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일곱 우레가 울리듯
2020년 1월호


“일곱 우레가 울리듯”,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2권, 그 어떤 신성하지 않은 손도, 1846~1893년』(2019) 제6장

제6장: “일곱 우레가 울리듯”

제6장

일곱 우레가 울리듯

이미지
눈 덮인 통나무집

1847년 가을, 올리버 카우드리는 아내인 엘리자베스 앤과 딸 마리아 루이즈와 함께 윈터쿼터스에서 8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위스콘신준주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제 마흔한 살이 된 그는 형과 함께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올리버가 몰몬경 번역 작업에서 조셉 스미스의 서기로 일한 지도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회복된 복음을 믿었지만 지난 9년간은 성도들과 거리를 둔 채 살아 왔다.1

올리버의 여동생 루시의 남편은 브리검 영의 형인 피니아스 영이었다. 올리버와 피니아스는 가까운 친구로 지내며 자주 편지로 왕래했다. 피니아스는 올리버에게 교회는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편지에 자주 적어 보냈다.2

다른 오랜 친구들도 올리버에게 연락을 했다. 커틀랜드의 인쇄소에서 올리버 밑에서 일했던 새뮤얼 브래넌은 그에게 브루클린호를 타고 성도들과 함께 가자고 권했었고, 조셉 스미스와 사이가 벌어진 뒤 잠시 교회를 떠났던 윌리엄 펠프스도 그에게 서부로 가자고 했다. 윌리엄은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이스라엘이라고 믿으신다면, 와서 함께 가시지요.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3

그러나 올리버는 감정의 골이 깊었다. 그는 토머스 마쉬와 시드니 리그돈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미주리에서 조셉과 고등평의회를 선동하여 자신을 등지게 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교회를 떠난 것 때문에 성도들 사이에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루어 낸 공적, 특히 몰몬경이 번역되고 신권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역할을 성도들이 기억해 주길 바랐다.4

그는 피니아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기도 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해 왔습니다. 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형제님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만일 형제님이 돌아가신 조셉 형제님과 함께 요한의 면전에서 아론 신권을 받고, 베드로의 면전에서 멜기세덱 신권을 받았더라면 말이지요.”5

올리버는 십이사도 정원회가 교회를 감리할 권세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는 브리검 영과 자신이 아는 다른 사도들을 존중했지만, 그들이 성도들을 이끌도록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증거는 얻지 못했다. 올리버는 지금 교회가 정체 상태에 있으며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선발대가 솔트레이크밸리에 들어선 7월 무렵, 과거에 교회의 사도였던 윌리엄 매클렐른이 올리버를 찾아갔었다. 윌리엄은 미주리주에서 회복된 복음에 기초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고 싶어 했고, 그 일에 올리버가 동참해 주기를 바랐다. 이를 계기로 올리버는 아내의 오빠이자 자신과 함께 몰몬경의 증인인 데이비드 휘트머에게 편지를 보냈다. 윌리엄이 데이비드도 찾아가리라는것을 알았던 올리버는 윌리엄과 윌리엄이 하려는 일을 데이비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6

6주 뒤, 데이비드는 윌리엄이 정말로 자신을 찾아왔다면서 다음과 같이 답장을 썼다. “우리는 다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네. 아니,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겠네. 자네를 교회 회장단의 내 보좌 중 한 명으로 부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네.”7

올리버는 이 제안을 깊이 생각해 보았다. 데이비드와 윌리엄과 함께 미주리주에서 새로운 교회 회장단을 이루면 그는 다시 한번 회복된 복음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가 1829년에 받아들였던 것과 똑같은 복음일까? 그리고 데이비드와 윌리엄은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 권세를 받은 것일까?8


1847년 10월 19일 이른 아침, 사도인 윌포드 우드럽과 아마사 라이먼은 멀리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불쑥 나타난 일곱 명의 남자들을 발견했다. 보통, 개척자들은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은 윌포드를 긴장시켰다.

이틀 전부터 윌포드와 아마사 등 몇몇 형제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브리검 영의 귀환 부대를 먹이기 위해 들소를 사냥했다. 목적지인 윈터쿼터스에 도착하려면 아직 일주일 이상 더 길을 가야 했다. 따라서 사냥에 나선 형제들이 모는 세 대의 우마차에 들소 고기를 비축해 두지 않으면, 부대는 여정을 마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부대에는 몸이 아픈 사람들도 많았다.9

처음에 사도들은 그들이 인디언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그 낯선 이들을 주시했다.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지면서 보니 그들은 말을 탄 백인들이었고, 어쩌면 군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냥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사냥하던 윌포드 일행은 공격에 대비해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더 가까이 접근해 온 무리 속에서 윈터쿼터스의 경찰서장 호세아 스타우트를 발견한 윌포드는 놀랍고도 기뻤다. 귀환 부대가 극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윈터쿼터스의 성도들이 부대의 형제들과 그들의 가축을 위한 물자를 호세아 일행을 통해 보내온 것이었다.10

