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당당히 함께 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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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함께 서십시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기뻐하는 하나님의 여성들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주님의 도구도 없습니다.”

열두 살이 되었을 무렵, 저는 키가 171센티나 되는 별종이었습니다. 친구들 머리 위로 삐죽 솟은 큰 키는 사춘기 시절 저에게 심각한 고민거리였습니다. 저는 눈에 띄는 것이 싫었습니다. 최소한 그런 식으로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깨를 움츠리고 다님으로써 좀 더 작아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어머니는 늘 저에게 “똑바로 서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때는 똑바로 서는 것이 싫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니파이이서 8:17)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설수 있도록”(교리와 성약 4:2) “증인이 되[라는]”(모사이야서 18:9) 훈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온에서 움츠리고 다니라는 말씀을 경전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일어서라”(니파이삼서 20:2)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십대였을 때는 군중 속에 섞여 있는 것이 저의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운명 또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여성들로서 우리는 당당하게 일어나야 하며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나머지 세상 여성들로부터 두드러지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만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쁨을 찾는 일과 큰 키로서가 아니라 주님의 사자로서 당당히 서는 일은 서로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은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이것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순전한 기쁨을 주는 17명의 조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등산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금식도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는 함께 울었습니다. 몇 주 전 일어난 사고로 제 여동생의 자녀인 11살난 아만다와 15살의 태너가 목숨을 잃었을 때, 우리는 엄청난 상실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함께 생활했으므로, 죽음으로 인해 그들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실로 슬퍼 울었습니다.(교리와 성약 42:45 참조)

고향에 있는 우리의 친구들도 우리와 함께 울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비회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캔자스의 작은 예배당에 두 개의 관이 안착되던 그날만큼 우리 친구들의 마음이 진리를 향해 활짝 열릴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장례식을 그리스도와 회복된 복음에 대해 간증하는 모임으로 온전히 헌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날 들은 이야기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더 배우기를 청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희 조카들의 죽음으로 누군가 영향을 받아 교회에 들어오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압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위해 당당하게 일어나서, 전에는 한번도 기꺼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의 고통을 덜어 주었고 한 가족으로서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참된 기쁨은 복음에서 비롯됩니다. 그 기쁨은 구세주의 속죄, 죽음의 장막을 초월하는 의식, 우리 영혼에 위안을 주는 보혜사로부터 나와 빛을 발합니다. 5년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현재 열 한 살인 저의 조카 오브리는 최근에 비회원 친구에게서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사촌이 죽었는데도 왜 슬퍼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브리의 대답은 훌륭했습니다. “슬프지 않냐고? 정말 우리는 슬퍼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함께 할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 거야.” 물론 가족 모두가 많이 울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손길과 치유의 능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많은 것들을 걱정했겠지만 우리는 그다지 많이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재를 대신하는 아름다움(이사야서 61:3 참조)이며 즐거움의 기름(히브리서 1:9 참조)이며, 좋은 소식입니다.

비록 우리 조카들은 갔지만, 우리는 그들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영화로운 확신을 다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체적 사망 뿐 아니라 영적 사망에 직면한 채 방황하는 우리 아버지의 자녀들, 우리의 형제 자매들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흔 아홉을 남겨 두고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아 광야로 가는 것입니다. 빛이 없이 인생을 걸어갈 때 누구나 짊어지게 되는 가장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밭은 이미 무르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으니, 열한 시라. 내가 포도원에 일꾼을 불러 들여야 할 마지막 시각이니라. …

“그런고로 마음과 정성의 힘을 다하여 낫질하여 추수할지어다.”(교리와 성약 33편 3, 7절)

고대 예언자들은 “구세주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의 백성과 만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질”(모사이야서 3:20) 날을 예언했습니다. 그날이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낫을 들고 추수를 도울 차례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영겁의 시간동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지켜보셨고 중대한 많은 일들이 이루어질 시기에 우리를 신뢰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시간에 우리를 쓰시기 위해 아껴 두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여성들이고 하나님의 여성들의 사업은 언제나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돕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세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였을 때에 대해 존 에이 윗소 장로님은 “우리는 그 자리에서 즉시 인류의 가족 전체를 위한 구세주가 되는 것에 동의했다.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단지 아버지와 구세주의 일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이 되었다.”(유타 계보와 역사 잡지, 1934년 10월호, 189쪽)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곳에서 침례 받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결심과 성약을 새롭게 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께서 “만약 세상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면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세계 역사상 어떤 사람들도 우리가 받은 것보다 더 강력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으며 우리는 이일에 착수해야 합니다.”(“교회는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처치 뉴스, 1999년 7월 3일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언자 요셉은 상호부조회에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교회 정사 5:25 참조) 잃어 버린 자들을 찾고 돌보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펜서 더블류 킴볼 대관장님께서는 상호부조회가 가진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힘이 아직 완전히 발휘되지 않았다고 슬퍼하셨습니다.(“상호부조회 — 그 미래와 잠재력” 엔사인, 1976년 3월호 4쪽) 상호부조회는 지금까지 많은 선한 업적을 쌓았지만, 이 말일의 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더 전진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여성 가운데 의로운 행복의 권세가 풀릴 때가 왔습니다. 영혼을 구하는 일에 우리가 열성적으로 종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상호부조회 자매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예언자와 함께 예언자를 위해 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 각자가 당당히 함께 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당당하게 서는 것은 우리 자신의 개심에서 시작됩니다. 복음의 “무한한 기쁨”(앨마서 36:24)을 맛볼 때 그것을 나누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우리가 음식과 이불을 만드는 것은 훌륭하고도 친절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어떤 봉사도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봉사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하고 싶습니까? 제 말씀은 진정한 행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성전과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우십시오.

