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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진리의 표준, 1815~1846년(2018) 제25장

25 “서쪽으로”

제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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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탄 사람들의 모습

서쪽으로

1837년 8월에 제네타 리차즈가 잠시 영국 프레스턴에 들렀을 때, 그녀의 친구인 앤과 토머스 웜슬리 부부는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에 관해 그녀에게 들려줄 말이 많았다.

앤은 오랫동안 병을 앓으며 쇠약해진 끝에 온몸이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그때 그녀를 가르치던 히버 킴볼은 만일 그녀가 신앙을 지니고, 회개하며, 침례의 물로 들어간다면 병이 치유되리라고 약속했다. 얼마 후에 앤은 다른 여덟 명의 사람과 함께 침례를 받고 이 새로운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 뒤로 점차 그녀의 건강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침례받은 사람 중에는 제임스 필딩의 신도들이 많았다. 필딩 목사는 선교사들이 자신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허락했지만, 침례를 받는 것은 거절했으며, 자신의 신도들이 빠져나가자 분한 마음이 들었다.1

제네타는 미국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흥미로워했다. 그녀는 높은 굴뚝과 복잡한 거리를 특징으로 하는 프레스턴에서 약 24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워커폴드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다. 제네타는 그 마을의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랐다.

이제 스무 살 생일을 겨우 몇 주 앞둔 제네타는 하나님의 진리를 더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을 느꼈다. 제네타는 웜슬리 가족을 방문했다가 히버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천사와 금판에 적힌 고대의 기록, 고대의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계시를 받는 살아 있는 선지자에 관한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히버는 그날 저녁에 있을 자신의 설교에 제네타를 초대했다. 그곳에 가서 히버의 설교를 들은 제네타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다음 날에도 히버의 설교를 들었고, 그가 하는 말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다.

이튿날, 제네타는 히버에게 침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히버는 올슨 하이드와 함께 제네타의 안내에 따라 리블강으로 가서 그녀에게 침례를 주었다. 그들은 강기슭에서 제네타에게 확인 의식도 베풀었다.

침례를 받은 제네타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프레스턴에 머물고 싶었지만, 워커폴드에 있는 부모님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는 새로 찾은 신앙을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성도들과 함께하겠다는 결심을 아버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

히버는 제네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 자매님 아버지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머지않아 자매님 아버지의 예배당에서 가르칠 특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네타는 그 말이 맞기를 바라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2


그해 여름에 조셉은 토론토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기 위해 캐나다로 갔다. 그가 없는 동안 커틀랜드 성전에서 열린 일요 모임에서, 조셉 일세는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조셉의 성품을 옹호하며,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반대 세력의 행태를 규탄했다.

이렇게 축복사인 조셉 일세가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워렌 패리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도 한 말씀을 전하겠다고 했다. 조셉 일세는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워렌은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와서 기어이 연단에 섰다. 그는 조셉 일세를 붙잡고 연단에서 끌어내리려 했다. 조셉 일세는 그 지역의 치안 판사인 올리버 카우드리를 다급히 불렀지만, 오랜 벗을 돕기 위해 올리버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때, 자신의 아버지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본 윌리엄 스미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워렌을 연단에서 끌어냈다. 그러자 존 보인턴이 칼을 뽑아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윌리엄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고,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찔러 버리겠다며 동료 사도인 윌리엄을 위협했다. 다른 반대자들도 칼과 권총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고 윌리엄을 에워쌌다.

성전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문으로 몰려들고, 가까운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그 사이에, 도망치는 사람들을 비집고 보안관들이 뛰어들어왔다. 그들은 무장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다.3

몇 주 뒤에 커틀랜드로 돌아온 조셉은 그 소식을 듣고 비상 대회를 열어 성도들을 소집했다. 이 대회에서 조셉은 교회의 지도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지지를 물었다.4 성도들은 조셉과 제일회장단은 지지했으나 존 보인턴과 룩 존슨, 라이먼 존슨은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5

커틀랜드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은 자명했지만, 그래도 조셉은 이번의 신임 지지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교회의 유일한 스테이크인 커틀랜드는 성도들의 집합지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경제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반대 세력의 이간질로 교회의 연약한 회원들은 조셉을 반대했다. 이제 커틀랜드를 평화와 영적인 힘의 장소로 여기는 이는 많지 않았다.