브리검의 귀환 부대는 성도들의 원조에 힘입어 다시금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10월 31일, 부대가 정착지 부근에 다다르자 브리검은 우마차를 멈추고 한 곳에 모이도록 모두에게 신호를 보냈다. 힘겨운 하루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부대원들은 당장 가서 가족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브리검은 부대를 해산하기 전에 짧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브리검은 부대 대원들에게 “친절한 마음으로 기꺼이 명령에 순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큰 사고나 사망자 하나 없이 3,2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브리검은 말했다.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했습니다.”11

브리검은 형제들을 해산했고, 형제들은 각자의 우마차로 돌아갔다. 부대는 다시 우마차를 몰아 윈터쿼터스까지 남은 수 킬로미터를 달려갔다. 해가 저물 무렵, 정착촌에 우마차들이 들어서자 성도들이 오두막과 움막에서 나와 형제들의 귀환을 축하했다. 성도들은 길가에 늘어서서 형제들과 악수를 나누고, 그들이 주님의 손길에 인도되어 이루어 낸 모든 것을 기뻐했다.12


윌포드는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사흘 전에 피비는 건강한 딸아이를 출산했다. 이제 우드럽 가족은 윌리와 피비 어밀리아, 수전, 그리고 갓 태어난 슈아까지 네 아이가 있었다. 이들 외에도 윌포드에게는 영국에서 돌아온 직후 메리 앤 잭슨과 복수결혼을 해서 얻은 아들 제임스도 있었는데, 메리 앤과 제임스는 이미 연초에 윌포드의 아버지와 함께 솔트레이크밸리로 갔다.

윌포드는 다시 가족을 만난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모두들 즐거웠고 행복했다. 우리는 다시 만난 것을 축복으로 여겼다.”13

그해 겨울, 윈터쿼터스와 주변 정착촌에 있는 아홉 명의 사도들은 자주 만나 함께 의견을 나누었다. 이런 모임이 열릴 때마다 브리검 영은 십이사도 정원회의 앞날에 관한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솔트레이크밸리에서 돌아오는 여정 중에, 영은 그에게 십이사도가 제일회장단을 재조직하여 사도들이 자유롭게 전 세계를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바임을 계시해 주었다.14

하지만 브리검은 이 문제에 관하여 정원회와 이야기하는 것을 오랫동안 주저하고 있었다. 브리검은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으로서 자신이 맡은 책임 때문에 자신은 다른 사도들과 달리 정원회를 위해, 그리고 정원회가 청지기로서 보살피는 모든 이를 위해 계시를 받을 권세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혼자서는 행동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1835년에 십이사도는 만장일치가 아니고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다는 계시를 주셨다. 결정을 내릴 때 사도들은 하나님께 인도를 받아 “모든 의로움으로, 거룩함과 겸손한 마음”으로 행해야 했다. 정원회로서 하고자 하는 모든 일에서 그들은 단합과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어 일해야 했다.15

11월 30일, 브리검은 주님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심을 확신하고 마침내 제일회장단 재조직 문제를 정원회에 언급했다. 올슨 프랫은 즉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저는 십이사도가 완벽하게 하나로 단합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두 정원회는 동등한 권세를 갖는다고 했던 계시에 따라, 올슨은 제일회장단이 없다면 십이사도 정원회가 교회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도 십이사도 정원회가 전원 모이지 못한 경우에는 과반수의 사도들이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가르쳤었다. 올슨은 이는 일곱 명의 사도가 교회 본부에 머물며 성도들을 인도하고, 나머지 다섯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이해했다.16

브리검은 올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지만 그의 결론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브리검이 물었다. “십이사도를 자유롭게 해 주어 그들이 온 나라를 다니게 하는 편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일곱은 항상 본부에 묶어 두는 편이 낫겠습니까?”

그러자 올슨은 “제 생각에 세 명으로 구성된 제일회장단을 두는 것보다는 십이사도 정원회가 제일회장단 역할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17

올슨과 브리검이 발언하는 동안 윌포드도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일 그것이 주님이 밝히신 뜻이라면, 그는 새로운 제일회장단을 기꺼이 지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화의 결과가 우려스럽기도 했다. 만일 십이사도 중 세 명이 제일회장단을 구성한다면, 십이사도 정원회를 채우기 위해 세 명의 사도를 새로 불러야 하는가? 제일회장단을 재조직한다면 교회 내에서 십이사도 정원회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윌포드는 일단은 십이사도 정원회가 이대로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가 보기에 정원회를 분리한다는 것은 한 몸을 둘로 나누는 것과 같았다.18


