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회개하여 …… 내가 너희를 고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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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여 …… 내가 너희를 고치게 하라”

회개하라는 권유는 대부분 책망하는 음성이기보다는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사랑 가득한 호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십이사도 정원회로 부름을 받은 지도 이제 6개월이 지났습니다. 오랫동안 제 모범이자 교사이셨던 분들과 함께 봉사하는 것은 참으로 겸허한 경험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고 지지해 주신 여러분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 동안 주님께서 저를 받아들여 주시기를 열심히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는 성스럽고 잊지 못할 방법으로 주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살아 계시며, 이 사업은 그분의 거룩한 사업임을 간증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의 선지자이신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을 사랑합니다. 지난 4월에 저에게 부름을 주시면서 그분께서 보여 주신 따스함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입니다. 접견이 끝나자 그분은 저를 꼭 껴안아 주셨습니다. 몬슨 회장님은 키가 크신 분입니다. 그분께서 긴 팔로 저를 감싸 안으며 끌어당기셨을 때 저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팔에 안겨 보호받는 어린 소년이 된 듯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동안 저는 주님께 나아와 그분의 팔에 영적으로 안기라고 하신 권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나의 자비의 팔이 너희를 향하여 펼쳐져 있나니, 누구든지 오는 그를 내가 영접할 터인즉 내게로 오는 자는 복이 있도다.”1

경전에는 그분의 팔이 벌려져 있고2 펼쳐져 있으며3 펴져 있고4 둘러싼다고5 말합니다. 또한 그 팔은 권능이 있고6 거룩하며,7 자비의 팔,8 안전한 팔,9 사랑의 팔이며10 “종일토록 펼쳐져”11 있다고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를 감싸는 이 영적인 팔과 그분의 용서와 사랑, 위안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로하는 그라.”12

그분께 나아와 그분의 팔에 안기라는 주님의 소망은 대개 회개하라는 권유입니다. “보라, 그는 만인에게 초청을 보내시나니, 이는 자비의 팔이 그들을 향하여 펴져 있음이라, 그가 이르시되, 회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하리라.”13

죄를 지으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다시 그분께로 돌아섭니다.

회개하라는 권유는 대부분 책망하는 음성이기보다는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사랑 가득한 호소입니다.14 이러한 권유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회개하라는 권유는 우리가 현재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되고, 더욱 고결한 삶을 살고, 변화하고, 계명을 지킬 때 얻는 행복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회개의 축복과 용서받는 기쁨을 누리며 기뻐합니다. 그러한 기쁨은 우리의 일부가 되어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형성합니다.

이 대회에 참석한 수만 명의 사람들은 각자 개인적인 합당함과 의로움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우리 모두의 축복입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구주의 자비로운 팔을 느껴야 합니다.

수 년 전, 저는 어떤 사람을 만나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만나기 오래 전에 그는 방탕한 삶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그는 교회 회원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이제는 교회로 돌아온 지 오래되었으며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과거에 했던 행위들이 계속 뇌리에 남아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와 만났을 때 성약을 위반한 일에 대한 수치심과 깊은 후회를 그에게서 느꼈습니다. 접견한 다음에 저는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신권 축복을 주었습니다. 입을 떼기도 전에 저는 그를 향한 구주의 사랑과 용서를 느꼈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축복이 끝난 후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그는 숨기지 않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은 죄가 얼마나 이기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회개한 자를 감싸안는 구주의 사랑의 팔과 자비는 놀라웠습니다. 저는 구주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며, 또한 간절히 용서하고 싶어 하신다는 점을 간증드립니다. 충만함을 안 후에 멸망을 택한 몇몇의 죄를 제외하고,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15 우리 각자가 죄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특권입니까. 신성한 용서는 복음의 가장 감미로운 열매 중 하나이며, 우리 마음에 죄책감과 고통을 없애 주고 대신 기쁨과 양심의 평안을 선사합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제 내게로 돌아와 너희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내가 너희를 고치게 하지 아니하려느냐?”16

