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 방송
천사와 놀라움으로


천사와 놀라움으로

교회 교육 기구 훈련 방송 • 2019년 6월 12일 • 교회 본부 건물 1층 강당

피터슨 형제님이 개회 기도를 하시면서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지금도 제 마음에 감동이 남습니다. 이 연례 모임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제게는 이 모임이 가족 모임과 같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웹 형제님, 코든 자매님, 클라크 장로님의 메시지는 제게 큰 영감이 되었습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도 그분들의 말씀에 부합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앞서 인사 드리면서 피터슨 형제님이 하신 말씀을 언급했던 것처럼 “가족”이라는 개념은 문자 그대로, 또한 진심으로 제가 여러분에 대해 느끼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꼭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느낌은 물론 위원회 임원들에게서도 온다는 것을 알지만 저 자신도 아주 특별한 경로로 그것을 느낍니다.

제 아내인 펫과 저는 54년 전 바로 이 여름에 처음으로 교회 교육 기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희는 거의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여러분과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펫과 제가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에서 삶을 꾸려가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만 해도 이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돈독하고 영구적인 유대 관계를 맺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초반에 동료 교사, 책임자, 관리자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보여 주신 우정과 진정한 형제애와 자매애가 아니었다면, 확신이 없었던 우리 부부는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초창기에 맺었던 유대 관계는 어언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우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우리가 가르치고 사랑했던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과의 관계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교회 교육 기구 안에서 느끼는 이 가족이라는 느낌이 결코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전하면서 오늘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 중 하나는 모든 총관리 역원과 교회의 본부 역원들이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는지입니다. 우리는 평의회 및 위원회를 통해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오늘 이곳에 상당히 많은 본부 보조 조직 역원들이 함께하고 있듯이, 우리는 이 일을 함께 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젊은이들을 위해 보내는지 모르지만, 짐작컨대(제 말이 틀리면 나중에 수정해 주십시오) 총관리 역원과 본부 역원들의 경우 대략 30에서 35퍼센트 정도의 시간을 교회의 청년들과 청소년들에 대해 논의하는 데 씁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매일 일하며 대하는 이들, 여러분이 직무로서 가르치는 이들, 그리고 이곳에 배우러 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을 포함하는 연령대의 청년들과 청소년들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속한 세상과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그리고 점점 더 어린 나이에 그들에게 닥치는 듯 보이는 이 특수한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런 현실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그렇습니다. 이들은 가능한 모든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배를 이끌고 계시며, 이 배는 안전히 항구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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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스미스와 첫번째 시현

예를 들어, 저는 조셉 스미스가 첫번째 시현을 받았던 바로 그 나이의 학생들에게 세미나리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하는 일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조셉이 열네 살이 되었을 때 그가 선지자적 사명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충분히 성숙했다고 여기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른 이들도 이 연령대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성숙한 간증을 키우기 시작할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훗날 그 간증이 자라서 남은 영생을 인도하는 강력한 힘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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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청소년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주님께서는 우리 프로그램이 지금과 같이 구성되도록 영감을 주셔서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멋진 여정을 시작하는 소년 소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교사와 학생간의 만남을 더욱 강화하며,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번 뿐인 주일학교 시간에 의지하는 대신 주중에도 풍부한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더욱 가정이 중심이 되고 교회가 뒷받침하는 교과 과정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교회 교육 기구는 예전부터 주중 수업 및 가정 학습반을 통하여 늘 가정 학습에 중점을 두어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금의 변화를 통해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교회의 주요 교과 과정에 가까워졌습니다.

그 주제로 말씀드리는 김에 감리 역원들이 세미나리 교과 과정을 4년 주기로 돌아가는 교회의 경전 교과 과정 일정과 연계하도록 요청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신 찬사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런 찬사를 들은 것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 위원회의 위원장께서 그런 찬사를 보내셨다는 것이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위원회 위원장이 누구이신지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은 넬슨 회장님께서 이 내용을 발표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2020년부터 세미나리 학습과정이 연례 일정으로 바뀔 것입니다. 세미나리 학생들은 『와서 나를 따르라』 교과 과정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경전을 공부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가정, 주일학교 및 세미나리에서의 통합된 학습을 통하여, 가정이 중심이 되고 교회가 뒷받침하는 복음 학습 방식을 향상할 것입니다.