최근에 주님께서는 시현을 통해 조셉에게 새로운 시온의 스테이크들을 만들고 교회의 경계를 확장하도록 촉구하셨다. 이제 조셉과 시드니는 미주리로 가서 파웨스트에 있는 새로운 정착지를 살펴보고 성도들이 집합할 수 있도록 다른 스테이크들을 세울 때가 되었다고 믿었다.6

조셉이 미주리를 방문할 이유가 또 있었다. 그는 커틀랜드에서 배도가 일어나 시온의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을 염려했다. 존 휘트머와 윌리엄 펠프스는 계시에서 지시받은 것과 달리 감독단이나 고등평의회와는 아무 논의도 하지 않은 채 파웨스트를 세웠었다. 그들은 기부금을 사용해 자신들 명의로 땅을 사고 팔며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잘못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조셉과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은 그들이 아직 미주리 땅을 부정직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7

또한, 파웨스트로 옮겨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제일회장단 일원들이 미주리에 미칠 영향도 걱정이었다. 프레드릭 윌리엄스는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경영을 놓고 조셉과 충돌한 일이 있었고, 그 일로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가 있었다.8 그러는 동안, 올리버도 조셉이 지역 경제와 정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올리버뿐만 아니라 미주리 교회의 회장인 데이비드 휘트머도 조셉이 선지자 역할을 하면서 현세적인 문제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했다.9

워렌 패리쉬나 다른 반대자들과 결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지난 여덟 달 동안 조셉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져 있었다. 조셉은 그들이 시온에서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조셉은 커틀랜드를 떠나기 전에 형 하이럼과 토머스 마쉬에게 먼저 파웨스트로 가서 자신과 이 지도자들 사이에 균열이 커지는 상황을 충실한 성도들에게 경고해 달라고 부탁했다.10 하이럼은 그 임무를 받아들였다. 몇 주 뒤면 여섯 번째 아이를 출산할 아내 제루샤를 남겨 두고 떠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했다.11


올리버는 교회를 이끄는 방식을 놓고서만 조셉과 의견이 갈리는 것이 아니었다. 조셉은 영감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동안 복수 결혼에 관해 배운 후로, 때때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이 원리를 시행하도록 명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셉은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몇 년 뒤에 주님의 천사를 통해 아내를 한 명 더 두라는 명을 받았다.12

하지만 조셉은 이 계명을 받은 뒤 이에 대한 반감이 생겼고, 그 감정을 이겨 내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복수 결혼을 시행함으로써 닥칠 시련을 예견할 수 있었기에 그것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천사는 그에게 복수 결혼을 시행하도록 촉구하며, 흔들림 없이 고결한 이들과만 이 계시를 공유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천사는 주님께서 그분의 선택된 종들을 통해 복수 결혼을 공개적으로 시행해도 된다고 여기실 때까지는 이 원리를 기밀로 하라고 명했다.13

패니 앨저는 조셉이 커틀랜드에 살았던 몇 년 동안 그의 집에서 일했던 젊은 여성이었다. 조셉은 그녀의 가족을 잘 알았으며 그들을 신뢰했다. 그녀의 부모는 교회가 조직되던 첫해에 교회에 들어온 충실한 성도들이었다. 또한 그녀의 삼촌인 리바이 핸콕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행군에 참여하기도 했었다.14

조셉은 리바이의 도움과 패니 부모의 허락을 받아 주님의 명령대로 패니에게 청혼했다.15 패니는 조셉의 가르침과 함께 그의 청혼도 받아들였으며, 그녀의 삼촌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집행했다.16

그러나 아직 교회에서 복수 결혼을 가르칠 시기는 되지 않았기에 조셉과 패니는 천사가 지시한 대로 자신들의 결혼을 비밀에 부쳤다.17 그러나 커틀랜드의 일부 사람들에게 이 소문이 퍼졌고,18 1836년 가을에 패니는 커틀랜드를 떠났다.19

