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
5 숨 막히게 무거운 마음


“숨 막히게 무거운 마음”,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2권, 그 어떤 신성하지 않은 손도, 1846~1893년』(2019) 제5장

제5장: “숨 막히게 무거운 마음”

제5장

숨 막히게 무거운 마음

이미지
거대한 바위

1847년 여름, 제인 매닝 제임스는 남편 아이잭과 자신의 두 아들, 실베스터와 사일러스와 함께 1,500명가량의 성도들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우마차 행렬 속에서 서부로 이동했다. 팔리 프랫과 존 테일러 두 사도가 이들을 인도했고, 150명에서 200명 정도의 성도들로 이루어진 부대들을 감독하는 몇몇 부장들이 두 사도를 도왔다. 팔리와 존은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세웠던 원래의 이주 계획을 수정하기로 결정한 후 늦은 봄에 이 무리를 조직했었다.

이들은 선발대가 떠난 지 두 달가량 지난 6월 중순에 윈터쿼터스를 출발했다.1 제인은 아직 이십 대에 불과했지만, 장거리 육로 여행에 이골이 나 있었다. 제인은 1843년에 아마도 피부색 때문이었던 듯한 이유로 운하선 탑승을 거절당한 후, 흑인 후기 성도들과 작은 무리를 지어서 뉴욕주 서부에서부터 나부까지 거의 1,300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했다. 나중에 제인과 아이잭은 이스라엘 진영과 함께 아이오와주의 진흙탕 평원을 걸어서 횡단했다. 당시 제인은 임신한 몸으로 그 길의 대부분을 걸었고, 그 여정 중에 아들 사일러스를 출산했다.2

육로 여행 중에는 좀처럼 흥미진진한 일이 없었다. 길고 피로한 나날이 계속되었고, 평원의 경치는 보통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특이한 모양의 바위나 들소 떼가 시야에 들어올 때는 예외였다. 한번은 노스플랫강 유역을 따라 이동하던 중 들소 떼가 제인의 부대로 돌진해 오는 바람에 다들 십년감수를 했다. 몇몇 형제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들소 떼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채찍을 내리치는 동안, 부대는 우마차와 가축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들소 떼는 부대를 짓밟기 직전에 반으로 갈라지더니, 한 쪽은 오른편으로 다른 쪽은 왼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3

제인과 아이잭 그리고 그들의 두 아들은 190명에 육박하는 부대원 중 유일한 흑인 성도였지만, 교회 전체에는 몇몇 와드와 지부에 거주하는 흑인 성도들이 일부 더 있었다. 뉴욕주와 캐나다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던 칠십인 일라이자 에이블은 아내 메리 앤과 함께 미 중서부에 있는 한 지부에 다니고 있었고, 브리검 영이 교회에서 “가장 훌륭한 장로 중 한 명”이라 일컫던 워커 루이스라는 또 다른 흑인은 가족과 함께 미국 동부 해안에 있는 지부에 다니고 있었다.4

교회에는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회원이 많았다. 조셉 스미스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가 내건 공약 중에는 노예제를 폐지하는 계획이 들어 있었다. 교회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노예주들과 노예들이 침례를 받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선발대에도 그린 플레이크, 하크 레이, 오스카 크로스비, 이렇게 세 명의 노예 신분의 성도들이 포함돼 있었다.5

주님은 1833년에 이렇게 선포하셨다. “어떠한 사람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속박됨은 옳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일부 성도가 노예 제도를 반대하고 자유의 몸인 흑인들에게 동정심을 보였다는 점이 부분적인 이유로 작용하여 성도들이 미주리주 잭슨군에서 추방된 후, 교회의 지도자들은 선교사들에게 노예 신분의 사람들과 노예 소유주들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노예 제도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격한 쟁점이 되는 사안 중 하나였고, 나라는 물론 교회들도 이 문제로 여러 해 동안 분열을 겪어 오던 터였다.6

