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 및 공과
제26장: 희생


“제26장: 희생,” 복음 원리 (2009), 149–54

“제26장,” 복음 원리, 149–54

제26장

희생

이미지
Jesus Christ depicted in red and black robes. Christ is talking to a rich young man. Christ has His arms extended as He gestures toward a poorly dressed man and woman. The painting depicts the event wherein Christ was approached by a young man who inquired of Christ what he should do to gain eternal life. Christ instructed him to obey the commandments and to give his wealth to the poor and follow Him. The young man was unable to part with his wealth and went away sorrowfully. (Matthew 19:16-26) (Mark 10:17-27) (Luke 18:18-27)

희생의 의미

희생은 주님의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우리의 시간, 지상에서 우리가 가진 소유물과 힘 등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그분께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명하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희생을 치른다. 사람들은 항상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것을 우선하는지에 대해 시험을 받는다.

  • 주님께서 요구하실 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희생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고대에 지켜졌던 희생의 율법

  • 고대에 주님의 성약의 백성들이 지켰던 희생의 율법은 왜 중요했는가?

아담과 이브 시대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백성들은 희생의 율법을 지켰다. 그들은 양 떼의 첫 새끼를 희생으로 바치라는 명을 받았었다. 이때 사용되는 짐승은 흠이 없고 완전해야 했다. 이 의식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리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주어졌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완전하실 것이며,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으로서 그분 스스로를 직접 바치실 것이었다.(모세서 5:5~8 참조)

예수님은 사람들이 가르침 받았던 대로 이 지상에 오셔서 몸소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분의 희생 덕분에 모든 사람은 부활하여 육체적인 사망에서 구원받을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본 교재 제12장 참조)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신 것으로 피를 흘리는 희생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한 외적인 희생은 이제 성찬 의식으로 대체되었다. 성찬 의식은 우리에게 구주께서 치르신 위대한 희생을 상기시키기 위해 주어졌다. 우리는 자주 성찬을 취해야 한다. 떡과 물의 상징은 구주의 몸과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를 상기시켜 준다.(본 교재 제23장 참조)

  • 속죄를 위대한 최후의 희생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리는 여전히 희생해야 함

  •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희생의 율법을 지키는가?

피 흘림의 희생은 끝났지만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이제 다른 종류의 제물을 요구하신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더 이상 피 흘리는 것으로 내게 바치지 말지니라. …… 너희의 번제를 폐할지니 …… 너희는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내게 희생으로 드릴지니.”(제3니파이 9:19~20)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 죄를 회개할 때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주님께 희생해야 함

  • 왜 사람들은 기꺼이 희생하려 하는가?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기록했다.(로마서 12:1 참조)

살아 있는 제물이 되려면 우리는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고 시온을 세우려 힘쓰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위해 기꺼이 바쳐야 한다.(니파이전서 13:37 참조)

한 젊은 부자 관리는 구주께 이렇게 질문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을 들은 젊은이는 몹시 근심했다. 큰 부자인 그는 자신이 소유한 부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누가복음 18:18~23 참조; 또한 본 장에 있는 그림 참조)

그 젊은 관리는 선한 사람이었지만 시험을 받았을 때 자신의 세상적인 재물을 기꺼이 희생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주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안드레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쳤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다.]”(마태복음 4:19~20)

그 제자들처럼 우리도 일상 활동들을 주님께 희생으로 바칠 수 있다. 우리는 “당신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희생과 번제가 요구되었던 시대에 지상에 살았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그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었으므로, 그 명은 아브라함에게 몹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이삭은 제물을 드릴 장소인 모리아 산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그 여행은 3일 동안 계속되었다. 아브라함의 심경과 번민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그는 아들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야 했다. 모리아 산에 도착하자 이삭은 나무를 짊어지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제단을 쌓을 장소로 올라갔다. 이삭이 말했다. “내 아버지여 ……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놓았다. 그리고는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눕혔다. 아브라함은 칼을 꺼내어 이삭을 죽이려고 했다. 그 순간, 주님의 사자가 그를 제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함아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1~14 참조)

아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 아브라함은 기쁨으로 충만해졌을 것이다. 그는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행하려 했다.

  • 여러분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어떤 희생의 모범을 보았는가? 조상의 삶과 이 교회의 초기 회원들의 삶에서, 경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에서 어떤 희생의 모범을 보았는가? 이러한 모범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희생은 우리가 하나님 면전에서 살 수 있게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됨

우리는 희생을 통해서만 하나님 면전에서 살 수 있을 만큼 합당해질 수 있다. 희생을 통해서만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이전에 살았던 많은 이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들이 누리는 풍성한 보상을 받으려면 우리도 기꺼이 그와 같이 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희생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면전에서 살기에 합당해지려면 아브라함처럼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주님의 백성은 항상 여러 가지 면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 어떤 이들은 복음 때문에 고난을 겪고 조롱을 당했고, 새롭게 개종한 몇몇 사람들은 가족들과 관계를 끊어야만 했다. 평생 동안 친구였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어떤 회원들은 직장을 잃었으며, 또 어떤 회원들은 목숨까지 잃었다. 그러나 우리의 희생을 아시는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태복음 19:29)

복음에 대한 간증이 커질수록 우리는 주님께 더 큰 희생을 드릴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진정한 희생에 주목해 보자.

독일에 사는 한 교회 회원은 신권 권세를 소유한 누군가가 와서 그의 십일조를 받아갈 때까지 여러 해 동안 십일조를 모아 두었다.

한 상호부조회 방문 교사는 30년 동안 자신이 맡은 임무를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봉사했다.

남아프리카에 사는 한 무리의 성도들은 주님의 선지자를 직접 보고 말씀을 듣기 위해 3일 동안 차를 타고 여행한 뒤, 자리를 잡지 못해 선 채로 말씀을 들었다.

멕시코의 한 지역 대회에서 교회 회원들은 대회가 계속되는 며칠 동안 바닥에서 잠을 자고 금식했다. 그들은 대회장까지 가는 데 돈을 다 써 버려서 음식과 잠자리를 구할 돈이 없었다.

한 가족은 성전 건축 기금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고, 이를 위해 차를 팔아 돈을 마련했다.

또 다른 가족은 성전에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았다.

많은 충실한 후기 성도들은 생활 형편이 무척 어려운 가운데서도 십일조와 헌금을 낸다.

한 형제는 일요일에 일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직장을 잃었다.

한 지부에서 청소년들은 부모들이 집회소를 짓는 일을 돕는 동안 기꺼이 시간을 내어 어린 아이들을 돌보았다.

젊은 남성과 여성들은 선교사로 봉사하기 위해 좋은 취업 기회나 교육, 또는 운동을 포기하거나 연기한다.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의 실례는 더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 힘과 돈, 그리고 목숨까지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 희생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 그분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교리와 성약 97:8 참조)

  • 기꺼이 희생하는 것은 왜 하나님 면전에서 살기 위한 준비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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