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현명하게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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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게 선택하십시오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하라]”(이사야 7:15)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저녁 저는 선택과 결정에 관한 몇 가지 권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 변호사로 일했는데 제 회사가 그 당시 공휴일 TV 특집 프로그램인 찰리 브라운(Charlie Brown)1의 제작사에서 법률 업무를 맡았습니다. 저는 찰스 슐츠와 그가 만든 단편 만화 피너츠(Peanuts)의 팬이 되었는데, 거기에는 찰리 브라운, 루시, 스누피 등의 멋진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제가 좋아했던 만화 연작 중 하나에는 루시가 나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만화에서 찰리 브라운의 야구 팀은 중요한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루시는 우익수로 뛰고 있었는데, 높이 뜬 공이 그녀 쪽을 향했습니다. 9회말 만루 상황이어서, 루시가 공을 잡는다면 루시의 팀이 이기고, 떨어뜨린다면 상대팀이 이길 것이었습니다.

그때 만화에서만 가능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이 내려오는 동안 팀 전체가 루시를 에워쌌던 것입니다. 루시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공을 잡으면 영웅이 되고 잡지 못하면 놀림감이 되겠지.’

공은 낙하하고, 팀원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루시는 공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찰리 브라운은 넌더리를 내며 글러브를 바닥에 내던졌습니다. 그때 루시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말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외교 정책을 걱정하고 있는데, 나보고 어떻게 그 공을 잡으라는 거야?”

사실 루시는 여러 해 동안 날아오는 공을 수도 없이 놓쳐 왔고 그날도 그런 경우 중 하나였던 것인데, 그때마다 그녀는 매번 새로운 변명을 해 댔습니다.2 루시의 변명은 언제나 익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합리화였으며, 공을 잡지 못한 진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성역을 베푸시며 자주 운명을 결정짓는 결정들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3 그에 발맞추어, 오늘 저녁 저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과 관련된 의로운 결정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되는, 합리화를 초월하라는 권고를 드리려 합니다. 이사야는 우리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해야]”4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탄이 새롭고도 교활한 수많은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들쑤시는 우리 시대에는 특히 우리 스스로 공언하는 인생 목표와 목적에 맞는 선택과 결정을 신중하고도 일관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계명을 분명하게 지키고 성스러운 성약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합니다. 합리화는 성전 엔다우먼트, 합당한 선교 사업, 성전 결혼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기에 우리에게 특히 해롭습니다. 우리가 이런 목표에 대한 신념을 공언하면서도 이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일상의 행위를 경시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5

일부 젊은이들은 자신의 목표가 성전에서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성전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과 데이트를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일부 젊은이들은 데이트조차 하지 않습니다. 독신 남성 여러분, 적절한 연령과 성숙기가 지나면, 독신 생활이 길어질수록 그런 생활이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혼 생활이 더 불편해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부디, 성전 결혼이라는 여러분의 목표에 맞게 영적 활동과 사교 활동에 “열심히 노력하여”6 주시기 바랍니다.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널리 용인되는 세상이지만, 그런 논법은 신앙을 나타내는 것도, 현대 선지자들의 권고를 따르는 것도 아니며, 정통 교리와도 모순됩니다.

저는 최근에 멋진 청남 한 명을 만났습니다. 그의 목표는 선교 사업을 하고, 학업을 계속하고, 성전에서 결혼하고, 충실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목표에 제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가 하는 행위와 선택이 그 목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 청남은 정말로 선교 사업을 나가고 싶어 하고 선교 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심각한 범법은 피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가 매일 하는 행동은 그가 겪게 될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지적, 영적 도전에 대비하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7 그는 근면하게 생활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며, 학업이나 세미나리에도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참석했으나 몰몬경은 읽지 않았습니다. 많은 시간을 비디오 게임과 소셜 미디어에 쏟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선교 사업만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우리의 주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자가 되기 위해 합당하게 행동하고 진지하게 준비하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해 주십시오.