노예 소유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미국 북부에서 평생을 살았던 제인은 누군가의 노예가 된 적이 없었다. 조셉 스미스와 브리검 영의 가정에서 일한 적이 있었던 그녀는 보통으로 백인 성도들은 흑인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7 그러나 그 시대의 다른 기독교인 무리들과 마찬가지로, 백인 성도들 중에도 흑인은 저급하다는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검은 피부는 성경의 인물인 가인과 함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의 결과라고 믿는 이가 많았다.8 심지어 피부가 검은 것은 그 사람이 전세에서 의롭지 못한 행동들을 한 증거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르치기 시작한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9

브리검 영도 이와 의견을 같이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윈터쿼터스를 떠나기 전에 그는 한 혼혈인 성도에게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한 혈통에서 모든 육신을 만드셨습니다. 피부색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10

로키산맥 너머에 시온을 건설함으로써, 성도들에게는 제인과 그녀의 가족 같은 흑인들이 성도로서는 물론 동료 시민으로서 환영받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기회가 생겼다.11 그러나 편견은 뿌리가 깊었고, 가까운 미래에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8월 26일, 윌포드 우드럽은 말을 타고 옥수수와 감자 밭을 지나 솔트레이크밸리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의 구릉 지대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위대한 정착지의 시초를 볼 수 있었다. 그와 선발대는 한 달 만에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수천 평의 땅에 곡식을 심었으며, 새로운 집합 장소에 관한 계획을 수립했다. 정착지의 한 가운데에는 브리검이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던 네모난 땅이 있었다. 이제 그들은 그곳을 “성전 구역”이라 칭했다.12

윌포드가 이 분지에 와서 처음으로 보내는 하루하루는 경이롭기만 했다. 분지 서쪽에서는 영양 떼가 풀을 뜯었고, 산에서는 산양 떼가 뛰놀았다. 윌포드와 다른 개척자들은 엔사인피크 근처에서 유황 온천들을 발견했다. 형제들은 그레이트솔트레이크의 따스한 소금물 위에서 통나무처럼 둥둥 떠다니며 뒹굴었다. 이 호수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았다.13

분지에 도착한 지 나흘째 되던 날에 윌포드는 혼자 말을 타고 기지를 떠나 몇 킬로미터를 나갔다가 눈앞의 산등성이에 스무 명의 아메리칸 인디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쪽으로 오면서 성도들은 이동 중에 그리고 그레이트베이슨에서 원주민들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솔트레이크밸리의 대부분이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사실 이 분지는 쇼쇼니족과 우트족을 비롯한 몇몇 부족들이 사냥을 하고 식량을 얻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윌포드는 조심스럽게 말을 돌려 천천히 캠프를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말을 탄 인디언 중 한 명이 전속력으로 그를 쫓아왔다. 둘 사이가 겨우 100미터 정도로 좁혀지자 윌포드는 말을 세웠다. 그는 뒤를 쫓아오던 인디언을 향해 몸을 돌리고 손짓 발짓을 동원해 대화를 시도했다. 그 인디언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윌포드는 그가 우트족 사람이며 그들이 평화와 통상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성도들은 북쪽의 쇼쇼니족을 비롯한 인디언들과 몇 차례 더 접촉했다.14

이제 몇 주만 지나면 추위가 닥칠 것이었다. 윌포드와 브리검, 히버 킴볼 등 몇몇 선발대 일원들은 윈터쿼터스에 있는 각자의 가족에게 돌아가서 봄에 그들을 서부로 데려올 계획을 세웠다. 히버는 말했다. “하나님께 바라건대,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습니다. 이곳이 제겐 낙원입니다. 이곳은 제가 본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입니다.”15

하지만 이 분지에 관하여 모두가 히버와 생각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시내가 있고 풀이 자라는 들판이 있기는 했지만, 이 새로운 정착지는 성도들이 그간 집합했던 그 어느 곳보다도 메마르고 황량했다. 새뮤얼 브래넌은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초록 들판과 기름진 토양이 있는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길을 계속 가자고 브리검에게 간청했다.16

브리검은 새뮤얼에게 말했다. “저는 바로 이곳에서 멈추겠습니다. 저는 이곳에 도시를 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성전을 세울 것입니다.” 브리검은 주님께서 성도들이 미국의 다른 서부 정착지에서 멀리 떨어진 솔트레이크밸리에 정착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른 서부 정착지들은 머지않아 다른 이주자들의 터전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브리검은 새뮤얼을 캘리포니아에서 교회를 감리할 회장으로 지명하고, 성도들에게 전하는 서한을 갖고 샌프란시스코베이로 돌아가게 했다.17

