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경전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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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경전의 축복

모든 경전의 기본 목적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입니다.

1536년 10월 6일, 벨기에 브뤼셀 근처에 있는 빌보르드 성 지하감옥에서 쇠약한 죄수 한 명이 끌려 나왔습니다. 그는 1년 반 가까이 어둡고 축축한 지하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성 밖 기둥에 묶인 이 죄수는 큰 소리로 “주님, 영국 왕이 눈을 뜨게 하소서” 하고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곧이어 교수형이 집행되었고 시신은 그 자리에서 불태워졌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이고, 당시 모든 위정자와 종교지도자들이 그에게 부과한 죄목은 무엇일까요? 이 죄수의 이름은 윌리엄 틴들입니다. 틴들의 죄목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항해할 무렵에 영국에서 태어난 틴들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한 후, 가톨릭 교회에서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라틴어를 비롯한 여덟 개 언어에 능통했습니다. 틴들은 성경을 열심히 공부했으며, 사제들과 평민들이 경전에 몹시도 무지한 것을 보고는 깊은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평민에게 경전을 주는 것에 반대하는 한 성직자와 벌인 격한 논쟁에서 틴들은 “하나님께서 내 목숨을 부지하게 해 주신다면 나는 몇 년 안에 쟁기질하는 소년이 당신보다도 경전에 대해 더 많이 알도록 만들겠다!”라고 맹세했습니다.

틴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따를 수 있도록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준비하겠다고 교회에 허가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요청은 거절당했습니다. 당시에는 성직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경전을 직접 접하게 하는 일은 교회의 권위를 위협하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격이라고(마태복음 7:6)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틴들은 힘겨운 번역 작업을 감행했습니다. 1524년, 틴들은 신분을 숨긴 채 독일로 들어갔고, 계속되는 체포 위협을 피해 상당 기간 동안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틴들은 헌신적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영어로 번역한 신약성서를 출간했습니다. 나중에는 구약성서도 출간했습니다. 틴들이 번역한 성경책은 영국으로 몰래 들여보내졌고, 이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의 손에 전해지면서 찬사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책을 비밀리에 돌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당국은 그 책을 찾는 대로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틴들이 사망하고 3년이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 아버지는 헨리 8세의 눈을 뜨게 하셨고, 당시에 “대성경(Great Bible)”이라 불리던 성경이 편찬되어 영어로 된 경전이 대중에게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틴들이 만든 번역본은 그 이후에 나온 거의 모든 영문 성경의 토대가 되었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입니다.1

많은 나라에서 여러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희생한 사람은 윌리엄 틴들 전후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 나아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 힘겹게 수고하고 희생한 모세와 이사야, 아브라함, 요한, 바울, 니파이, 몰몬, 조셉 스미스와 그 외의 많은 분들에게 더욱 감사 드려야 합니다. 이들이 알았고, 우리도 알아야 할 그것, 바로 경전은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성경을 얻기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했던 16세기 영국인들이 이해했고, 우리 또한 이해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을 앞둔 선지자 앨마는 백성의 성스러운 기록을 아들 힐라맨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앨마는 힐라맨에게 경전이 “이 백성의 기억을 넓혀 주었고, 또한 많은 자들에게 그들의 길의 잘못을 깨닫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 하였음”(앨마서 37:8)을 상기시켰습니다. 앨마는 힐라맨에게 하나님께서 “장래 세대에게 그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도록]”(앨마서 37:14) 기록을 보존하라고 명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경전으로 “그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어” 자녀들을 구원하고 들어올리십니다. 앨마가 남긴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기억을 넓히시고 거짓과 잘못을 깨닫게 하시며 회개하고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게 하십니다.

경전은 우리의 기억을 넓혀 줍니다

경전은 우리가 언제나 주님을 기억하고 우리와 주님, 우리와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를 기억하게 하여 우리의 기억을 넓힙니다. 경전은 우리가 전세에서 알았던 일들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경전이 우리의 기억을 넓히는 또 다른 방법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여러 시대와 백성과 사건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홍해가 갈라지는 광경을 보고 모세와 함께 물기둥 사이를 지나 바다 저편으로 건너 본 적이 없습니다. 산상수훈을 듣거나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광경을 보거나 구주께서 겟세마네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는 모습을 본 적도 없습니다. 마리아와 함께 빈 무덤 앞에서 두 천사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셨다고 증거하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부활하신 구주께서 풍요 땅에 오셔서 못 자국을 만져 보게 하셨을 때 무리와 함께 한 사람씩 나아가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조셉 스미스가 성스러운 숲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일과 훨씬 더 많은 일들을 압니다. 우리의 기억을 넓혀 주고 몰랐던 점들을 알려 주는 경전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전 속 내용은 우리 정신과 마음에 파고들어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신앙이 뿌리내리게 합니다.

또한 경전은 우리와 우리 이전 세대들이 배운 것을 기억하게 하여 우리의 기억을 넓힙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없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자신의 존재 목적을 잊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리하이 일행에게 놋쇠판을 가지고 가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경전은 하나님과 앞으로 올 그리스도의 대속을 알 수 있게 하는 열쇠였습니다. 리하이가 떠난 뒤에 곧이어 “예루살렘에서 나온” 또 다른 무리에게는 경전이 없었습니다. 리하이의 후손들이 약 삼사백 년 후에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언어는 혼잡하게 되었고 …… 또 그들은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의 존재도 부인하였[다]”(옴나이서 1:15, 1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틴들이 살았던 시대에 경전에 대한 무지가 만연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성경, 특히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된 성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과 또 다른 경전이 바로 우리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전에 대한 무지가 만연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경전을 펼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조상이 알았던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경전은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은 경전을 통해서 옳지 못한 생각과 잘못된 전통, 죄와 그 파괴적인 영향력을 밝히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불필요한 고통과 슬픔을 피하고, 동시에 성스러운 잠재력을 깨닫도록 도와주십니다. 예를 들어 경전은 우리 시대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어느 고대의 철학, 즉 절대적인 도덕 표준은 존재하지 않고 “각 사람은 자기의 재능대로 번영하며, 각 사람은 자기의 힘대로 정복하며,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범죄가 아니[고]”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앨마서 30:17~18)이라는 코리호어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코리호어를 상대했던 앨마는 아들 코리앤톤이 성스러운 도덕규범의 실재성과 중요성을 의심하도록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코리앤톤이 성적인 죄를 범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사랑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이러한 일은 주가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라, 참으로 무죄한 피를 흘리거나 성신을 부인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죄 중에 가장 가증한 일인 줄을 네가 알지 못하느냐?"(앨마서 39:5)

