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제6장: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자 구속주


제6장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자 구속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 유일한 근원으로 바라봅니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의 생애에서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저는 어느 한 순간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때를 기억할 수 없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의 실체가 늘 저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그분에 대한 간증이 있는 부모님 아래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에 대해 감사드립니다.”1

벤슨 회장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간증에 기초를 두었다. 벤슨 회장의 우선순위는 그 간증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 간증은 그의 선택을 이끌었으며, 시련의 시기에는 힘이 되었다. 그 간증을 통해 그는 필멸의 삶의 목적을 바라보는 시각을 얻고, 영생에 대한 약속 및 축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벤슨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증인인 사도로서 성역을 베푸는 동안 자주 구주에 대한 간증을 전했다. 그는 “‘몰몬은 기독교인입니까?’라는 질문을 가끔씩은 받는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간증을 전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 유일한 근원으로 바라봅니다.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며, 그분이 이 지상에 다시 오셔서 만왕의 왕이시자 만주의 주로서 다스리고 통치하실 그 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몰몬경에 나오는 선지자의 말씀을 빌려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전합니다. ‘사람의 자녀들에게 구원이 이를 수 있는 다른 아무 이름이나 다른 어떠한 길이나 방법도 주어지지 아니하리니, 다만 전능하신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하여서만 구원이 올 수 있느니라.’(모사이야서 3:17)”2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벤슨 회장의 선언들은 몰몬경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3 그는 이렇게 말씀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몰몬경을 통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라는] ……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증거를 우리 시대를 위해 마련해 주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4 그는 몰몬경의 “주요 사명”이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확신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쳤다.5 그는 다음과 같은 점을 주목했다. “몰몬경에 실려 있는 모든 성구의 절반 이상이 우리의 주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몰몬경에서는 백 개 이상의 다른 이름으로 그분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름들은 그분의 신성을 묘사해 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6

구주에 대한 벤슨 회장의 간증에서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가깝게 느꼈는지를 알 수 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이 팔레스타인의 먼지 나는 길을 걸으실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사랑이 가득하시고 자비로우신 주님이라는 것을 겸손히 간증드립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있는 주님의 종들과 가까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염려하시며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살아 계신 우리의 주님이시며, 선생님, 구주, 구속주이자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고, 경배하고, 온전히 의지하며 따르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겸손히 기도드립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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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surrected Jesus Christ appearing to Mary Magdalene by the Garden Tomb.

“각 개인과 국가들에 주님의 부활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의 가르침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기에 육체적 사망과 영적 사망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지상의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없는 우리의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앙도, 예배도 없이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혼란과 암흑의 굴레와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정하신 목표에 우리가 다다르자면 아직도 너무나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목표 자체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빛과 완전을 향한 우리의 위대한 여정이 그분의 가르침과 생애, 그분의 사망과 부활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8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일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다음의 중요한 진리를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지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은 모든 죄의 짐을 짊어지실 것을 미리 알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인류의 구주이며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권능을 지니셨기에 그분의 사명을 성취하실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자신의 사명을 기꺼이 성취하려 하셨습니다.

그 어떤 필멸의 인간도 다른 사람을 길을 잃거나 타락한 상황에서 구속시킬 권능이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스스로 생명을 내어 줌으로써 다른 모든 인간을 부활할 수 있게 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러한 구속의 사랑을 기꺼이 베푸실 수 있었습니다.9

예수 그리스도는 …… 미리 약속된 때에 신성을 지니고 고귀한 출생을 통해 지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육신의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속성을 물려받으셨으며,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신의 속성과 권능을 물려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독특한 출생을 통해 육신을 입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라는, 영광된 이름을 갖게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과거나 미래의 어느 인간도 갖지 못할 능력과 지혜를 지니고 태어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사실 그대로 임마누엘으로서 이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사야 7:14; 마태복음 1:23 참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지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아버지의 신성한 계획에 따라 필멸의 육신이 겪는 온갖 어려움과 고난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시험과 …… 주림, 갈증과 피로를”(모사이야서 3:7) 겪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의 구속주가 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아버지의 모든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셔야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셨기에 “은혜에 은혜를 받으시더니, 드디어는 충만함을 받으시[었으며]” 그리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으셨[습니다.]”(교리와 성약 93:13, 17)10

예수님은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다른 사람들의 죄의 짐을 짊어지실 수 있으셨습니다. 이사야는 구주께서 그 짊을 기꺼이 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4~5)

예수께서 세상 사람들의 죄를 자진해서 짊어지신 그 성스럽고도 비이기적인 행동이 바로 속죄입니다. 한 사람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필멸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 속죄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보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 …… 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하여 - 내가 그 쓴 잔을 마시지 않고 물러서려 하게 하였느니라”(교리와 성약 19:16, 18)

