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네 발이 행할 길을 헤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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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네 발이 행할 길을 헤아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를 때, 우리는 안전하게 돌아가서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아침 여러분 앞에 서니 겸손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저를 위해 여러분의 신앙으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영의 세계를 떠나 종종 어려움에 직면할 이 필멸의 삶이라는 무대로 들어섬으로써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 경이로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지상에 거하는 주된 목적은 살과 뼈로 된 육신을 얻고, 하늘 부모에게서 떨어져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하며, 우리가 계명을 지킬 수 있는지를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서 3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그들을 시험하여 주 그들의 하나님이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들이 다 행하는지를 보리라.”1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은사인 선택의지를 지니고 이 지상에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방법으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혹독한 교사와도 같은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우리는 선악을 분별하고, 인생의 고락을 알게 되며, 결정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셨고 또한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승영을 얻겠다는 크나큰 소망을 안고 그분을 떠나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가야 하지만, 그분은 아무런 방향과 지침도 없이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도구를 주셨으며, 또한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구하고 끝까지 견디며 영생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그분 아들의 말씀이 나오는 거룩한 경전이 있기에 그런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주는 권고와 가르침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완전한 모범이 되시는, 우리의 주님이자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우리는 그 모범을 따르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2 “너희가 본 바, 나의 하는 일 그것을 너희도 하여야 할 것임이니라.”3 그분은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라고 물으시고,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은 자라야 하느니라.”4라고 답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시려고 길[을] 예비하셨[습니다.]”5

예수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를 때, 우리는 안전하게 돌아가서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선지자 니파이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본을 따르며 끝까지 견디지 아니할진대 구원받을 수 없도다.”6

성지를 방문했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마다 “예수님이 걸으신 곳을 저도 걸었어요!” 하고 외치는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생활하고 가르침을 주시던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예수께서 한때 올라서셨던 바위 위에 서 봤거나 예수께서 한때 응시하셨던 산맥을 바라봤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에게는 그런 경험 자체가 감격스러웠을 테지만, 예수께서 걸으셨던 을 실제로 걷는 것은 그분이 행하신 대로 행하는 일보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행위를 본받고 모범을 따르는 일이 그분이 필멸의 삶 동안 걸으신 길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한 부자에게 “와서 나를 따르라”7고 하신 것은 단지 시골 지역의 언덕과 계곡을 오르내리며 뒤를 따라오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걸으신 길을 가기 위해 갈리리 해변이나 유대 언덕을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귓가에 울리고 그분의 영이 우리 마음을 채울 때, 그분의 가르침이 삶의 지침이 되고 필멸의 삶이라는 여정 동안 그분을 따를 때,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은 그 길을 환하게 비춥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8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살펴보면, 우리가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그분도 똑같이 경험하셨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실망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여러 번 낙심하셨으나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예루살렘에서의 성역을 마치시며 한탄하셨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날개로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려는 주님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폐허로 버려질 그 성을 바라보며 깊은 슬픔에 잠기셨습니다. 그분은 괴로움 속에서 외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9

예수님은 유혹의 길도 걸으셨습니다. 사악한 루시퍼는 안간힘을 다해 가장 호소력 있는 궤변으로 사십 일 밤낮을 금식하신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든 유혹을 물리치시고 “사탄아 물러가라”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고통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곳에서 주님이 “ 힘쓰고 애[쓰실 때] ……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11 어느 누구도 주님이 잔인한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고통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도 모두 실망의 길을 걸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기회를 잃거나 능력을 오용했다거나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선택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유혹의 길도 경험할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 29편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또 악마가 사람의 자녀들을 유혹함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들은 스스로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자가 될 수 없나니”12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의 길도 걸을 것입니다. 종인 우리는 주인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이신 그분은 큰 아픔과 고통만 겪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쓰라린 슬픔도 있지만, 커다란 행복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항상 쉽지는 않겠지만 사무엘이 남겨 준 유산을 좌우명으로 삼읍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13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 사로잡혀 사망에 이르겠지만, 순종하면 자유와 영생을 보상으로 얻는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봉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서 성역을 베푸신 예수님의 생애는 길을 환히 밝혀 주는 선량함의 등댓불과도 같습니다. 그분은 걷지 못하는 이의 다리에 힘을, 보지 못하는 이의 눈에 시력을, 듣지 못하는 이의 귀에 청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분은 주기도문이라는 아름다운 기도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다음 기도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14

구주께서 주신 더 많은 가르침은 우리의 손끝으로 펼쳐 볼 수 있는 거룩한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우리에게 자비롭고, 겸손하고, 의롭고, 마음이 청결하며,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조롱을 당하고 박해를 받더라도 용감하게 우리의 믿음을 수호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빛을 발하여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생각과 행위에서 도덕적으로 청결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시며,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15

주님은 권능과 권세가 담긴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는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할 것을 가르치시며16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자신을 발전시키고 온전해지기 위해 노력하라고 가르치십니다.17 그리고 잃어버린 양의 비유로는 길에서 벗어나 헤매는 사람들을 구조하라고 가르치십니다.18

그리스도의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침을 따르며, 그분이 걸으신 길을 걸음으로써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두고자 노력할 때, 그분은 자신의 죽음으로 얻은 영생을 우리와 함께 나누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제자가 되며, 살아가는 동안 그분의 일을 행하겠다고 선택하는 것보다 더 높은 목표는 없습니다. 이 외에 다른 어떤 선택도 그분이 만들어 주실 수 있는 존재로 우리를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구주의 모범을 따르려고 진정으로 노력하며 예수님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저는 구스타프와 마가리트 바커 부부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두 분은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독일 태생인 그 부부는 캐나다 동부로 이주해 살았는데, 제가 거기서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알게 되었습니다. 바커 형제님은 이발사였습니다.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그 부부는 가진 것을 모두 다른 사람들과 나눴습니다. 자녀를 얻는 축복은 받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집에 오는 모든 사람을 돌봐 주었습니다. 학식과 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이 글을 모르는 겸손한 하나님의 종들을 찾아가 단 한 시간이라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면, 그것을 행운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외모가 평범했고, 영어는 서툴러서 알아듣기 쉽지 않았으며, 집도 소박했습니다. 자동차도 텔레비전도 없었고, 세상 사람들이 주로 관심 쏟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심 깊은 사람들은 그 집에 깃든 영을 느끼고자 그들을 자주 찾아갔습니다. 그 가정은 지상의 천국이었고, 그들에게는 지극히 평화롭고 선한 영이 감돌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영을 지닐 수 있으며, 구주의 길을 걷고 그분의 완전한 모범을 따를 때 그런 영을 세상 사람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잠언에는 “네 발이 행할 길을 [헤아리라]”19는 권고가 나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신앙만이 아니라 예수께서 걸으신 길을 걷고자 하는 소망도 생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길을 따라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구주의 모범이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바탕이 되고, 그분의 말씀은 견고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길은 우리를 본향으로 안전하게 이끌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제가 사랑하고 섬기며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