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주님 다시 부활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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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주님 다시 부활했네!"

첫 부활절 아침에 텅 빈 채 남아 있던 무덤은 욥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정말 훌륭한 모임이었습니다. 말씀 순서와 음악 순서로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교회 회장의 자격으로 영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두 단어를 사용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췌럴 렌트 자매님 그리고 보좌분들, 합창단, 음악 참여자분들, 연사들, 이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은 “Thank you(감사합니다)”입니다.

오래 전에 영국 런던에 머물 때 유명한 테이트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게인즈버러와 렘브란트, 컨스터블과 그 외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이 여러 전시실마다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면서 감탄하며 걸작을 그려낸 솜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층 한쪽 구석에 걸려 있던 그림 한 점이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그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프랭크 브램리가 그린 그 그림에는 풍랑이 이는 바닷가를 향해 아담한 집 한 채가 서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어부의 어머니와 아내는 밤새도록 바다를 지켜보며 어부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밤은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남편이, 아들이 바다에서 실종되었으며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곁에서 무릎을 꿇고 시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묻은 젊은 아내는 절망감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양초는 다 타버린 채 창문 아래 선반에 놓여 있습니다. 이는 밤새 계속된 헛된 기다림을 말해 줍니다.

젊은 아내가 느꼈을 상실감이 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슬픔도 전해졌습니다. 화가가 자신의 작품에 붙인 제목은 이 슬픈 이야기를 잘 설명해 줍니다. 뇌리를 떠나지 않고 생생히 남아 있는 그 제목은 바로 희망 없는 새벽입니다.

이 젊은 여성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진혼곡(Requiem)”에 묘사된 평안을 얼마나 바랐을까요. 얼마나 간절하게 그것이 현실이기를 바랐겠습니까.

선원이 바다에서 바라던 집,

사냥꾼이 언덕에서 바라던 집.1

필멸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중에 그 끝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사망은 모든 이에게 찾아옵니다. 사망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운명[입니다.] 사람에 따라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죽음을 맞기도 하고, 인생이 절정에 달했을 때 죽음이 찾아오기도 하며, 호호백발이 될 때까지 죽음이 미뤄지기도 합니다. 또는 사고나 질병 …… 자연사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인간은 죽음에 이릅니다.”2그것은 자신과 관계된 사람을 고통스럽게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특히 젊은 시기에 [닥치는 죽음은 곧] 이루지 못한 꿈과 성취하지 못한 야망, 사라진 희망을 의미합니다.

필멸의 존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는 죽음이라는 문턱에 혼자 서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갈라놓는 휘장 너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겠습니까.

수세기 전에 욥은 오랫동안 물질적으로 온갖 축복을 받으며 살아 왔지만 나중에는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고통을 모조리 다 경험했습니다. 욥은 친구들과 함께 앉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 영원한 질문을 했습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3 참으로 욥은 남녀를 불문하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봤을 질문을 던졌습니다.

영광스러운 이 부활절 아침에 저는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라는 욥의 질문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 끝에 얻은 답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에서 얻은 답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본질적인 부분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만든 설계도가 있다면 당연히 설계자도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주에서 일어나는 그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 모든 인류를 위한 설계도가 있다고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계자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에서 우리는 위대하신 설계자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위대한 설계자가 “빛이 있으라” 하고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땅과 물을 나누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풀과 ……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그분은 두 가지 빛을 창조하셨는데, 바로 태양과 달입니다. 그분이 설계하신 대로 별도 나타났습니다. 물 속에 생물들이 있으라고 명하셨고 새들에게는 땅 위로 날아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소와 짐승,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계획은 이제 완성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여 다른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4