한 세기 전과는 정반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부도덕이 심각한 문제인가에 대하여 앨마에게 반론을 제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거나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죄와 잘못을 눈감아주시고, 따라서 회개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혹은 그저 단순히 고백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상상하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기를 바라시되 사생활과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분이십니다.2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간악함은 결코 행복이 아[님]”(앨마서 41:10; 또한 힐라맨서 13:38 참조)을 슬픈 일을 겪으며 배우도록 우리를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그분의 계명은 실재하는 음성이며 고통을 자초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보호막입니다. 경전은 정확함과 진리를 측정하는 시금석입니다. 경전은 진정한 행복이 하나님의 공의를 부인하거나 죄의 결과를 회피하려는 데서 오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속죄의 은혜를 통해 회개하고 용서받을 때 온다는 점을 명확히 알려 줍니다.(앨마서 42장 참조)

우리는 경전에서 문명사회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원리와 도덕적 가치, 즉 정직과 책임감, 이타심, 성실, 자애 등을 배웁니다. 경전에는 참된 원리를 따를 때 받는 축복과 함께 그러한 원리를 버린 개개인과 문명이 어떻게 비극을 맞았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경전 속 진리를 간과하거나 저버리는 곳은 사회의 필수적인 도덕적 근간이 무너지고 쇠퇴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를 지탱하는 규범을 뒷받침할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됩니다.

경전은 우리를 구속주인 그리스도께 이끕니다

결국 모든 경전의 기본 목적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실재하심을 믿는 신앙, 우리의 불멸과 영생을 위한 아버지의 계획을 믿는 신앙, 행복의 계획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을 믿는 신앙,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게 하는 신앙, 그리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7:3)를 알게 하는 신앙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앨마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심어져 자라기 시작하여 신앙이라는 열매를 맺는 씨앗과 같습니다.(앨마서 32:27~43 참조; 또한 로마서 10:13~17 참조) 신앙은 학문을 연구할 목적으로 고대 기록을 공부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 발굴이나 발견, 또는 과학 실험으로 생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기적을 목격하는 것으로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신앙이 굳건해지거나 신앙에 시험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런 일로 신앙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성신이 우리의 영에 전해 주는 확신, 즉 영에서 영으로 전해 주는 확신을 통해 생깁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말씀을 흡족히 취할 때 신앙이 성숙해집니다.

우리는 경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배우면서 신앙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병든 종을 그리스도께서 보지도 않고 고쳐 주었던 계기가 된 백부장의 신앙(마태복음 8:5~13 참조)에 대해 우리는 기억합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받아들일 만큼 겸손했기에 딸이 병 고침을 받았던 어느 이방 여인의 일화(마태복음 15:22~28; 마가복음 7:25~30 참조)를 우리는 압니다. 고통 받는 욥이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욥기 13:15)라고 외치며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기 19:25~26)라고 고백하는 말을 우리는 듣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어른들에게 미움과 극심한 핍박을 받은 어린 선지자가 내린 결단에서 우리는 용기를 얻습니다. “나는 시현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알고 계심을 내가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으며 감히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조셉 스미스-역사 1:25)

경전은 그리스도의 교리를 설명하기 때문에 성신을 동반합니다. 성신은 아버지와 아들을 증거하는 역할을 맡습니다.(제3니파이 11:32 참조) 따라서 경전을 가까이 하는 일은 성신을 받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물론 우리가 경전을 처음 받은 것도 성신을 통해서입니다. (베드로후서 1:21; 교리와 성약 20:26~27; 68:4 참조) 바로 그 영이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이 진실하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경전을 주의 깊고 신중하게 연구하십시오. 경전을 상고하고 그에 대해 기도하십시오. 경전은 계시이며, 경전을 읽으면 여러분은 계시를 더 받을 것입니다.

성경과 함께 900쪽에 달하는 또 다른 경전, 즉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 더불어 주님께서는 성신으로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경전이라고 부르신다는 사실과(교리와 성약 68:2~4 참조) 오늘 이 연차 대회에서 전하는 말씀을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위성방송, CD, DVD, 인쇄매체를 통해 항상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 생각에는 역사상 어느 때에도 지금처럼 많은 분량의 경전을 축복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처럼 모든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가 모국어로 된 성스러운 경전을 지금처럼 각자 가지고 다니며 공부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윌리엄 틴들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전 경륜의 시대를 살았던 성도들이 이런 축복을 본다면 얼마나 경탄하겠습니까! 분명히 주님께서는 이러한 축복과 함께 끊임없이 경전을 연구해야 할 우리의 책임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을 일러 줄 그리스도의 말씀을 쉬지 말고 흡족히 취하십시오.(니파이후서 32:3 참조) 저는 경전을 연구하고 상고해 왔습니다. 이 부활절기에, 성스러운 경전에 밝혀진 하나님과 아들에 대한 제 간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