“이 변화를 생각할 때 여러분의 미래에 관해 깊이 생각해보기를 권유합니다. 이전 어느 세대보다 세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분의 능력은 전적으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에게는 가정에서 함께 사는 가족에게 그분의 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은 여러분의 가정을 신앙의 안식처,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르쳐지고, 학습되고, 실천되고 사랑받는 장소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프로그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안에 대해 그토록 구체적으로, 고무적으로 이야기하시고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교회 회장님을 꽤 오랜만에 본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 감사합니다. 넬슨 회장님. 이 크고 작은 변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들은 제가 교회 교육 기구에서 봉사하는 동안 기억할 수 있는 어떤 때보다 더 많이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관계자와 정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직접 관여하였습니다. 교회 교육 기구라는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마음 벅찬 시기입니다.

이제 이러한 모든 노력의 목적이며, 오늘 이 모임을 갖는 이유이자, 우리가 매일 그리고 매주 가르치는 이유이며, 우리의 염려와 사랑의 중심이기도 한 학생들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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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있는 소녀들

이 세상은 점점 더 세속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신앙을 종종 부인하거나 더 심하게는 비하하는 문화에 살면서 자신의 신앙을 지켜야 하는 우리 청남 청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욱 도움과 모범이 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충실한 젊은이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때로는 적대적인 세상과의 간극은 일반적으로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오늘날에 대한 예언에서 이미 “기정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에 관해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 있거나 그것을 겪을 때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현 세상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에서 우리 학생들은 몇 가지 특성 때문에 친근하게 Z세대라고 불립니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그들을 가르칠 때 어려움이 가중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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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폰을 쓰고 있는 소년
  • 그들은 항상 무언가에 접속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이나 휴대 전화가 [또는 무선 이어폰이] 없었던 세상을 알지 못합니다. … 구글은 처음부터 항상 그들 곁에 있었습니다.”3 그들은 다이얼식 전화기를 본 적도,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해 본 적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들은 문자 메시지를 더 선호하니까요.

  •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 전자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은 매우 어린 나이에 노골적이며 파괴적인 외설물에 노출됩니다.

  • 그들은 “동성 결혼과 트렌스젠더 인권을 …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서 지지합니다. Z세대 중에 성적 소수자인 친구가 없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입니다.”4 이러한 친목 현상 때문에 우정과 용납 사이의 작은 경계는 희미해지고 점점 구분이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 “그들은 기독교 세계관이 우위를 잃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성인 인구의] 약 사분의 일[이 이에 해당합니다]”(이들은 후기 성도 학생들은 아니지만 그들은 사실상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미국 성인 인구의 약 사분의 일(23퍼센트)이자 밀레니얼 세대의 삼분의 일은 종교적 정체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무교’입니다. Z세대 중 다수는 아무 종교도 없는 가정에서 자라나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삶에서] 종교적 경험[이나 종교적 성장 배경]을 제공받지 못합니다.”5

  • 호주 청소년들의 종교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최근 연구 결과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연구 대상자 중 52퍼센트가 어떤 종교도 없다고 응답했으며 오직 37퍼센트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응답했기 때문입니다.6

  • 목사이자 작가인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는 이 세대가 처한 영적 환경에 관하여 폭넓게 다루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길을 잃었다. 그들은 단순히 기독교 세계관이 우위를 잃은 시대에 살고 있거나 그러한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복음에 대한 기억조차 없다. 그들의 영적 문맹도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 [둘째], 그들에게는 지도자가 없다. 가족으로부터 지도를 받는 경우도 거의 없고, 인터넷에서 받으려 해도 거의 얻는 것이 없다.”7

  • USA TODAY에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Z세대는 우리가 사회에서 알아왔던 집단 중 가장 외로운 하위 집단입니다.8 이 기사는 2010년 브리검 영 대학교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인용했습니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를 15개비 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비만보다 더 위험한 요인이다.”9

  • 미국 13세 소녀의 약 53퍼센트가 자신의 신체에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17세가 되면 이 수치는 78퍼센트로 증가합니다. 십대 소녀의 50퍼센트 이상과 십대 소년의 30퍼센트 이상이 끼니를 거르거나, 단식하거나, 흡연을 하거나, 먹은 것을 토해내거나, 설사약을 복용하는 등의 건강에 해로운 체중 조절 수단을 사용합니다.10

  • 마지막으로, 그들은 주의 집중 시간이 짧습니다. 어떤 보고 자료에 따르면 Z세대의 평균 집중 시간은 약 8초 정도라고 합니다.11 제가 보여 드린 이 첫 세 가지 항목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집중력을 잃었을 것입니다.

