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영으로 가르침—‘영감의 언어’


“영으로 가르침—‘영감의 언어’” 세미나리를 가르침: 예비 독서 자료 (2004), 35–40

“영으로 가르침—‘영감의 언어’” 세미나리를 가르침, 35–40

영으로 가르침—‘영감의 언어’

구약 심포지엄 연설, 1991년, 1~6쪽

우리는 매우 폭넓고 다양한 개성, 경험, 문화, 언어, 관심, 필요 속에서 생활하고 가르칩니다. 그러한 차이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영뿐입니다. 주님은 “성령의 검은 …… 하나님의 말씀이니라.”(에베소서 6:17)라고 하셨습니다. 영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꿰뚫습니다. 그리하여 경전과 살아 계신 선지자들의 말씀은 최우선 순위를 차지합니다. 그것은 영으로 가르치는 것의 열쇠이며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말한 “영감의 언어”(Teachings of the Prophet Joseph Smith, sel. Joseph Fielding Smith [Salt Lake City: Deseret Book Co. 1976], p. 56)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경전에는 우리를 환기시키는 특별한 힘이 있는데, 그것은 전세에 대한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최소한 그곳에서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우리의 성향을 되살리는 것 같습니다.

영감받은 경전에는 성결케 된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중한 경전을 가까이한다고 해서 교사를 인도하는 예리한 계시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더 세속적으로 치닫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진리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다음 말씀을 인식해야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린도전서 2:14) 많은 사람이 영이 알려 주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연사와 청중이, 작가와 독자가 영적으로 하나가 될 때,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받는 자가 말씀이 진리의 영으로 말미암아 전파되는 대로 받는 것임을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고 알 수 없음은 어찜이냐?

그런즉 전도하는 자와 받는 자는 서로를 이해하고 둘 다 교화되며, 함께 기뻐하느니라.”(교리와 성약 50:21~22)

존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분에게서 오는 계시의 영으로 가르침 받고, 지시받고, 인도받지 않고서 하나님의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전에도 결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같은 영의 영향 아래에서 전능하신 분의 손에 놓이지 않고서는 참된 예지를 얻고 영생의 성스러운 원리에 관해 올바른 판단력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Journal of Discourses, 17:369)

우리는 조셉 스미스가 야고보서 1장 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는 말씀을 읽고 특별한 경험을 했던 것을 압니다. “경전의 어느 구절도, 이때 이 구절이 내 마음에 임한 것보다 더 힘차게 사람의 마음에 임한 적은 결단코 없었다. 그 구절은 마치 큰 힘을 지니고 내 마음의 느낌 속으로 속속들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조셉 스미스-역사 1:12) 야고보는 그렇게 쓰도록 영감받았고 조셉은 그 구절에 그렇게 반응하도록 영감받았습니다. 다른 이들도 야고보서 1장 5절을 읽고 혜택을 받았으며 또 계속 혜택을 받게 되겠지만, 그 구절의 주요 목적은 마지막 경륜의 시대로 이어진 영적인 환기의 일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영은 우리에게 알려 주고 상호 이해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확신을 줍니다! 영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시험하[도록]”(앨마서 32:27 참조) 확신을 줄 수 있으며, 그리하여 소중한 개인적인 증거가 오고, 학생들은 각자 이러한 것들이 참됨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브리검 영은 확신케 하는 영의 권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영의 영향이 아니고서는 구원의 복음에 관한 진리를 누구에게도 확신시킬 수 없습니다. ……

…… 하지만 제가 언변이 없는, 또는 대중 연설에 소질이 없는 한 남성이 단순하게 ‘저는 성신의 권능으로 몰몬경이 참되며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압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사람에게서 비롯된 성신이 저의 이해력과 빛과 영광과 불멸을 제 앞에 밝혀 주었습니다. 그것은 저를 감싸고 채워 주었으며, 저는 그 사람의 간증이 참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 저 자신의 판단력, 천부적인 재능, 학식은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간증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저에게 침례를 주셨던 분이 저기에 앉아 계십니다.(일라이자 밀러 형제) 그분의 간증은 제 몸을 빛으로, 제 영혼을 기쁨으로 채웠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혜와 권력, 왕이나 통치자들의 모든 영광과 화려함도 하나님의 종이 전하는 단순하고 꾸밈없는 간증에 비하면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Journal of Discourses, 1:90–91)

영의 영향을 미치든 받든 간에, 우리는 각자 “속 사람이 살아나게”(모세서 6:65, 또한 에베소서 3:16, 시편 119:40 참조) 하는 과정을 서둘러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 극적으로 영적인 상황이 수반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영적으로 중요하면서도 고요한 순간들을 포함합니다.

