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죽음과 부활을 이해함


제8장

죽음과 부활을 이해함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자신이 필멸의 인간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회복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부활의 영원한 실재 안에서 위안과 확신을 찾을 수 있다.

윌포드 우드럽의 생애에서

1839년 8월초, 윌포드 우드럽 장로는,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하라는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아이오와 주 몬트로스에 있는 그의 집을 떠났다. 그는 아내 포에베와 유일한 자녀인 한 살짜리 새라 에머에게 작별을 고했다. 당시 포에베는 1840년 3월 22일에 태어나게 될, 윌포드 이세를 임신하고 있었다.

몬트로스를 떠난 지 수개월 후에, 우드럽 장로는 미국 동부 지역에서 복음을 가르치며 영국으로 여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아내를 본 세 번의 꿈을 일지에 기록했다. 첫번째 꿈을 꾼 후에 그는 일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나는 꿈에 몬트로스에 있는 아내가 깊은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았다. 딸 새라 에머는 보지 못했다.”1 두 번째 꿈에 대한 기록도 짧았다. “나는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아내는 만났으나 새라 에머는 보지 못했다.”2 세 번째 꿈은 조금 더 자세하게 적었다. “우리는 서로 만난 것을 기뻐했으나, 우리의 포옹은 슬픔으로 뒤섞여 있었다. 이는 잠시 집안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 내가 에머에 대한 것을 물었을 때, … 그녀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죽었어요.’ 우리는 잠시 슬퍼했으며, 나는 잠에서 깨었다. … 이 꿈이 사실일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3

1840년 7월 14일, 우드럽 장로는 영국에 있었으며, 가족에게 중요한 날을 기념하는 내용을 적었다. “새라 에머가 오늘 두 살이 된다. 내가 돌아갈 때까지 주님께서 아내와 가족을 보호해 주시기 바란다.” 항상 주님의 뜻을 인정해야 하는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오 주님, 그들을 당신의 손에 맡기옵니다.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위로하옵소서. 영광은 당신의 것이옵니다.”4 삼 일 후에 어린 새라 에머는 세상을 떠났다. 우드럽 장로는 1840년 10월 22일까지 딸의 죽음을 모르고 있다가, 십이사도 정원회에 있는 한 형제에게 보내진 편지에 적힌 소식을 보고 알았다.5 사 일 후에, 그는 결국 아내가 보낸 7월 18일자 편지를 받았다. 그는 편지의 일부를 일지에 기록했다.

“여보, 어제 우리의 어린 딸 새라 에머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제 글을 읽을 때 당신의 느낌이 어떨지 모르겠군요. 그래요, 딸아이가 죽었습니다. 무자비한 죽음의 손길이 그 아이를 제 품에서 데려갔답니다. … 아이를 바라볼 때면, 전 자주 아이와 어떻게 헤어지나 하고 생각했어요. 당신도 없는데, 그 아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에머는 죽었습니다. 주님이 우리가 모르는 현명한 목적으로 그 아이를 데려가셨어요.

“그것은 제게 큰 시련이었으나, 주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제 곁에 계셨어요. 저는 주님이 그 아이를 천국으로 데려가셨으며 제가 돌아가 그 아이를 만나게 될 때까지 어쩌면 저보다 더 잘 보살피고 계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보, 우리는 천국에 작은 천사를 하나 두고 있으며, 그 아이의 영은, 어쩌면 당신이 이 편지를 받기 전에 당신을 찾아가 보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딸아이 없이 살아 가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 아이는 죽기 직전에 아빠를 위해 제게 뽀뽀를 해 주었어요. … 장로들이 여러 차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병자 축복을 해 주었으나, 다음날 아이의 영은 신음 소리도 없이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갔습니다.

“오늘 윌포드[이세]와 저,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우아하게 묻혀 있는 사랑하는 어린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일리노이] 커머스로 갔었습니다. 딸아이에게는 무덤까지 따라갈 친척도 없었으며 눈물을 흘려 줄 사람이라고는 엄마와 어린 윌포드뿐이었습니다. … 저는 새라의 무덤까지 유쾌하고도 우울한 산책을 하고 돌아왔어요. 새라는 평화롭게 홀로 누워 있습니다. 저는 주신 이도 주시요 거두어 가신 이도 주시니, 주의 이름에 복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욥기 1:21 참조]”6

아내의 편지를 옮겨 적는 일 이외에, 우드럽 장로는 딸아이의 죽음에 대해 더 이상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새라 에머가 “이 세상을 떠났”으며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만 적었다.7

