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부모와 지도자의 의무
2010년 4월


12:37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부모와 지도자의 의무

청소년들이 복음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깊이 이해하고 믿도록 돕는 일은 우리가 맡은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저는 전 세계에 계신 부모님들과 더불어서 청소년을 지도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조셉 스미스를 통해 우리가 “자라나는 세대 모두에게 …… 피할 수 없는 의무”(교리와 성약 123:11)가 있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일생 동안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로서 청소년과 관련하여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의무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깊이 생각해 왔습니다. 오늘 저는 직접 숙고하며 알게 된, 그리고 간증에서 배운 몇 가지 내용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부모와 지도자로서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은 가정에서 한결같고 부지런히 복음 원리에 따라 생활하는 모범을 보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굳게 결의하고 근면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복음이 일상 생활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청소년에게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청년 용사들은 부모의 믿음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어머니들이 이를 아셨다는 것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나이다.”(앨마서 56:47~48)라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 자녀들도 알고 있습니까?

한번은 제 손자가 인기는 있지만 부적절한 어떤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며 제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손자에게 그 영화를 보기에는 제가 나이가 충분히 들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어리둥절해 하던 손자는 연령에 따른 영화 관람 등급이 할아버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머니가 설명해 주자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알겠어요. 할아버지는 그 영화를 보기에 나이가 충분히 드는 일은 절대 없으실 거란 말씀이시죠?” 제 손자 말이 맞습니다.

모범으로 청소년들에게 길을 보여 주는 것 외에도 우리는 청소년의 마음을 이해하고 복음의 길을 함께 걸으면서 그들을 인도합니다.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단순히 같은 방에 있거나 가족 활동과 교회 활동에 같이 참석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청소년들의 마음과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서 영원히 남도록 가르치기 위해 우리는 계획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 지도자들은 정기적으로 신권 활동과 스카우트 모임과 야영 활동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정작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언제나 성취하고 있습니까? 저는 단순히 스카우트 기능장을 딴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 있는 신권 활동이나 스카우트 활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카우트 활동은 청소년이 그들의 생활과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지도자와 한 자리에 앉아서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에야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어머니 여러분, 여러분은 자녀를 학교나 다양한 활동 모임에 차로 데려다 주거나 걸어서 데려다 줄 때 자녀의 소망과 꿈, 두려움과 기쁨에 대해 대화하십니까? 아이들이 이어폰을 MP3 플레이어와 다른 전자 기기에서 떼내게 하여 여러분의 말을 듣고 여러분의 사랑을 느끼게 할 시간을 갖고 있습니까? 저는 살아갈수록 청소년 시기에 가르침을 얻은 시간들, 특히 부모님께서 마련해 주셨던 그런 시간들이 제 인생에 영향을 주고 제 인격을 다듬어 주었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히 깨닫습니다.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부모의 영향력은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가장 많이 떨어져 나가는 시기를 포함하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기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력은 감독님이나 다른 지도자들과 하는 접견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하는, 한결같고, 따뜻하고, 다정하며, 배려하는 교류에서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점을 유념하시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녁 식사를 할 때 가족이 모두 함께 있습니까? 청남 시절에 저는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서까지 야구를 해도 되는지 허락을 받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제 식사는 그냥 오븐에 넣어 두세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로버트, 나는 네가 잠시 중단하고 집에 와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면 좋겠구나. 그런 다음에는 다시 나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야구를 해도 돼.”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가족 식사가 단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과 교류하면서 우리 영혼에 영양분을 주는 시간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주고받는 가장 큰 사랑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청소년들의 마음에 와닿을 정도로 교류하기 위해서는 신뢰하는 동료나 친한 친구에게 관심을 갖듯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청소년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들으며, 듣고, 또 듣고, 좀 더 나아가 심지어 영적인 귀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신문을 읽고 있는데 어린 손자가 옆에 와 앉은 적이 있습니다. 신문을 읽는 동안 신문 너머로 제 손자의 귀여운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금 후, 손자가 신문과 제 사이로 들어와서는 제 얼굴을 손으로 잡고 자기 코로 제 코를 누르면서 “할아버지, 거기 계신 거 맞아요?” 했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어머니, 아버지, 거기에 계신가요? 할아버지, 할머니 거기에 계신가요? 거기에 있다는 말은 우리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과 교감한다는 의미입니다. 교감한다는 것은 그저 이야기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저는 딸들이 개인 발전 프로그램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활동에 서명하는 등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 세 딸이 프로그램을 완수하도록 도운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온화하게 설명했습니다. “최근에 저는 넷째 딸과 개인 발전 프로그램을 함께 해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 생활과 관계가 확연하게 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에 세 딸들과 이렇게 하지 않아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을 때 저는 무척 슬펐습니다.” 아마도 말이나 글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의 표현은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 1라는 말일 것입니다.