브리검은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지금 계시는 곳에 머물 것을 선택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에게 로키산맥으로 와서 이곳의 성도들과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 “우리는 이곳을 중심지이자 재집결지로, 다른 어느 곳보다도 즉각적인 집합지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솔트레이크밸리로 가는 성도들을 위한 중간 기착지가 될 예정이었다.18

윌포드는 도시를 세우기에 솔트레이크밸리보다 더 좋은 곳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더 많은 성도들이 이곳에 당도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와 십이사도 정원회는 이주가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지도록 겨울 내내 공을 들여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에 따르면 모든 성도가 사회적 위치나 부의 정도와 관계없이 이 분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시온의 유익을 위해 그 계획을 펼칠 때가 되었다.19


1847년 3월, 애디슨 프랫은 캘리포니아로 가면 다른 성도들과 함께 있는 가족들을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타히티를 출발했다. 그러나 작년에 그는 가족은 물론 교회의 어느 누구에게서도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로 가족들이 그곳에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지금 가족들에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내 가족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야 그들을 찾을 수 있을까?”20

애디슨이 샌프란시스코베이에 도착한 것은 6월이었다. 그곳에는 브루클린호를 타고 왔던 성도들이 새뮤얼 브래넌의 복귀와 교회의 본대가 당도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애디슨은 루이자와 딸들이 캘리포니아 해안으로 오고 있으리라 믿으며 다른 네 명의 교회 형제들과 함께 성도들의 정착지인 뉴호프로 가서 교회의 밀을 수확하는 일에 자원했다.

얼마 후에 그들은 배를 타고 길을 떠났다. 뉴호프는 샌와킨강 지류를 따라 내륙으로 160킬로미터쯤 들어간 곳에 있었다. 애디슨 일행은 며칠을 배를 타고 강둑 옆에 길쭉한 부들이 늘어선 얕은 습지대를 지나갔다. 정착지 부근에 이르자 단단한 땅이 나왔고, 일행은 초원을 지나는 남은 길을 걸어서 이동했다.

뉴호프 부지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에 가까이 있는 강이 범람하여 성도들의 밀밭이 일부 쓸려가 버렸고 그 자리에는 물 고인 웅덩이들이 생겼다. 밤에 애디슨이 자리에 누워 눈을 붙이려는데 정착지가 모기 떼로 득실했다. 애디슨 일행은 모기들을 계속 내리치고 연기를 피워 쫓아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날이 밝도록 울어 대는 코요테와 올빼미 소리에 피로한 정착민들은 평안도 고요도 빼앗기고 말았다.21

다음 날 아침에 밀 수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불면의 밤을 보낸 애디슨은 정오 쯤에는 녹초가 되었다. 그는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눈을 붙였다. 매일 밤 모기와 야생 동물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통에 이런 일은 그의 일상이 되었다. 추수가 끝나자 애디슨은 그곳을 떠날 수 있어 기뻤다.

그는 자신의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모기만 없었다면 그곳에서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22

샌프란시스코베이로 돌아온 애디슨은 가족이 지낼 집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몇몇 몰몬 대대원들이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여 명예롭게 제대했다. 새뮤얼 브래넌도 샌프란시스코베이로 돌아왔다. 여전히 그는 솔트레이크밸리에 정착한 브리검이 어리석다고 확신했다. 그는 몰몬 대대의 몇몇 퇴역 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분도 거기서 좀 살아 보시면 자신이 틀렸고 제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나 새뮤얼은 브리검의 편지를 캘리포니아의 성도들에게 전달했고, 브루클린호를 타고 온 성도들과 몰몬 대대에서 행군했던 성도 중 많은 이들이 봄이 되면 솔트레이크밸리로 이주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새뮤얼은 또한 루이자가 애디슨에게 쓴 편지도 가지고 왔다. 루이자는 아직 윈터쿼터스에 있었지만 봄이 되면 솔트레이크밸리로 가서 성도들 본대와 함께 그곳에 정착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애디슨은 즉각 자신의 계획을 수정했다. 봄이 오면, 그도 이곳을 떠나는 성도들과 함께 동쪽으로 가서 가족들을 반드시 만나기로 했다.23