복음을 나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복음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살아야 하는 방식대로 생활할 때, 단지 선할 뿐만 아니라 선하게 되어서 행복할 때, 예언자가 예언하신 대로,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행복한 방식에서 독특하고 남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로 이끌릴 것입니다.(의로운 여성의 역할, 엔사인, 1979년 11월호, 104쪽) 우리가 선택한 생활을 기뻐하고, 세상의 형상을 좇아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바꾸지 않는 것을 기뻐하며, “성신의 은사와 권세”(니파이일서 13:37)를 갖고 있는 것을 기뻐하고, 우리가 두드러지도록 당당하게 서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간증을 강화하거나 또는 다른 누군가의 간증이 강화되도록 도울 때마다 하나님의 왕국은 강화되며 시온에는 그 거룩함과 아름다움이 더해집니다. 우리가 새로 침례 받은 자매를 바른 길로 이끌 때마다, 방황하는 영혼에게 비판하지 않고 친구가 되어 줄 때마다, 가정의 밤에 비회원 친구를 초대할 때마다, 동료에게 몰몬경을 줄 때마다, 어떤 가족을 성전으로 이끌 때마다, 정숙함과 모성을 지킬 때마다, 우리 가정에 선교사들을 초대할 때마다, 말씀의 권세를 알도록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제 여동생이 태너가 죽기 직전 기록한 일지의 머릿글을 읽었을 때, 그녀의 영이 얼마나 고양되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엄마, 아빠,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주님의 자녀를 기르는 것보다 왕국을 더 잘 건설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왕국 건설을 돕기 위해, 전임 선교사들을 제외하고는 이름표를 달거나 가가 호호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역동적이고, 빛나는 여성으로서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다스림 받는 여성으로 묘사할지 모르겠으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기뻐하는 하나님의 여성들보다 더 설득력 있는 여성은 없으며, 더 크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여성도 없으며,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주님의 도구도 없습니다. 저는 우리를 주님의 비밀 무기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름표를 단다면, 저는 제 이름표에 이렇게 쓸 것입니다. “셰리 듀,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기에 여념이 없는 하나님의 여성”

만약 매일 아침 우리 4,500만 명이 무릎을 꿇고 우리 아버지께 그날 우리가 누구에게로 손길을 뻗쳐야 하겠는지 여쭈어 본다면 이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의 힘과 관심의 초점을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봉사, 즉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일에 맞춘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상호부조회 자매들을 모아서 왕국 건설을 돕기 위해 함께 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잠자고 고개 숙이고 있던 거인들이 깨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께 당당하게 서서 낫을 들고 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실 것을 요청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왕국 건설에 재헌납 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방황하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치시도록, 여러분의 날개 아래 새로운 회원을 모으시도록, 여러분의 남편과 함께 선교사로 봉사하는 것을 고려하시도록, 선교 사업의 기회를 찾고 이를 위해 기도하시도록, 누군가의 인생에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시도록, 시온에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영광을 더하시도록 권유드립니다. 우리 중 아무도 모든 사람에게 손을 뻗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번 달에 한 사람에게 다음 달에는 또 다른 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손을 내민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힝클리 대관장님은 우리에게 “이 사업에 대한 열의를 가진 거대한 군대가 되라”(양을 찾고 먹이라, 리아호나, 1999년 7월호, 118쪽)고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에 유래 없었던, 선을 위한 막강한 군대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하나님의 여성들이고, 상호부조회 자매들의 사업은 항상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도록 돕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전보다도 더욱 많이 신권 지도자들을 도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 조카 태너는 죽기 바로 몇 시간 전에, 그의 신권 정원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곧 죽을 거라면, 제 장례식을 선교사 환송 모임으로 해주세요.” 오늘 밤 저의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여성으로서 우리의 사명에 관한 명확한 이해를 똑같이 가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우리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참 좋은 사상들을 가르치는 그저 참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권세를 부여 받았고, 그분의 진리를 세상 끝까지 전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입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모든 것이 그분들의 사업이요 영광이며, 우리는 모든 여성들 중에 가장 축복 받은 여성으로서 그 일에서 가장 활기찬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팔 소리같이 목소리를 높”(교리와 성약 42:6) 이기를 바랍니다. 당당히 함께 섬으로써 기쁨을 찾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만사를 기쁨으로 행하”(교리와 성약 123:17)고 그분의 팔이 펼쳐져 하나님의 사업이 “모든 나라를 휩쓸고, 모든 귀에 울려 마침내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위대한 여호와께서 다 이루었도다 라고 말씀하실”(교회 정사, 4:540) 때까지 담대하고 고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굳건히 서서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