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19장: 모사이야서 4~8장


“제19장: 모사이야서 4~8장,” 몰몬경 학생 교재 (2009), 141~147쪽.

“제19장,” 몰몬경 학생 교재, 141~147쪽.

제19장

모사이야서 4~8장

소개

베냐민 왕의 설교를 들은 니파이 백성은 구속을 가져오는 속죄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래서 기도로 용서를 구하고 양심에 평안을 얻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었다. 이들 니파이인처럼 우리도 마음에 변화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항상 기뻐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고, [우리]의 죄 사함을 항상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다. 베냐민 왕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신앙을 얻고 회개한 후 성약을 맺고 지킴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창조하신 이의 영광의 지식 안에서 … 자[랄]”(모사이야서 4:12)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해설

모사이야서 4:1~2, 5, 11. “땅의 티끌보다 못함을 보았고”

  • 베냐민 왕의 백성들은 자신이 “땅의 티끌보다 못함”을 깨달았다. 이는 땅에 있는 티끌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데(힐라맨서 12:7~8 참조) 하나님의 자녀인 그들은 그분께서 주신 계명에 항상 순종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표현한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 즉 생명과 호흡, 음식과 생산 능력, 건강과 힘, 구원과 영생, 이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함을 깨달았다. 하나님과 속죄가 없다면 인간은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주님께 의지해야 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겸손할 수 있다. 인간이 위대해질 수 있는 비결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야곱이 가르쳤듯이 속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다시 살 수도 없으며, 악마의 천사가 될 것이다.(니파이후서 9:7~9 참조)

모사이야서 4:2~3.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적용하사”

  • 베냐민 왕의 백성들은 죄 많은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초월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들은 자비를 구했으며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적용하[시기를]”(모사이야서 4:2) 간구했다.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어떻게 속죄를 통해 우리의 잘못이 치유될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우리는 모두 잘못을 저지릅니다. 때때로 혼자서는 돌이킬 수 없을 방법으로 스스로를 해치고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고칠 수 없는 것들을 망가뜨려버립니다. 그러고 나면 혼자서는 치유할 수 없는 죄책감과 수치와 고통을 내면에 느낍니다. 그때가 바로 속죄의 치유 능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지 않으셨다면 잘못에 대한 죄 값은 하나 하나 더해질 것입니다. 삶은 아무런 희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속을 얻도록 그분께서 기꺼이 희생하셨습니다. …

    우리는 “죄 사함을 … 간직[할]”[모사이야서 4:12] 수 있습니다. 침수로 행하는 침례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 성약은 매주 성찬을 취함으로써 새롭게 됩니다.[교성 27:2 참조]

    속죄는 실질적이고 개인적이며 매일 가치를 발휘합니다. 그것을 여러분의 생활에 적용하십시오. 기도와 같은 매우 간단한 시작으로 속죄의 힘은 발휘될 수 있습니다. 고통과 잘못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를 통해 죄책감이 없어지고 화평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리아호나, 2001년 7월호, 26~27쪽)

모사이야서 4:3. “양심의 평안”

  •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는 진심 어린 회개와 의로운 생활을 할 때 양심에 평안이 깃든다고 간증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각 자녀가 양심의 평안이라는 가장 훌륭한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모사이야서 4:2~3 참조] 양심에 평안을 느낄 때 우리는 고뇌, 슬픔, 죄책감, 수치심, 자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것은 행복의 토대가 됩니다. …

    … 여러분의 내면을 어지럽힌 개인적인 범법을 회개함으로써 다시 양심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죄나 범법으로 율법을 어기면 양심에 상처를 받아 마음과 정신 면에서 고뇌를 하게 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영의 자녀가 무심코, 또는 고의로 율법을 범할 것을 아셨기에 그런 행동의 결과를 바로잡는 방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범법이 크건 작건 간에 해결책은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를 믿는 신앙을 갖고 계명에 순종하여 온전히 회개하는 것입니다.”(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15~16쪽)

  •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회개를 하여 양심에 평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때까지 인내하라는 권고를 주었다.

    “복음은 우리가 회개를 해야 고통과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충분히 알고 난 이후에 지옥에 이르는 길을 따르기로 선택한 소수 외에는 완전히 용서받는다는 약속에서 제외될 습관, 중독, 반항, 범법이나 범죄는 없습니다. …

    그 위대한 용서의 아침은 즉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종종 회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낙담은 시험 중 하나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찬란한 아침이 올 것입니다.