물론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 교사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하룻밤 사이에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제일회장단과 사도들은 여러분이 이러한 문제들을 잘 알고, 그에 잘 대비하고, 영과 조화를 이루고,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훌륭하게 잘 해결하고, 필요하다면 실시간으로 대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주중에 학생들과 연락할 수 있는 여러분은 교회의 거의 모든 다른 교사들보다 학생들에 대한 접근성이 높으므로, 그 방법에 있어 현명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제일회장단과 사도들은 교회의 정책, 관행,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서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교실 안팎에서, 분명히 여러분의 도움을 원하고 기대한다는 점을 아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열어 두십시오. 특별히 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여십시오. 공과 계획에 여유를 두십시오. 간증을 하거나 현시대의 어떤 사안에 관하여 토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공과를 조금 단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영의 속삭임이 있고 그것이 적절하다는 느낌을 줄 때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때 경계를 넘어서서 신권 지도자 또는 보조 조직 지도자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시스템에서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입니다. 그 줄타기를 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판단력과 영의 인도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일 만한 도전입니다.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는 여러분의 그러한 노력에 대해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모든 것이 다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단계에서 주어지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12

우리 시대에 그토록 엄청난 힘이 확실히 작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젊은이들이 교실에서 나가 다시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무엇도 그들의 신앙을 흔들거나 경로를 변경하지 못하게 하려면 매우 강력한 복음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교육은 말보다는 실천이 어렵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약속드립니다. 우리는 평소보다 더 강한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토록 어려운 과제에 접근하실 때,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린 말씀 중에 이것 하나는 부디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 학생은 채워져야 할 통이 아니라 점화되어야 할 불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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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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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에 불을 붙이기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우리는 영적으로 불을 지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공과는 불을 지르는 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불지르는 일을 즐기는 사람, 즉 방화광이 되어야 하는데, 이 말에서 “광”은 빼는 게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제일회장단에 보고하시거나 또는 경찰에 신고하시기 전에 이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몰몬경에서 중요한 가르침이 있는 상황일 때마다 그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문구가 그 사람이 “권능과 권세로” 가르침을 받았다는 문구라는 사실에 항상 감명을 받습니다.13 제가 가르침을 전할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목소리의 세기를 높이라거나, 연극조로 발표를 하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감정을 꾸며내라는 말씀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각자 다른 것 만큼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날 영에 관련된 부분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다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브루스 맥콩키 장로님이나 보이드 패커 회장님이나 넬슨 회장님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어떻게 그분들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현명하겠지만 말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위대한 교사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십시오. 그러나 결국에는 여러분의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 방식이 어떤 것이든, 그 결과는 권능과 권세가 있는 가르침이 되어야만 합니다.

몰몬경에 기록된 사례를 두 가지 정도 말씀드리겠습니다. 힐라맨서 5장에는 선조들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니파이와 리하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제이라헤믈라 땅에 있는 레이맨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이 까다로운 무리를 가르치는 일 외에도, 니파이와 리하이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반대한다는 명분 아래 니파이인들에게서 넘어가 레이맨인들과 합류한 니파이인인 배도자인 “이반자”들도 떠맡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두 그룹은 제가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굳이 만나고 싶지는 않은 적대적인 무리의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그 당시 레이맨인들은 적대적이고, 화가 나 있었으며, 그 발단도 잊은 지 오래인 한 논쟁에서 니파이인들을 응징하겠다는 결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마치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 예수님에 대항하는 엑스 몰몬(한 때 몰몬이었던 사람들)같은 사람들도 있었는데,(여기서 “몰몬”이란 말은 제가 쓴 말이 아니라 그들이 쓰는 용어이니 써도 무방하겠죠?) 그들은 말하자면 한 때 제사 정원회에 있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충실하게 선교 사업까지 마쳤으나 길을 벗어난 배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한 때 우리 편에 서서 가르쳤으나 이제는 우리에게 대항하ㅕ, 왕국에 반대하는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파이와 리하이는 이 까다로운 두 무리에게 다음과 같이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큰 권능으로 전파하여, 니파이인들에게서 넘어간 이반자들 중 많은 자를 부끄럽게 한지라. … 또 이렇게 되었나니 니파이와 리하이가 심히 큰 권능과 권세로 레이맨인들에게[도] 전파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권능과 권세를 그들에게 주셨고 또 그 말해야 할 것도 그들에게 주셨음이라.”14 여기서 다같이 잠깐만 멈추겠습니다. 교회 교육 기구나 교회의 모든 교사가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말할지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국어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진정한 방언의 은사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니파이와 리하이에게 주어졌던 은사는 분명히 방언의 은사입니다.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권능과 권세[와] … 또 그 말해야 할 것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 그러므로 그들이 말함으로 레이맨인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습니다.15