예수님은 엄청난 고통 가운데에서도 그 쓴 잔을 들어 마심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박해자들의 굴욕과 모욕을 아무 불평이나 보복없이 견디셨고 채찍질과 십자가에 달리시는 가혹한 처형의 치욕도 참으셨습니다.11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과 갈보리에서 무한하면서도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속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 후 그분의 죽음과 속죄가 뒤따랐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우리의 구속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모두 육체적인 사망에서 구속하셨으며, 그분의 율법과 복음 의식을 따르는 이들을 영적인 사망에서 구속하셨습니다.12

우리는 필멸의 삶에서 예수님이 그 일을 어떻게 해내셨는지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분께서 그 일을 하셨는가를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업적은 모두 우리에 대한 이타적이며 무한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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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scene of the Last Supper. Central figure, Jesus, wears a white robe with a cloth covering His head. He holds a bowl in his right hand with is slightly raised. To His left is a man in a red cap head turned and his hand covering his mouth. In the shadows is a man in a dark robe and light head covering with his hand to his chin. Next to him is a man with a curly dark hair with his hand to his chest. Next to him is reclining man, older bearded with his hands to his chin. Next to this figure are two men is shadow. One with a dark beard sitting crossed legged with his hand in his lap; the other barely visible. Next is a man with a beard in a white robe, looking directly at Jesus. The next man is lying on his stomach, wearing a white tunic with a blue over-robe. He is bringing something to his mouth. The next man has his back to the viewer, he has dark hair, a brown robe and a red shawl, he also wears a brown yarmulke. Next is a man lying on his side in a green tunic with a blue sash. He also wears a blue turban and lies on a striped blanket. The next man has light hair and an off-white robe. He reclines on his side and has an arm slightly raised. The final man, is only visible in profile, wears a red robe. He has dark hair and a beard. Lower right corner reads, " Walter Rane '04" in red.

“지상의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일은 없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나오셨으며, 현재도 부활한 존재로서 살아 계신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었던 이 일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각 개인과 국가들에 주님의 부활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모든 사람은 문자 그대로 분명히 부활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을 대비해서 착실히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부활은 모든 이에게 일어날 것이기에 사람들은 영화로운 부활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부활처럼 전 인류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은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고린도전서15:22) 것이기에 모든 사람은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경전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지 3일째 되는 날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굴려 밀려났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사람 중 가장 충실했던 몇몇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서 보니 “예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천사들이 나타나서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누가복음 24:3~6)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인류 역사상 이 극적인 말씀만큼 중요한 말은 없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신뢰할 만한 수많은 증인들의 간증에 기초를 둡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몇몇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으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베드로와 그 외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바울이 기록했던 것처럼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 맨 나중에 …… [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고린도전서 15:6, 8) ……

주님을 증거하는 후기의 한 증인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살아 계심을 간증드립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분으로, 우리의 구주이고 주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영화로우신 주님으로서 재림하시리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그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주요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요한복음 14:19)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14

오직 그분에게만 부활에 이를 권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무덤에 안치되신 지 3일째 되던 날에 예수님은 무덤에서 나오셔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 저 역시 오늘날 [그분의] 특별한 증인이라 불리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살아 계십니다. 주님이 문자 그대로 부활하셨다는 진리보다 더 크게 확신하는 진리나 사실은 제게 없습니다.15

3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에서 담대해야 한다.

교회의 모든 회원이 받게 되는 가장 귀한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의 거룩한 특성에 대한 간증입니다. 간증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지니고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유물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갖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사명에 대한 것을 성신을 통해 아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갖는다는 것은 주님의 탄생에 대한 신성한 본질, 즉 실제로 그분이 육체를 입은 유일한 독생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갖는다는 것은 그분이 약속된 메시야로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는 동안 많은 위대한 기적을 이루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갖는다는 것은 주께서 교리로 규정하신 율법이 참되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러한 율법과 의식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갖기 위해서는 그분께서 스스로 원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육과 영으로 고통을 받으시며 모든 땀 구멍에서 피를 흘리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면 고통을 겪지 않게 하시려고 그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9:16, 18 참조)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갖는다는 것은 주께서 실제로 부활한 육신을 입고 무덤에서 당당히 일어나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은 살아 계시기에 모든 인류도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갖는다는 것은 주께서 오시기 전에 구원이 만방에 전파되도록 복음의 새로운 경륜의 시대를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갖는다는 것은 주께서 절정의 때에 세우신 교회가 “온 지면 위에서 유일한 참되고 살아 있는 교회”(교리와 성약 1:30)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현대에 회복되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한 간증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닌 간증을 가지고 더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간증에 담대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룩한 사명과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여, 주님의 과업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조셉 스미스와 그의 뒤를 계승한 이들의 선지자적인 사명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 자신의 음성으로 한 것이나 나의 종들의 음성으로 한 것이나 같으니라.”(교리와 성약 1:38)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종국에는 해의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될 사람들에 대하여, 주님은 조셉 스미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한 증거를 받아들이고 그의 이름을 믿고 그의 이름으로 물 속에 매장됨으로써 그의 매장된 방식을 좇아 침례를 받은 자들이니, 이는 그가 주신 계명에 따른 것이라”(교리와 성약 76:51)

