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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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서 오는, 가능하게 하는 힘이 삶에 스며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아프리카에 살 때, 궁핍한 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돕는 문제로 칠십인 정원회의 윌포드 더블유 앤더슨 장로님께 조언을 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의 사이가 멀수록 도움을 받는 이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교회 복지 시스템의 바탕에는 이 원리가 깔려 있습니다. 회원이 스스로 필요 사항을 해결할 수 없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할 곳은 가족입니다. 그런 후, 필요하다면 지역의 교회 지도자를 찾아가 현세적인 필요 사항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1 가족의 일원과 교회 지도자는 도움을 구하는 이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서, 비슷한 상황을 겪어 본 경우가 많으며, 어떻게 도와야 가장 좋은지도 잘 압니다. 이 방식으로 도움을 받는 이들은 도움을 주는 이들과 친밀하므로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도움을 당연하게 여길 가능성이 낮습니다.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의 사이가 멀수록 도움을 받는 이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는 개념은 영적으로도 의미 있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높은 경지에서 베푸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그분들과 사이가 멀수록 그분들의 도움을 당연시하게 됩니다. 자신은 은혜를 받을 만하며, 받을 축복이 더 있다고 여기기 시작합니다. 점점 더 주위를 신경 쓰고 불공평한 점을 찾으려 하며,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들면 억울해하고 노여워하기까지 합니다. 그 불공평은 아주 사소할 수도 있고, 더없이 괴로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는 아주 작은 불공평도 크게 비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런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지금 당장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사이의 친밀도에 따라 빚어지는 차이는 몰몬경에 나오는 니파이와, 형인 레이맨과 레뮤엘 사이의 극명한 대조 속에 나타납니다.

  • 니파이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자 심히 원하였던지라 … 주께 부르짖었더니”2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반면, 레이맨과 레뮤엘은 하나님과 사이가 멀었기 때문에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 니파이는 불평 없이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였지만 레이맨과 레뮤엘은 “참으로 많은 일에 있어 … 불평”하였습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불평이란 유치한 칭얼거림과 같습니다. 경전에는 “그들이 불평한 것은 그들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행하심을 그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3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니파이는 하나님과 가까웠던 덕분에 그분의 “친절하신 자비”4를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반면에, 니파이가 축복받는 모습을 지켜본 레이맨과 레뮤엘은 “그에게 노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주의 행하심을 깨닫지 못한 연고였[습니다.]”5 레이맨과 레뮤엘은 자신들이 받은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화를 냈습니다. 니파이가 축복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만에 대한 경전 상의 예입니다.

  • 니파이는 주어진 일을 해내고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행사했습니다.6 반대로 레이맨과 레뮤엘은 “마음이 완악하여 그로 인해 … 마땅히 해야 할 대로 주를 바라보지 아니하였[습니다.]”7 자신들은 질문을 한 적도 없으면서 주님은 답하셔야 한다고 여기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그러한 일을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아니하심이니라”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여쭤 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8 이것은 조롱 섞인 회의에 대한 경전 상의 예입니다.

레이맨과 레뮤엘은 구주와 멀어져 있었기에 불평하고 갈등을 일으키며 불신앙에 빠졌습니다. 삶은 불공평하며 하나님의 은혜는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와 달리 니파이는 하나님을 가까이했기에,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불공평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티끌만큼도 죄가 없는 구주께서 가장 큰 고통을 겪으실 테니 말입니다.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둘수록, 우리는 그분이 겪으신 무고한 고통, 그리고 그분의 은혜와 용서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여 그분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커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있는 절대적인 거리도 중요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향하는 방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가 절실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의 흠만 찾는 고대의 독선적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그분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회개한 죄인을 더 기쁘게 여기십니다.9

제가 어려서 부르던 스웨덴 성탄절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구주께 가까이 다가가면 삶이 달라진다는, 단순하지만 힘 있는 교훈을 일러 줍니다. 가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성탄절 아침이 밝으면

마구간에 가 볼래요

한밤중에 오신 하나님이

마른 풀 위에 누워 계실 테죠

얼마나 큰 기쁨인가요

지상에 오시겠다던 당신의 소망은!

이제 내 어린 날을

더는 죄 안에 살지 않을래요!