인간만이 유일하게 지능을 받아 뇌와 마음, 영혼을 얻었습니다. 인간만이 그러한 특성에 따라 신앙과 소망을 품고, 영감을 받으며, 야망을 키울 능력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위대한 설계자가 창조한 가장 고상한 작품입니다. 다른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며 지능과 의지력이 있고 마음과 영혼을 받았으며 예지와 고결함을 지닌 인간, 그런 인간의 영이 지상에 있는 성전을 떠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죽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려면 삶의 목적부터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시작한 희미한 빛은 필연적으로 대낮의 태양과 같은 계시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 필멸의 삶에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계시를 통해 압니다. 전세에서 우리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 필멸의 삶을 살기 위해 지상으로 오는 기회에 기뻐 소리쳤던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사이에 분명히 있었습니다.5 우리는 육신을 얻고 시련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을 증명하는 일이 우리의 목적임을 잘 압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필멸의 삶이라는 속성 때문에 우리가 유혹을 받고 죄를 지으며 완벽에 이르지 못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어떤 경우에라도 성공할 수 있도록 우리 대신 고통을 겪고 사망을 겪으실 구주를 마련하셨습니다. 구주는 우리 죄를 위해 속죄하고, 속죄의 일환으로 우리 모두가 아담의 타락으로 겪게 되는 육체적 죽음도 극복하기로 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2천여 년 전에 우리 구주, 그리스도는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필멸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예언되어 온 메시야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만, 저는 누가가 기록한 이 내용을 무척 좋아합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6 그리고 사도행전에는 구주에 대한 의미심장한 구절이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7

구주께서는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이사도를 부르셨고, 병든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절름발이를 걷게 하시고 눈 먼 이를 보게 하시며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리셨습니다. 그분은 가르치고, 간증하셨습니다. 구주는 우리가 따라야 할 완벽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제, 세상의 구주께서 맡으신 필멸의 사명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분은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는 겟세마네 동산과 갈보리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필멸의 인간도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를 위해 겪으신 일의 의미를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리스도는 이 후에 그 경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 하였느니라”8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을 겪으신 후에 그리스도는 지친 몸으로 거칠고 저속한 자들의 손에 붙잡혀서 안나스와 가야바, 빌라도, 헤롯 앞에 끌려가셨습니다. 그들은 구주를 고발하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미 고통을 받아 심약해진 그분의 육신은 이 악의에 찬 폭력 앞에 더욱 더 약해졌습니다. 날카로운 가시로 만든 잔인한 관이 그분의 머리에 씌어지고, 가시가 이마를 찢으며 얼굴 위로 피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분은 빌라도 앞에 불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9하고 외치는 성난 군중들의 소리를 따라 판결을 내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채찍으로 맞으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을 내리친 채찍은 뾰족한 쇠붙이와 뼛조각이 박히고 줄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가죽 띠였습니다. 이 잔인한 채찍질이 끝나자 그분은 일어나셔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이 대신 그 짐을 졌습니다.

마침내, 구주는 해골이라 불리는 언덕에 이르셨습니다. 구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 모든 일 앞에 무력했습니다.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한 그분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저주하는 말을 퍼부으며 비웃었지만 구주는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10

숨이 점점 멎으면서 고통스러운 시간도 끝을 향해 달렸습니다. 바싹 말라버린 구주의 입술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11

은혜로운 죽음으로 필멸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진 구주는 평온과 위안을 얻고 아버지의 면전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구주께서는 모든 상황을 뒤집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생명이 끊긴 그분의 육신은 신속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잠시 빌린 무덤에 놓였습니다.

흐느끼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천사에게 들었던 말만큼 커다란 의미로 제게 다가오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 주 첫째 날에 여인들은 주님의 시신을 돌보기 위해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12

우리의 구주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큰 위로가 되고 평안을 주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죽음을 이긴 승리입니다. 겟세마네 동산과 갈보리 언덕에서 있었던 고통과 고뇌는 다 씻겨 사라졌습니다. 인류의 구원은 확실해졌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생긴 결과는 원래대로 돌려졌습니다.

첫 부활절 아침에 텅 빈 채 남아 있던 무덤은 욥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분께 선언합니다. 장정이 죽어도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에게는 계시된 진리에서 발하는 빛이 있기에, 우리는 그 사실을 압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13

저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슬퍼했고, 그분이 부활하셨을 때 기뻐했던 사람들이 남긴 간증을 읽었고, 그 사실을 믿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방문하셨던 신세계 사람들이 전한 간증을 읽었으며, 그 사실을 믿습니다.