이들은 주께서 “신앙으로써 승리한 자요, 아버지께서 의롭고 참된 모든 자에게 내려 주시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봉된 자”(교리와 성약 76:53)라고 말씀하셨듯이, 예수에 대한 간증에 담대한 자들입니다.16

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완전히 그분께 의지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으로 구성된다.

우리 종교의 기본 원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의 확신, 희망, 신뢰를 오직 그분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은 왜 당연한 일일까요? 또한 이 세상에서 마음의 화평을 얻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는 데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갖는 것이 왜 필요할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에 따라 우리가 미래를 용기와 희망과 낙관으로 볼 것인가, 혹은 불안과 걱정과 비관으로 볼 것인가가 결정됩니다.

저의 생각과 간증은 이렇습니다. 세상을 극복하고 인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데 필요한 희망과 확신, 힘을 가지신 존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이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키고 그분의 율법과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되겠습니다. ……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그분이 살아 계심을 믿는 것 이상이며, 신앙을 고백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분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무한한 권능, 지혜, 사랑을 지니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문제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 아래로 내려가 보셨기에(교리와 성약 122:8 참조) 우리가 일상 생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란 우리는 비록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분은 모두 알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무슨 생각을 하든지 …… 의심하지 말며, 무서워 말[아야 합니다.]”(교리와 성약 6:36)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란 예수님이 모든 백성과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시지 못할 악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지구는 예수님의 정당한 통치 영역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악을 허락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와 사회의 악에 대한 완전한 처방약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오직 우리의 생활에 적용될 때에만 효과가 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흡족히 취[해야]” 합니다. “이는 보라, 그리스도의 말씀은 너희가 무엇을 행하여야 할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일러 주심이니라.”(니파이후서 32:3)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표현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가 예수님이 하신 다음 말씀을 실천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 39)

“오늘날 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문제와 역경과 관련하여 어떠한 일이 행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주신 간단한 처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가 계신 것과 그가 하늘과 땅의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으라. 그가 하늘과 땅의 모든 지혜와 모든 권능을 가지셨음을 믿으라. 사람은 주께서 이해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함을 믿으라. ……

너희는 너희 죄를 회개하고 버려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함을 믿으라. 그리고 그가 너희를 용서하여 주실 것을 진실한 마음으로 구하라. 그리고 이제, 만일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믿는다면 너희는 이를 행하도록 하라.”(모사이야서 4:9~10; 강조체 추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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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in white robes) walking along a seashore. He is beckoning to Peter and Andrew (who are on a fishing boat with other fishermen) to follow Him. The painting depicts Christ's calling of Peter and Andrew to follow Him as they would later be ordained as His Apostles.

“나를 따라오라”(마가복음 1:17)

5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려고 노력할 때 가장 큰 축복과 기쁨을 얻게 된다.

이 생의 목적 중 하나는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이면 “다 행하는지”(아브라함서 3:25) 보이기 위해 시험받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따르고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에 관한 핵심 화두는 바울이 제기한 이 질문과 같아야 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길 바라시나이까”(사도행전 9:6[개역 개정판 경전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음-옮긴이]) ……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킬 그리스도의 남성과 여성이 더 필요합니다. 성공을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도구는 매순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얼마나 가까이에서 걸었느냐를 확인하는 것입니다.18

자신의 신앙을 위해 기꺼이 죽을 용의는 있으나 그 신앙대로 살려는 마음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살고, 또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모범을 따름으로써, 또한 그분의 속죄를 통하여, 모든 은사 중에서 가장 큰 은사, 즉 위대한 영존자이신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누리시는 것과 같은 종류의 삶인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제3니파이 27:27)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에 가장 근접한 생활을 하는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위대하며 축복되고 기쁨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부나 권력, 특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의 위대함과 축복, 기쁨에 대한 유일하고 참된 시험은 우리가 주님과 얼마나 비슷하게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 자체가 옳은 길이자 충만한 진리이며, 풍성한 삶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생각해야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바라시나이까”(사도행전 9:6[개역 개정판 경전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음-옮긴이]) 그에 대한 답은 오직 그리스도의 빛과 성신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합당하게 생활하여 그리스도의 빛과 성신으로 충만한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셨고, 또한 하고 계신 모든 일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 보답으로 무엇을 그분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과 희생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작은 선물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우리 생명과 희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19

그리스도의 통솔을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불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뜻은 주님의 뜻에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요한복음 5:30 참조) 그들은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요한복음 8:29 참조) 그들은 주님을 위해 죽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합니다.