놀라게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몰몬경에 나오는 그 이전의 어떤 기사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앨마와 모사이야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여기저기 다니고 있”었다고 기록한 모사이야서 27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11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났더니, 그가 마치 구름에 둘러싸인 듯 하강하여 마치 우레와도 같은 소리로 말한지라, 그 음성으로 인해 그들이 서 있는 땅이 진동하였더라.”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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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에게 나타난 천사

여기서 제가 잠깐 논평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정말 말 그대로 지진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리히터 지진계를 12미터마다 하나씩 설치해 놓았다고 했을 때 진도 5에서 6, 또는 8에서 9 정도로 기록되는 강진으로 심해에 해일을 일으키고 지구의 모든 지형이 바뀌는 그런 지진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아마도 가끔은요. 분명히 그랬을 수도 있지만 문맥상 이 경우에서는 그런 지진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이 주님께서 개개인에게 보내시는 개인적인 지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진은 앨마와 모사이야의 아들들을 흔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또 다른 사람도 흔들었을지 누가 압니까?

여러분께서도 수업을 가르치시면서 그런 경험이 분명히 있으셨을 겁니다. 여러분이 하신 어떤 말이 한 학생에게 너무나 강하게 와닿아서 그 학생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거나 눈물이 고이거나 또는 이 둘 다를 경험하면서 영혼의 깊은 곳까지 감화되고 있을 때, 그 옆에 앉아 있는 학생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선교 임지에서는 그런 일들이 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죠. 다 경험해 보신 일입니다. 한 동반자 조가 어딘가에 있는 아파트에서 한 가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이 부부와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는 매우 중대한 내용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부부가 있는 아파트 106호를 송두리째 뒤흔들 지경인데, 바로 옆집인 105호는 더없이 행복하게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고, 107호 사람들은 미식 축구 경기팀 그린베이 패커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득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질학적으로 실제 지진을 일으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님과 경전은 여러분에게 학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땅이 그들의 발 앞에서 떨게 할 개인적 지진을 언제나 약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를 벗어나서 죄송합니다.

계속해서 모사이야서 27장 12절을 이어가겠습니다.

앨마와 모사이야의 아들들의 “놀라움이 심히 커서”, “그들의 놀라움이 심히 커서 그들이 땅에 엎드러져, 천사가 그들에게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하더라. …

이에 이제 앨마와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다시 땅에 엎드러졌으니, 이는 그들의 놀라움이 실로 컸음이라. 이는 그들 스스로의 눈으로 그들이 주의 천사를 보았으며, 그의 음성이 우레 같아 땅을 진동하게 하였고, …

그리고 이제 앨마의 놀라움은 너무 컸던지라 그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 입을 열지 못하였고, 또한 그가 약해져서 그 손도 움직일 수 없게 되매”17

제가 늘 생각하고 기도하고 교회 교육 기구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소망하는 것은 진정으로 놀라움을 주는 교육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놀라움을 주어야 하며 그러한 일을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18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사이든 자원 봉사자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고 정직하게 가르치는 교사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은 놀라게 한다는 말의 영어단어인 astonish의 어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개정 애굽어나 개정 히브리어로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영어에서 이 단어의 어원은 천둥 또는 우레를 의미하는 “tonare”라는 단어입니다.19

이 말씀을 들으시면 앨마가 이러한 개심을 경험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던 이유가 이해되실 것입니다. “오 내가 천사라면, 그리하여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나팔로, 땅을 흔들 음성으로 말하여, 모든 백성에게 회개를 외칠 수 있다면,