1847년 가을, 잎새들이 울긋불긋 찬란한 빛깔로 물들자 솔트레이크밸리를 둘러싼 산들은 마치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제인 매닝 제임스의 가족은 다른 성도들과 함께 성전 구역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했다. 그곳에서는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산들과 성도들의 새로운 정착지 중 많은 부분이 내다보였다. 성도들은 이제 이 정착지를 그레이트솔트레이크시티, 또는 줄여서 솔트레이크시티로 부르기 시작했다. 제인의 천막에서 남서쪽으로 약 1.5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는 사각형으로 된 요새가 있었는데, 일부 성도들은 그곳에 가족과 함께 살 오두막을 짓고 있었다. 분지에는 나무가 드물었으므로, 성도들은 진흙과 짚으로 만든 단단한 벽돌이나 가까운 협곡에서 가져온 목재로 건물들을 지었다.19

제인이 분지에 도착했을 당시, 선발대와 함께 왔던 성도들은 이미 식량이 바닥나고 있었다. 제인처럼 새로 도착한 사람들도 남은 식량이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솔트레이크밸리의 젖소들은 대부분 젖이 말랐고, 피로에 지친 소들은 뼈대만 앙상했다. 분지에서 작물을 수확할 날이 올 때까지, 솔트레이크 스테이크의 새로운 회장으로 부름받은 존 스미스가 앞장서서 고등평의회와 감독들과 함께 분지 내에 사는 모든 성도들을 부양하기 위해 애썼지만, 성도들은 대부분 주린 배를 부여잡고 매일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20

하지만 이런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정착지는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성도들은 집을 짓고 주변을 쾌적하게 가꾸기 위해 남녀를 막론하고 함께 일했다. 남자들은 협곡으로 올라가서 목재를 잘라 분지로 끌어왔다. 분지에는 제재소가 없었으므로 형제들은 통나무를 하나하나 손으로 쪼개서 널빤지를 만들었다. 지붕은 막대기와 마른 풀로 만들었다. 창문에는 유리 대신 기름 먹인 종이를 쓰는 때가 많았다.21

이 무렵, 교회의 자매들은 비공식 모임에서 꾸준히 함께 모였다. 과거에 나부의 상호부조회를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앤 휘트니와 엘리자 스노우는 어머니들만이 아니라 젊은 여성과 어린 소녀들을 위해서도 자주 모임을 이끌었다. 자매들은 윈터쿼터스에서처럼 영적인 은사를 행사하여 서로를 북돋웠다.22

다른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제인과 그녀의 남편 아이잭도 분지에 집을 짓기 위해 힘을 합쳐 일했다. 제인의 아들 실베스터도 이제 집안일을 도울 만큼 자랐다.23 할 일은 언제나 있었다.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어린이들도 어머니를 도와서 야생 파스닙, 엉겅퀴, 세고백합 뿌리 등을 채취했다.(야생 파스닙: 당근처럼 생긴 하얀 뿌리 채소. 세고백합: 미국 서부에 자생하는 백합과 식물—옮긴이) 성도들은 식량을 낭비할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소를 잡으면 머리부터 발굽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은 남김없이 다 먹었다.24

11월 초가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산꼭대기가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고, 분지는 기온이 떨어졌다. 성도들은 첫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 준비를 시작했다.25


구름이 잔뜩 낀 11월 말의 어느 날, 윈터쿼터스의 사도들은 올리버 카우드리에 관한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사도들은 대부분 커틀랜드 시절에 그를 알았고 몰몬경에 관한 올리버의 강한 간증을 들어 보았다. 올리버는 데이비드 휘트머, 마틴 해리스와 함께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도와서 그들 일부를 십이사도 정원회에 부르고 그들의 책임을 가르치기도 했었다. 피니아스 영은 올리버가 오직 시온만을 생각하고 있고 교회에 대해서도 마음이 누그러진 상태라고 확언했다.26

사도들은 올리버 앞으로 보내는 서한을 작성했다. 윌라드 리차드가 서기 역할을 맡아 쓴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느 곳에서 헤메고 계셨든, 이제는 나아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들은 올리버를 사랑하는 탕자로 일컬으며 다시 침례를 받고 신권 성임을 받도록 권유했다.

사도들은 이렇게 말했다. “형제님이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봉사하고 해의 왕국의 축복을 얻고자 하신다면, 침례를 받고 신권을 성임받으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형제님의 영혼에 기쁨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사도들은 피니아스에게 서한을 주며 올리버에게 직접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27


얼마 후, 브리검은 이제 막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마치고 돌아온 올슨 하이드의 집에서 여덟 명의 사도들을 만났다. 브리검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결정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레이트솔트레이크시티에서부터 이곳에 이르도록, 영은 제게 바로 지금 교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속삭였습니다.” 브리검은 제일회장단이 교회를 다스리는 것을 십이사도 정원회가 지지하여 사도들이 해외에서 선교 사업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간증했다. 그는 이렇게 권고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주님에 대한 확신을 품고서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어느 방향으로 가시는지를 배우고, 그대로 따라가십시오. 영의 속삭임을 거부하는 장로는 해악을 자초할 뿐입니다.”