8월이 끝나 갈 무렵, 브리검은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귀환 부대와 함께 솔트레이크밸리를 떠나 윈터쿼터스로 돌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이 소규모 부대는 출발 후 사흘 동안 빠른 속도로 먼지투성이 협곡들을 통과하고 험준한 로키산맥 고개들을 넘어갔다.24 산맥 반대편에 이르렀을 때, 브리검은 바로 몇백 킬로미터 앞에서 팔리 프랫과 존 테일러가 대규모 행렬의 성도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행렬에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우마차 400대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십이사도 정원회는 계시된 주님의 뜻에 따라 겨우내 성도들을 여러 부대로 조직했었다. 그런데, 팔리와 존은 그 계시를 제쳐두고 두 사람 나름의 합의대로 움직인 것 같았다.25

며칠 뒤에 브리검과 귀환 부대는 성도들 무리와 만났다. 팔리가 선두 부대 중 하나에 있었으므로, 브리검은 신속하게 교회의 지도자들과 평의회를 소집했다. 그는 팔리와 존에게 정원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26

팔리는 평의회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기꺼이 바로잡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존이 사도로서 자신들이 지닌 권세의 범위 내에서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그해에 윈터쿼터스를 비롯한 미주리강 유역의 정착지들에서는 수백 명의 성도들이 목숨을 잃었다. 많은 가족들은 또 다른 죽음의 계절이 오기 전에 필사적으로 그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 십이사도 정원회가 조직한 부대들에 속했던 성도들 중에는 아직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들이 있었으므로, 팔리와 존은 준비된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부대들을 조직하기로 한 것이었다.27

하지만 브리검은 그에 대해 반박했다. “우리 부대들은 완벽하게 조직되었습니다. 그들이 여정을 마칠 수 없다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주의 말씀과 뜻에는 각 부대가 궁핍한 이들과 몰몬 대대에서 복무 중인 형제들의 가족을 “균등하게 분담하여”야 한다는 지침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팔리와 존은 그중 다수를 남겨 두고 온 것이었다.28

또한, 브리검은 두 명의 사도가 정원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십이사도 정원회가 무언가를 결정했다면, 그중 두 사람이 지닌 권능으로는 그 결정을 백지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계를 움직이는데, 여러분이 그 바퀴를 멈추겠다고 톱니바퀴에 손을 집어넣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29

그러자 팔리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형제님은 제가 부족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제가 그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또 제가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니, 제가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브리검이 대답했다. “형제님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제가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제가 복음의 행복을 누리며 영광의 햇빛 가운데 살 수 있도록 누구라도 제 잘못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많은 백성들에 대한 짐 때문에 제 마음은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습니다.”30

여윈 몸의 브리검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이 약하고 부족하며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감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형제님이 저와 함께 해의 왕국으로 곧바로 갈 수 있길 바랍니다.”

이에 팔리는 “정원회 형제님들이 저를 탐탁히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브리검은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영원히 축복하실 겁니다. 그 일은 더 괘념치 마십시오.”라고 답했다.31


브리검과 귀환 부대가 도착했을 때, 드루실라 헨드릭스의 가족은 우마차 행렬 중 선두 부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몰몬 대대의 가족들은 아직 대부분 윈터쿼터스에 있었지만, 헨드릭스 가족 외 몇 가족은 물자를 충분히 확보하여 서쪽으로 가는 부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대대와 함께 행군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 뒤로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드루실라는 솔트레이크밸리에서 아니면 더 가까운 곳에서 어서 빨리 아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32

드루실라의 부대는 서쪽으로 가는 도중에 돌아오는 대대 병사들과 이미 마주친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많은 성도들은 병사들 무리가 보일 때마다 희망으로 얼굴빛이 밝아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윌리엄은 그중에 없었다.