참으로 내가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각 영혼에게 회개와 구속의 계획을 선포하여, 그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여, 온 지면 위에 슬픔이 더 이상 있지 않게 하였으면 좋겠노라.”20

사랑하는 교회 교육 기구 친구 여러분, 왜 앨마가 천사와 같은 영향력, 하나님의 나팔 소리 같고 땅을 흔들 우레와 같은 음성을 원했는지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간단합니다.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은 분명히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엎드려 사흘 간을 회개하고, 죄 씻음이 너무도 강력하여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벗어날 생각도 없어지며, 그 후로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권능이 있는 가르침입니다. 앨마가 그랬듯이 우리는 우리가 천사가 아님을 깨달을 것이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그런 영향력을 가지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교육 기구 부름과 직업의 훌륭한 점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기회가 있으며, 그런 노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교실 환경을 반복하여 설정해 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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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맨인들에게 예언하는 니파이와 리하이

이제 힐라맨서 5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니파이와 리하이도 천사가 아니었고, 사명과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저 선한 필멸의 교사들이었지만, “큰 권능과 권세”로 가르쳤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두 사람은 레이맨인 팔천 명이 “회개에 이르는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21 여러분도 기억하시다시피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마음속에는 영의 불꽃이 타오르는 가운데 이 “학생들” 의 영혼은 모두 진리로 불붙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이 세상 어떤 선교 임지의 어떤 동반자 조에서 나온 주간 지역 보고이든, 8,000명이라는 숫자는 아주 훌륭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영혼에 불을 붙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육체도 불태움을 당함으로서 봉사의 궁극적인 대가를 치렀던 교사를 한 명 더 소개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청소년이었던 시절부터 아빈아다이는 4대 표준 경전 전체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이전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고, 선지자적 유산이라든지 저명한 혈통도 없이 등장했습니다. 지니프가 다스리던 고집스럽고 완강한 식민지가 더욱 타락하고 있는 가운데, 아빈아다이는 지니프의 아들이자 그의 딱한 후계자인 노아 왕에게 회개를 외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시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노아는 즉시 사형 집행을 명했으며 아빈아다이는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2년 간 은신 생활을 한 후 아빈아다이는 다시 가르침과 간증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나옵니다. 저는 여기서 볼 수 있는 아빈아다이의 아이와 같은 순수성에 미소를 짓게 됩니다. 24개월 동안 은둔 생활을 했던 아빈아다이는 조금이라도 익명성을 보장받기 위해 변장을 합니다. 그런 그가 돌아와서 처음으로 한 말은 이렇습니다. “주께서 내게 명하셨느니라 이르시되—아빈아다이야, 가서 나의 이 백성에게 예언하라.”22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 변장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만, 그의 신앙과 결단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노아 왕과 그의 법정의 가증함에 맞서 담대히 예언하던 아빈아다이는 체포되었고, 자신이 비난하던 바로 그 법정으로 끌려갔습니다. 가차없는 심문 속에서도 이 위대한 선지자는 “담대히 그들에게 대답하고, 그들의 모든 질문을 물리쳐 … 그들의 모든 말에 있어 그들을 파하였”습니다.23 곧 수비에서 공격으로 태세를 전환한 아빈아다이는 5장 반에 걸쳐서 나오는, 몰몬경 전체에서 가장 힘이 있는 명문으로 손꼽히는 교리를 설파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말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죄책감에 사로잡힌 가증스러운 노아는 그를 죽이라고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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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왕의 법정에서 간증하는 아빈아다이

그 모든 것은 아놀드 프라이버그가 훌륭하게 그려낸 그림과 똑같지는 않을지라도24, 꽤 비슷한 모습으로 제 머리속에 영원히 각인된 이 장면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죄수였던 아빈아다이는 그 시대에 사용하던 족쇄 등으로 속박을 당하고 있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의 나이는 모릅니다. 프라이버그는 그를 노인으로 그려냈지만 본문에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육체적으로 강건했을까요? 그것도 역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년 간 은둔 생활을 마치고 막 세상으로 나온 터였고, 분명 그동안 먹을 음식도 그리 충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까마귀가 음식을 날라준 엘리야를 생각해 보십시오.25 여러분은 까마귀 발톱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작은 날개를 가진 새가 비행 중에 음식을 많이 나르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빈아다이는 굶주리고, 피곤하고, 정황상 체력도 약했을 것입니다.