그렇지만 영으로 가르치는 것에 관해 말할 때, 신비로운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으로 가르치는 것이 기도하고 숙고하며 준비해야 하는 교사의 책임을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자동 조종 장치”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주의 깊게 비행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각자 나름대로 어떤 것을 연구하면 준비 과정뿐 아니라 실제 수업에서도 영이 수반됩니다. 하나님께 그분의 영을 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올리버 카우드리와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교리와 성약 9:7 참조)

영은 “연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주님께 인도를 구할 때 가장 잘 주어집니다. 또한 가르칠 사람들에 대해 미리 깊이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주고 역점을 둘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는 것이 훨씬 쉬워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으로 가르칠 때 냉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이것을 잘 입증해 주는 한 예가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불과 23세일 때 웅변에 관한 글을 썼는데 그것은 출판된 적이 없었지만, 그의 사후에 원고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글에서 처칠은 느낌으로 소통하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으로 영감을 주려면, 자신이 먼저 감동으로 영감을 받아야 한다. ……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하려면, 자신이 먼저 눈물을 흘려야 한다. 사람들을 확신시키려면, 자신이 먼저 믿어야 한다. …… 그렇게 하는 사람은 위대한 왕의 힘보다도 더 오래 지속될 힘을 행사한다. 그는 세상에서 독립 부대와 같다. 자신의 정당에서 버림받고,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직책을 박탈당하더라도,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여전히 가공할 만하다.”(William Manchester, The Last Lion: Winston Spencer Churchill Alone, 1932–1940 [Boston: Little, Brown, and Co., 1988], p. 210)

해롤드 비 리 회장님은 영적인 것과 관련해서 이에 상응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불타고 있지 않으면, 다른 영혼에 불을 지필 수 없습니다. 교사로서 여러분이 전하는 간증, 그리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끌 때 동반하는 영은 나눌 것을 많이 가진 여러분이 도움이 많이 필요한 사람들을 강화할 때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입니다.”(Conference Report, Apr. 1973, pp. 178~179; 또는 Ensign, July 1973, p. 123)

그 자체로도 유익한 이 올바른 느낌을 동반하는 것은 개인적인 모범이란 웅변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삶에서 모범을 보일 때 더해지는 모범의 권세에 다른 사람들도 호응할 것입니다. 그러면 영은 특별히 우리 말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믿[을]”(교리와 성약 46:14) 수 있습니다.

초심자의 초기 신앙은 충실한 사람들의 말을 믿는 데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나의 종[의] …… 말만을 믿는 …… 신앙”(모사이야서 26:15)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만일 지금 네가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면, …… 내가 믿으리라.”(앨마서 22:7) 이런 제자의 속성은 자체적인 보상이 따릅니다. “또 그들이 복됨은 네가 그들에게 한 그 말만을 믿는 그들의 심히 큰 신앙으로 인함이요”(모사이야서 26:16)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은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셨습니다. “개인적인 실천을 통해 한결 같고 강화된 이러한 것들을 자녀들에게 영과 권능으로 가르치십시오. 자녀들에게 여러분이 진실하며, 가르치는 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Worship in the Home”, Improvement Era, Dec. 1903, p. 138; 강조체 추가) 내용이 훌륭할 때조차 진실성이 보이지 않으면, 바라던 영향력을 전달할 기회를 너무 많이 잃게 됩니다.

학생들은 해의 왕국의 핵심적인 자질과 덕성을 키우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영이 함께한다는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옵니다. 이런 자질들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것들은 영원하며, 여러분과 늘 함께합니다. 그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의 친절”(니파이전서 19:9, 교리와 성약 133:52 참조)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진실함”은 개인적인, 영적인 향상으로 측정됩니다.