예수님, 함께해 주세요

사랑하는 어린이의 친구이신 당신

다시는 내 죄로

슬퍼하지 않으시기를10

“한밤중 오신 하나님이 마른 풀 위에 누워 계시는”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간다고 상상해 보면, 우리는 구주가 친절하고 사랑 넘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당연하게 느끼기보다는 그분에게 더 큰 슬픔을 드리지 말아야겠다는 소망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현재의 방향이나 거리와 관계없이, 우리는 그분들께 방향을 돌리고 더 가까이 그분들께 다가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구주께서 부활 후에 니파이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또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나를 십자가 위에 들리게 하심이요, 또 내가 십자가 위에 들린 후에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

이로 인하여 내가 들리웠으니, 그러므로 아버지의 권능을 좆아 내가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11

구주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그분을 믿는 신앙을 키우고, 성약을 맺고 지키며, 성신을 지녀야 합니다. 또한, 영적인 지시를 받고 따르는 가운데 신앙을 행사해야 합니다. 성찬식에서는 이런 모든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 중 제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매주 정성껏 성찬식을 준비하고 합당하게 성찬을 취하는 일입니다.

남아프리카에 있는 제 친구는 이 깨달음을 얻게 된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다이앤은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한 지부에 참석했습니다. 어느 일요일, 다이앤은 회중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예배당의 구조 탓에 성찬을 전달하던 집사가 그녀를 보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다이앤은 서운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회원 한 명이 다이앤이 성찬을 취하지 못한 것을 보고 모임 후에 지부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주일 학교가 시작되자 다이앤은 빈 교실로 안내되었습니다.

신권 소유자 한 명이 들어와 무릎을 꿇더니 빵을 축복한 뒤 다이앤에게 전달했고, 그녀는 그 빵을 먹었습니다. 그는 다시 무릎을 꿇고 물을 축복한 다음 성찬 컵을 건넸고, 그녀는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고 나니, 두 가지 생각이 잇따라 떠올랐습니다. “아! 이 형제님이 나만을 위해 이 일을 해 주셨구나.” 그리고, “아! 구주께서 나만을 위해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다이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구주의 희생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은 다이앤은 그분을 더 가깝게 느꼈고, 그 느낌을 일요일뿐 아니라 매일 간직하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녀는 성찬을 취하기 위해 회중과 함께 앉지만, 매주 일요일에 새롭게 하는 성약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의 성찬식은, 그리고 지금도 성찬식은 여전히 다이앤이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힘을 느끼고, 삶에서 주님의 영향력을 깨달으며, 구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구주께서는 성찬이 영적인 반석을 세우는 필수요건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너희에게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이를 행하라[성찬을 취하라]. 너희가 항상 이를 행할진대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이는 너희가 나의 반석 위에 지어졌음이니라.

그러나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보다 많거나 적게 행할 자는 나의 반석 위에 지어지지 아니하였고, 모래의 기초 위에 지어졌나니,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들에게 부딪칠 때에, 그들이 넘어질 것이요.”12

예수님은 “만약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역경을 피해 갈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찬을 취함으로써 안전하게 머물러야 합니다.

구주께서 부활하시던 날, 두 제자가 엠마오라는 마을로 길을 나섰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동행하셨으나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길을 가는 동안 주님은 그들에게 경전을 가르치셨습니다. 목적지에 이르러, 제자들은 주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제자]들이 모여 있어”

그들이 사도들에게 증거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다] …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13

참으로 우리는 성찬을 통해 구주를 알아갑니다. 또한, 그분의 무고한 고통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인생이 진정 공평했다면 여러분과 저는 절대 부활할 수도,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동시에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영원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덕에 결국 불공평이란 없을 것입니다. “삶에 대해 불공평한 모든 것이 … 올바르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14 우리가 현재 놓인 상황은 변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연민과 친절, 사랑 덕분에 우리는 모두 자신이 갖춘 자격보다, 능력보다, 그리고 소망보다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눈물을 [너희] 눈에서 닦아 주[리]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15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하건, 가장 높은 경지에서 모든 선한 것을 선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매주 성찬 모임에 참석하고 구주의 살과 피의 거룩한 상징물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떡을 떼어 주시며” 고대 사도들에게 하셨듯 여러분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려 주실 때,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을 좀 더 가까이 느끼시리라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이같은 투덜거림이나, 받으리라 여겼던 것을 받지 못하여 생기는 불만, 조롱 섞인 회의 같은 타고난 성향은 사라지고, 그 대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물인 그분 아들에 대한 더 큰 사랑과 감사를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서 오는, 가능하게 하는 힘이 우리 삶에 스며들 것입니다. 또한, 엠마오로 향하던 사도들에게 그러하셨듯, 구주께서 늘 우리 곁에 계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증거하고 간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