91세가 되기까지, 윌포드 우드럽은 많은 식구들과,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인도 아래 함께 봉사한 모든 사도를 포함하여,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아 왔다. 그 엄숙한 시간들을 통해, 그는 회복된 복음과 부활의 “영원한 실재”에 대한 그의 간증에서 위안을 얻었다.8 그는 종종 의로운 후기 성도의 죽음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지만 기쁨의 시간이라고 가르쳤다. 사실상,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자신의 장례식에 관해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나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내 장례식을 치를 때나 그 후에라도 상장을 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내가 진정으로 죽음에 이르는 데 참되고 충실했다면,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 애통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9

윌포드 우드럽의 가르침

죽을 때 각 사람의 영은 영의 세계로 가며, 그곳에서 의로운 영들과 함께 기뻐하고 계속해서 주님의 사업을 수행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죽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며, 내세란 없다고 믿습니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의 하나님이 2, 3백억의 영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 망각 속으로 사라지거나 멸절되어 버리게 하려고 그들에게 장막[육신]을 주셨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믿음을 고수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일반 상식과 진지한 사고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10

우리의 친구들을 잃고 슬퍼할 때, 저는 모든 죽음에는 출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이 떠나면 육신은 죽은 몸이 되지만, 영은 살아서 장막 저편으로 가게 되며, 타락한 세상의 구속과 구원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위대하고 고귀한 무리에 속하게 됩니다.1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도의 영이 영의 세계로 들어가 앞서간 성도들을 만날 때 거기에는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12

어떤 사람들은 장막 이편에서 일하고, 어떤 사람들은 장막 저편에서 일합니다. 우리가 이 곳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구원의 대업에 힘써야 하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가면, 인자가 오실 때까지 우리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13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모든 사람은 부활할 것이며, 그들의 영은 불멸의 육신과 연합할 것이다.

우리는 아담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죽게 되며, 타락으로 인해 죽음이 온 인류와, 또한 땅의 모든 짐승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와 공중의 모든 새와 이 지구에 관한 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도 오게 됨을 압니다. 그것은 변경될 수 없는 율법입니다. … 구세주께서는 친히 죽음을 겪으셨으며,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돌아가시고, 그분의 육신은 무덤에 뉘어졌으나 썩지 않았으며, 삼 일만에 무덤에서 일어나사 불멸의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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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leaving the tomb

우드럽 회장은 구세주가“부활의 첫 열매”였다고 간증했다.

저는 부활에 관해 만족하고 있으며 늘 만족하게 여겨 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통해 우리에게 길이 열렸습니다.15

부활하게 될 때, 우리는 불멸의 육신을 입게 될 것이며, 이 지상에서의 박해, 고난, 슬픔, 고통과 죽음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16

죽은 자의 부활의 교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적어도 제 영혼에 위안을 주며, 부활의 아침에 제 영이 이 세상에서 거했던 바로 그 육신에 거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로서 우리는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인간의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했습니다. 저는 늪지를 걸어 다니고, 강을 건넜으며 부활할 때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여행하고 노력한 똑같은 몸을 갖게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17

복음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위안을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다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주제의 하나가 되겠지만, 복음에 접하고 부활의 원리를 알게 되는 순간 죽음으로 인한 우울함과, 슬픔과, 고통은 대부분 없어지게 됩니다. 저는 종종, 무덤에 누워 흙으로 덮여 있는 시신을 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침울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복음이 없다면 그것은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의 영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깨우침을 얻는 순간, 우리는 고대에 살았던 사람이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고린도전서 15:55~57 참조] 이라고 외쳤던 것처럼 외치게 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깨우침을 얻은 인간의 정신 앞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며, 그는 자신의 영을 세울 수 있는 기초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후기 성도의 입장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알고 있으며, 이 문제에 관해 어둠 속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 주셨으며,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생명과 불멸을 드러냅니다. [디모데후서 1:10 참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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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showing his resurrected body

“복음에 접하고 부활의 원리를 알게 되는 순간 죽음으로 인한 우울함과, 슬픔과, 고통은 대부분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은 물론 힘든 일입니다. …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들의 시신을 묻을 때 눈물로써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가게 될 적절하고 올바른 등급이 있음에도, 종종 사람들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슬퍼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후기 성도가 본받기에 적절하거나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19