여기서 잠깐 교리와 성약 133편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재림과 해와 달에 일어날 극적인 하늘의 현상이 나옵니다. 그런 다음, “별들이 그 자리에서 내던져지리라.”(49절)라고 나옵니다. 곧 나는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노라(50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그다음, 저에게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그의 사랑의 친절을 영원무궁토록 기억할 것(52절)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별들이 그 자리에서 내던져질지라도, 우리가 그 상황에서 가장 많이 기억할 것은 그분의 사랑의 친절입니다!

영은 마지못해 하는 교사나 학생에게 자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영은 거부당하면 신속하게 그냥 물러납니다.

한 현자는 가르침 받는 것보다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영의 가장 강력한 기능 중 하나는 우리에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영은 듣는 이들이 숙고하도록 고무하고 지적인 정직을 격려합니다. 앰율레크는 영적으로 일깨워지기 전에는 부름을 받았으나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러한 일들에 관해 알고 있었음에도 알려 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앨마서 10:6 참조) 영은 그런 솔직한 반응을 이끌어 냅니다. 그것은 청소년이나 대학생과 함께 있을 때, 혹은 가족 관계 안에서나 조용한 대화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영은 지적인 부정직을 용인하지 않고, 대신 지적인 정직을 격려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참으로 “성령의 검”(에베소서 6:17 참조)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사실상, 영은 학생들을 주님께 직접적으로 연결해 줍니다. 충성심과 관점은 연관돼 있습니다. 부모와 교사가 지리적으로, 그리고 세대차이로 ‘떨어지더라도’ 영은 계속 보살필 것입니다. 고대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면서 자신에게 아주 관대했던 보디발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게]”(창세기 39:9; 7~20절 참조) 되는 일 또한 거부했습니다. 그런 지적이고 영적인 방식은 오랜 세월 동안 온전히 유지되고 장려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매주 성찬 빵을 취하면서 영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도록 기도하는 것은 의아해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안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의 동반 없이 우리는 홀로 남겨지게 됩니다. 어느 누가 홀로 남게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제가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만큼 들음으로써 신앙이 생긴다는 말에 대한 좋은 예는 없을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브리검 영은 복음에 대한 특별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종종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말씀을 들으러 갔습니다.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저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대중 앞에서 말씀하든 개인적으로 말씀하든, 단 한 번도 그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의 말씀의 샘에서 이해력을 얻고, 필요할 때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주님께서 제 봉사에 큰 성공이란 면류관을 씌워 주신 이유는 제 마음에 지혜를 적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형제들에게 통치 원리와 그것을 가족과 이웃, 국가에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 드문 일이긴 하지만 제 친형제들이 사무실로 저를 만나러 온다면, 그들조차 그것을 하찮은 일인 것처럼 여기며 사무실을 떠날 것임을 압니다. 교회의 너무 많은 장로들이 그와 똑같습니다. 저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 시대에 그런 기회들은 저에게 세상의 어떤 부귀보다도 더 소중했습니다. 지독히 가난해서 아내와 자녀들을 먹이기 위해 구걸할지언정, 선지자의 말씀에서 배우는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았습니다.”(Journal of Discourses, 12:269~270)

영은 느낌뿐 아니라 실체를 가져다줍니다. 다음 성구들에서 이 예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 말은 여러 사람에게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한 사람에게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나에게서 말미암은 것이니, 그런즉 너희는 이 말이 나에게서 말미암은 것이요 사람에게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증언할지니라.”(교리와 성약 18:34)

“이 말을 믿으리니, 이는 이 말이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이를 그가 내게 주셨음이며”(니파이후서 33:10)

“말씀[은] …… 다른 어떠한 것보다, 백성들의 생각에 더 강력한 효과가 있었더라”(앨마서 31:5)

사람이 신앙으로 행할 때, 그는 “말씀으로 행하는 것입니다.”(Lectures on Faith 7:3 참조)

“그러나 이 세대는 너를 통하여 나의 말을 가지게 되리라.”(교리와 성약 5:10)

영으로 가르치는 것의 기본적인 면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몇 가지 준수 사항금지 사항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다음의 준수 사항금지 사항은 학습 분위기에 영향을 미칩니다. 준수 사항은 영을 초대할 것이고 금지 사항은 영을 쫓을 것입니다.

준수 사항

금지 사항

  1. 마음을 차분하고 고요하게 가라앉히며 가르치는 순간에 집중한다.

  1. 마르다처럼 걱정하며 속상해한다.

