30:25. 적 그리스도들은 종종 일부분은 진리를 이용한다

  • 신앙을 파괴하려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통된 책략은 “허수아비” 논쟁이다. 즉, 진리에 대한 허수아비, 곧 거짓 이미지를 만든 다음 그 거짓 이미지를 공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참 이미지가 거짓되었다고 확신시킨다. 간단한 예로, 숙제를 다 하기 전에는 놀지 못하게 하는 부모를 자신에게 재미있는 일은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고 비난하는 자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잘못된 논리이지만, 종종 다른 사람을 속이는 데 사용된다.

    때때로 사람들은 우리 후기 성도들이 믿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거짓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 다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가 정말로 믿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코리호어는 이것을 긷도나에게 시도했다. “이 논쟁은 허수아비 논법이라고 부른다. 즉, 코리호어는 긷노나에게 긷도나가 믿지 않는 것, 곧 어린이들이 아담의 범법을 통한 죄를 물려받았다고 믿는다며 탓했다. 코리호어는 진리와 공정하게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호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긷도나가 잘못된 교리를 믿는다고 공격했다.”(Joseph Fielding McConkie and Robert L. Millet, Sustaining and Defending the Faith [1985], 90)

앨마서 30:29. 논쟁과 분쟁을 피하라

  •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분쟁을 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장로들은 불필요하게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괴롭히는 것에 관해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은 온유함과 겸손함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며, 죄인에게 회개하여 그리스도께 나아오라고 경고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진리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없는 부패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헛된 논쟁과 분쟁하는 일을 피하십시오. ‘지금은 경고하는 날이지, 많은 말을 하는 날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한 곳에서 여러분의 간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비난하거나 쓴 소리를 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얼른 가십시오. 여러분의 의무를 다 한다면 모든 일이 잘 되어 모든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일지 모르는 일입니다.”(History of the Church, 1:468)

앨마서 30:39. 개인의 간증에서 나오는 힘

  •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적 그리스도에게 대항하는 한 가지 방법을 설명했다.

    “코리호어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믿는 것을 ‘어리석은 전통’이라고 조롱했다.

    코리호어의 주장은 현대 독자에게 매우 동시대적인 [사상으로] 들릴 것이다. 앨마는 시간을 초월하고 궁극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무기인 개인의 간증에서 나오는 힘을 사용하여 그에 대응했다. 코리호어와 그 같은 부류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행복에 반대한다는 것에 화가 난 앨마는 이렇게 물었다. ‘어찌하여 너는 이 백성에게 그리스도가 없을 것이라고 가르쳐, 그들의 기뻐함을 훼방하려 하느냐?’[앨마서 30:22] ‘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있느니라’”(Christ and the New Covenant [1997], 121)

앨마서 30:40.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 무슨 증거가 네게 있느냐?”

  • 제럴드 엔 런드 장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코리호어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 앨마는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거나,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는다는 무슨 증거가 네게 있느냐?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게는 아무 증거도 없고, 다만 네 말뿐이니라.’(앨마서 30:40)

    이것은 앨마의 영감 받은 통찰이었습니다. 코리호어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경험으로 입증된 것들만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신념 또한 그에 대한 증거가 없는 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코리호어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코리호어는 오감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증거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설에서는 하나님께서 계심을 증명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을 증명하는 데 필요한 것은 사람이 보거나 듣거나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전부이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이 증명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 지구 상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찾기 위해 우주 전체를 탐색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동하실 수 있다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우주의 A지점에서 시작하여 Z지점까지 탐색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A지점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이동하셔서 우리가 나머지 지점을 모두 탐색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시면 어떻게 합니까?

    다른 말로 하면, 코리호어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스스로 정한 기준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우주 공간을 동시에 지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코리호어가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가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서 그는 ‘신앙’으로 행동했으며, 이것은 바로 코리호어가 종교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조롱한 바로 그것입니다!”(“Countering Korihor’s Philosophy,” Ensign, July 1992, 21)

앨마서 30:41. “내게는 이러한 것이 참되다는 증거로서 만유가 있도다”

  •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간증을 강화하는 하나님의 창조물의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밤에 별빛 아래를 거닐어 본 사람, 봄의 손길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관찰한 사람은 누구나 시편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이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시편 19:1~2)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창조주의 솜씨[입니다.]”(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92쪽)

앨마서 30:48. 표적을 구하는 자들

  •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표적을 구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을 간음자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History of the Church, 3:385)

    후에,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필라델피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퀘이커 교도 한 명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외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그가 또다시 표적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회중에게 그 사람이 간음을 범했으며,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제게 계시를 통해 누구든지 표적을 구하는 사람은 간음을 행하는 자라 말씀하셨다고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한 명이 외쳤습니다. ‘맞아요, 그 자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내가 봤소.’ 나중에 그 사람은 죄를 고백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History of the Church, 5:268)

