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용서라는 치유의 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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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라는 치유의 연고

용서는 영광스러운 치유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두 번 피해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사랑과 빛과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둠과 혼돈으로 가득합니다. 실수를 하고, 부당한 일이 발생하며,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 결과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누군가의 부주의한 행동,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 심지어 죄가 되는 행위로 피해자가 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점입니다.

감사하게도, 자녀들을 향한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신 하나님은 인생에서 때로 만나게 되는 난기류를 통과하도록 우리를 돕는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분은 타인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자가 된 모든 이들을 위한 탈출구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용서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번 피해자가 되었다고 해서 증오와 쓰라림, 고통과 분노, 그리고 심지어 복수의 짐을 지는 것으로 두 번 피해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 울타리를 고치다가 작은 나무 조각 하나가 손가락에 박힌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저는 간단히 그 조각을 빼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힌 가시 위로 살이 덮여서 손가락에 볼록한 부분이 생겼습니다. 거슬리기도 했고 때로 아팠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마침내 저는 행동을 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한 일은 그 볼록한 부분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인 것이 다였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자주 반복했습니다. 어느 날 밴드를 떼고 보니 정말 놀랍게도 박혀 있던 가시가 피부 위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연고가 피부를 부드럽게 만들자 그렇게 수년 동안 저를 괴롭히던 가시가 빠져나왔습니다. 가시가 뽑히자 손가락은 금세 아물었고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너무 많은 불필요한 고통을 담아 두게 됩니다. 우리가 구주의 속죄라는 치유의 연고를 바른다면, 주님은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우리가 변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그분은 상한 영혼을 치료하실 것입니다.(야곱서 2:8 참조)

분명 우리 대부분은 용서하고 싶지만 그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질 것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당장에 “저 사람은 잘못했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해. 정의는 어디에 있는 거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용서한다면, 정의가 구현되지 못하고 처벌도 비켜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정한 벌을 부과하실 것입니다. 자비가 공의를 앗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앨마서 42:25 참조) 하나님은 사랑을 담아 여러분과 제게 다음과 같이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심판은 내게 맡겨 두라. 이는 심판이 나의 것이요 내가 갚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너희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교리와 성약 82:23) 몰몬경의 선지자 야곱 또한 다음과 같이 약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의 고난의 때에 너희를 위로하실 것이요, 너희의 사정을 변호하사, 너희의 멸망을 꾀하는 자들 위에 공의를 내려보내실 것이라.”(야곱서 3:1)

피해자라 하더라도, 우리가 충실하기만 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부당함에 대해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지식에서 우리는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셉 비 워스린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충실한 자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보상해 주십니다. … 오늘 흘리는 눈물이 결국에는 백배의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되어 돌아[올] … 것입니다.”1

타인을 용서하려 노력할 때,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사람마다 그 단계가 다름을 기억합시다. 육체의 성장과 변화는 관찰하기 쉽지만 우리 영의 성장은 감지하기가 어렵습니다.

타인을 용서하는 한 가지 열쇠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휘장을 여시고 우리를 축복하셔서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은사를 주십니다. 이런 통찰력은 심지어 그 사람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경전은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하다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과거가 어떠하든 그들의 선한 잠재력을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공격적이고 매서운 적은 어느 모로 보나 다소 사람 사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빛과 진리를 보여 주신 후, 그보다 더 헌신적이고, 열정적이고, 또는 두려움을 모르는 구주의 제자도 없었습니다. 사울은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현재의 상태로만 보시지 않고 미래에 될 수 있는 모습으로 보신다는 좋은 예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바울과 같은 잠재력을 가진 사울 같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시각으로 서로를 보려 노력한다면, 우리 가정, 지역 사회, 그리고 나아가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이 되십니까?

너무나 자주 우리는 잘못을 범한 사람을 빙산을 바라보듯 봅니다. 우리는 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만 보고 그 아래는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삶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과거나, 그들의 고난이나, 그들이 짊어진 고통을 모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해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용서는 용납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고통 가운데 있거나 약점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 사람의 나쁜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그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때 더 큰 이해력을 얻게 되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

물론 영적으로 덜 성숙한 사람들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가장 그릇된 행위만으로 규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심판관이십니다. 그분은 표면 아래를 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십니다.(니파이후서 2:24 참조)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려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 요구되느니라.”(교리와 성약 64:10)

그리스도께서는 부당하게 고소당하고, 야만적인 폭행과 매질을 당하고, 십자가 위에 고통스럽게 남겨진 바로 그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라고 하셨습니다.

근시안적인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우리의 방식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쉽게 적대감을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스포츠 팀을 응원한다거나 상이한 정치적 견해 또는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일에 근거하여 편협한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다음과 같은 지혜로운 권고를 주셨습니다. “정치 및 종교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사상에 대해 경청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인내심과 지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됩니다.”2

몰몬경은 “교회의 백성들이 그 눈의 교만 중에 자고하며, … 서로 조소하기 시작하고, 그들 스스로의 뜻과 기뻐하는 바를 좇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한]”(앨마서 4:8) 시대를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응원하는 스포츠 구단이나 지지하는 정당을 보지 않으심을 우리 모두 기억합시다. 암몬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자녀들을 모두 다 굽어보시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다 알고 계[십니다].”(앨마서 18:32) 형제 자매 여러분, 삶의 경쟁 속에서 승패에 관계없이 친절을 베풉시다.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하다면, 마지막 날에 우리는 같은 친절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이든 우리 모두가 타인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자가 될 수 있듯, 때로 우리도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범하며, 자비와 용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우리 자신의 죄와 잘못도 용서받는 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 6:14~15)

그 짧은 주기도문에서 구주가 언급하실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 가운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태복음 6:12; 제3니파이 13:11)라고 말씀하신 것은 흥미롭습니다.

용서야말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신 이유입니다. 구주의 속죄는 회개해야 하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속죄는 또한 용서해야 하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남은 물론 나도 용서하기가 힘들다면,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십시오. 용서는 영광스러운 치유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두 번 희생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 대해 영속적인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계시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심을 간증합니다.(요한복음 15:9, 12 참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이 세계의 어둠을 뚫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 왕국의 영광과 존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