저는 인생을 좌우하는 굵직한 결정뿐만 아니라 중간쯤 되는 것들, 즉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실사회와 평범해 보이는 결정들에 대해서도 염려합니다. 이런 분야에서 우리는 절제와 균형, 특히 지혜를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합리화를 뛰어 넘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제와 균형, 지혜가 필요한 좋은 예로는 인터넷 사용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선교 사업을 하고, 신권 책임을 보조하고, 성스러운 성전 의식을 위해 소중한 조상들을 찾는 등 많은 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선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또한 외설물과 온라인상의 학대, 익명으로 떠도는 소문을 포함하여 사악한 것을 대량으로 전파할 수 있습니다.8 그리고 인터넷은 끊임없이 어리석은 일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지난 연차 대회에서 랜들 엘 리드 형제님이 가르치셨듯이 인터넷에 대해 말하자면 “[여러분은] 시간을 낭비하고 …… 잠재력을 감소시키는 하찮은 일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9

의로움에 반대하고 주의를 흩트리게 하는 것들은 인터넷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것들은 청소년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동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10 우리는 “재미와 놀이”에 대한 광적인 묘사와 부도덕하고 역기능적인 삶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이런 것들을 정상적인 행위로 표현합니다.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님은 최근에 회원들에게 소셜 미디어를 사용할 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라고 경고하셨습니다.11 선구자적인 저명한 사상가 아서 시 브룩스는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소셜 미디어를 사용할 때 우리 삶의 밝은 면은 세세히 알리지만 학교나 직장에서 힘들었던 때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삶을 때로 과장하거나 허위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이런 삶을 공유한 뒤, “소셜 미디어 ‘친구들’의 거의 완벽한 …… 가짜 삶”에 시간을 소모합니다. 브룩스는 이렇게 역설합니다. “우리의 시간 일부를 자신이 실제보다 더 행복한 척하는 데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얼마나 더 행복해 보이는가를 알아보는 데 소비한다면, 비참해지는 기분에 젖어 드는 일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12

때로는 우리가 하찮은 어리석음과 무의미한 소음, 끊임없는 논쟁으로 익사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소리를 낮추고 실체를 검사해 보면, 의로운 목표들을 영원히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한 아버지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하게 해 달라고 조르는 자녀들에게 현명하게 응수했습니다. 그는 그저 이렇게 되묻습니다. “이것이 너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까?”

크든 작든 회복된 복음에 맞지 않는 잘못된 선택을 합리화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축복과 보호를 잃게 되며 흔히 죄에 빠지거나 방향을 잃게 됩니다.

저는 어리석음13과 “모든 새로운 것”에 사로잡히는 것을 특히 염려합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모든 종류의 진리와 지식을 장려하고 칭송합니다. 하지만 문화와 지식, 사회적 관행이 하나님의 행복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필수적인 역할로부터 동떨어져 있을 때는 사회의 분열을 피할 수 없습니다.14 우리 시대에 여러 분야, 특히 과학과 통신 분야에서 전례 없는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기본 가치들은 쇠퇴했으며 전반적인 행복과 복지는 감소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설교 요청을 받았을 때, 그는 오늘날에도 나타나는 현상인 참된 지혜의 부재와 지적 허세를 알아보았습니다.15 사도행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16 바울이 강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그의 메시지에 담긴 종교적 성격을 깨닫자 군중의 일부는 그를 조롱했으며, 그 외 사람들은 “네 말을 다시 듣겠다”17는 말로 사실상 그의 이야기를 묵살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성공도 거두지 못한 채 아덴을 떠났습니다. 딘 프레데릭 파라는 그 방문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아덴에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고, 아덴 사람들에게 어떤 서한도 보내지 않았으며, 종종 아덴 주변을 지나가더라도 결코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18