교회의 성인 회원들은 개인 발전 기록부와 하나님에 대한 의무에서 요구하는 활동들이 단순히 확인표시만 하면 되는 장황한 목록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청남 청녀가 성전 의식을 받고, 선교사로 봉사하며, 영원한 결혼을 하고, 승영을 누릴 만큼 발전하기 위해 각 청남 청녀가 세우는 개인적인 목표인 것입니다. 하지만 청남 청녀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혼자서만 노력해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 버리겠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청소년 지도자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 및 청소년과 함께 개인 발전 기록부와 하나님에 대한 의무 프로그램에 동참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청소년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만큼이나 중요한 점은, 여러분은 서로를 강화하고 복음의 길에서 영원히 남도록 신앙과 우정으로 결속되어 함께 성장하여 참으로 영원한 가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하나님에 대한 의무 프로그램을 할 때 마찬가지로 중요한 부분은 자녀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구주의 회복된 교회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베냐민 왕의 백성들이 주는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베냐민 왕의 가르침은 많은 성인들의 마음에 크나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모사이야서 5:2 참조) 하지만 그 뒤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자라나는 세대 중 베냐민 왕이 그의 백성에게 말할 때, 어린아이여서 베냐민 왕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자가 많더니, 그들이 …… 믿지 아니하니라. …… 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졌더라”(모사이야서 26:1, 3)

청소년들이 복음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깊이 이해하고 믿도록 돕는 일은 우리가 맡은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빛 가운데서 걷도록 가르칠 수는 있지만 그 빛은 빌려오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 빛을 혼자 힘으로 얻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영적인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자기만의 간증의 빛을 기도와 연구와 심사숙고를 통해 손수 얻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지를 청소년들이 직접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가정의 밤이나 가족 회의, 또는 복음에 대해 의미 있는 대화를 할 때 우리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런 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누구이고 또한 그들이 이 지상으로, 또 우리 가정으로 와서, 영원한 가족이 되기 위해 성전에서 맺은 성약에 참여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마음 깊이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모든 교류를 통해 우리는 복음의 원리와 축복을 직접 보여 주게 됩니다.

지금은 위험한 시기입니다. 청소년들이 단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천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의식과 정원회 및 보조 조직, 영감 받은 프로그램과 강화 활동에 진심을 다하여 참여하면 주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대적이 쏘아대는 불화살을 막을 전신갑주를 입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진정으로 주님의 길을 선택하려면, 그분의 길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주님의 길을 진정으로 알 수 있도록 우리는 가르치고 인도하며 청소년들이 행동하고, 참여하고, 실천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할 가장 커다란 선교 사업은 우리 가정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정원회, 공과반이 우리 선교 임지 중 하나입니다. 우리 자녀와 손자손녀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구도자입니다.

우리가 할 가장 커다란 가족 역사 사업을 우리 가정에서 하게 될 것입니다. 다가올 세대를 위해 우리 가족을 영원히 보존하고 영속하게 해 주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에 속한 우리 자녀들이 순종을 통해 영적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구조, 가장 큰 활동 촉진이 우리 가정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이상한 길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구조자가 되어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간증드립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는 없습니다. 시작하기에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일은 결코 없습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화를 거십시오. 쪽지를 남기십시오. 방문을 하십시오. 집으로 초대하십시오. 두려워하거나 난처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의 자녀들을 모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겪는 시련과 역경 속에서 강하게 일어설 때, 우리의 위대한 신앙이 우리 가정 안에 거할 것입니다. 최근에 몬슨 회장님은 몇몇 어머니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의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너무 빨리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몇 마디 덧붙이자면, 오늘 이 시련이 영원할 것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사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하십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장래에 …… 많은 일이 …… 달려 있음이니라. 그러므로 …… 우리의 능력 안에 놓여 있는 모든 일을 기쁘게 행하자. 그러고 나서 우리가 최대한의 확신을 가지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며, 그의 팔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기를 바라노라.”(교성 123:15, 17)

이 부활절 일요일에 저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간증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간증을 전하여 우리 마음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우리 자녀들이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장 큰 사랑과 가장 큰 가르침이 우리 가정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부모님들, 그리고 충실한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들과 함께 하여 그들이 사랑과 지도와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가정과 가족에 속할 때 오는 기쁨을 이해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가족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에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 드립니다. 아멘.

  1. “Maud Muller”, The Complete Poetical Works of John Greenleaf Whittier(1876), 206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