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경고의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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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의 음성

선지자들이 경고해야 하는 의무를 특히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선지자만이 이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리하이와 그의 가족이 예루살렘을 떠나기 약 20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주전 597년에 스물다섯 살이던 에스겔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큰 무리의 포로들 속에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 아론 제사장의 혈통이었던 에스겔은 나이 서른에 선지자가 되었습니다.2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며 파수꾼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파수꾼]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3

반면,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4

그런 후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직접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5 그 경고란 죄에서 돌이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면] …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6

흥미롭게도 이 경고는 의로운 이에게도 적용됩니다.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7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당신의 자녀들에게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8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주께서는 전혀 우리를 정죄하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며, “간악함은 결코 행복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9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십니다. 따라서 에스겔을 비롯해 그 전이나 그 후의 모든 선지자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영혼의 적인 사탄에게서 돌이키고 “만인의 크신 중보자를 통하여 자유와 영생을 택[할]” 모든 사람에게 경고해 왔습니다.10

선지자들이 경고해야 하는 의무를 특히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선지자만이 이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경고를 받은 각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이웃에게 경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11 우리는 위대한 행복의 계획과 그 실천 강령인 계명에 관한 지식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나누고자 하는 소망을 느껴야 합니다. 그 지식으로 이곳과 영원 속에서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경고해야 할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면, 그 답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로 시작하는 비유에서12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내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두 가지 큰 계명, 즉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는 계명과13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경고의 음성을 높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사랑,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경고한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경고를 “부드럽고 온유”하게,14 그리고 “설득으로, 오래 참음으로, 온화함[으로], … 그리고 거짓 없는 사랑으로”15 하라고 이르셨습니다. 경고한다는 것은 때로 불 속에 손을 집어넣으려는 아이에게 주의를 줄 때처럼 급박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경고는 분명해야 하며 때로는 단호해야 합니다. 때로는 경고가 “성신에 감동되었을 때” 하듯이 꾸짖음의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16 그러나 그럴 때라도 경고는 언제나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선교사들 봉사하고 희생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그런 사랑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분명 부모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자녀들을 사랑하므로 자녀에게 경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경고란 복음 진리를 가르치고 간증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녀들에게 신앙과, 회개, 침례, 성신의 은사라는 그리스도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뜻합니다.17 주님은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깨우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명하여 너희 자녀를 빛과 진리로 양육하라 하였느니라.”18

경고를 해야 하는 부모의 의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의기소침하게 하는 죄의 결과뿐만 아니라 계명에 순종하며 생활하는 기쁨 또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노스의 다음 기사에서 무엇이 그가 하나님을 찾고 죄 사함을 받으며 개종하도록 이끌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보라, 내가 숲에 짐승을 사냥하러 갔더니, 내가 종종 들었던 바 나의 부친이 영생과 성도들의 기쁨에 관하여 하시던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느니라.

그리고 나의 영혼이 주렸던지라, 내가 나를 지으신 이 앞에 무릎을 꿇고 나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 그에게 부르짖었나니.”19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더없이 사랑하시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셨기에 주저 없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성역을 시작할 때부터 복음을 “전파하여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0 그분은 아무 길로나 천국에 이를 수는 없음을 아셨기에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21

또한, 죄인들에게 시간을 내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22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사두개인의 위선을 조금도 물러섬 없이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분은 단도직입적으로 경고하시고, 또 명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 분명 어느 누구도 구주께서 이들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사랑하지 않으셨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쨌든 그분은 그들 또한 구하기 위해 고통을 겪으셨고 죽음을 맞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분명하게 바로잡지 않고서 그들이 계속해서 죄를 짓게 내버려둘 수는 없으셨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하신 것처럼 모든 이를 받아들이되 또한 그들에게 죄에 관해 가르치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들을 경고해야 하기 때문이다.”24

때로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사람들이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폄하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리는 상대적이며 도덕적인 표준은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현재 통용되는 “올바른 사고”의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가장 혹독한 비난을 일삼기도 합니다. 한 저자는 이를 가리켜 “수치의 문화”라고 했습니다.

“죄의식 문화에서는 양심으로 느끼는 바에 따라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안다. 수치의 문화에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자신에 대해 말하는 바에 따라, 즉 그 공동체가 자신을 존중하는지 배척하는지에 따라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안다. [수치의 문화에서] 도덕적 삶은 옳고 그름의 연속성이 아니라 수용과 배척의 연속성 위에 세워진다.

