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우리의 삶에서의 여성
2004년 10월


우리의 삶에서의 여성

우리의 삶에서의 여성에 대해, 저는 큰 고마움을 갖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큰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괜찮으시다면 먼저 제가 개인적인 특권을 행사하고 싶습니다. 여섯 달 전에 대회를 마치면서 저는 67년 동안 사랑해 온 동반자가 몹시 아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내는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날은 바로 4월 6일이었으며 이 교회의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마지막 병석에서 아내를 돌봐 주었던 헌신적인 의사들과 훌륭한 간호사들에게 공식적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내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날 때 자녀들과 저는 침대 옆에 있었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필멸의 목숨이 아내의 손가락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감정이 벅찼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아내는, 당시 유행가 가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제가 꿈속에서 그리던 여인이었습니다. 아내는 한 세기의 2/3이상 동안 사랑하는 동반자로 주님 앞에서 저와 동등한 사람이었으며, 실제로는 저보다 나았습니다. 이제 이 늙은 나이에 아내는 다시 제가 꿈속에서 그리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직후 전세계에서 엄청난 사랑의 말이 쇄도했습니다. 아름다운 많은 꽃들을 받았습니다. 거액의 기부금이 그녀의 이름으로 영구 교육 기금과 브리감 영 대학교의 학술 프로그램을 위해 들어왔습니다. 문자 그대로 수많은 편지가 왔습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사람들과 모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온 정말로 많은 편지가 여러 상자를 가득 채웠습니다. 모든 편지에는 그녀에 대한 찬사, 그리고 아내가 남기고 떠난 우리 가족에 대한 조의와 사랑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많은 관심에 일일이 감사의 뜻을 전할 수 없어 송구합니다. 따라서 이 자리를 빌려 큰 친절을 보여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리며, 답장을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벅찬 일이었지만 여러분의 관심은 슬픔의 시기에 위안의 기운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심각한 언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 감사합니다. 물론 때때로 작은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심각한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결혼은 누구라도 이룩할 수 있을 만큼 즐거웠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축복을 받고 있음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정말 여러분을 열렬히 칭찬합니다만, 결국에는 남편과 아내의 동반자 관계보다 더 소중한 동반자 관계란 없으며, 또는 선악의 경우 결혼의 영원한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 결과를 끊임없이 봅니다. 아름다움과 비극 모두를 봅니다. 따라서 오늘 저는 우리의 삶에서의 여성에 관해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의 창조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와 모세서에서 위대하고, 유일하고, 놀라운 일에 관해 읽을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그 창조의 설계자였습니다. 그분의 지시 아래 사랑하는 아들, 위대한 여호와께서 천사장 미가엘의 도움을 받아 창조를 실행하셨습니다.

먼저 하늘과 땅이 형성되었고, 그 다음에는 빛과 어둠이 나뉘어졌습니다. 그런 다음 물이 땅에서 걷히고, 그 다음에 식물이, 그 뒤에 동물이 생겼습니다. 인간의 창조는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창세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그러나 그 과정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창세기 2:20~23)

따라서 이브는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물, 즉 그 이전에 있었던 모든 놀라운 일의 원대한 최종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브의 창조에 주어진 탁월성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시대를 따라 내려오면서 부수적인 위치로 너무도 자주 격하되어 왔습니다. 여성은 경시되어 왔고, 모욕당해 왔으며, 예속되어 왔습니다. 여성은 학대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경전에 나오는 소수의 몇몇 위대한 인물은 고결성, 성취, 신앙을 지닌 여성들이었습니다.

구약전서에는 에스더, 나오미, 룻이 있습니다. 몰몬경에는 새라이아가 있습니다. 세상의 구속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도 있습니다. 그녀는 니파이가 “모든 처녀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아름답고 우아한 처녀”라고 묘사했던 하나님의 택하신 이입니다.(니파이일서 11:15 참조)

그녀는 헤롯의 진노에서 아기 예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아기를 데리고 갔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예수를 양육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고통으로 찢겨진 그분의 육신이 갈보리 언덕 위의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그녀는 그분 앞에 서있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그분이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며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말했습니다.(요한복음 19:26~27 참조)

그분의 생애를 살펴보면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도 있습니다. 그녀는 첫 부활절 아침에 무덤으로 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여인에게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처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여성을 이러한 탁월한 위치에 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는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그렇게 행하지 못할까요?

그분의 원대한 계획에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성별을 창조하셨습니다. 결혼을 통해 그 두 개의 성별이 고상하게 표현됩니다. 한쪽은 다른 한쪽을 보완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린도전서 11:11)

전능하신 이의 신성한 목적을 만족시키는 다른 관계는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분의 창조물입니다. 그 두 개의 성별은 그분의 계획입니다. 그들의 보완적 관계와 기능은 그분의 목적에서 기본적입니다. 어느 하나도 다른 하나가 없이는 불완전합니다.

우리 중에는 결혼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훌륭한 여성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그들은 충실하고 유능하게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또 여러 조직에서 가르칩니다. 그들은 역원으로서 봉사합니다.

일전에 저는 매우 흥미로운 일을 목격했습니다. 총관리 역원들이 모임 중에 있었고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단이 그곳에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이 유능한 여성들이 그 평의회실에서 복지 원리와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원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교회의 역원으로서 우리의 위치는 그 분들이 행한 일로 인해 약화되지는 않았습니다. 봉사하는 우리 능력이 커졌습니다.