    “그런 다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빌립보서 4:7]이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삶으로 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과 같이 자신의 죄를 더는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여러분은 그것을 [직접] 알게 될 것입니다![모사이야서 4:1~3 참조]”(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19~21쪽)

모사이야서 4:4~8. 속죄의 지식에 이르렀다면

  •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모든 후기 성도는 속죄를 공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간증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여러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어 오늘 아침 이 연단에 겸손한 마음으로 섰습니다. 그 유례없는 사건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비할 바 없는 속죄입니다. 이 사건은 이제까지 일어난 일 중 가장 놀랍고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속죄에 관해 배울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유는 다소 자기 본위적인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구원은 속죄를 믿고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습니다.[모사이야서 4:6~7 참조] 속죄를 받아들이려면 이를 더욱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쉬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속죄를 통해 우리의 본성이 완전해질 수 있으며 그렇게 하여 우리는 삶에서 많은 점을 배우게 됩니다.[모로나이서 10:32 참조] 우리 모두는 죄를 지으며 그 죄값에서 각자가 감당할 부분을 완전히 갚기 위해 회개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할 때 구주의 위대한 속죄가 그 부채에서 나머지 부분을 갚습니다.[니파이후서 25:23 참조]”(리아호나, 2002년 1월호, 19쪽)

모사이야서 4:12. “너희의 죄 사함을 … 간직하[라]”

  •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죄 사함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자주 회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베냐민 왕은 죄 사함을 간직해야 한다는 데 큰 역점을 두었습니다.(모사이야서 4:26 참조) 교회에서 우리는 이 개념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사실은 훨씬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죄 사함을 간직하는 일은 분명 우리가 주기적으로 회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새로운 회원을 보유하는 일을 염려합니다. 물론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입니다만, 우리 죄 사함을 간직하는 일이야말로 훨씬 더 깊이 염려해야 할 문제입니다.”(“King Benjamin’s Sermon: A Manual for Discipleship,” John W. Welch and Stephen D. Ricks, eds., King Benjamin’s Speech: “That Ye May Learn Wisdom” [1998], 16)

모사이야서 4:14~15. 자녀를 의롭게 키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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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기도하는 가족
  • 베냐민 왕은 가족의 중요성과 의로운 부모의 필요성을 가르쳤다. 현대 선지자들도 주님께서는 그분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자녀를 의로움 가운데 양육하고 복음 원리를 가르치라고 명하셨다는 점을 증거한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의로움으로 양육하고, 그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충족시켜 주며,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 가르쳐야 할 거룩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리아호나, 1998년 10월호)

  • 부모가 자녀를 가르쳐야 할 책임에 대해 언급한 현대의 증인인 십이사도 정원회 러셀 엠 넬슨 장로는 부모가 자신의 책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성구를 들어 가르쳤다. “경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회개, 침례, 성신의 은사를 가르치라고 부모들에게 지시합니다.[모로나이서 8:10 참조] 부모들은 구원의 계획[모세서 6:58~62 참조]과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히 조화를 이루어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레위기 10:11; 신명기 6:7; 모사이야서 4:14 참조]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은 인간을 구속하고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분명 무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니파이후서 2:26 참조] 부모는 자신의 삶을 헌납하는 방법, 곧 시간과 재능과 십일조와 재산을 사용하여[모사이야서 4:21~26; 18:27; 앨마서 1:27 참조] 교회와 하나님 왕국을 이 지상에 세우는 길을 모범으로 가르쳐야 합니다.[조성, 마태복음 6:38 참조] 그런 방식에 따른 생활은 문자 그대로 그들의 후손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리아호나, 2002년 1월호, 82쪽)

모사이야서 4:16~25.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 베냐민 왕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구걸하는 자이며, 자비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보여야 한다고 상기시켰다. 이와 유사하게,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우리에게 연민 어린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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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모습

    “더욱 자비로운 사람이 됩시다. 우리 생활에서 교만과 자만,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립시다. 더욱 온정 있고 친절하며 자제하고 인내하고 서로를 존중합시다. 이와 같은 우리의 모범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더욱 자비로워질 것이며,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자비를 더 많이 요구할 수 있습니다.