… 수용과 배척의 바탕 위에 형성된 도덕 체계 안에서는 모두가 끊임없이 불안정하다. 항구적인 표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쉽게 변하는 군중의 판단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과민성과 과잉 반응, 잦은 도덕적 공황으로 대표되는 문화이며, 이 문화에서는 모든 사람이 부득불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긴다. 

… 죄의식의 문화의 경우 어떤 면에서는 가혹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죄는 미워하면서도 죄인은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다. 현대의 수치 문화는 이른바 수용과 배척을 가치로 여기지만,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거나 다수와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유독 잔혹한 면이 있다.”25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구속주의 반석”은 공의와 덕으로 이루어진 안정되고 항구적인 토대입니다.26 예측할 수 없는 규칙과 소셜 미디어 폭도의 분노에 휘둘리기보다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며 우리의 운명을 선택하고 제어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기보다는27 진리를 아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옳고 그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죄 안에서 쇠락하며 후회하기보다는 회개하고 복음의 표준대로 살고자 힘쓰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주님께서는 “경고의 음성이 이 마지막 날에 내가 택한 나의 제자들의 입으로 모든 백성에게 미치리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28 파수꾼이자 제자인 우리는 이 “가장 좋은 길”을 두고서29 중립을 표방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처럼 우리도 이 땅에 칼이 임함을 보며 “나팔을 불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30 물론 이 말씀은 이웃 집 문을 세게 두드리거나 공공광장에서 “회개하라”고 외쳐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참으로 그것에 관해 생각해 볼 때, 사람들이 내심 정말로 원하는 것은 모두 회복된 복음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고의 음성은 일반적으로 정중할 뿐 아니라 시편 저자의 표현처럼 “즐거운 소리”입니다.31

Deseret News(데저렛 뉴스)의 사설 편집자인 할 보이드는 잠자코 있는 것이 어떻게 폐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가지 예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미국 엘리트 계층 사이에서 결혼에 대한 관념이 여전히 “지적 논쟁”의 주제가 되지만, 실생활에서는 결혼 그 자체가 그들에게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엘리트들은 결혼을 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자녀들이 안정된 결혼 생활의 혜택을 누리게 [합니다.] … …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자신이 실천하는 것을 전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도덕적 지도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이른바 “강요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 수준이 높고 가족 관계가 굳건한 이들이 중립을 가장하기를 그만두고 결혼 및 육아와 관련하여 자신이 실천하는 것들을 전하여 … 동료 미국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할 때”입니다.32

우리는 특히 주님께서 다가오는 미래에 당신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필요로 하시는 자라나는 세대, 즉 청소년과 청년 독신 여러분이 사람들이 있는 데서나 없는 데서나 복음의 가르침과 교회의 표준을 한결같이 지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일 사람들을 무지 가운데 갈팡질팡하며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잘못된 관용 또는 사회적 용인이라는 개념에 굴하지 마십시오. 또한 불편함, 반감,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구주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33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의 선택과 살아가는 삶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구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나를 십자가 위에 들리게 하심이요, 또 내가 십자가 위에 들린 후에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내가 사람들에게 들렸던 것같이 사람들이 아버지께 들림을 받아, 내 앞에 서서, 그 행위가 선하든지 악하든지 그 행위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4

심판자로서의 주님의 위상을 생각하며, 저는 앨마의 다음 말로 여러분께 간청합니다.

“또 이제 나의 형제들아, 내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참으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큰 염려를 가지고 바라노니 … 너희 죄를 던져 버리고, 너희의 회개의 날을 미루지 말고,

도리어 너희는 주 앞에 겸손하고, 그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며, 깨어 항상 기도하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시험을 받지 않게 하고, 그리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겸손하고 온유하고 유순하고 인내하며 사랑이 충만하며, 모든 것에 오래 참는 자가 되며,

주를 믿으며, 영생을 받으리라는 소망을 가지며, 너희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지녀, 마지막 날에 너희가 들리워 그의 안식에 들어가게 되도록 하라.”35

우리 각자가 다윗과 같이 주님께 이같이 말씀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옵소서].”3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