올리버는 조셉과 패니의 관계를 신랄하게 비난했지만, 그가 이 관계를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20 에머가 이 결혼에 대해 얼마나 알았는지 또한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패니는 다른 남성과 결혼하여 성도들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나중에 그녀는 친형제 중 한 명에게 조셉과의 복수 결혼에 관해 묻는 편지를 받고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우리만의 문제야. 거기에 대해서는 해 줄 말이 없어.”21


1837년 가을에 조셉과 시드니가 파웨스트로 떠날 무렵, 윌포드 우드럽은 대서양 북부의 폭스 제도에서 어부들과 고래잡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선교 사업을 하고 있었다.22 윌포드 우드럽이 동반자 조너선 헤일과 함께 폭풍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섬에 도착한 것은 8월의 마지막 주였다. 두 사람 다 상록수가 울창한 이 지역을 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주님의 백성들이 바다의 섬들로부터 모여들 것이라고 했던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도록 힘을 보태고 싶었다.23

두 사람이 커틀랜드를 떠나기 전에 몇몇 반대자들은 조너선이 폭스 제도에서 한 사람도 침례를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의욕을 꺾으려 했었다. 조너선은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24

윌포드와 조너선은 이미 여러 달 동안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커틀랜드를 떠난 후 코네티컷주에 있는 윌포드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침례를 받은 사람은 윌포드의 삼촌과 숙모, 사촌뿐이었다.25 얼마 후에 피비 우드럽도 합류하여, 세 사람은 해안을 따라 피비의 부모가 사는 메인주로 갔고, 남편과 조너선이 선교 사업을 계속해 나가는 동안 피비는 그곳에 머물렀다.26

윌포드와 조너선이 폭스 제도에서 첫 번째로 만난 사람 중에는 기디언 뉴턴이라는 목사가 있었다. 윌포드와 조너선은 그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몰몬경을 건넸다. 그 후에 윌포드는 조너선과 함께 그 목사의 교회로 가서 신약전서를 가르쳤다.27

그리고 그날부터 며칠 동안 두 사람은 주로 학교의 사택에서 복음을 가르쳤다. 폭스 제도 사람들은 똑똑하고 근면하며 친절했다. 기디언은 가족과 함께 그 두 선교사가 여는 모임에 대부분 참석했다. 기디언은 몰몬경을 공부했으며, 몰몬경이 참됨을 증거하는 영도 느꼈다. 그러나 몰몬경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신도들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28

폭스 제도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넘어가던 어느 날 아침, 윌포드는 많은 사람이 모인 기디언의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사람들이 윌포드의 설교를 반기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 기디언은 그날 오후에 윌포드와 조너선을 만났다. 그는 몰몬경을 제법 많이 읽어 보았다며, 자신은 몰몬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폭스 제도에서 자신이 지닌 영향력을 이용해 두 사람의 복음 전도를 막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기디언은 자신이 직접 설교하기 위해 교회로 갔고, 윌포드와 조너선은 그들이 과연 앞으로 그곳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의심이 밀려왔다. 그러나 기디언이 교회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29

그날 밤, 윌포드와 조너선은 저스터스 임스라는 선장과 그의 아내인 벳시의 집에 있었다. 임스 부부는 선교사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고, 윌포드는 일요 모임을 한 차례 한 후에 그들에게 침례를 권유했다. 그들은 기쁘게도 윌포드의 권고를 받아들였다.30

윌포드는 조너선을 돌아보며, 그들이 폭스 제도에서 성공하지 못하리라던 커틀랜드의 반대자들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저스터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서 그에게 침례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합시다.”31