    ‘대저 보라, 우리는 모두 구걸하는 자가 아니냐? …’[모사이야서 4:19]

    베냐민 왕이 한 이 말에 부연하자면, 그리스도의 권능은 확실하고 그분의 말씀은 정확합니다. 그분은 동정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약속을 꼭 지키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

    저는 우리 각자가 질병이나 쇠약, 가난이나 곤궁, 다른 인간이나 자연에서 가해지는 어려움 때문에 자비를 구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우리는 반드시 자비를 얻을 것입니다.”(성도의 벗, 1990년 7월호, 80쪽)

모사이야서 4:27. “사람이 그가 가진 힘보다 더 빨리 달음질함이 요구되지 아니함이라”

  •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우리가 받은 시간과 힘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기에게 있는 능력보다 더 빨리 달리는 일은 효율적이지 못하며 우리를 지치게 만들 뿐입니다. …

    저는 삶에 어린 진실 한 가지를 상기하기 위해 앤 머로우 린드버그의 현명하고 훌륭한 말을 사무실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인생에서 내 마음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의 요구를 이행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권고입니다. 의무를 피해 가려는 변명이 아닌, 걸음 속도를 조절하고 질적으로 훌륭한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현명한 견해입니다.”(Deposition of a Disciple [1976], 58)

모사이야서 5:2. “우리 안에 … 큰 변화”

  • 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단 영으로부터 증거를 얻으면 연구하고 기도하며, 복음대로 생활하는 가운데 우리의 간증은 강해집니다. 간증이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행복의 계획에 대한 우리의 신앙도 커집니다. 회개하고 계명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은 강한 마음의 변화와 함께 개종으로 이어집니다. 개종한 후에는 거룩한 용서, 치유, 기쁨을 느끼며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려는 소망이 생깁니다.”(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30쪽)

모사이야서 5:7~8.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는 길

  •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로 여길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리스도를 우리 아버지시라고 말할 때 우리는 실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영적으로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모든 생명체가 부활하도록 영과 육신을 결합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구주께서 우리 하나님이요, 아버지시며, 또한 모든 권세를 받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할 때, 이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분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선언하셨으며, 따라서 그분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십니다. 더 나아가, 그분께서는 부활을 통해 영적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

    … 우리는 그분의 아들 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낳으셨고 사망에서 구원하셨으며 영과 육신을 결합하셨으므로, 우리에게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이를 아버지가 아니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The Fatherhood of Christ” [unpublished address to seminary and institute of religion personnel, Brigham Young University, July 17, 1962], 5~6)

    모사이야서 15:1~7 해설(153쪽) 참조

모사이야서 5:8~10. 그분의 이름을 받들라

  •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든다는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을 때나 그분 교회에 속하여 그분 이름으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낼 때, 혹은 주님의 왕국 사업을 행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교회에서 더욱 성숙한 회원들이라도 성찬을 취할 때 반드시 이해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더욱 깊고 훌륭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취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듦을 증거하지 않는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증거합니다.(교성 20:77 참조) 우리가 기꺼이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유일한 증인은 우리 자신이며, 이 사실은 우리가 가장 중요한 의미에서 실제로 그 성스러운 이름을 받들기에 앞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꺼이 받든다 함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기꺼이 받드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찬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성스러운 성전 의식에 참여하고, 구주의 이름과 권세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시는 가장 큰 축복을 받기 위해 기꺼이 받드는 마음을 나타내 보입니다.

    … 기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드는 것은 마지막 날에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며, 그분의 오른편에 서는 자로 선택받게 될 사람으로 헤아림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스러운 의미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쁘게 받듦을 증거하는 것은 해의 왕국에서 승영에 이를 자격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승영은 영생, 즉 ‘하나님의 모든 은사 가운데서 가장 큰 것’(교성 14:7)입니다.”(성도의 벗, 1985년 7월호, 88~91쪽)

모사이야서 5:12. “음성[을] … 알기를 바라노라”

  • 주님의 음성을 인식하고 따르는 법을 배우는 일은 영적으로 진보하는 데 지극히 중요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생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알기를 바라신다고 가르쳤다. “제가 맡은 임무가 모두 끝날 때, 제가 전한 말씀 중에 주님께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실 내용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실 일은 제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하심에 따랐느냐 하는 것입니다.”(“Respond to the Prompting of the Spirit” [an evening with Elder M. Russell Ballard, Jan. 8, 1988], 4, www.ldsces.org)

모사이야서 6:4~7. 모사이야 왕

  • 베냐민 왕은 자기 아버지 이름을 따라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따라서 베냐민 왕의 아버지가 모사이야 일세이며, 베냐민 왕의 아들이 모사이야 이세라고 볼 수 있다. 모사이야 일세는 바로 니파이 백성의 간악함 때문에 주님의 명을 받아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니파이 땅을 떠나 광야로 들어간 사람이다.(옴나이서 1:12 참조) 하지만 모사이야서는 기록 작성자인 모사이야 이세를 따라 이름지어졌다.

