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18장: 모사이야서 1~3장


“제18장: 모사이야서 1~3장,” 몰몬경 학생 교재 (2009), 135~140쪽.

“제18장,” 몰몬경 학생 교재, 135~140쪽.

제18장

모사이야서 1~3장

소개

베냐민 왕은 백성들 가운데 있던 거룩한 선지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육신의 모든 힘과 그의 온 영혼의 능력을 다해” 일하여 “그 땅에 평화를 이루었[다.]”(몰몬의 말씀 1:18) 생을 마감할 때가 가까워 오자 베냐민 왕은 백성들을 성전으로 불러 모았다. 그 집회에서 그는 왕으로서 자신의 통치를 정리하며 왕위 계승자로 아들 모사이야를 지명했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속죄에 대해 가르쳤으며, 니파이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짊어질 것을 권면했다. 베냐민 왕의 말씀을 다룬 이 부분을 통해 여러분은 그가 추구한 이상, 즉 이웃에게 기꺼이 봉사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고, 구주께 의지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겸손한 가운데 성장하고, 베냐민 왕이 가르친 원리에 따라 생활함으로써 하나님과 맺은 성약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

해설

모사이야서 1:1~2. 모사이야서에서 서술 방식이 1인칭에서 3인칭 시점으로 바뀌다

  • 이제까지 몰몬경 초반부 책들에서는 1인칭 시점에서 서술되었지만 모사이야서에 이르러 3인칭 시점으로 전환된다. 니파이전서부터 옴나이서까지는 니파이의 작은 판을 번역한 내용이며 원래 저자들이 기록한 그대로이다. 따라서 이 기록들은 1인칭 시점으로 쓰여졌다. 그러나 모사이야서부터 제4니파이까지는 모두 니파이의 큰 판을 몰몬이 요약한 내용이다. 원래 저자들이 기록한 것을 몰몬이 요약해서 옮겨 실었다.

모사이야서 1:3~10. 하나님의 비밀

  • 몰몬경에서 “하나님의 비밀”(모사이야서 1:3)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구원 원리를 포함한다. 복음 원리가 불가사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순종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계시로 알려 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이 원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생으로 인도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비밀이란 신성한 계시를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진리, 곧 감추어진 성스러운 일이다. … 오늘날에는 신권 회복, 죽은 자를 위한 사업, 교회 재조직과 관련된 그런 위대한 진리가 바로 ‘비밀’에 해당된다. 이러한 것들은 계시를 통해서가 아니면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Hyrum M. Smith and Janne M. Sjodahl, The Doctrine and Covenants Commentary, [1972] 개정판, 141)

모사이야서 1:4~6. “애굽의 언어”

모사이야서 1:10. 새로운 왕, 모사이야

  • 몰몬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고대 이스라엘에 기원을 둔 수많은 전통과 관습을 발견하게 된다. 모사이야서 1장을 보면 모사이야가 니파이인 왕위에 오른 방식이 구약 시대에 행해지던 왕위 계승 방식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Stephen D. Ricks, “King, Coronation, and Covenant in Mosiah 1~6,” John L. Sorenson and Melvin J. Thorne, ed., Rediscovering the Book of Mormon [1991], 209 참조)

    몰몬경 시대와 구약 시대의 대관식은 다음과 같이 눈에 띄는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1) 왕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다는 믿음(모사이야서 1:9~10; 6:3, 5; 열왕기상 2:15; 열왕기하 15:5 참조) (2) 대관식 장소로 따로 마련된 성소(모사이야서 1:18; 열왕기상 1:39~45 참조) (3) 대관식 때 성스러운 유물이나 기타 물품 증여(모사이야서 1:15~16; 열왕기하 11:12 참조) (4) 기름 부음(모사이야서 6:3; 열왕기상 1:33~34 참조)(Ricks, Rediscovering the Book of Mormon, 210, 213~214 참조)

    “또한 옛 왕이 죽기 전에 새 왕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이상적이었으며, 이 힘의 이동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성약을 맺거나 그 성약을 새롭게 하는 의식과 함께 일어났다.”(Ricks, Rediscovering the Book of Mormon, 216) 베냐민 왕의 경우, 백성들이 조금 나중에 “우리는 기꺼이 우리 하나님과 성약을 맺어 … 그의 뜻을 행하며, … 그의 계명에 순종하[겠나이다]”(모사이야서 5:5)라고 선언하는 순간 권능이 옮겨 갔다.