저는 이 경륜의 시대에 성스러운 숲이라 불리는 곳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자신의 간증을 피로 인봉하며 삶을 마감한 한 사람의 간증을 믿습니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하여 드린 많은 간증 다음에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에 대하여 드리는 간증은 이러하니, 곧 그는 살아 계시다는 것이니라. 이는 우리가 실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를 보았고 또 그는 아버지의 독생자라 증거하는 음성을 들었음이니”14

죽음이 드리우는 어둠은 언제나 계시된 진리에서 발하는 빛 앞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구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5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16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간증을 듣고 읽었습니다. 부활의 실재성을 간증하거나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 구주께서 약속하신 평안과 위안을 받은 사람들이 전해 준 간증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주 전에 일곱 자녀를 둔 아버지가 자기 가족, 특히 열한 살에 병을 앓기 시작한 제이슨에 대해 쓴 가슴 뭉클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몇 해에 걸쳐 제이슨은 여러 차례 병이 재발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제이슨이 건강에 문제가 있더라도 긍정적인 태도와 밝은 성격을 잃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제이슨은 열두 살에 아론 신권을 받았고 “몸이 아프든 아프지 않든 언제나 자신이 맡은 책임을 기꺼이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제이슨은 열네 살에 보이스카우트에서 최고의 영예인 이글 스카우트(Eagle Scout) 상을 받았습니다.

작년 여름, 열다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제이슨은 다시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제이슨을 보러 병원에 간 아버지는 아이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이 들었는지 깨어 있는지 모르면서도 아버지는 조용히 제이슨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이슨.”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짧은 삶 동안에 많은 일을 겪었지만 지금 상황도 좋지는 않구나. 앞으로 큰 전투가 널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아빠는 네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 아버지는 제이슨이 갑자기 두 눈을 뜨고는 분명하면서도 결의에 찬 목소리로 “네, 결코 잃지 않을 거예요!” 하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이슨은 다시 눈을 감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말로 외쳤지만, 제이슨이 한 말은 지금껏 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들었던 간증 중에 가장 강력하면서도 순수했습니다. …… 네, 결코 잃지 않을 거예요! 그 강한 외침은 제 영혼 속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훌륭하고 고결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축복을 제게 주셨다는 사실에, 저는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 그것은 제이슨이 그리스도에 대해 간증했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제이슨이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다시 퇴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이슨은 채 2주가 안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제이슨에게는 이미 선교 사업을 하고 있는 형과 누나가 있었고, 형 중 하나인 카일리도 그때 막 선교사 부름장을 받았습니다. 사실 부름장은 예상보다 빨리 와서 제이슨이 사망하기 한 주 전인 8월 5일에 도착했습니다. 카일리가 부름장을 열 때 모두와 함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병실에 모여 있었습니다.

제게 보낸 편지에 제이슨의 아버지는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제이슨과 그 옆에서 부름장을 들고 서 있는 형 카일리가 함께 찍힌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선교 사업을 하도록 함께 부름 받다. 휘장 이편과 저편에서.”

그때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던 제이슨의 형과 누나는 제이슨의 장례식 때 함께 나누도록, 위로하는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편지를 집으로 보냈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서 선교부에서 봉사하는 제이슨의 누나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제이슨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다시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압니다. …… 우리가 영원한 가족으로 인봉되었다는 확실한 지식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 우리가 현세에서 순종하고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한다면 [제이슨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너무나 좋아했던 경전 구절이 이제 새로운 의미로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 요한계시록 21장 4절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가장 슬픈 시기에 우리는 첫 부활절 아침에 천사가 전했던 말에서 커다란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 살아나셨느니라”17

주님 다시 부활했네

기쁨으로 외치세

삼일간의 영옥 깨쳐

죽음 정복하셨네

주님 이기셨으니

인간 승리 얻었네18

오늘날 이 지상에 있는 그분의 특별한 증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이 영광스러운 부활절 일요일에 그 일이 사실임을 그분의 성스러운 이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