한 달 뒤에는 더 많은 대대 병사들이 보였다. 이들은 그레이트베이슨이 어떤 곳인지 이야기하며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하면, 그레이트솔트레이크에서 가져온 소금을 맛보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중에도 윌리엄은 없었다.33

드루실라의 가족은 그 후로 몇 주 동안 힘겹게 산길을 지나고, 강들과 시내들을 건너고, 가파른 등성이를 오르고, 협곡을 따라갔다. 그들의 손과 머리, 얼굴에는 먼지와 때가 잔뜩 말라붙어 있었다. 오랜 여행으로 이미 옷은 해어져 누더기가 되어 햇볕과 비와 흙먼지로부터 거의 몸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10월 초에 이 부대는 솔트레이크밸리에 도착했지만, 몇몇 대원들은 너무 몸이 아프고 기진맥진해서 축하 인사를 나눌 수도 없었다.34

드루실라의 가족은 분지에 도착한 지 일주일 남짓 시간이 흐르도록 윌리엄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몰몬 대대가 캘리포니아 해안에 도착한 후, 퇴역 군인 가운데는 일을 하고 돈을 벌 목적으로 그곳에 남은 이들도 있었고, 솔트레이크밸리나 윈터쿼터스를 향해 동쪽으로 간 이들도 있었다. 드루실라가 아는 것이라고는 윌리엄이 태평양과 미주리강 사이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뿐이었다.35

겨울은 다가오는데 드루실라의 가족은 따뜻한 옷도 먹을 것도 거의 없었고 집을 지을 방도도 없었다. 상황은 암울해 보였으나 드루실라는 다 잘되리라 생각하며 하나님을 신뢰했다. 어느 날 밤, 드루실라는 몇 달 전 윌포드 우드럽이 그랬듯이 꿈에서 성도들이 이 분지에 지을 성전을 보았다. 성전 꼭대기에 조셉 스미스가 생전의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드루실라는 남편과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말했다. “저기 조셉이 있어.” 선지자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비둘기 두 마리가 가족들에게로 날아 내려 왔다.

꿈에서 깨어난 드루실라는 그 비둘기들이 주님의 영을 뜻하며, 그것은 자신과 가족이 내린 결정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셨다는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들의 희생을 주님께서 아신다고 믿었다.

그날 오후, 행군으로 지친 몰몬 대대의 퇴역 군인 한 무리가 분지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윌리엄이 그중에 있었다.36


헨드릭스 가족이 솔트레이크밸리에서 재회하는 동안, 브리검의 귀환 부대 남자들은 위험을 무릅쓰며 여전히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빠른 속도로 이동했으나,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데다 식량도 떨어져 갔다. 말들도 갈수록 쇠약해져서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몇 마리를 일으켜 주어야 할 때도 있었다.37

이런 어려움들을 겪는 동안에도, 브리검은 팔리와 만났을 때 있었던 일에 관하여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38 비록 그는 동료 사도인 팔리를 용서하고 더는 그 일을 괘념치 말라고 이른 터였지만, 그들이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현재 교회가 어떻게 인도되고 또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에 관한 명료한 정리와 어쩌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조셉이 살아 있을 때는 제일회장단이 교회를 감리했었다. 그러나 선지자가 사망하자 제일회장단은 해체되었고, 십이사도가 대신 교회를 감리하게 되었다. 계시에 따라, 십이사도는 제일회장단과 권세가 동등한 정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순회 평의회로서 봉사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할 신성한 의무가 있었다.39 그들이 제일회장단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동시에 십이사도 정원회로서 이 임무를 적절히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브리검은 제일회장단을 재조직하는 문제를 간간이 고심해 보았으나, 아직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솔트레이크밸리를 떠난 이래로 그는 장차 교회를 이끌어 갈 지도력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40 그는 윈터쿼터스로 가는 동안 이 문제를 조용히 숙고했으며, 영이 자신에게 실행하라고 촉구하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하게 들었다.

어느 날 강가에서 숨을 돌리던 브리검은 윌포드 우드럽을 돌아보며 교회가 십이사도 정원회의 구성원들을 불러 새로운 제일회장단을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윌포드는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계시로써 조직된 십이사도 정원회를 변경한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윌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직을 변경하려면 계시가 필요할 겁니다. 이 일에 관하여 주님께서 형제님에게 어떤 영감을 주시든지, 저는 형제님을 지지할 것입니다.”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