모사이야서 1:11~12. 베냐민 왕이 그의 백성에게 주고자 한 이름

  • 베냐민 왕이 백성들을 불러 모은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이름을 하나 주기 위해서였다. 왕은 백성들을 영적으로 고양시키고자 했다. 그와 많은 거룩한 선지자들은 여러 해 동안 백성들에게 전파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 수 있도록 영적으로 준비시켰다.(몰몬의 말씀 1:5~18 참조) 베냐민 왕은 말씀을 전하는 내내 백성들에게 주고자 하는 그 이름을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합당하게 받들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그런 후, 모사이야서 5장 8~11절에 나와 있듯이 베냐민 왕은 그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모사이야서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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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 익히기
봉사

  •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우리가 의로운 마음으로 모든 봉사를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봉사할 기회를 계속 찾으십시오. 현 상황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마십시오. …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정을 받는 것보다 의로움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현 상황이 아니라 봉사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매달 자신의 임무를 조용히 수행하는 성실한 가정 방문 교사는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에서 더 중요한 직책이라고 생각되는 직책을 맡은 사람들만큼 주님의 사업을 수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분들입니다. 보이는 모습이 가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교회의 여성들에게“,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96쪽)

  • 칠십인인 로버트 제이 훼튼 장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봉사가 어떻게 개인적인 개종의 깊이를 재는 척도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개종이란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돌보고 봉사하며 여러분이 받은 은사와 축복을 나누는 데 삶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사심 없는 마음으로 친절과 봉사를 베풀 때 여러분의 영성은 커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자 하십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영원한 발전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즉 대인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그들의 삶에 축복이 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웃을 대하는 방식은 여러분의 개종을 가늠하는 잣대가 아닙니까? 교회에서 자신에 관련된 일만 하는 사람은 완전이라는 목표에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봉사가 복음과 고귀한 삶에서 거의 전부를 차지합니다.”(리아호나, 2005년 5월, 91쪽)

  •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어떤 봉사를 해야 하느냐에 덧붙여서 우리가 왜 봉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가 생각하는 … 마지막 동기는 봉사하는 이유 중에서도 가장 차원이 높습니다. 이러한 봉사를 경전에서는 ‘가장 좋은 길’(고린도전서 12:31)이라고 일컬었습니다. …

    우리가 하는 봉사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는 하나님고 그분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으로 봉사해야 합니다.”(성도의 벗, 1985년 1월호, 14~15쪽)

모사이야서 2:21~24, 34. “그에게 빚졌느니라”

  •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우리를 대신하여 빚을 청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를 표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늘 영생을 추구하는 데 우리 삶을 바쳐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떻게 하면 구주께 진 빚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우리가 결코 갚을 수 없는 부채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그분이 지지도 않은 부채를 갚으셨습니다. 그분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분의 무한하신 속죄가 있기에 우리 죄는 씻겨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가장 큰 은사인 영생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교성 14:7 참조]

    그러한 은사에 값이 있을까요? 우리가 그러한 은사에 대해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몰몬경의 선지자 베냐민 왕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설혹 너희가 … 너희 온 영혼이 가질 능력이 있는 모든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할지라도 … [또한] 너희 온 영혼을 다해 그를 섬긴다 할지라도 너희는 오히려 무익한 종일 것이니라.’[모사이야서 2:20~21]”(리아호나, 2004년 5월호, 43쪽)

  •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에 대해 우리가 감사를 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우리가 겸손하여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기꺼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께서 베푸신 은혜를 아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은 곧 구주의 속죄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진 모든 일에 비추어 볼 때 은혜를 완전히 망각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 빚을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순종으로 그분의 크신 자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그분이 행하신 일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결코 그분을 실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분은 그분이 받으신 큰 고통과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그분의 피를 흘리는 대가를 치름으로써 우리를 사셨던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계명이 힘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 가운데 그 계명을 기꺼이 지키지 않는 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행위는 분명히 은혜를 모르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교회 회원으로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정직하게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며, 지혜의 말씀을 지키려 하지 않고 이 외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제 멋대로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의 은혜를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은혜를 모를 때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모르는 자가 됩니다.”(구원의 교리, 브루스 알 맥콩키 편, 1:126)

모사이야서 2:25. 너희 몸은 “너희를 창조하신 이에게 속한 것이니라”

  • 모사이야서 2장 25절은 주님께서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베냐민 왕의 가르침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20)라는 바울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모사이야서 2:34~41. 고의로 하나님께 거역하는 행위

  •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해당 율법만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상태에 처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 심각한 죄가 된다.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그러한 거역에 대한 간단한 실례로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감독이 성전 추천서를 받기 위해 찾아온 한 자매에 대해 한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지혜의 말씀을 지켰는지 묻자 그녀는 가끔 커피를 한 잔씩 마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감독님, 설마 그것 때문에 저를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진 않으시겠죠?’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의 집과 자매님 사이에 커피가 있는 한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성도의 벗, 1990년 7월호, 60쪽)

모사이야서 3:5, 17~18. 모사이야서 3:5, 17~18. 전능하신 주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 몰몬경에 기록된 모든 선지자 가운데 오직 베냐민 왕만이 전능하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 말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리스도는 곧 전능하신 주이십니다.(모사이야서 3:5, 17~18, 21; 5:2, 15; 요한계시록 19:6) 이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주님께 모든 권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Mormon Doctrine, 2nd ed. [1966], 452)

모사이야서 3:7. 그의 고뇌가 그처럼 컸느니라

  •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을 일컬어 “속죄의 엄청난 무게”라고 표현했다.

