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벗어나는 자유”인가 “행하는 자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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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는 자유”인가 “행하는 자유”인가

“의식적으로 우리 인생에 온전한 책임을 지고 또 환경을 탓하는 것을 멈출 때 우리의 삶에는 활기가 넘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일 제가 지난 이백년 동안 지상에서 일어났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것은 19세기 초반에 뉴욕 주의 시골에서 한 소년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영원한 진리에 대해 질문했던 기도가 가져온 결과라고 주저 없이 말할 것입니다.

요셉 스미스라는 이 젊은이는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거의 잊혀진 바 되었던 지식을 인류에게 회복시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지식은 우리 인간에 관한 지식들로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의 지상 생활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이며, 왜 인간은 그렇게 많은 불행과 불의를 경험해 왔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결국 죽음 이후의 생활과 최후의 우리 운명에 관한 인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주님의 신성한 침례 성약을 받아들인 지 42년이 된 오늘까지도 이 놀랍고 기적과 같은 회복의 여러 일들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본질적 의미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는 일이 허락되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권의 중요한 의미도 계시되었는데, 신권은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가져다 주기 위해 애정어린 보살핌과 인내 안에서 행사되도록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이 훌륭한 사업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할 만큼 시간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주님의 왕국에 있는 한 가지 핵심적인 면에 관해 말씀 드리고 싶은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 말씀 드리기 위해 저의 고국인 독일에서 초기 회원 시절에 같은 지부의 회원이었던 어느 한 신앙심 강한 형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형제는 초라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한 조그만 개인 회사에서 최근에 일을 시작하게 되어 아주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곧 있을 한 회사 행사에 관해 저에게 이야기하였는데, 그 행사는 모든 근로자들이 초대를 받아 참석하는 회사의 전통적인 저녁 식사 모임이었습니다. 이 모임의 끝 무렵에 직장 상사와, 그것도 사람들 중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실 것 같은 상사와 함께 하는 대규모 맥주 파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녁 식사에 불참한다면 자신이 매우 무례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점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 회식이 있은 후 그 형제를 다시 만났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행복한 빛이 발했으며 저에게 회식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너무나 말해주고 싶어했습니다. 그가 회사의 신입 사원이었기 때문에 사장은 그에 관해 좀더 알고 싶어하여 그 형제 바로 옆에 앉았다고 합니다. 밤이 깊어 가면서 그 형제가 가장 두려워 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사장이 맥주를 함께 마시지 않는 것을 너그럽게 봐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장은 “도대체 그 교회가 어떤 교회길래 나와 함께 단 한잔의 맥주도 마시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제 친구인 그 형제가 사장에게 자기가 맥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그가 속해 있는 교회와 관련이 있어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술을 마시지 않기로 신성한 성약을 맺었기 때문이며, 만일 그가 이 성약을 깨뜨린다면, 그가 이제껏 약속한 것들에 어떻게 계속해서 충실할 수가 있으며 또 종업원으로서 거짓말하지 않고 훔치지도 않으며 속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침착하게 대답했는데, 그러는 동안 그는 두려움으로 더 이상 당황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에 따르면, 그 사장은 그의 말에 깊이 감동을 받아 그를 껴안으며 깊은 찬사와 신뢰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많은 새로운 회원들이, 특히 그들이 미국 외의 다른 나라로부터 온 경우, “자유”라는 단어의 참된 면모에 관해 배웁니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유는 악, 고통, 또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논하실 때 의미하시는 자유는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입니다. 그분은 “무엇을 행하는 자유”, 곧 우리 자신의 선택으로 존엄하게 행동하는 자유를 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자유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위험할 정도로 많은 책임들에 대해 충만한 지식을 가질 만큼 발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그에 따르는 결과가 있다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 동안 우리가 환경의 희생자라고 믿어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 시대에 회복된 하나님의 진리의 메시지에 우리의 마음을 열때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불행과 고통과 고난, 기아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계시된 진리를 우리 자신의 생활에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살아계신 아들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커질 것이며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분량의 영적인 은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이란 없음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거짓된 속박은 풀릴 것이며 또 잘못된 전통의 비극에서 생겨난 편협한 생각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구원의 계획의 거대함과 완벽함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커질수록, 우리는 우리의 약함과 불완전함을 보다 잘 보게 됩니다. 우리가 상한 마음과 애통하는 심령으로 자신을 겸허히 볼 때 우리는 침례라는 의식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맺는 가장 거룩한 이 성약을 이해하고 또 결국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단지 바라는 것과 성약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기쁘게 이 성약에 순종할 것입니다. 어떤 것을 단순히 바라기만 한다면, 편할 때에만 그것을 달성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침례 같은 거룩한 성약에 묶여 있을 때 우리는 순종을 통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하면서 영이 함께 하는 축복, 더 나아가서 성취에 이르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우리 인생에 온전한 책임을 지고 또 환경을 탓하는 것을 멈출 때 우리의 삶에는 활기가 넘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행하는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냉혹한 결과로 이어지며 멈추거나 고치지 않을 때, 우리를 비참과 고통으로 끌어 갑니다. 잘못된 선택은 고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생의 재난으로 이어지며 다음 세상에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할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 우리는 인생의 초기에 우리 자신이 경기의 목적과 규칙을 몰라 매우 낙담한 채, 운동장 한 가운데 서 있던 축구 선수와 같았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느 팀에 속했는지, 심지어는 우리의 코치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회복된 복음을 인식하면서 우리의 시합은 분명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회복된 교회 및 신권이 우리의 지상 경험에서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에 힘을 주셔서 우리 자신의 의로운 선택에 따라 과거에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환경을 우리의 신앙과 행위로 마침내 바꿀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몰몬경에서 우리는 구속주께서 수많은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몰몬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적이 그친 것이라 하겠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천사들이 인간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일도 그치지 아니하였으니. 보라 이는 천사들이 그리스도께서 명하시는 말씀에 좇아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며, 돈독한 신앙을 가져 그 마음이 경건하고 굳건한 자들에게 나타내어 보이시느니라” (모로나이서 7:29~30)

우리는 이 시대에 받은 이 자유 안에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이해함으로써 완전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안전과 기쁨을 찾기 위해 우리의 구속주이자 구세주이신 주님의 사랑의 손길 가까이에 언제나 머물도록 합시다. 저는 이 점을 겸손히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형제요 종으로서 예수께서 살아계시며 또 그분이 이 사업의 머리가 되심을 알고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