한편, 파웨스트에서 임무를 시작한 하이럼은 동생 조셉이 아내의 소식을 갖고 도착하기를 날마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럼과 토머스의 눈에 비친 파웨스트는 번영하는 지역이었다. 성도들은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기 위해 넓은 길을 닦고 널찍한 도시 구획을 만들 계획이었다. 거리에서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가운데 말과 마차,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 도시에는 집과 오두막, 호텔, 그리고 감독의 창고를 비롯한 상점도 여러 곳 있었다. 도시의 한가운데는 성전이 들어설 예정이었다.32

조셉과 시드니는 11월 초에 파웨스트로 왔지만 하이럼에게는 전할 소식이 없었다. 그들이 바로 몇 주 전에 커틀랜드를 떠날 때까지도 제루샤는 아직 출산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33

조셉은 앞으로의 성장을 염두에 두고 정착촌을 확장할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속히 파웨스트에서 대회를 소집했다. 그와 시드니는 이 지역이라면 떼지어 몰려오는 이웃이나 폭력의 위험 없이 성도들이 여유롭게 집합하여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셉은 이 대회에서 정착지를 확장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주님께서 성전과 관련한 그분의 뜻을 밝히실 때까지 새로운 성전을 짓는 것을 미루겠다고 알렸다.

또한, 선지자는 파웨스트의 성도들에게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는 프레드릭 윌리엄스가 제일회장단의 직분에서 물러났으며, 시드니 리그돈은 이 공석을 채우기 위해 하이럼을 지명했다. 성도들은 하이럼을 제일회장단의 새로운 일원으로 받아들였다.34

며칠 뒤, 커틀랜드에서 하이럼 앞으로 편지가 왔다. 편지에는 그가 오래 기다리던 소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편지를 쓴 사람은 그의 아내 제루샤가 아니라 동생 새뮤얼이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하이럼 형, 나는 오늘 저녁에 형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어. 분별 있는 남자라면 누구나 자기 가족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하이럼은 편지를 읽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루샤는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았지만, 출산 후 급격히 쇠약해 졌다. 스미스 가족은 제루샤가 기운을 차리도록 정성껏 그녀를 돌보았지만, 그녀는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35


하이럼과 조셉은 곧바로 커틀랜드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조셉은 미주리를 떠나기 전에 은밀히 토머스와 올리버를 만났다.36 그들은 조셉과 패니 앨저의 결혼에 대한 올리버의 반대 의견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으나 생각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37 마침내 조셉은 올리버에게 손을 내밀며 둘 사이에 생긴 갈등을 모두 떨쳐 내고 싶다고 말했다. 올리버는 조셉의 손을 맞잡았고,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38

조셉과 시드니, 하이럼은 몇 주 뒤에 다시 커틀랜드에 도착했다. 하이럼이 친척 집으로 가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를 잃은 다섯 아이는 슬픔에 빠져 있었고, 제루샤는 성전 옆 묘지에 묻혀 있었다. 하이럼은 제일회장단의 책임을 새로 맡은 상황에서 어떻게 혼자서 다섯 아이를 돌보아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39

조셉은 하이럼에게 재혼을 권하며 아내가 될 사람으로 메리 필딩을 추천했다.40 메리 필딩은 친절하고 학식이 있으며 교회에 헌신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하이럼의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그의 자녀들을 잘 돌볼 것 같았다.

하이럼은 얼마 후에 메리에게 청혼했다. 서른여섯 살의 메리는 그때까지 여러 번 청혼을 받고도 항상 거절해 왔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메리에게 절대로 아이가 딸린 홀아비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 하이럼의 청혼을 받아들이면, 메리는 하루아침에 여섯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메리는 깊이 생각한 끝에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스미스 가족을 동경하고 있었으며, 조셉을 형제로 여겼고, 성품이 겸손한 하이럼을 존경했다.41 그들은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결혼식을 올렸다.42


조셉이 커틀랜드로 돌아오자 많은 성도들이 안도했으나, 그가 교회에 화합을 되찾아 주리라는 소망은 곧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워렌 패리쉬와 룩 존슨, 존 보인턴은 매주 그랜디슨 뉴얼을 비룻한 교회의 적대 세력과 모여서 제일회장단을 비판했다. 한때는 교회의 충실한 일꾼이었던 마틴 해리스도 곧 그들에게 가담했고, 그 해가 끝나갈 무렵에는 반대 무리의 주동자들이 그들만의 교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43