    “이 세상과 다른 여러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놀라셨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아셨으나 경험했기 때문에 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격심하고 가혹한 속죄 과정을 겪어보기 전에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그분의 특별한 지성으로 상상한 그 이상으로 훨씬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하늘의 사자가 나타나 힘을 북돋아 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누가복음 22:43 참조)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축적된 죄의 무게가 완전하고, 죄 없고, 감수성이 강한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병고도 또한 속죄의 엄청난 무게 중 하나였습니다.(앨마서 7:11~12; 이사야 53:3~5; 마태복음 8:17 참조) 고통을 받은 예수님은 아버지께 그 시간과 그 잔이 자신에게서 물러가기를 간청한 것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적절한 인용으로 간청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마가복음 14:35~36)

    여호와이신 예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세기 18:14)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의 천사는 또한 당황해 하는 마리아에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37; 또한 마태복음 19:28; 마가복음 10:27; 누가복음 18:27 참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요청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고통의 극치에서 그분은 혹시 수풀에 걸린 수양을 바라기라도 하셨겠습니까?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분의 고통, 무한대로 늘어난 그 어마어마한 고통으로 그분은 이후에 십자가에서 영혼의 울부짖음을 토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버림 받았기에 터져나온 울부짖음이었습니다.(마태복음 27:46 참조)

    그런 중에도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보인 숭고한 순종심을 그대로 간직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성도의 벗, 1985년 7월호, 78~79쪽)

  • 한 경전 학자는 구주께서 겪으신 고통은 타락이 낳은 결과를 모두 짊어지는 무게였다고 설명했다. “예수께서는 가장 쓰라린 굴욕을 견뎌내야 할 시간이 다가왔으며 그때로부터 숨을 거두는 순간에 터져나온 그 위대한 외침에 이르기까지 지상에서 그분께 남은 것이라고는 육신에 가해지는 끔찍한 고문과 통렬한 정신적 고통뿐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온갖 고통이 움츠러드는 그분의 몸에 산처럼 쌓여야 했습니다. 그분의 영혼은 잔인하고 참담한 모욕이 안겨주는 비참한 고통으로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리고 이 육신의 고문과 영혼의 고통 속에서 그분의 신성한 영이 발하던 고귀하고도 청명한 빛은 짧지만 끔찍한 암흑을 겪어야 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아픔과 가장 무자비한 치욕, 그리고 모든 죄의 짐과 배도하고 타락한 인간 존재에 대한 풀리지 않는 문제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이 모든 무게를 바로 그때 그분께서 견뎌야 하셨습니다.”(F. W. Farrar, The Life of Christ [London: Cassell and Co., 1874], pages 622~23; Bruce R. McConkie, The Mortal Messiah, Book 4 [1981], 126에서 인용)

모사이야서 3:17. “다른 아무 이름[도] … 주어지지 아니하리니”

  •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는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고 확언했다. “합당하게 성임 받은 그분의 사도로서 우리는 예수님이 살아 계신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위대한 왕인 임마누엘이시며 오늘날 아버지의 우편에 서 계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요 소망이십니다. 그분의 길은 이 생에서는 행복으로 인도하고 장차 올 세상에서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살아 계신 그리스도: 사도들의 간증”, 리아호나, 2000년 4월호, 2쪽)

모사이야서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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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 익히기
육에 속한 사람

  • 육에 속한 또는 육으로 난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타고난 정체성에 내재하는 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육에 속한이라는 말이 타락했거나 죄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은 죄 없이 태어났지만(교성 93:38 참조) 아담의 타락 때문에 타락한 세상에 오게 되었고 영적으로 사망하는 상태에 놓여(앨마서 42:9 참조) 하나님 면전에서 분리되었다. 선악을 알게 되고(모세서 4:11; 5:11 참조) 이 불완전한 상태로 살면서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로마서 3:23; 요한1서 1:8, 10 참조) 그 결과 자신의 “타락”을 경험하게 된다.(모세서 6:49, 55 참조) 다시 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 “육에 속한 사람”이 된다.(앨마서 42:10, 12; 교성 20:20 참조) 따라서 속죄의 영향력으로 깨끗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생활하여 합당해지지 않는 한(모사이야서 3:11~12, 19 참조)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적이다.(모사이야서 3:19 참조)

