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자녀의 복음 교육에서 주된 교사: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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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복음 교육에서 주된 교사: 부모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이상적인 터전은 바로 가정입니다.

벤 카슨은 자신이 “5학년 전체에서 가장 형편없는 학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루는 수학 시험을 봤는데, 30문항이 출제되었습니다. 뒤에 앉은 학생이 오답을 수정하고 채점을 한 후 시험지를 돌려 주었습니다. 윌리엄슨 선생님은 각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점수를 말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던 벤은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윌리엄슨 선생님은 벤이 “아홉 개”라 말한 것으로 생각하고는 벤이 30문제 중 아홉 개를 맞혔다니 실력이 꽤 좋아졌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학생이 “아홉 개가 아니라 아무것도 못 맞혔다고요. 빵점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벤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에 벤의 어머니인 소냐도 큰 어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23명이나 되는 친형제자매 사이에서 자라 교육이라고는 3년밖에 못 받았고, 글도 몰랐습니다. 13살에 결혼했다 이혼한 후 아들 둘을 데리고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소냐는 자립심이 투철했고, 가족이 스스로 해야 할 몫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도와주시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냐와 두 아들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소냐는 가정집에서 청소 일을 했는데, 그러면서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서재가 있고 그곳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들이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끄며 말했습니다. “너희는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고 있구나. 이제부터는 일주일에 프로그램을 세 개 이상 보아서는 안 돼. 나머지 시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데, 일주일에 두 권씩 읽고, 독후감을 써서 엄마에게 가져 오너라.”

두 소년은 깜짝 놀랐습니다. 벤은 학교에서 시킬 때를 빼고는 책을 읽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징징대고 불평하면서 떼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벤은 그날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규칙을 세우셨어요. 저는 그게 싫었지만,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단호한 결심이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죠.”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7학년 때 벤은 반에서 1등을 했습니다. 그는 계속 학업에 정진해서 장학생으로 예일대학교에 입학하고, 그 후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며, 33세에 소아신경외과 과장이 되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인생에서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었지만, 부모 본연의 임무를 영화롭게 했던 그의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1

경전에는 부모의 역할과 관련하여, “회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그리고 침례와 안수에 의한 성신의 은사의 교리”(교리와 성약 68:25)를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나옵니다.

부모인 우리는 자녀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주된 교사이자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감독, 주일학교 교사, 청남 청녀 회장이 아니라 바로 부모가 첫째 가는 교사이자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주된 교사로서 우리는 속죄의 권능과 실재성을,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과 신성한 운명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삶에 토대가 될 굳건한 반석을 제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이상적인 터전은 바로 가정입니다.

1년 전에 저는 교회의 임무 수행 차 레바논 베이루트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새라라는 12살 난 소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새라의 부모님과 두 오빠는 루마니아에서 교회로 개종했지만, 새라가 7살이던 해에 그 가족은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고국에는 교회가 없어서 아무런 조직도, 주일학교도, 청녀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5년 후에 이 가족은 베이루트에 지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2살이 된 새라가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오빠들과 함께 베이루트로 보냈습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하기 직전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구원의 계획을 주제로 영적 말씀을 전했습니다. 새라는 간간히 손을 들고 몇몇 질문에 대해 대답을 했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에, 저는 새라가 교회 모임에 참석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듣고서 다가가 물었습니다. “새라, 그럼 그 질문들에 대해 네가 대답했던 내용들은 어떻게 알았던 거지?” 새라는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어요.” 그들이 사는 곳에 교회는 없었지만, 그 가정에는 복음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새라에게 주된 복음 교사였던 것입니다.

이노스는 “내가 종종 들었던 바 나의 부친이 영생과 성도들의 기쁨에 관하여 하시던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느니라”(이노스서 1:3)라고 말했습니다. 이노스에게 주된 복음 교사가 누구였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께서 벽난로 옆에 편히 앉아 경전과 다른 양서를 읽으시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저도 그 옆에 있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셔츠 앞 주머니에 카드 몇 장을 넣어 두시던 것도 기억하는데, 거기에는 아버지가 암기하고 배우려 하시던 성구와 셰익스피어의 인용구, 새로운 단어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복음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던 일도 기억납니다.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연로한 분들을 방문했던 기억도 많습니다. 어떤 때는 아이스크림을, 또 어떤 때는 저녁거리로 닭을 가져간 적도 있었고, 아버지가 누군가와 악수를 하시며 그 손에 약간의 돈을 쥐어 주셨던 장면도 생각납니다. 그때 느낀 기분 좋은 느낌과 나중에 크면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던 제 마음도 기억납니다.

어머니께서 아흔 살쯤 되셨을 때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쟁반 가득 들고 나오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어디에 가시는 거냐고 여쭈자 어머니는 “나이 드신 분들한테 조금 갖다 드려야겠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도 나이가 많으신데요.’ 저의 첫째 가는 복음 교사셨던 부모님께 그 어떤 말로도 감사를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뜻 깊은 일 가운데 하나는 기도의 힘을 자녀에게 가르쳐 주는 것인데, 그건 판에 박힌 그런 기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살 때, 저는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저녁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몰랐지만, 어머니께서 복도에 와 계셨습니다. 제가 기도를 마치자 어머니는 “태드, 좋은 아내를 찾도록 도와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에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오직 야구와 학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니요.”라고 대답하자 어머니는 “얘야, 그것에 대해 기도해야 한단다. 네가 앞으로 인생에서 내리게 될 가장 중요한 결정이잖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했고, 그 후 6년에 걸쳐 좋은 아내를 찾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확실하게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자녀에게 영원한 결과를 낳는 것들에 대해 기도하도록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주 혼탁한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순종하고, 옳은 것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힘을 간구하라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 대다수가 저녁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아마도 개인적으로 아침 기도 습관을 들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인 우리는 그들의 주된 복음 교사로서 이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몰몬경 시대의 어느 부모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전쟁터로 아들들을 내보낼 때, 가슴판과 방패와 검도 없이 가도록 내버려 두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중에는 자녀를 기도의 보호하는 힘에서 오는 영적인 가슴판과 방패와 검 없이 매일 아침 현관을 나가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가도록, 그렇게 사탄과 그가 만든 수많은 유혹과 싸움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께서는 사탄을 이길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라”(교리와 성약 10: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아침 기도의 습관이 배고 힘이 스며들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할 것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소냐 카슨처럼 결연한 태도로 단호하면서도 사랑을 담아 대개 자녀의 생활을 독차지하는 텔레비전 및 기타 전자 기기 이용 시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신에 자녀가 복음에 중심을 둔,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저항도 하고 불평도 하겠지만, 소냐 카슨처럼 우리도 비전을 갖고 초지일관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자녀도 우리가 했던 일들을 이해하고 감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자문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영적, 지적,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모든 것을 교회 부름이나 직장에 쏟아붓고 남은 자투리 시간과 재능만 주고 있는가?’ 내세에서 감독이나 상호부조회 회장과 같은 칭호가 계속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칭호는 끝이 없는 세상에서도 계속 공경을 받을 것임을 압니다. 바로 그 점이 이곳 지상에서 우리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영화롭게 해야 할 지극히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가올 세상에서 받게 될 책임, 지금과 비슷하면서도 더 큰 책임을 위해 준비할 수 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성한 도움을 마련하지 않으신 채로 책임을 주시는 법이 절대 없으십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 간증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의 신성한 역할과 하나님과의 협력 관계에서 자녀에게 첫째 가는 복음 교사와 본보기가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