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28장”, 『경전 도움말: 신약전서』(2024)
경전 도움말
사도행전 22~28장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의 종교 지도자 및 정부 지도자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연설을 다섯 차례나 했다. 이 연설들은 바울이 열왕 앞에서 증언하게 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다. 그중 두 번의 연설에서 바울은 자신의 개종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서 두 번이나 자신에게 나타나셨다는 간증도 전했다. 바울은 로마 여행을 통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했다.
자료
참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출판하지 않은 자료를 주석에 인용했다고 해서, 교회가 해당 자료나 저자를 승인했다거나 해당 자료나 저자가 교회의 공식 입장을 대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배경과 맥락
바울이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채찍질을 당하게 되자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며 항의했다. 로마 시민권에는 재판 없이는 채찍질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은 중요한 특권이 있었다.
“도”란 무엇이었는가?
이 구절에서 누가는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을 ‘도(길)’라고 불렀다.” “길”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내가 곧 길이요”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벨릭스와 베스도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벨릭스가 로마 총독으로 통치했던 시기는 잔인함으로 얼룩져 있다. 그는 결국 “의심스러운 행정 관행”으로 공직에서 해임되었다. 벨릭스는 돈을 갈취할 생각으로 바울을 2년간이나 구류하였다. 그는 또한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둠으로써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도 했다. 벨릭스의 후계자인 보르기오 베스도는 바울보다 유대인들에게 더 많은 동정심을 보였다.
바울은 왜 가이사에게 상소했는가?
바울은 베스도가 원하는 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재판을 받는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대신 가이사에게 상소하기로 했다. 바울에게는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에 있는 가이사 앞에서 직접 재판을 받도록 상소할 권리가 있었다.
헤롯 아그립바 이세는 누구였는가?
헤롯 아그립바 이세(마르쿠스 율리우스 아그립바로도 불림)는 유대인을 통치했던 헤롯 왕조의 일곱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이었다. 그는 주후 53년경부터 93년까지 갈릴리 바다 북동쪽 지역을 통치했다. 그는 헤롯 아그립바 일세의 아들이었는데, 아그립바 일세는 야고보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던 인물이었다. 헤롯 아그립바 이세는 침례 요한의 목을 베었던 헤롯 안디바스의 손자였으며,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학살하도록 명령한 헤롯 대왕의 증손자이기도 했다.
헤롯 아그립바 이세의 왕국은 베스도의 영토 북쪽에 있었다. 아그립바와 그의 누이인 버니게가 가이사랴에 있는 베스도를 찾아왔을 당시에 바울은 그곳에 수감되어 있었다. 아그립바는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의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가 자신에게 바울이 고발당한 일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고, 가이사에게 보내는 편지 초안 작성을 도와주기를 바랐다.
바울의 시현에 대한 여러 기사는 서로 무엇이 다른가?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이후에는 가이사랴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시현을 이야기했다. 사도행전에는 이 시현과 관련된 기사가 여러 가지 나오는데, 각각의 기록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빛이 묘사되는 방식은 각 기록이 다 다르다. 단 한 기록에만 아나니아가 안수로 바울의 시력을 고쳤다고 나와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바울의 친구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이러한 차이점은 바울이 서로 다른 이유로 여러 청중에게 이 사건을 다시 이야기했기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이야기하면서 세 가지 다른 기록에 있는 세부 내용을 하나로 합쳤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 나중에 아나니아가 자기에게 말한 것,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시현으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야기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첫번째 시현에 관해서도 여러 개의 기록이 존재한다. 그러나 바울의 시현과 마찬가지로, 첫번째 시현에 대한 기록들 간에 차이가 있다고 해서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시현을 보았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을 설득했는가?
바울이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서 변론한 것을 보면 바울이 가르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도 모세를 포함한 모든 선지자가 가르친 것, 곧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만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왕에게 선지자들을 믿느냐고 담대하게 물었다. 아그립바는 바울의 질문에 답하기를 회피했다. “흠정역 성경에 사용된 사본 외의 여러 사본에도 아그립바의 말은 ‘나를 그렇게 빨리 개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느냐?’로 번역되어 있다.” 베스도와 아그립바는 바울이 사형이나 투옥을 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바울이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라고 말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바울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과 부활에 대해 간증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이 일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울이 증거한 것은 은밀히 행해진 일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으며 많은 사람이 목격한 일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금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금식”은 속죄일을 의미하는 듯하다. 속죄일은 보통 9월 하순이나 10월 초순에 있었다. 이 시기는 위험한 폭풍으로 인해 지중해를 여행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알려진 계절이 시작되는 때였다.
바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떻게 알았는가?
바울은 자신을 태우고 로마로 가는 배에 닥칠 위험을 예견했다. 그는 또한 그들이 배에 머무는 한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바울이 선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예를 보여 준다. 몰몬경에는 선견자가 감추어진 일을 비롯해 지난 일과 장차 올 일을 알 수 있다고 가르치는 내용이 나와 있다.
“유라굴로”란 무엇인가?
바울은 선원들에게 그레데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미항”이라 불리는 곳에 남도록 권했으나, 그들은 바울의 권고를 거절했다. 출항한 배는 흠정역 성경에서 “유라굴로”로 묘사되는 폭풍우를 만났다. 다른 번역에서는 이를 북동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폭풍은 생명을 위협하는 허리케인급의 강풍을 동반한 격렬한 지중해성 폭풍이다.
바울이 난파된 곳의 주민들은 누구였는가?
승선한 사람들은 멜리데 또는 말다라고 알려진 섬에서 구조되었다. 흠정역 성경에서 그 섬 주민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원주민”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야만인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야만인이라기보다는 그리스인이 아닌,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로마에서 겪은 일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한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였을 것이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했던 것처럼,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구전으로는 바울이 가택 연금 상태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디모데후서, 빌레몬서와 같이 “옥중 서한”이라고 불리는 서한들을 썼다고 한다. 그는 로마에서 2년을 가택 연금 상태로 보냈다. 이후에 바울은 로마에서 다시 투옥되기 전에 아시아, 그리스에서 성역을 행했으며, 아마 스페인에서도 성역을 행한 것으로 보인다. 구전에 따르면, 그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주후 64~68년 사이에 죽임을 당했다.
더 알아보기
선지자는 선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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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알 홀런드, “그 땅에 다시 선지자들이”,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104~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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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및 질문, “선지자”, 복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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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엘 듀, “Prophets Can See around Corners”(브리검 영 대학교–하와이 영적 모임, 2202년 11월 2일), speeches.byuh.edu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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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이 코브리지, “길”,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34~36쪽
미디어
동영상
“다메섹으로 가는 길”(5:20)
“기운을 내라”(1:31)
이미지
바울의 체포, 사이먼 하먼 베더
사도 바울의 재판, 니콜라이 보다레프스키
사도 바울, 제프 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