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성령을 여러분의 인도자로 삼으십시오
각주

Hide Footnotes

테마

성령을 여러분의 인도자로 삼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그 은사는 바로 성령입니다.

이 부활절 안식일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고, 믿는 이들 모두에게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겨내셨다는 희망을 주는 텅 빈 무덤을 생각합니다. 저는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1

이 구절에서 사용된 영어 단어 quicken이 의미하는 바는 살아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권능을 통해 육체적 사망으로부터 우리 몸을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그분은 영적인 죽음에서도 우리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2 모세서에는 아담이 이런 종류의 깨어남을 경험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담이] 침례를 받았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왔으니, 이같이 그가 영으로 태어났고 속 사람이 살아나게 되었더라.”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그 은사는 성령인데, 이는 신약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 …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4 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그 소중한 은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성령을 [우리]의 인도자로 삼”는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5 그것을 잘 보여 주는 일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에 해군 소위였던 프랭크 블레어라는 형제는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 수송선에서 복무 중이었습니다.6 그 수송선은 정식 군목이 배치될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으므로 대령은 블레어 형제에게 임시 군목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전 부대원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신앙심과 원칙을 지닌 이 젊은 청년을 그간 눈여겨봤었기 때문입니다.

블레어 소위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루는 우리 수송선이 거센 태풍을 만났다. 파도 높이가 약 14미터에 달했다. 나는 불침번을 서고 있었는데 … 수송선의 엔진 세 개 중 한 개가 멈춰 버린 데다 중심선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나마 남은 두 개의 엔진 중 하나마저도 절반 밖에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블레어 소위가 불침번을 마치고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대령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부디 이 배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겠나?”라고 물었고, 블레어 소위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블레어 소위는 단순히 “하나님 아버지시여, 부디 우리 배를 축복해 주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그는 배의 안전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블레어 형제는 함교에 가서 대령과 이야기해 보고, 상황을 더 파악하라는 성신의 속삭임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결과, 대령이 남아 있는 엔진을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가동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블레어 소위는 선실로 돌아와 이렇게 다시 기도드렸습니다.

“엔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나이까?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는 배 위를 걸어 다니면서 상황을 더 파악해야 한다는 성신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령에게 돌아와서 갑판으로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는 구명 밧줄을 허리에 감은 채 폭풍이 몰아치는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선미에 서서 배가 파도 꼭대기까지 올라갈 때 물 밖으로 드러나는 거대한 프로펠러를 관찰했습니다. 온전히 작동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고, 그 프로펠러는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블레어 소위는 다시 한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엔진이 과부하 상태이므로 속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분명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령에게 돌아와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대령은 놀라워하면서 기관사는 방금 그와 정반대로 태풍을 뚫고 나가기 위해 정상 엔진의 속도를 더 높이자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령은 블레어 소위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엔진 속도를 줄였습니다. 새벽 무렵, 배는 파도가 잔잔한 수역으로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두 시간 후에,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엔진은 작동을 완전히 멈췄습니다. 그 엔진의 속도를 절반으로 줄인 덕분에 배는 가까스로 항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대령은 블레어 소위에게 “그때 엔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면 폭풍 한가운데서 엔진이 멈춰 섰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엔진 없이는 배를 움직이게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므로, 배는 아마도 뒤집혀 가라앉아 버렸을 것입니다. 그 대령은 이 젊은 후기 성도 장교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블레어 소위의 영적인 느낌을 따랐기 때문에 배와 부대원들을 구할 수 있었음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상당히 극적인 일화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영의 인도를 더욱 자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중요한 지침이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계시에 관한 한 우리의 안테나를 하늘의 주파수에 올바로 맞추어야 합니다. 블레어 소위는 고결하고 충실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순종적이지 않았다면, 배의 안전을 위해 그가 했던 방식으로 기도하여 그렇게 구체적인 지침을 받는 데 필요한 영적인 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그분의 계명과 조화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하늘의 신호를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순종한다면 하늘과 다시 명확하게 교통할 수 있습니다. 구약전서에서 회개하다라는 말은 “돌이키다” 또는 “다시 돌아가다”라는 뜻입니다.7 하나님이 멀게 느껴진다면, 죄를 회개하고 몸을 돌려 구주를 바라보겠다는 결심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두 팔 벌려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는 그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그분께 기도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그 인도를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8

두 번째, 블레어 소위는 주님께 그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만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돕기 위해 그가 할 일은 무엇인지를 여쭈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여,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이까?”라고 여쭐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그저 문제를 늘어놓고 주께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 우리는 주의 도움을 받고 영의 인도에 따라 행하겠다고 결심하기 위해 더욱 주도적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블레어 소위의 이야기에는 세 번째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가 이전에 영의 인도를 받은 경험이 없었다면 그렇게 평온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태풍이 몰아치는 상황에는 성신의 은사에 쌓인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생각해 볼 시간이 없습니다. 이 젊은이는 전임 선교사 시절이나 다른 경험들을 통해 이미 여러 번 실천해 보았던 방식을 분명히 따랐던 것입니다. 파도가 잔잔할 때 성령을 우리의 인도자로 삼아야 사납게 휘몰아치는 폭풍 가운데서도 그 음성을 틀림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범사에 명령해야 함은 적절하지 아니”하며, 만일 그런다면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기 때문에9 매일 영의 인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전 구절은 초기 선교사 중 몇 명이 그들 스스로 받아야 할 계시를 조셉 스미스에게 대신 받아 달라고 청했던 상황에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바로 앞 구절에서, 주께서는 “그들과 나 사이에서 상의하는 대로10 선교 임지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교사들은 그들의 여행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계시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사안에 대해 스스로 인도를 구하기를 미처 배우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태도를 두고 게으르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초기 교회 회원들은 참된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서 스스로 계시를 받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뻔했습니다. 영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주님의 음성을 그분의 영을 통해 듣는 것입니다.

앨마는 아들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주와 의논하라”고 권고했습니다.11 우리가 흔히 “영에 따라 산다”고 말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은 고귀한 특권입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는 평온함과 확신뿐만 아니라 사랑, 기쁨, 화평과 같은 영의 열매도 얻게 됩니다.12

블레어 소위는 계시를 받는 능력을 가진 덕택에 자신과 부대원들을 거센 폭풍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또 다른 종류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몰몬경에 나오는 생명 나무의 비유는13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영적으로 안전할 수 있을지를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 줍니다. 이 꿈에는 갑작스런 어둠의 안개가 일어나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교회 회원들에게 영적 파멸을 가져다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14

그 장면을 생각하노라면, 수많은 사람이 그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쇠막대를 굳게 잡은 채 가고 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앞사람의 발만 보고 쫓아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후자가 걷는 방법은 생각도 노력도 적게 듭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대로 따라서 하면 됩니다. 화창한 날씨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속임수의 폭풍과 거짓의 안개는 경고 없이 찾아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신의 음성에 익숙하냐의 여부는 영적인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문제입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굳게 붙[드는] 자들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겠고, 유혹이나 대적의 불화살도 그들을 이겨 눈멀게 하여 멸망으로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니이다.”15

앞사람의 발만 보고 쫓아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대로 따라만 할 수는 없으며, 삶에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쇠막대를 직접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분께서 “손을 잡고 [우리]를 인도할 것이요,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확신하며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1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