오늘 말씀을 듣고 계신 분들 중에는 심각한 죄에 맞서기 위해 “마음에 크나큰 변화”17가 필요한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신권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회개는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주님의 도움을 매일같이 구하는, 조용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회개는 일회성 사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여정에 가깝습니다. 회개는 쉬운 일이 아니며 변화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바람에 맞서 나아가고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8 회개는 부정직과 교만, 노여움, 불순한 생각을 버리고 친절과 이타심, 인내, 영성 같은 것으로 돌아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가 우리에게 변화를 제안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육에 속한 사람이 때때로 머리를 치켜들며 말합니다. “내가 변화해야 한다고? 너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번 말해 볼까?”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주님께 겸손히 간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하고 기도할 때 응답이 옵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변화해야 하는지 느끼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생각과 마음에 말씀해 주십니다.19

그런 후 우리는 회개할 것인지, 아니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창에 커튼을 닫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앨마는 경고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점에라도 네 스스로를 변명하려 하지 말라.”20 “커튼을 닫을” 때 우리는 변화하도록 권유하는 영적인 음성을 믿지 않게 됩니다. 기도하지만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기도에는 회개로 이끄는 신앙이 부족하게 됩니다.21

바로 지금 누군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앤더슨 형제님, 형제님은 이해 못하십니다. 형제님은 이게 어떤 느낌인지 똑같이 느끼실 수 없으니까요. 변화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저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알고 계시며 여러분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22 구주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손을 내미시며 “내게로 오라”23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변화해야 하는지 깨달아가면서 우리는 스스로가 초래한 슬픔에 한탄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 진심이 담긴 고백을 하게 되며,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합니다.24 가능한 경우 우리는 우리가 해를 입히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을 원상태로 되돌립니다.

그리고 회개는 우리 일상 생활 가운데에 자리잡습니다. 주님 앞에 온유하고 겸손하게 나아와 우리가 그분께 의존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를 용서하고 새롭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늘 그분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하기 위해 매주 성찬을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회개하고 좀 더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면서도 동일한 문제로 힘겨워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무로 뒤덮인 산을 오를 때처럼 우리는 정상에 올라 높은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발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낙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힘을 쏟고 있다면 여러분은 회개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입니다.

발전해 가면서 우리는 인생을 더욱 명확히 바라볼 수 있으며 성신이 우리 안에 더욱 강하게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왜 우리가 오래 전에 버린 죄들을 기억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왜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슬픔은 때때로 우리가 회개한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제임스 이 파우스트 회장님이 들려 주신 따뜻한 일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농장에서 일하던 어린 시절, 저희 할머니께서는 뜨거운 나무 화덕 위에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곤 하셨습니다. 화덕 옆에 둔 나무 상자가 비면 할머니께서는 조용히 상자를 들고 나가셔서 밖에 있는 삼나무 더미로 상자를 채우신 후, 무거워진 상자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시던 파우스트 회장님의 목소리는 감회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너무도 무신경한 나머지 자리에 앉아 사랑하는 할머니가 부엌 나무 상자를 채우러 가시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제 소홀함[의 죄]를 평생 후회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할머니께 용서를 빌 수 있기를 바랍니다.”25

그 후 6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파우스트 회장님이 그 오랜 세월 동안 할머니를 돕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후회하셨다면, 우리가 아직 어떤 일들을 기억하고 후회한다는 것이 그렇게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경전에는 우리가 현세에서 버린 우리의 죄를 잊게 될 것이라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잊으시리라고 나와 있습니다.26