모사이야서 7:1~14; 8:7~21. 니파이 백성의 여행

  • 모사이야 7~8장의 역사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옴나이서 1장 27~30절모사이야서 7~8장 소개 부분에 기록된 사건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는 제이라헤믈라 땅 백성의 지도자들(모사이야 일세, 베냐민 왕, 모사이야 이세)과 리하이-니파이 땅의 왕들(지니프, 노아, 림하이)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또한 제이라헤믈라 성과 지니프가 다스리던 리하이-니파이 땅 사이를 여행한 여러 무리도 언급되어 있다. 이들의 여행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수록된 지도를 공부한다.

모사이야서 8:13. 해석기

  •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은 몰몬경에 나오는 “해석기”에 대한 역사적 개관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모사이야 왕은 ‘활 모양의 두 테에 박힌 돌 두 개’[모사이야서 28:13]가 있었는데, 그는 니파이인들이 ‘해석기’라 부른 이 두 돌을 사용하여 야렛인의 기록을 번역했습니다.[모사이야서 28:11~14] 이 돌들은 언어를 해석할 목적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졌습니다. 모사이야 왕이 우림과 둠밈이라고 불리는 이 ‘돌 두 개’를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며 다만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사’(모사이야서 21:28)라고만 나옵니다. 림하이 백성이 이더의 기록을 발견하기 전에 모사이야는 우림과 둠밈이라고 불리는 이 ‘은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모사이야는 어떤 문자가 새겨진 ‘큰 돌’을 하나 얻게 되어 그 새긴 것을 ‘하나님의 은사와 권능으로’ 해석했을 때(옴나이서 1:20~21) 이 해석기를 이미 받아서 갖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야렛의 형제가 주님께 이것을 받았던 것처럼 이 돌들은 모사이야에게, 혹은 모사이야 시대 이전에 살았던 다른 선지자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주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야렛의 형제가 받은 돌 두 개, 곧 우림과 둠밈을 모사이야 왕이 가지고 있었음은 몰몬경에서 분명하게 증명됩니다.

    야렛의 형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가 본 시현의 기록을 인봉하여 백성들이 읽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시현은 그리스도 부활 이후까지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힘든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림과 둠밈도 함께 인봉되어 주께서 인간에게 그 거룩한 기록을 번역하도록 허락하실 때까지 이를 사용하여 번역하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그 기록들이 다시 주어질 때, 그 동일한 우림과 둠밈으로 번역될 것입니다.[이더서 3:21~28] …

    조셉 스미스는 ‘가슴판’과 몰몬경 판과 우림과 둠밈을 받았습니다. 이는 야렛의 형제가 받은 그 우림과 둠밈이며, 후기에 나와서 고대 기록이 번역될 수 있도록 모로나이가 감춰 둔 것이었습니다.” [교성 17:1] (Answers to Gospel Questions, comp. Joseph Fielding Smith Jr., 5 vols. [1957~1966], 1:160~162)

모사이야서 8:15. “선견자는 선지자보다 더 크다”

  •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선견자가 맡는 독특한 임무를 소개하고 선견자가 보통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보는지를 설명했다. “선견자는 보는 사람입니다. 육안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라 영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을 내다보는 은사는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The Teachings of Howard W. Hunter, ed. Clyde J. Williams [1997], 224)

  • 십이사도 정원회의 존 에이 윗소(1872~1952) 장로는 선견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선견자는] 다른 사람에게는 모호해 보이는 현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진리를 해석하고 명확히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선견자는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까지 내다봅니다. 자신에게 직접 역사하시는 주님의 권능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우림과 둠밈과 같은 신성한 도구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합니다. 간단히 말해 선견자는 보는 사람이자, 열린 눈으로 주님의 빛 안에서 걷는 사람입니다.”(Evidences and Reconciliations, arr. G. Homer Durham [1960], 258)

생각해 볼 점

제언 과제

  • 모사이야서 4장 5~13절을 주의 깊게 읽고 베냐민 왕이 설교에서 밝힌 하나님의 속성 몇 가지를 찾아본다.

  • 모사이야서 4장 12~16절에는 복음 생활의 몇 가지 양상이 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여러분에게 가장 의미 있는 두 가지를 골라 그것을 더욱 온전히 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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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이야서에 기록된 니파이 백성의 중요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