얼마 후에 빌리트 킴볼은 영국에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 오하이오의 교회 상황을 알렸다. 빌리트는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함께 일했던 룩 존슨과 존 보인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알기에 이 끔찍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망설여졌다.44

빌리트는 이렇게 적었다. “이 소식을 들으면 분명 당신은 몹시 마음이 아플 거예요. 그들은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은 믿지만 이 사업은 부정한다고 했어요.”45

머린다 하이드는 이 편지의 말미에 남편 올슨 앞으로 짤막한 글을 남겼다. 머린다는 자신의 오빠인 룩 존슨의 배도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당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이 지금 커틀랜드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이제 아무도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아요.” 머린다는 위험한 시기를 헤쳐 나갈 올바른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상황을 주시하며 기도해야만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렇게 적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당신이 그리워요.”46

그 무엇도 반대자들의 감정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조셉과 시드니가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를 잘못 관리했으며 성도들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워렌은 선지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하나님에 가까운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는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실패를 들어 조셉이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47

커틀랜드의 고등평의회는 여러 달 동안 반대 세력의 주동자들과 화해를 시도한 끝에 결국 그들을 파문했다. 그러자 그들은 성전을 점거하고 그곳에서 자신들이 세운 교회의 모임을 열었으며, 아직도 조셉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커틀랜드 밖으로 추방하겠다고 위협했다.

빌리트는 반대 세력이 성도들에게 등을 돌린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믿었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분노보다는 슬픔이 더 컸다. 빌리트는 남편에게 이렇게 적었다.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적긴 했지만, 그중에는 제가 사랑하는 이들도 있어요. 전 그들을 정말 사랑해요. 그들이 안타까워요.”48 빌리트는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붕괴가 영적으로도 현세적으로도 그들에게 고비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조셉이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를 관리하는 동안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선지자에 대한 신앙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조셉이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회개했다는 것을 믿을 이유는 충분해요.” 그녀는 교회가 능히 어려움을 견뎌 내리라고 믿었다.

“주님은 징계를 견디지 못하고 그분을 부인하는 자는 성결해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은 히버가 선교 사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자신은 커틀랜드에 홀로 남아 아이들과 함께 그러한 적대감을 겪어 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혹은 만일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그들은 집을 버리고 미주리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빌리트는 이렇게 적었다. “달아나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49


새해가 되자, 커틀랜드에서는 반대 세력들은 점점 더 과격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해 갔다. 교회는 폭도들의 위협에서 벗어날 새가 없었고, 선지자는 부채와 누명 탓에 끝없이 쫓기고 있었다. 얼마 후에는 지역의 보안관이 구속 영장을 들고 그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만일 체포된다면, 조셉은 거금이 들어가는 재판에 회부되거나 감옥에 갇힐 수도 있었다.50

1838년 1월 12일, 선지자는 주님께 도움을 구하여 계시를 받았다. 주님은 이렇게 지시하셨다. “나의 교회의 회장단은 방법이 정해지는 대로 가족들을 데리고 속히 서쪽으로 가라.”

또한, 주님은 조셉의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미주리에 집합하라고 말씀하셨다. “오 너희 시온의 백성들아, 너희 가운데 평안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가 안전하지 못하리라.”51

스미스 가족과 리그돈 가족은 즉시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그날 저녁에 조셉과 시드니가 커틀랜드를 몰래 빠져나가면, 가족들이 마차를 타고 바로 뒤따라 가는 것이었다.

그날 커틀랜드의 밤이 깊어질 무렵, 조셉과 시드니는 말에 올라타고 도시를 빠져나갔다.52 그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남쪽으로 달렸다. 6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었다. 말들이 지치자, 두 사람은 길을 멈추고 아내와 자녀들을 기다렸다.

조셉도 시드니도 다시 커틀랜드를 볼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도착하자, 두 사람은 그들이 탄 마차에 올라타고 파웨스트로 출발했다.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