알 수 없는 원인이나 이유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살아서 이 교회에서 각기 그들의 시대에 봉사한 선지자들과 사도들 및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장지까지 따라가 보았습니다. … 저는 어떤 선지자나 사도의 장례 행렬, 즉 하나님께 참되고 충실했으며, 자신의 성약에 참되고 충실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의식들, 그리고 거룩한 신권을 받아들인,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도의 장례 행렬을 따라 묘지로 가면서 제 영이 슬픔을 느꼈던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 본향으로 부름을 받을 때까지 영예와, 노력과, 사랑으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들은 신앙 안에서 죽었으며, 영광의 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브리검] 영 회장님, [히버 시] 킴볼 형제님, [존] 테일러 형제님, 십이사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사명에 참되고 충실했던 사람들의 죽음에 임했을 때 그러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생명에는―온 세상이 알게 될―영원한 실재가 있습니다. 죽음에도 영원한 실재가 있습니다. 부활과 장차 있을 심판,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의 행위에 따라 그들에게 행하실 일에도 영원한 실재가 있습니다. 사람이 주님과 성약을 맺고, 복음과 그 의식을 받고, 그의 세대에 참되고 충실했던 사람들이 영의 세계로 부름을 받았을 때, 이러한 원리들을 이해하는 사람 중에 그들을 위해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20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책임질 연령에 이르지 못한 모든 어린이는 해의 영광을 상속 받는다.

책임질 연령에 이르지 못하고 죽은 유아나 어린이 가운데 구속 받지 못할 어린이는 아무도 없으며, 따라서 완전히 지옥의 고통 밖에 있게 됩니다. … 저는 신성한 진리의 기록 중 어디에서든 무죄한 어린아이들의 구원을 위해 제정된 의식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논박할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말하건대 불필요한 것이며,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팔에 안고 그들을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완전하고 올바른 일입니다. 그러나 유아 세례나, 혹은 어떤 상황 하에서는 유아가 지옥에 간다고 하는 교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제정한 교리이며, 따라서 그것은 아무런 효력도 없고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히 그르며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아닙니다. 유아에 대해서는 이만큼 하겠습니다. …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습니다. 21

어린이들은 주님 앞에서 무죄합니다. 그들의 죽음이나 그 원인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며, 우리는 주님에 대해 혹은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욥이 그랬던 것처럼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러한 위안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내리신 죽음의 율법에 대해 대가를 치렀으며, 그들의 영이 육신을 떠나 영의 세계로 갈 때, 고통과 역경은 끝납니다. … 그들은 … 영광과, 불멸과, 영생의 옷을 입고, 영원한 아름다움과 활력으로 부활의 아침에 무덤에서 나올 것이며, 부모의 손에 주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자녀를 해의 영광의 세계에서 가족의 조직으로 받아들이고, 영원히 자녀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시는 것처럼 오래 살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후기 성도들에게 이것은 위안과 위로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 저와 여러분에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왜 주님은 자녀들을 데려가시는가?” 그러나 저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며, 창세 이래로 지금까지 그래 왔습니다. 자녀들은 유년 시절에 죽어, 영의 세계로 갑니다. 그들은 이곳에 와서, 세상에 온 목적, 즉 육신의 장막을 입는 일을 완수합니다. 그들은 지상에 와서 시험 기간과 유산을 받습니다. 육신, 혹은 장막을 얻고, 그 장막이 그들을 위해 보존되다가 부활의 아침에 영과 육신이 재결합할 것이며, 이곳에서처럼 우리는 여러 연령층의 자녀들, 즉 어머니의 품에 있는 아기부터 성년이 된 자녀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따라서 해의 영광의 세계에도 가족 조직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가 그들의 부모로서 신앙을 지키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자로 입증될 경우, 그들이 무덤에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우리에게 다시 주어질 것이며, 만일 우리가 자신을 그렇게 입증하지 못할 경우 우리의 자녀들은 여전히 보존되어 있다가 해의 영광을 상속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태어났든, 혹은 의로운 자나 악한 자에게 태어났든 상관없이, 일찍 죽은 모든 아기에 대한 저의 견해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아버지와 영원한 어머니로부터 와서 영원한 세상에서 태어났으며, 영원한 부모에게 다시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거룩한 신권의 반차에 따라 이곳에서 자녀를 얻은 모든 부모는, 그들이 몇 살을 살았든, 부활의 아침에 그 자녀들을 요구할 것이며, 그 자녀들은 부모에게 주어져, 자녀들이 해의 영광의 세상에서 그들의 가족 조직을 영광스럽게 할 것입니다. …

… 저는 슬퍼하는 친구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자녀는 여러분 곁을 떠났으며, 여러분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최선을 다할 때 그 부모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픈 자녀를 구하지 못했다고 해서 어머니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그 자녀가 다시 부모에게 주어질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올 세상에서의 자녀의 성장이나 영광이나 승영에 관해서, 제 자녀든 여러분의 자녀든, 그들이 구원 받았다는 것 이외에, 그들에 관해 하나님은 제게 아무것도 계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주님을 믿어야 하며, 그분의 팔에 기대어 위안과 위로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이러한 고통을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은 자녀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처럼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셨으며, 복음도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의로운 자의 부활 때에 그들이 우리에게 다시 주어질 것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