저는 “좋은 것,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구분하는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님의 영감 어린 메시지가 선택과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19 많은 선택이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모든 시간을 빼앗고 가장 좋은 선택들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가치 있는 시도들조차도, 그것이 가장 좋은 목표들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흩트리게 하지는 않는지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십 대 시절에 부친과 함께 잊지 못할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이들이 직업과 가족 부양 등과 같은 중요한 장기 목표들에 충분히 집중하지도, 준비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의미 있는 공부와 예비 업무 경험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권하신 우선순위의 상위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토론회와 학생회 같은 과외 활동이 저의 중요한 목표 몇 가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리라는 점은 인정하셨지만, 제가 미식축구, 농구, 야구, 육상경기에 참가하느라 보낸 엄청난 시간에 대해서는 그다지 확신을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운동경기가 힘과 지구력과 단합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셨지만, 한 가지 운동경기에 집중하면서 좀 더 짧은 시간을 쓰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관점에서 보면, 저에게 운동경기는 좋은 것이지만, 가장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지역에서 명성을 쌓는 몇몇 운동경기에 치중한 나머지 더 중요한 장기 목표를 희생할까 봐 염려하셨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저는 루시의 야구 일화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공 잡는 일 대신 외교 정책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제 아버지와 루시의 팀의 생각은 완전히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는 운동경기를 매우 좋아하셨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뛰는 경기를 놓치는 경우는 오직 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뿐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대학에 들어가면 대학간의 운동경기는 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미식축구 감독님께서 저에게 스탠퍼드 대학교 미식축구 감독이 멀린 올슨과 저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젊은 분들은 멀린을 모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미국을 통틀어서도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수비수로 로건 고등학교 소속이었는데, 저도 같은 팀에서 쿼터백과 세이프티(미식축구 포지션 이름-옮긴이)로 뛰었고, 킥오프 리턴과 펀트 리턴(미식축구 작전-옮긴이)도 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당시에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미식축구 팀에서 멀린을 영입하려 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멀린은 전미 최고의 인테리어 라인맨으로 뽑혀 아웃랜드 트로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전미 미식축구연맹의 선수 선발에서 세 번째로 지명을 받았으며, 놀랍게도 프로 볼(pro bowl: 미식 축구 경기. 슈퍼볼이 끝난 후, 각 컨퍼런스의 우수한 선수들을 선발해 경기를 펼친다.-옮긴이)에 연이어 14번이나 출전했습니다. 그는 1982년에 프로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입회되었습니다.20

스탠퍼드 대학교 감독과의 점심식사는 유타 주 로건에 있는 블루버드 레스토랑에서 있었습니다. 악수를 나눈 후, 그는 저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멀린에게만 이야기하고 저는 무시했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처음으로 그는 저에게로 몸을 돌렸으나 제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멀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스탠퍼드를 선택해서 저 친구를 데려오고자 한다면 저 친구 성적이 아주 좋아야 하네. 그러면 주선을 해 줄 수도 있지.” 그 일로 저는 아버지의 현명한 권고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 말의 취지는 운동경기나 인터넷, 그밖에 기타 젊은이들이 즐기는 가치 있는 활동들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절제와 균형, 지혜가 요구되는 활동들입니다. 현명하게 이용할 때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저는 노소를 막론한 여러분 모두에게 목표와 목적을 다시 점검해 보고 좀 더 절제력을 발휘하고자 노력하시도록 권합니다. 우리의 일상 행위와 선택은 우리의 목표와 일치해야 합니다. 합리화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의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겠다는 우리의 성약에 일치하는 선택들을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21 우리는 어떤 이유로든 그 공에서 시선을 떼거나 공을 떨어뜨려서는 안 됩니다.

이생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입니다.22 우리는 행복하고 기쁨에 넘치는 백성입니다. 훌륭한 유머 감각에 감탄하고 친구 및 가족과 함께 격의 없이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 중대한 목적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진보를 제한하는 합리화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은 몹시 해롭기도 하지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감소시킨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비극입니다.

신권 소유자로 이루어진 단체로서 우리의 행위가 구주를 섬기는 이에게 요구되는 고귀한 목적들에 일치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것에서 우리는, “예수에 대한 간증에 용감[한]” 것이 해의 왕국과 달의 왕국을 나누는 커다란 시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23 우리는 그 분기점에서 해의 왕국 쪽에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도 중 한 사람으로서 저는 속죄의 실재성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온 마음을 다해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