  • 베냐민 왕은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모사이야서 3:19 참조 )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연차 대회 말씀에서 이 과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모사이야서 3:19) 버리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의로움과 예배, 기도, 경전 공부가 매우 중요합니다.”(리아호나, 2001년 1월호, 44쪽)

    그보다 앞선 대회에서 맥스웰 장로는 경고와 함께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기 위한 또 다른 도구를 제안했다.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기 위한 일대일 전투에서 소망은 특히 필요합니다.(모사이야서 3:19 참조) 하나님을 포기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육으로 난 인간에게 지배당하게 됩니다.”(성도의 벗, 1995년 1월호, 36쪽)

모사이야서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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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 익히기
성도가 되는 일

  • 십이사도 정원회의 쿠엔틴 엘 쿡 장로는 성도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인용한 후 우리가 멀리 해야 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예를 제시했다.

    “그리스어에서 성도라는 낱말은 ‘따로 떼어 두다, 분리하다, 거룩한’[Daniel H. Ludlow, ed., Encyclopedia of Mormonism, 5 vols. (1992), 3:1249]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도가 되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만연한 악한 행위와 파괴적인 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폭력과 부도덕한 영상으로 공격받습니다. 부적절한 음악과 외설물이 점점 더 용인되고 있습니다. 약물과 알코올 사용이 만연합니다. 정직과 인격은 별로 강조되지 않습니다.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주장하지만 의무와 책임과 본분은 무시됩니다. 대화가 거칠어지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들에 점점 더 노출되고 있습니다. 악마는 행복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자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세상적인 행위에서 자신을 분리시킨다면 생활 속에서 영과 함께하고, 또한 합당한 후기 성도가 되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리아호나, 2003년 11월, 95쪽)

모사이야서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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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 익히기
“어린아이와 같이”

  • 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어린아이와 같이”(모사이야서 3:19) 되면 어떻게 영적으로 안전한 상태에 있게 되는지를 가르쳤다.

    “베냐민 왕은 우리가 이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의 본성을 어떻게 변화시[킬] … 수 있는지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우리가 확실한 기초 위에 설 수 있고, 유혹이라는 폭풍이 부는 동안에도 의 안에 굳건히 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베냐민 왕은 주님은 물론이거니와 수천 년간 선지자들이 사용한 아름다운 비유로 이 변화를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이, 곧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강해지기를 원합니다.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을 약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

    그러나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 베냐민 왕은 어린아이같이 되는 것은 유치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간구한 후 그 뜻에 따라 행하신 구주처럼 되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위험한 시기에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힘을 얻으려면 우리의 본성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

    구주를 믿는 신앙에 자신을 맡기고, 속죄 권능으로 우리 마음이 변화될 수 있도록 충실히, 그리고 오랫동안 계명을 지키기 위해 성령의 지시에 응할 때 우리는 구주라는 반석 위에서 안전합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사랑하고 순종하는 우리의 능력이 어린아이와 같이 될 때, 우리는 확실한 기초 위에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 안전한 장소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베냐민 왕에게서 배웁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는 일들은 수단일 뿐, 추구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가 되어야 하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있을 때 회개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우리는 순종하고 성신의 속삭임에 따름으로써 유혹에 맞섭니다. 때가 되면 우리의 본성이 바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더 큰 사랑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 그 변화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일을 한다면 우리는 성신의 은사를 누리기에 합당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유일하고 확실한 반석 위에서 안전해질 것입니다.”(리아호나, 2006년 5월호, 15~16쪽)

생각해 볼 점

  •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데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었는가?

  • 육에 속한 사람을 극복하는 데에 속죄는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만 성도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모사이야서 3:19 참조)

  • 모사이야서 1장 5~6절에서는 니파이인들이 경전을 “눈 앞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신앙에 빠져 들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매일 개인적으로 경전을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이 여러분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언 과제

  • 베냐민 왕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후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허물없는 자로 드러나지 못[한다]”(모사이야서 3:22)고 설명했다. 다음 주장에 대해 여러분이 생각한 견해를 적어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우리가 더 많은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면 복음을 연구하고 더 많이 배우는 일이 어째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가?(교성 130:18~19; 131:6 참조) 복음을 연구할 때 오는 축복을 묘사한 성구를 세 개 이상 찾아서 적어 본다.

  • 모사이야서 3장을 바탕으로 발표 개요를 만들어 현세와 내세에 걸친 구주의 사명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