노아 왕은 외쳤습니다. “이 자를 끌어내어 죽이라. … 우리가 그와 상관할 것이 무엇이냐 …

이에 그들이 나서서 그에게 손을 대려 하였으나, 그가 그들을 막으며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다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만일 내게 너희 손을 대면 하나님이 너희를 치실 것임이라. 이는 주께서 나를 보내사 전하게 하신 전갈을 내가 아직 전하지 아니하였고, …

주의 영이 그의 위에 있어, 실로 모세의 얼굴이 시내 산에 있는 동안 주와 말씀할 동안 그러하였던 것같이, 그의 얼굴에서 심히 밝은 광채가 났음이라.

또 그는 하나님에게서 온 권능과 권세로 말하였나니.”26

“권능과 권세”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빈아다이를 인용하고자 했을 때 그의 이야기가 권능과 권세로 가르쳤다는 그 구절로 끝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모르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단순히 종이 위에 쓰인 글씨를 읽는 것과, 머릿속으로 다음 내용을 그려 보면서 마음속에서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울리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나를 다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만일 내게 너희 손을 대면 하나님이 너희를 치실 것임이라.”27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이 구절에서는 장엄함과 담대함과 조용하면서도 위대한 힘이 느껴집니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가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했다는 암시도 없습니다. 무장한 감시병이 지키고 있고 족쇄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 그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백히 그가 한 말과 그가 말한 방식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제가 “명백히”라고 말한 것은, 이 감시병 중 어느 한 사람도 아빈아다이를 제거하기 위해 어떤 조치도 취했다는 말이 없고, 노아 왕이나 그의 제사들도 그 뒤로 펼쳐지는 눈부시게 감명적인 네 개의 장에서 한 마디라도 했다는 암시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전에 나오는 이와 같은 놀라운 가르침의 사례들을 전부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예는 곳곳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것들을 찾아 보고, 깊이 생각해 보고, 각자가 받은 부름에 부합하는 은사를 구하시기를 권유합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이해하기에도 힘든 일입니다. 제가 만약 이렇게 가르치는 법을 알았더라면, 더 성공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실은 확실히 압니다. 여러분이 무언가에 열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절대로 학생들이 그것에 열정을 느끼도록 만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여러분이 무언가에 열정을 느끼지 않는다면,절대로 학생들이 그것에 열정을 느끼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열정의 궁극적인 근원은 아빈아다이를 묘사한 구절에 나옵니다. “주의 영이 그의 위에 있어, … 그의 얼굴에서 심히 밝은 광채가 났음이라.”28

놀라움을 주는 가르침의 열쇠가 바로 영이라면, 물론 그것은 사실입니다만, 매번 옛날 강의 노트에 의지하거나, 동료 교사가 사용했던 예를 들거나, 연차 대회 말씀을 단조로운 목소리로 읽는 방식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 자체로는 다 좋은 것이고 처음 그것들이 전해졌을 때는 매우 훌륭한 것이므로 여러분의 가르침에 생기와 다양성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어느 것이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그 말을 전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일 것입니다. 어떤 것도 그 느낌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오 내가 천사라면, … 땅을 흔들 음성으로 말[할 수 있다면]!”29 기억하십시오. 학생은 채워져야 할 통이 아닙니다. 학생은 점화되어야 할 불입니다. 그것을 정말 잘 해낸다면, 언젠가 우리는 학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바로 그 능력 때문에 기둥에 묶여 화형 당했던 이들을 만나기에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에 계시는 영광의 천사 여러분, 여러분의 청중이 누구인지 늘 기억하시고 이제 나가서 여러분의 학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십시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받으신 부름의 신성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저는 꾸며낸 이야기에 제 삶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베드로에 따르면 우리가 부당하게 비난받을 것이라고 말했던 거짓과 꾸며낸 이야기와 교묘하게 지어낸 거짓말을 좇아 우리 삶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은 교묘하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제 삶을 바쳤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바쳤으며, 제가 아는 가장 훌륭한 분들은 그들의 삶을 바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가르칠 때 그분께서 여러분을 영원히 축복하시기를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