    조셉 스미스와 에머가 다툰 후에 그가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영을 초대하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가 다른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영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1. 온유하면 “네 마음에 말하리라.”(교리와 성약 8:2)

  1.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주목받으려고 감동을 주기 위해 애쓴다.

  1. 학생들과 눈을 많이 맞추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1. 전달하는 데 급급하여 영이나 학생들에게 귀 기울이지 못한다. 여러분이 영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반원들이 여러분에게 귀 기울이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1. 영감에 따라 기억되고 간직될 짤막한 농담을 활용한다.

  1. 말이나 개념을 늘린다.

    산상수훈이 세 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면 소중하게 여기겠습니까?

  1. 가르치는 것의 요지를 안다. 그것의 단순한 중점 부분을 숙고하고 기도한다.

  1. 누군가 값진 것을 찾기 바라면서 “뷔페식 식사”를 제공한다.

    초점이 결여되어 있으면 듣는 사람은 확신을 얻지 못합니다.

  1. 가르치는 것과 연관된 적용 사례들과 결과들을 제시한다.

  1.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에 답한다.

  1. 영감받은 질문을 한다.

  1. 질문을 두려워한다.

  1. 영의 영향 아래에서 자신이 말하는 것으로부터 배우도록 준비한다.

    저는 매리온지 롬니 회장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언제 성신의 영감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아는데, 그것은 제가 한 말에서 언제나 무언가를 배우기 때문입니다.”(Boyd K. Packer, Teach Ye Diligently[Salt Lake City: Deseret Book Co. 1975], p. 304)

  1. 학생들 앞에서 숙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1. 의도적으로 잠깐 멈추는 시간을 준다. 영이 자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히브리서 11:1) 제공할 것입니다.

  1. 영감 어린 침묵을 두려워한다.

  1. 교리가 스스로 말하게 한다.

    “계시된 모든 하나님의 원리는 그것의 참됨에 대해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에 확신시켜 줍니다.”(브리검 영, Journal of Discourses, 9:149)

  1. 교리를 “판매하는 것”으로 마친다.

    아서 헨리 킹 교수는 조셉 스미스의 첫 번째 시현에 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쉽게 감명받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언어학자로서 평생 감명받는 것을 내켜 하지 않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고 차분한 기사였습니다. 이 사람은 저를 설득하고자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서술했을 뿐입니다. 열광적이지는 아니지만 매우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를 울리거나 도취시키려고 애쓰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충격이었으며, 이 사람이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에 저는 간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 그리고 그것은 누가 연습해서 멋지게 만들어 보려고 애쓴 글이 아닙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며, 다른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무엇보다도, 조셉 스미스에 관한 기록이지만 조셉 스미스에 관해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가식 없이, 단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적은 글입니다.”(The Abundance of the Heart [Salt Lake City: Bookcraft, 1986], pp. 200–201)

  1. 적절하고 구체적인 간증을 나눈다.

  1. “저는 간증이 있습니다.”라고만 말한다.

물론 성약을 지키고 있지만 가르칠 때 카리스마가 부족한 분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바르게 생활하고 있지만, 재미가 없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은 합당하게 생활하는 모든 사람의 노력을 축복해 줍니다. 영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인증해 줍니다. 영은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스스로 대변하며, 입증해 주는 정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확고한 기반이 없는 총명함보다 정확한 교리와 영적(조금 둔하더라도) 확신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꽤 훌륭한 교사들도 개인적으로 복음에 대한 신선한 열정이 부족할 수 있으며, 그것은 강한 전염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지 느끼는 느낌의 극히 작은 부분만을 표현할 수 있기에, 그 “극히 작은 부분”이 더 줄어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몰몬경 선지자의 말씀대로, “오 지혜로우라. 내가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으리요”(야곱서 6:12)라는 조언에 따라야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역시 최소한 저의 예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나은 예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약 30년 전 어느 안식일 저녁에 유타 대학교 종교 교육원에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휴비 브라운 회장님께서 말씀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모임 시간이 다 되었는데, 회장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임을 계획한 분들은 걱정을 많이 했고, 이 “문제”에 당황스러워했습니다. 그 날 저녁 모임에는 달변가이신 리차드엘 에번즈 장로님이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에번즈 장로님이 말씀하는 동안, 브라운 회장님을 모시고 오도록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집 주변에서 산책하고 계시는 회장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시고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인생에서 놀라운 경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영의 인도 하에, 그분은 회복에 대해 가르치셨고 간증을 전하셨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누구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1974년 4월, 저는 어느 고층 건물 강당에 있었습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께서 사실상 교회 회장으로서 첫 번째로 전하는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최초의 기자 회견에서 그분은 리 회장님처럼 일들을 유지해 갈 수 있다면 자신은 정말 만족할 것이라고 온유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온 세상에 나아가라”는 그분의 말씀에 성신이 전기처럼 임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벤슨 회장님도 후에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으로서 그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감동 받았고 감화되었습니다. 그 모임은 사람이 주님의 시간표를 따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이 그것을 인증했고, 우리는 그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청중이 많든 혹은 단지 두 사람 간의 대화이든 영은 역사합니다.

