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자료
제7과: 용서의 치유력


“제7과: 용서의 치유력,” 결혼 및 가족 관계 반원 학습 지도서 (2000), 25–27

“제7과,” 결혼 및 가족 관계 반원 학습 지도서, 25–27

7

용서의 치유력

적용을 위한 제언

자신의 필요 사항과 상황에 따라 다음 제언 중 한 가지 이상 행한다.

독서 과제

다음 기사에 대해 공부한다. 여러분이 기혼자일 경우, 여러분의 배우자와 함께 기사를 읽고 토론한다.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을 요구하노라”

고든 비 힝클리 회장
제일회장단 제1보좌

자기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품고 사랑과 동정심으로 대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이러한 마음을 지녀야 하며, 전세계가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도 그것을 가르치셨으며,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훌륭하게 그것에 대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시어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주님은 자신에게 그토록 끔찍한 고통을 가져다준 악하고 가증스러운 무리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그처럼 관대하게 용서할 것이 요구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각기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자비의 손길을 뻗쳐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주님은 계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의 나의 제자들이 서로 대적할 기회를 찾으며, 마음에 서로 용서하지 아니하더니, 이 악으로 인해 그들이 고난을 겪고 심히 징계를 받았느니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마땅히 서로 용서해야 하느니라. 이는 자기 형제의 과실을 용서해 주지 아니하는 자는 주 앞에서 정죄받음이니, 더 큰 죄가 그에게 머물로 있음이니라.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려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 요구되느니라.

“또 너희는 마땅히 마음속으로 이르기를-하나님께서는 나와 그대 사이를 판단하사 그대의 행위에 따라 그대에게 갚으실지로다 라고 하여야 하느니라.”(교리와 성약 64:8~11)

하나님께서 주신 이 원리와 이와 동등한 원리인 회개를 생활에 적용해야 할 필요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가정에서 사소한 불화가 점점 심해져서 결국에는 심각한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볼 때, 이러한 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우리 이웃에서도 대수롭지 않은 의견 차이가 골이 깊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초래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처럼 서로 용서하고 타협점을 찾기를 거부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함께 앉아서 서로 조용한 말로 대화를 나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데도, 사람들은 원한을 키우고 보복할 궁리를 하는 데 시간을 허비합니다.

교회가 조직된 첫 해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여러 차례 체포되어 그를 해치려는 사람들이 꾸며 낸 죄로 인하여 재판을 받을 때에 주님은 계시를 통하여 “또 누구든지 너를 법에 고소하는 자는 율법으로 저주 받으리라.”(교리와 성약 24:1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앙심을 풀지 않고 적개심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같이 저주가 내려진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설혹 복수심을 만족시킨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표정에서 평온한 모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보다 더 귀중한 것을 잃게 됩니다.

원통한 마음을 풀어버림

프랑스 작가인 기 드 모파상의 작품 가운데 오치꽁이라는 한 농부가 장날에 마을에 가서 겪은 일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을 공터를 지나가던 오치꽁은 자갈 위에 끈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주워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 때 마침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마구 제조업자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전에 오치꽁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 오후에 시장에게 누군가 돈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오치꽁은 마구 제조업자의 고발로 체포되어 시장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는 시장에게 무죄를 주장하면서 그가 주은 끈을 보여 주었으나, 아무도 그를 믿으려 하지 않고 비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다음날 이 문제의 지갑이 발견되어 오치꽁은 무죄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거짓 고소로 인해 받은 모욕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된 그는 그 일을 잊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치꽁은 용서하고 잊으려 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되뇌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농사 일도 게을리 하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며, 결국은 슬픔에 억눌려 깊은 병에 걸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고통 속에서도 오치꽁은 “끈, 끈”하며 계속 중얼거렸습니다.(기 드 모파상 작품집, 로스린, 뉴욕: 블랙스 리더 서비스, 34~38쪽)