거만한 마음으로 자신들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남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가져다준 어머니가 없었다면 자신들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할 때 그들은 바로 그들의 어머니를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격하시키면 자신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동시에 자신을 높일 수는 없다.”(Alexander Walker, Elbert Hubbard’s Scrapbook, 204쪽)

정말로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격하시킬 때 오는 쓴 열매를 주위에서 봅니다. 이혼이 그 결과 중의 하나입니다. 이 해악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결혼 반려자를 존중하지 않을 때 오는 결과입니다. 그것은 무시, 비판, 학대, 버림을 통해 그 모습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교회에 있다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태복음 19:6)

이 구절의 “사람”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사실상 이혼으로 이르는 상태를 초래하는 것은 주로 남자들입니다.

오랫동안 수백 건의 이혼 상황을 다루어 본 끝에 저는 이 비통한 문제를 푸는 데 하나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그 밖의 다른 무엇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남편과 모든 아내가 그 동반자의 위안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끊임없이 한다면, 이혼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논쟁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비난도 없을 것입니다. 분노가 폭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사랑과 관심이 학대와 비열함을 대신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우리가 부르던 유행가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난 행복하고 싶어요

그러나 나는 행복할 수가 없어요.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기 전까지는 말이죠.

(Irving Caesar, “I Want to Be Happy” [1924년])

정말 옳은 말입니다.

모든 여성은 하나님의 딸입니다. 여성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남성들에게 간청드리건대, 여러분 동반자의 내면에 있는 신성을 찾아보고 키워 주십시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정도에 따라 조화와 평화가 있고 가족 생활이 윤택해지고 사랑이 커질 것입니다.

맥케이 대관장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켰습니다. “인생에서의 어떠한 성공도 가정에서의 실패를 보상할 수 없습니다.”(J. E. McCulloch, Home: The Savior of Civilization [1924년], 42쪽에서 인용; 대회 보고, 1935년 4월, 116쪽)

마찬가지로 리 대관장님은 이런 진리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하게 될 주님의 가장 중요한 일은 여러분의 가정의 울타리 안에 있는 일입니다.”(“Maintain Your Place as a Woman”, Ensign, 1972년 2월호, 51쪽)

결혼 생활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이혼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용서, 친절과 관심의 표현에 있습니다. 황금률의 적용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성약을 맺으면서 제단에서 손을 마주 잡고 있을 때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그런 다음 몇 달, 또는 몇 년 후에 모욕적인 언사, 경박하고 가슴 아픈 말, 높은 음성, 모진 비난을 서로에게 할 때 그 모습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이런 “천하고 보잘것없는 요소들”(갈라디아서 4:9)보다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우리 각자에게 있는 신성한 성품을 서로에게서 찾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훈육하는 반면, 우리의 동반자를 훈육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 생활 방식 속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것들을 성취하면서 함께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의 여성은 특별하고 신성한 자질을 부여 받은 피조물이며 그 자질들은 친절과 사랑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서게 합니다. 우리는 여성들에게 있는 재능과 천부적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어 그런 손길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노년기에 제 사랑하는 동반자는 어느 날 저녁 제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제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었어요. 당신의 그러한 점이 좋았어요.”

지금은 사망했지만 생존해 있을 때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우겼던 한 남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가 없이는 가족들은 신발 한 켤레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피아노 교습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동의 없이는 교회에서 봉사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태도의 결과를 목격했는데, 그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제 부친은 어머니를 칭찬하는 데 결코 망설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친이 어머니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그 분이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친은 어머니를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의 모범에 한없이 감사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더 말씀드릴 수도 있지만 그만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아들 딸, 형제 자매라는 위대하고 놀라운 진리를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아버지로서 제가 딸보다 아들들을 더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잘못을 범했다면 저는 딸들 편에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나이 들면 딸들을 그 주위에 두는 것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딸들은 너무 친절하고 훌륭하고 사려 깊습니다. 제 아들들에게는 능력과 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딸들은 영리하고 친절합니다. 이런 이유로 “제 잔이 넘칩니다.”(시편 23:5 참조)

여성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행복의 계획”에서 매우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여성 없이 그 계획은 실효를 거둘 수 없습니다.

형제 여러분, 세상에는 불행이 너무 많습니다. 비참함과 마음의 고통과 비탄이 너무 많습니다. 슬퍼하는 아내들과 딸들이 흘리는 눈물이 너무도 많습니다. 태만과 학대와 불친절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권을 주셨으며, 그 신권은 “다만 설득과 오래 참음과 온화함과 온유함과 거짓 없는 사랑과, 친절과 깨끗한 지식으로” 행사될 수 있으며, “이것들은 위선이나 간교함이 없어 사람을 심히 크게 만[듭니다]”(교성 121:41~42)

우리의 삶에서의 여성에 대해, 저는 큰 고마움을 갖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큰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성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분의 큰 사랑이 그들에게 내려지고, 광채와 아름다움, 은혜와 신앙을 그들에게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남성들에게도 그분의 영이 임하여, 그 영이 우리 구속주와 주님의 복음의 정수인 존경과 감사, 격려, 힘, 양육, 사랑 속에서 그들을 잡아 줄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기를 빕니다. 이 모든 것을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