  • 조셉 에프 스미스(1838~1918) 회장은 우리 신앙을 기적에 의존하는 위험성에 대해 더 설명했다. “기적이나 표적, 시현을 계속 보아야만 교회에 굳건히 남아 있을 그런 후기 성도를 제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서지 못하며 쉽게 미끄러지는 길을 걷는 교회 회원을 보여 드리겠습니다.”(Gospel Doctrine, 5th ed. [1939], 7)

앨마서 30:52. 거짓말과 거짓말하기

  • 전 BYU 종교학장이었던 로버트 제이 매튜는 거짓말이 매우 나쁜 일임을 더 잘 이해하도록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거짓말이 미치는 중대한 결과는 단지 속은 사람이 입은 피해나 고통만으로는 측정될 수 없다. 거짓말은 속인 당사자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존심을 잃고, 진실과 오류 간에 차이를 인식하는 힘이 둔화된다. 자주 거짓말을 하다 보면, 거짓말을 퍼뜨린 사람조차도 점차 이것이 진실인 양 믿게 될 수도 있다. 몰몬경에 나오는 적 그리스도인 코리호어가 그러한 경우이다.(앨마서 30:52~53)”(“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성도의 벗, 1998년 11월호, 20쪽)

  •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코리호어 같은 사람들이 맞는 비극에 대해 설명했다. “인간의 자녀가 거짓 영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으면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더 해로운 일도 없습니다.”(History of the Church, 4:573)

앨마서 30:53. 악마의 속임수와 속된 생각

  • 속된 생각은 영적인 것보다는 육체적 즐거움이나 물질적인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속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경험하기 어렵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그들이 “육욕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결국에는 ‘감각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Ensign, May 1999, 24)

앨마서 31:3, 8~29. 조램인의 거짓 신학

  • 조램인들이 코리호어를 죽이긴 했지만 그들도 비슷한 신념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앨마서 31장에서 조램인의 믿음을 설명하는 다음 구절들을 살펴본다.

    “그들이 큰 잘못에 빠졌나니”(9절)

    그들은 전통을 “그 조상들의 유치함에 의하여 그들에게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했다.(16절)

    그들은 “[그들의] 형제들의 어리석은 전통을 따라 이끌려 …… 그리스도의 믿음에 그들을 얽매고” 싶어하지 않았다.(17절)

    그들은 “그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장차 임할 일을 믿는” 것을 거부했다.(22절)

  •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코리호어가 조램인의 거짓 가르침에 미친 영향에 관해 말씀했다.

    “[코리호어의] 가르침은 이웃해 있는 조램인들에게 그랬듯이, 필연적으로 신앙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주의 길을 굽게’ 하는 데 쓰였다.

    조램과 그 추종자들은 몰몬경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배도 집단 중 하나다. 주된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를 특별히 의롭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일주일에 한 번 그들은 래미움프톰이라 불리는 기도 단에 올라가 항상 ‘똑같은 기도’를 드리며 자기들이 남들보다 더 나은 백성이라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구원받도록 ‘택하신’ ‘선택된 거룩한’ 백성이며 주변 모든 사람은 지옥에 던져지도록 ‘선택’되었다고 여겼다. 이 모든 것을 확신하면서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가 없다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알게 하셨[기]’ 때문에 구주를 믿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전통’(코리호어의 가르침이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에 대한 믿음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

    앨마는 자신을 몹시 불쾌하게 만든 그러한 거룩하지 못한 기도와 거룩하지 못한 신학을 속히 반박하여 이러한 형태의 이기적인 죄악에 대항하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Christ and the New Covenant, 121~122)

앨마서 31:5. 말씀의 힘

  • 하나님의 말씀이 발휘하는 효력 또는 힘은 영의 증거를 수반한다는 사실에서 부분적으로 설명된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이 그분의 영으로 전달될 때 그 말씀은 곧 그분의 음성이라고 말씀하셨다.(교성 18:34~36 참조) 앨마는 배도한 조램인이 말씀을 이미 들었고 거부했을지라도 그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방책이라고 여겼다.(앨마서 31:8~9 참조)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우리가 왕국의 교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 중 한 가지를 설명했다.

    “참된 교리란 이해되기만 한다면,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복음 교리를 공부하면 행위를 연구하여 행위를 향상시키는 것보다 더 빨리 행동이 개선됩니다. ……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복음 교리 연구에 많은 역점을 둡니다.”(성도의 벗, 1987년 1월호, 21쪽)

  •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경전의 힘에 대해 말씀했다. “저는 제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일상적이 되고,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고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여겨질 때는 바로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였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경전에 몰두하면, 그 거리는 좁혀지고 영성이 다시 돌아옵니다. 제가 온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더 깊이, 더 많이 사랑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경전 말씀을 따르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What I Hope You Will Teach My Grandchildren and All Others of the Youth of Zion” [address to Church Educational System religious educators, July 11, 1966], 4)