약 1년 전에 유타 페이슨에 사는 크리치필드가의 가장이 한 영감 어린 질문을 생각해 봅니다. 그의 아들 스탠리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다 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그 소식 뒤에는 충격과 실망이 뒤따랐습니다. 그런 후 그 겸손한 아버지는 15세인 스탠리의 동생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4년 후면 너도 19세가 되는구나. 선지자께서 선교 사업을 하라고 너를 부르실 거다. 넌 네 형 스탠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았다. 어떻게 하겠니?” 대답은 “저는 나갈 거예요, 아빠. 나갈 거예요.”였습니다. 영은 큰 회장 안에서의 소통에서도 그러했듯, 그 영감 어린 질문과 대답을 성결케 했습니다. 선교 사업을 가기 위해 지금 돈을 저축하고 있는 그 소년의 놀랍고도 훌륭한 대답은 시공을 초월합니다. 그의 대답은 결국 니파이가 “가서 행하겠나이다.”라고 말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영감 어린 침묵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침묵을 깨뜨리는 성향이 약간 있는데, 때로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그런 상황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저는 심장 문제로 피닉스 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전우에게서 간접적으로 배웠습니다. 현지 와드의 한 훌륭한 칠십인이 편지로 제 친구의 어려운 상황을 알려 주었습니다. 저와 그 친구는30여 년이나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편지를 보낸 다음 전화를 했고 책을 몇 권 보내 주었습니다. 그가 애리조나 던컨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 후에 저는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떻게 지내나, 해리?” “잘 지내네.” “보내준 책들은 읽어 보았나?” “응, 조금 읽어 보았네만 ……” “해리, 내려가서 자네에게 침례를 주고 싶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저는 서둘러 침묵을 깨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에 친구가 “그렇게 해 주겠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곧 저는 애리조나 던컨으로 가서 제 친구 해리 화이트에게 침례를 주고 안수하는 큰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영이 그에게 역사했습니다. 그에게는 그의 개종을 서두르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해 온 훌륭한 아내와 많은 교회 회원이 있었습니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모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라는 구절을 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조용히 하라”와 동등한 뜻으로 해석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 특별한 잠잠함에서 침착과 집중이 옵니다. 관련 없는 것들은 사라집니다. 영이 알려 주고, 영감을 주고, 또는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기억나게 하는 것과 같이 특별한 일들을 가만히 있음으로써 잠잠함이 역사하게 합시다.

알아야 할 것을 알고,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부름 받으며, 그분의 왕국에 있는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았습니까! 예, 지금은 세속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영적인 것들이 이 세상의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어리석게 보이는 때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몇 달 전 저와 맥스웰 자매는 독신 성인을 위한 노변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친절하게 저희에게 와서 악수를 청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혼한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와 악수는 했지만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고, 제 아내 콜린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알았던 것을 기억하지만, 이제 모릅니다.”라고 적은 것을 건네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영향을 미칠 사람 중에는 한때 알았지만 이제는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몇은 앰율레크처럼 알았지만, 알려고 하지 않고 거부합니다.

우리의 빈약한 재능으로 하는 일을 영이 강화해 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지지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이 이 왕국의 일에,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느끼게 해 주시고, 그들이 꼭 일어나서 세세 영원토록 여러분을 축복받은 자라고 부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침에 겨울 도로 위를 오랜 시간 운전해서 출근할 때, 여러분의 수고에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적더라도 여러분이 아버지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그분의 영으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감사로 둘러싸이는 기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과정에 있는 그분의 남성과 여성으로 보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