…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슬픔에 젖어 있는 휠러 형제와 자매[최근에 네 살 된 아들과 여섯 살 된 아들을 잃은 부부]를 축복해 주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어서, 그들이 밤에 잠자리에 들거나 아침에 일어날 때, 그리고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주님의 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어린 자녀들과의 헤어짐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곧 자녀들이 그들에게 다시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원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무덤에 누이지만, 그들은 부활의 아침에 나아올 것이며, 진리에 충실할 경우, 우리는 그들을 받게 되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22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축복을 받도록 준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의 운명은 장막 저편에 있습니다. 저는 죽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는 곳,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갈 수 있는 특권을 얻고 싶습니다.23

우리는 이 지상에 있는 동안 시간과, 우리의 재능과 기회를 잘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이 세상이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에서 그러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지자, 사도, 장로, 아버지, 어머니, 아내 및 자녀들을 매장합니다. 그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이생이 길다는 것을 약속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자신의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24

다음 권고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지침이 됩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마태복음 24:44]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부모로서, 또한 하나님의 대업을 위해 노력하는 이스라엘의 장로로서, 이 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가 축복 받은 빛과 지식에 따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25

필멸의 고통을 지나 해의 왕국에 이르는 기쁨을 누리게 될 때면, 그 필멸의 고통을 통해 우리 자신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점과 그러한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서 충실한 자들을 위해 마련하신 축복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26

이 백성이 죄를 회개하고 영적으로 살아나 하나님 앞에 이를 수 있는 권능을 지니게 되어,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간구입니다. 이 백성이 왕국을 수호하고, 결코 성약과 형제들을 잊거나 복음을 배반하지 않으며,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 마련된 첫째 부활의 충만함을 얻도록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27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본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 새라 에머 우드럽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복습한다. (77, 79~80쪽) 어떤 교리들이 우드럽 장로와 자매를 위로하고 힘을 얻게 했는가?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우드럽 회장에 따르면, 우리는 영의 세계에서 어떤 경험을 기대할 수 있는가? (80~81쪽 참조) 이 지식은 여러분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대한 우드럽 회장의 권고를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원리를 알 수 있는가? (82~83쪽 참조)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평안을 찾았는가? 어떻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죽은 사람으로 인해 슬퍼할 때 그들을 도울 수 있는가?

  •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사망의 쏘는 것을 없애 주는가? (81~83쪽 참조; 또한 고린도전서 15:55; 모사이야서 16:6~9 참조)

  • 여러분은 죽은 어린 자녀들에 대한 우드럽 회장의 가르침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84~86쪽 참조)

  • 87쪽을 복습한다.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인 가족이나 친구들을 기억해 본다.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드럽 회장에 따르면, 우리는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86~87쪽 참조)

  • 어떻게 우드럽 회장의 가르침이 죽음과 부활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돕는가?

관련 성구: 고린도전서 15장; 앨마서 11:42~45; 28:12; 34:32~41; 모로나이서 8:12~19; 교성 42:45~47; 76:50~70; 138:57

  1. Journal of Wilford Woodruff, 1839년 11월 8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기록 보관소.

  2. Journal of Wilford Woodruff, 1839년 11월 11일.

  3. Journal of Wilford Woodruff, 1839년 11월 28일.

  4. Journal of Wilford Woodruff, 1840년 7월 14일.

  5. See Journal of Wilford Woodruff, 1840년 10월 22일 참조.

  6. In Journal of Wilford Woodruff, 1840년 10월 26일.

  7. Journal of Wilford Woodruff, summary of the year 1840.

  8. In Brian H. Stuy, comp., Collected Discourses Delivered by President Wilford Woodruff, His Two Counselors, the Twelve Apostles, and Others, 권 (1987~1992년), 2:192.

  9. In “President Wilford Woodruff”, Millennial Star, 1898년 9월 22일, 604쪽.

  10. Collected Discourses, 1:344.

  11.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sel. G. Homer Durham (1946년), 245쪽.

  12. In Collected Discourses, 2:192.

  13.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246쪽.

  14.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244쪽.

  15. Deseret News: Semi-Weekly, 1882년 1월 17일, 1쪽.

  16. Collected Discourses, 3:428.

  17. Deseret News: Semi-Weekly, 1875년 12월 28일, 1쪽.

  18. Deseret News: Semi-Weekly, 1875년 7월 20일, 1쪽.

  19.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247쪽.

  20. In Collected Discourses, 2:191~192.

  21.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232~233쪽.

  22. Deseret News: Semi-Weekly, 1875년 7월 20일, 1쪽.

  23. In Collected Discourses, 1:225.

  24. In Collected Discourses, 1:78.

  25.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246쪽.

  26. Deseret News: Semi-Weekly, 1875년 7월 20일, 1쪽.

  27. Deseret News, 1856년 12월 31일, 3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