  •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은 경전이 어떻게 우리에게 축복이 되고 어려운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힘있는 방법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우리는 자주 스테이크 내에서 활동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성찬식 참석률을 늘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일합니다. 선교사로 나가는 젊은이들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일합니다. 성전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왕국 성장에 중요하고도 크게 이바지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회원 개개인과 가족들이 정규적으로, 계속해서 경전 연구에 몰입한다면, 이러한 기타 모든 활동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간증이 증가되고 헌신이 강화될 것입니다. 가족은 강화되고 개인적인 계시가 넘쳐 흐를 것입니다.”(“말씀의 힘”, 성도의 벗, 1986년 7월호, 89쪽)

앨마서 31:9~11. 배도의 원인을 피해야 한다

  • 앤티오눔에서 앨마와 그 동반자들은 니파이인을 반대하는 무리인 조램인에게 나아갔다. 몰몬은 조램인이 이전에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고 기록하고, 또한 그들이 배도한 원인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그들은 계명을 지키지 않았으며, 매일 주님께 기도로 간구하지 않았고, 주님의 길을 왜곡하였으며, 헛되고 의미 없는 기도만 드렸다. 그들은 매일 의미 있는 기도를 드리고 경전을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과 같은 기본을 무시했다.

    칠십인인 도널드 엘 스타헬리 장로는 매일 기본적인 복음 생활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용서와 특별한 도움, 인도를 구하며 매일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일은 우리의 생활과 간증을 강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 급하게 서두르거나 중언부언하거나 아무런 생각 없이 하거나 부주의하게 한다면 영을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매일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인도를 끊임없이 받기 위해서는 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족 기도를 하면 우리의 개인 기도와 간증에 많은 축복과 권능이 더해집니다.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경전에 몰입할 때 신앙과 소망, 그리고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을 얻습니다. 기도와 더불어 경전을 자주 읽고, 깊이 생각하고, 그 가르침을 적용할 때 강하고 살아 있는 간증을 얻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39쪽)

앨마서 31:6~38. 배도한 조램인들

  • 앨마서 30장 59절에는 조램인들이 조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지휘에 따라 니파이인들로부터 이반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들의 배도적인 믿음과 관행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들은 모세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앨마서 31:9 참조)

    그들은 매일 기도드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10절 참조)

    그들은 주님의 길을 왜곡했다.(11절 참조)

    그들을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드릴 목적으로 회당을 지었다.(12절 참조)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잘못된 관행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경계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 또한 일상적인 기도와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 동안만 예배하고 주중에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거나 정해진 장소에서만 기도하거나, 물질주의에 빠지고 교만하게 되는 덫에 걸릴 수 있다.

앨마서 31:26~35. 조램인을 위한 앨마의 기도

  • 앨마는 배도한 조램인의 영혼도 하나님께는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앨마는 그들을 주님께 다시 데려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간구했다. 앨마의 기도는 모든 회원과 선교사가 발전시켜야 할 태도에 대한 귀감이 된다. 모든 사람은 커다란 가치를 지니며, 하나님의 권능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카를로스 이 에이시(1926~1999) 장로는 칠십인 일원으로 봉사할 때,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귀중하므로 우리도 그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더 미약해 보이고 덜 훌륭해 보이는 우리 형제 자매들의 영혼은 귀중합니다. 교회는 그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알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온전한 축복과 기쁨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도 앨마와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사, 우리로 이들 우리의 형제들을 다시 주께로 인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앨마서 31:35 참조)

    우리는 우리 구원이 다른 사람들의 구원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에 덜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Nurturing the Less Active,” Ensign, Oct. 1986, 15)

앨마서 31:31~33. 고난 가운데 위안

  • 로렌조 스노우(1814~1901) 회장은 시련을 통해 오는 축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걱정과 근심과 마음의 고통과 박해를 받고서 자신이 그렇게 많은 일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종종 생각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받은 모든 고통과, 당시에는 나쁘다고 생각한, 여러분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여러분은 네 배로 보상받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해 여러분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강해지며 축복받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일들을 되돌아볼 때, 자신이 많이 발전했으며 승영과 영광을 향한 사다리를 몇 계단 더 올라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집단으로서, 혹은 개인적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십시오. 우리는 고통을 당했고 다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왜일까요? 주님께서 우리의 성결을 위해 그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The Teachings of Lorenzo Snow, comp. Clyde J. Williams [1984], 117~118)

생각해 볼 점

  • 코리호어의 가르침이 특정 개인들의 마음을 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현대에는 그런 가르침들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 앨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조램인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마음으로 조램인을 개심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랑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 앨마의 기도는 조램인들의 기도와 어떻게 달랐는가? 우리의 기도가 조램인의 기도와 어떤 면에서 비슷한가?(앨마서 31:15~18 참조) 우리의 기도는 앨마의 기도와 어떻게 비슷한가?(앨마서 31:30~35 참조)

제언 과제

  • 코리호어가 주장한 그릇된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러한 주장이 결국 실패하는 이유를 친구에게 설명한다.(앨마서 30:13~18 참조)

  • 코리호어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표적을 요구하자, 앨마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로 어떤 표적을 내놓았는가?(앨마서 30:44 참조) 이런 증거를 통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게 강화되었는가? 우주 설계와 질서가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되는지 간단히 설명하는 문단을 작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