그들의 집에 들어가 보면, 벽에 걸린 그림, 책장에 꽂힌 책, 잔잔히 흐르는 음악, 그들의 말과 행동이 그들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냅니다. 어느 때에나 무슨 일에나,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증인이 됩니다.(모사이야서 18:9 참조) 그리스도를 늘 기억하며,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분을 바라봅니다.(교리와 성약 6:36 참조) 가슴 속에 그리스도를 품고서 마음속의 사랑을 영원토록 그분께 돌립니다.(앨마서 37:36 참조)

거의 매주 성찬을 취하며 기쁘게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받들고, 항상 그를 기억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을 영원하신 아버지께 다시 한 번 증거합니다.(모로나이서 4:3 참조)

몰몬경에 보면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흡족히 취하[고]”(니파이후서 32:3)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니파이후서 25:26)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니파이후서 25:26)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심을 받[고]”(니파이후서 25:25) “[그들의] 예수를 자랑”(니파이후서 33:6)한다고 나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주님 안에서 자신을 버리고 영생을 찾습니다.(누가복음 17:33 참조)20

학습 및 교수 제언

질문

  • 벤슨 회장은 구주께서 어떻게 속죄를 치루셨는지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이 하셨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1편 참조) 이를 이해하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가?

  • 2편을 공부할 때 구주의 부활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분의 부활이 여러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이 “가장 귀한 축복”인 이유는 무엇일까?(3편 참조) 구주에 대한 간증에서 담대하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대한 벤슨 회장의 말씀을 생각해 본다.(4편 참조)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표현한 이 글은 어떤 면에서 “그분이 살아 계심을 믿는 것” 이상이라는 점을 나타내는가?

  • 벤슨 회장은 “그리스도의 통솔을 받는” 사람들은 기꺼이 “주님을 위해 죽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한다.]”(5편 참조)고 말씀했다. 구주를 위해 산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관련 성구

요한복음 10:17~18; 니파이후서 9:20~24; 31:20~21; 모사이야서 16:6~11; 제3니파이 27:20~22; 모로나이서 7:33; 교리와 성약 19:1~3, 16~19; 76:22~24; 신앙개조 제3조

학습을 위한 도움말

“복음을 이해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느낄 때, 여러분은 배우는 것을 적용하고 싶어질 것이다. 여러분이 이해하는 것과 일치하는 생활을 하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의 신앙, 지식 및 간증은 강화된다.”(나의 복음을 전파하라[2004], 19쪽)

  1. “부활절의 의의”, 성도의 벗, 1993년 4월호, 3쪽.

  2. The Teachings of Ezra Taft Benson (1988), 10.

  3.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성도의 벗, 1988년 1월호, 89쪽 참조; “나는 간증드립니다”, 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97~98쪽.

  4. “나는 간증드립니다”, 97쪽.

  5.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89쪽; 또한 “하나님께로 태어남”, 성도의 벗, 1989년 10월호, 2쪽 참조.

  6.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89쪽.

  7.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며 구속주”, 성도의 벗, 1990년 12월호, 8쪽.

  8. “인생은 영원함”, 성도의 벗, 1992년 4월호, 4쪽.

  9.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며 구속주”, 4~5쪽.

  10.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며 구속주”, 4쪽.

  11.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 우리의 하나님”, 성도의 벗, 1991년 12월호, 4쪽.

  12. “Keeping Christ in Christmas,” Ensign, Dec. 1993, 4.

  13.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며 구속주”, 5쪽.

  14. “부활절의 의의”, 4, 5쪽.

  15.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 우리의 하나님”, 4쪽.

  16. “예수에 대한 간증에 담대한 자”, 성도의 벗, 1987년 6월호, 2쪽.

  17.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며 구속주”, 2, 4, 6, 8쪽.

  18. “주님의 발자취 따라”, 성도의 벗, 1989년 2월호, 6, 7쪽.

  19. “예수 그리스도—은사와 기대”, 성도의 벗, 1987년 12월호, 3, 4쪽.

  20. “하나님께로 태어남”,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