죄를 버린다는 것은 다시는 그 죄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죄를 버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 주님께서는 때때로 우리 잘못의 잔재가 기억 속에 남아 있도록 허락하십니다.27 그것은 현세에서 배우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정직하게 죄를 고백하고,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에 고통 받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보상을 하고 계명을 지킴으로써 죄를 버릴 때 우리는 용서를 받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슬픔에 잠긴 고뇌가 진정되어 “우리 마음에서 죄업[이] 제하여[지고]”28 “양심의 평안”29을 얻게 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지만 평안을 느끼지 못하시는 분들은 계속해서 계명을 지키십시오. 주님이 정하신 때에 평안이 찾아올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치유의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려되는 문제가 있다면 감독님과 상의하십시오. 감독에게는 분별의 권능이 있습니다.30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경전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회개의 날을 끝까지 미루지 말라.”31 그러나 이 생에서 회개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언젠가 저는 교회로 돌아오려고 하는 연로한 부부를 만나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 부부는 부모에게서 복음을 배웠지만 결혼 후에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제 50년이 흐른 후에 그들은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남편 분이 호흡하는 데 사용하는 산소통을 끌며 방으로 들어오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 부부는 그 동안 충실하게 남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돌아와서 기쁘게 생각하며, 주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연로한 이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앤더슨 형제님,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저희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이 복음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저희는 돌아왔지만, 돌아온 것은 저희 둘 뿐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은 그 두 분만이 아니었습니다. 회개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 가족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줍니다. 우리가 의로운 마음으로 회개한다면 구주의 펼쳐진 팔은 주님이 정하신 때에 우리와 우리 자녀, 그리고 후손들의 삶까지도 감싸 안으실 것입니다. 회개는 언제나 우리 앞에 더 커다란 행복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구주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신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구속하는 그분의 힘을 저는 직접 느꼈습니다. 저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 위에 그분의 치유하는 손길이 임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주신 신성한 은사가 우리 마음에 죄책감을 없애 주고 우리 양심에 평안을 준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교회 회원입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에게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켜 그분께 나아오라고 권유하십니다. 그분께서 계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1. 제3니파이 9:14.

  2. 몰몬서 6:17 참조.

  3. 앨마서 19:36 참조.

  4. 열왕기하 17:36; 시편 136:12 참조.

  5. 니파이후서 1:15 참조.

  6. 교리와 성약 123:6 참조.

  7. 제3니파이 20:35 참조.

  8. 앨마서 5:33 참조.

  9. 앨마서 34:16 참조.

  10. 교리와 성약 6:20 참조.

  11. 니파이후서 28:32.

  12. 니파이후서 8:12.

  13. 앨마서 5:33.

  14. 힐라맨서 7:17 참조.

  15. 보이드 케이 패커, “용서의 밝은 아침”,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19쪽 참조.

  16. 제3니파이 9:13.

  17. 앨마서 5:12.

  18. 마태복음 16:24.

  19. 교리와 성약 8:2 참조.

  20. 앨마서 42:30.

  21. 앨마서 42:30 참조.

  22. 이사야 49:16.

  23. 제3니파이 9:14.

  24. 교리와 성약 58:43 참조.

  25. 제임스 이 파우스트, “율법의 더 중한 바: 심판과 자비와 신앙”, 성도의 벗, 1998년 1월호, 59쪽.

  26. 교리와 성약 58:42~43 참조; 또한 앨마서 36:17~19 참조.

  27.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안전한 귀환 지점”, 리아호나, 2007년 5월호, 101쪽 참조.

  28. 앨마서 24:10.

  29. 모사이야서 4:3. 경전은 현세와 내세에서의 행복을 양심의 평안과 연결짓는다. 기쁨의 반대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앨마의 가르침에 주목한다.(앨마서 29:5 참조) 그 밖의 선지자들은 악한 자들이 이생 이후에 겪게 될 고통을 그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연결시킨다.(니파이후서 9:14, 46; 모사이야서 2:38; 3:24~25; 몰몬서 9:5 참조)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고문관이자 심판관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실망의 고통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과 같이 통렬하다.”(History of the Church, 6:314)

  30. 교리와 성약 46:27 참조.

  31. 앨마서 3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