히버 킴볼과 올슨 하이드는 제일회장단을 재조직할 때가 되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올슨 프랫은 또다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제일회장단이 십이사도 정원회의 의견을 묻지 않고, 또 십이사도들이 스스로 사안을 충분히 고려하지도 않은 채 너무 속히 제일회장단의 권세에 순종하여 그들의 결정을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는 십이사도 정원회 아래서도 교회는 충분히 잘 운영되어 왔다고 하면서 지금은 변화가 필요치 않다고 주장했다.28

그러자 브리검은 그 자리에 있던 정원회 일원들의 생각을 모두 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윌포드 우드럽은 자신의 발언 차례가 되었을 때, 새로 제일회장단을 조직하는 것이 망설여지긴 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기꺼이 맞추겠노라고 말했다. “우리 정원회의 회장님은 영으로 감동된 것 같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계십니다. 저는 이분의 손을 묶어 두고 싶지 않습니다.”29

조지 에이 스미스가 그다음 순서로 말했다. “저는 이 정원회가 갈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조지는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신이 들 때까지 결정을 미루고 싶었지만, 변화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저도 그쪽으로 생각을 바꾸겠습니다.”

브리검이 말했다. “저도 형제님과 똑같은 생각입니다. 감정이 엇갈리거나 서로 분열되는 것은 저도 형제님만큼이나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브리검은 이렇게 선포했다. “마치 제 안에서 마치 일곱 우레가 울리는 듯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 이곳으로 데려오셨고, 우리는 이제 그 일을 해야 합니다.”30

가장 최근에 부름받은 두 명의 사도인 아마사 라이먼과 에즈라 벤슨도 브리검의 말에 동의했다. 에즈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십이사도 정원회를 돕고 싶습니다. 브리검 형제님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그는 자신을 제 기능을 하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는 방앗간의 기계 장치에 비유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기꺼이 온전하게 제일회장단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몇몇 사도들이 “아멘!”이라고 했다.

올슨 프랫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저는 우리가 기계 장치처럼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사에 그런 식으로 다스려져야 한다면, 우리가 이 빛 가운데서 사물을 바라볼 여지는 조금도 남지 않게 됩니다.”31

그러자 브리검이 올슨에게 말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교회를 조직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방식은 우리가 취해야 할 방식의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형제님이 우리를 묶어 두시려 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32

모두들 브리검의 말을 조용히 생각했다. 사도들은 충만한 성신을 느꼈다. 올슨은 브리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33 사도들은 교회를 재조직하는 문제를 표결에 부쳤다. 정원회 일원 한 명 한 명은 브리검 영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장으로 지지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올슨이 말했다. “영 형제님에게 오늘 밤 두 명의 보좌를 지명하실 것을 제안합니다.”34


3주가 지난 1847년 12월 27일, 미주리강 유역 정착촌들에 거주하는 천 명가량의 성도들이 특별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이 모임을 위해 나중에 케인스빌이라 불린, 강 동편 땅에 통나무로 회당을 지었다. 이 건물은 그 지역의 어느 오두막보다도 컸지만, 대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만큼 내부가 넓지는 않았다.

건물 안에 들어간 성도들은 딱딱하고 긴 통나무 의자에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았다.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는 겨울날이었지만, 성도들이 통나무 회당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례적으로 날씨가 포근했다. 바로 전날, 히버 킴볼은 이 모임에 참석한다면 이날은 생애 최고의 날 중 하루가 될 것이며 절대 꺼지지 않을 불이 붙게 되리라고 성도들에게 약속했었다.35

회당 전면의 연단에는 사도들과 함께 윈터쿼터스의 고등평의회가 자리했다. 찬송과 기도로 모임이 시작된 후, 몇몇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설교가 이어졌다. 올슨 프랫은 제일회장단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십이사도가 자유롭게 땅끝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그는 이제 주님의 뜻을 확신했다. “제일회장단이 없다면, 십이사도 정원회는 한곳에 지나치게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제일회장단을 재조직하면, 교회는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을 지상의 먼 곳까지 눈을 돌릴 수 있으리라고 그는 간증했다.36

올슨의 설교가 끝난 후, 브리검 영을 교회의 회장으로 지지하도록 제안되었다.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그를 지지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브리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히버 킴볼과 윌라드 리차즈를 자신의 보좌로 지지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제 평생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루입니다.” 앞에 놓인 길이 쉽지 않을 것은 분명했으나, 브리검은 성도들의 지도자로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온 몸을 바칠 것이었다.

브리검은 약속했다. “저는 올바르게 행하겠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행할 것입니다.”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