등장 인물이나 상황만 다를 뿐이지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오늘날에도 계속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어느 누구에게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우리 시대에 서로 용서하고 잊는 것보다 더 필요한 미덕이 있습니까? 이런 미덕을 연약함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저는 부당하게 고통 받은 것에 대해 분한 마음을 품고, 복수하려는 일념으로 평생을 살아가며, 복수할 계획을 세우느라 자신의 능력을 소진해 버리는 데 우리의 힘과 지식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악의가 싹트는 곳에는 평화가 없으며, 복수할 그 날을 위해 사는 삶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우리 삶 가운데서 “약하고 천박한”(갈라디아서 4:9)것에 관해서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악한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복수를 꾀하며 일생을 소모하려는 성향보다 더 약하고 천한 것이 있겠습니까?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은 세상 사람이 후기 성도들을 매우 비판하던 시기에 교회를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늘 악의에 찬 비난의 표적이 되었으며, 심지어 그 사회의 평론가들도 거침 없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조롱하였으며 풍자 만화의 주제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어떤 이야기라도 꾸며 내도록 하고, 어떤 글이라도 쓰게 하십시오. 그에 대한 심판은 그들 스스로 받게 될 것입니다.”(복음 교리, 339쪽) 그리고 이와 같이 용서하며 잊어버리는 마음으로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은 위대하고도 적극적인 힘을 발휘하여 교회를 인도했으며 결국 새로운 성장과 눈부신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회장님이 임종하시자 그 때까지 그분을 비방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찬양하는 글을 썼습니다.

저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부부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둘 사이에는 서로 증오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한때는 진실로 사랑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헐뜯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범하기 쉬운 실수를 용서하고 참고 잊으려 하는 대신 서로 비판하게 되어 결국은 서로에 대한 사랑까지 식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으며, 남은 것은 고독감과 비난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조금씩이나마 회개하고 용서하는 생활을 했더라면 그들은 아직도 지난날 그들의 삶을 풍성하게 축복해 주었던 동반자 관계를 함께 누릴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용서를 통한 화평

여러분 가운데 마음속으로 남을 증오하는 독소를 키우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주님께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하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이와 같은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 곧 회개의 본질이 될 것입니다. 그 일이 단시일 내에 간단히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진지하게 구하고 그 마음을 계속 가꾸어 나간다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용서해 준 사람이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화해를 하기 위해 이미 할 일을 했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며,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마음의 화평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화평은 곧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화평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 6:14~15)

탕자

저는 문학 작품 중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만큼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은 없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는 회개하는 아들과 용서하는 아버지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박차고 나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모두 탕진합니다.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나자, 그는 굶주리게 되었으며, 친구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에 스스로 돌이켜”(누가복음 15:17) 부친에게로 돌아갑니다. 부친은 멀리에서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누가복음 15:20) 맞추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이야기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은 모두 이 이야기를 되풀이해 읽으셔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모든 가정을 깨우치며, 온 인류를 깨우치고도 남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다 회개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비로우신 용서를 받고 그분의 모범을 따라야 할 방탕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신 구속주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십니다. 넓은 도량으로 진심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주님께서 요구하신 회개를 표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주신 말씀을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회개하기를 명하노니-회개하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 입의 막대기로, 또 나의 진노로, 또 나의 분노로 너를 쳐서 네 고난이 극심할까 하노라-얼마나 극심한지 너는 알지 못하며, 얼마나 격렬한지 너는 알지 못하나니, 참으로,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너는 알지 못하느니라.

“이는 보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할진대, 그들은 나처럼 고난을 겪어야만 하나니,

“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하여-

“내게서 배우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나의 영의 온유함으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는 내 안에서 화평을 누리리라.”(교리와 성약 19:15~18, 23)

이것이 바로 계명이며, 우리에게 훌륭한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여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간구하셨습니다.(마태복음 6:9, 12)

상처를 감싸 줌

링컨 대통령은 그 끔찍했던 남북 전쟁으로 야기된 비극에 관해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며 … 서로 상처를 감싸 줍시다.”(존 바틀렛, Familiar Quotations [1968년], 640쪽)

형제 자매 여러분, 서로 상처를 감싸 주도록 합시다.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깊이 뿌리 내린 불만이나, 또는 자기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앙갚음하겠다는 생각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복수심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으나, 다행스럽게도 완전과 평화의 끈인 외투와 같은 사랑의 끈으로 몸을 감싼다면 그것을 능히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교리와 성약 88:125 참조)

“잘못을 범하는 것은 인간이고, 용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알렉산더 포프, An Essay on Criticism, 2:1711) 지나간 상처의 아픔을 간직하고서는 마음의 화평을 얻을 수 없습니다. 화평은 회개하고 용서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화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