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제 24 장: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참으로 광범위하면서도 효과는 개개인에게 미침


제24장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만인이 받을 수 있으나 그 효력은 개인적으로 적용됨

“제가 … 간증드리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속죄 없이는 삶이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를 공고히 하는 종석입니다.”

고든 비 힝클리의 생애에서

힝클리 회장은 2000년 1월 1일에 제일회장단의 보좌들과 십이사도 정원회와 함께 구주에 대한 하나 된 간증을 출판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메시지에서 그들은 이렇게 선포했다. “그분의 비길 데 없는 삶의 실재와 그분의 위대한 속죄 희생의 무한한 가치에 관해 간증드립니다. 지금까지 지상에 살았고 또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어느 누구도 그토록 심오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1

이로부터 3개월 후 연차 대회 말씀에서 힝클리 회장은 자신의 삶에 미친 구주의 심오한 영향력에 대해 간증했다. 그는 부드럽게 개인적인 말씀을 전하면서 때때로 목이 메기도 했다.

“오늘 아침 그 무엇보다도 특별히 더욱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평강의 왕, 거룩하신 이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있는 간증입니다. 

예수님은 저의 친구이십니다. 저에게 그처럼 많은 것을 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그분은 저를 위해 그분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영생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친구가 되기에 합당하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저의 모범이십니다. 그분이 사신 방법, 절대 사심이 없는 행동, 도움이 필요한 자에 대한 극진한 봉사, 그분의 최후의 희생은 모두 저에게 모범이 됩니다. 저는 그분처럼 완전할 수는 없지만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저의 치료자이십니다. 저는 그분의 경이로운 기적에 놀랍니다. 저는 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압니다. 저는 그분이 생명과 죽음의 주이심을 알기 때문에 이 일들이 참된 것임을 받아들입니다. 그분이 성역을 베푸실 때 있었던 기적은 보기만 해도 훌륭한, 동정심, 사랑, 인간성을 나타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저의 지도자이십니다. 저는 그분의 탄생 이후로 이천 년 동안 그분을 사랑하고 따랐던 긴 행렬 가운데 한 사람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

그분은 저의 구주이며 구속주이십니다. 아픔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그분의 생명을 주심으로써, 죽음에 따르는 영원한 어둠의 심연으로부터 저와, 우리 각자,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손을 뻗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을 따라 나아갈 수 있도록 더 나은 빛과 이해, 발전과 아름다움이 있는 곳을 마련하셨습니다. 저의 감사함에는 끝이 없습니다. 주님에 대한 저의 감사는 끝이 없습니다.

그분은 저의 하나님이시며 저의 왕이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분은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분의 통치에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에는 밤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흠 없고 아무런 결점이 없는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저는 그분께 경배하고 그분을 통해 하늘에 계신 영원하신 아버지께 다가갑니다. …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으로 …… 이 말씀을 드립니다.”2

이미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그리스도

“모든 것이 그분과 그분의 속죄 희생에 달려 있었습니다. ……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위대한 계획의 종석이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의 가르침

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그분의 독생자를 선물로 주신 일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저의 마음은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저는 얼마나 깊은 감사를 느끼는지 모릅니다. 그 무한히 깊은 사랑은, 그분의 독생자를 세상에 선물로 주셔서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주시고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게 하시며, 무엇보다 우리를 죄에서 구하고 영생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신 것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3

구주의 전세 성역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그분은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 계획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분의 장자요, 우리의 맏형이신 주님이 그 계획의 열쇠였습니다. 인간은 선택의지를 갖게 되고 그 의지에는 책임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세상의 방법대로 살면서 죄 짓고 비틀거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을 입으셨으며 모든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 그분은 인류의 위대한 구속주요 구주가 되셨습니다.4

구주의 지상 성역

모든 역사를 다 살펴보아도 주님의 장엄함에 비할 것은 없습니다. 위대하신 여호와이신 그분은 자신을 낮추어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서 필멸의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나사렛에서 자라 소년이 되었고,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누가복음 2:52)

주님은 요단 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였습니다.]”(마태복음 3:16~17)

주님은 지상에서의 3년 간의 성역 기간 중에 어느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일을 해내셨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그 이전에 가르친 적이 없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다음 희생의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다락방에서 만찬이 베풀어졌을 때, 주님은 필멸의 상태로서는 마지막으로 십이사도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겸손과 봉사의 교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5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

그런 후 겟세마네의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주님은 “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하[였느니라]”(교리와 성약 19: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6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의 아버지께 간구하실 때 고통이 너무도 극심하여 몸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분의 위대한 속죄를 위한 희생의 일부였습니다.7

[언젠가 한번 저는 겟세마네 동산의] 어느 늙은 감람나무 그늘에 [앉아서,] 하나님의 아들께서 핏방울을 땀처럼 흘리는 처절한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이 곧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분명한 미래를 마주한 채 하나님 아버지께 할 만하시거든 그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던 장면에 관해 읽고 있었습니다. … 저는 그분께서는 탄원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끔찍하고도 잔인한 십자가형의 육체적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그 고난에 임하고 계셨던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것도 분명 그 고난의 일부였지만, 제 생각에 그 고통은 주로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과 앞으로 오게 될 모든 세대의 아들들과 딸들의 영원한 복리를 위한 자신의 역할, 그 안에서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분을 알았기에 느낀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과 그분의 속죄 희생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것이 열쇠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들들과 딸들의 영생을 위해 마련하신 위대한 계획의 종석이었습니다. 그것을 마주하는 일은 가혹했으며,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분은 받아들이셨고 성취하셨습니다. 이는 놀랍고도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으며 두고두고 더 많이, 더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8

체포, 십자가에 달리심, 사망

주님은 거칠고 잔혹한 인간의 손에 이끌려, 그것도 법률에 위배되게 밤중에 안나스 앞에 끌려갔으며, 그 후에 교활하고 사악한 산헤드린 관원인 가야바에게로 끌려갔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주님은 이 간교하고 타락한 사람 앞에 두 번째로 끌려 나갔습니다. 그 후, 그분은 로마 총독인 빌라도 앞으로 끌려갔으며, 빌라도의 부인은 빌라도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마태복음 27:19) 빌라도 총독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생각으로 주님을 부패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한 갈릴리의 헤롯 왕에게로 보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욕당하고 매를 맞았습니다. 그분의 머리에는 날카로운 가시 면류관이 씌워졌으며, 피가 흐르는 몸에는 웃음거리로 홍포가 걸쳐졌습니다. 그분은 다시 빌라도에게 끌려갔으며, 군중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누가복음 23:21)라고 소리쳤습니다.

주님은 비틀거리며 골고다까지 가셨으며, 그곳에서 그분의 상한 육신은 잔혹한 인간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극심한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9

역사상, 속죄를 이루기 위해 세상의 구주와 인류의 구속주로서 겟세마네와 십자가 위에서 홀로 고통을 겪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보다 더 통렬한 장면은 없습니다.

저는 예루살렘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해롤드 비 리 회장님과 함께 있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있었던 그 끔찍한 고통, 즉 예수님이 홀로 영적인 고난을 겪고 계셨을 때, 모든 땀구멍에서 피가 흘러 나올 만큼 극심했던 그 고통을 아주 적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누가복음 22:44; 교리와 성약 19:18 참조) 우리는 신뢰받는 직분에 부름받았던 한 사람의 배반을 회상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야만적으로 다룬 것에 대해 회상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 당하는 가운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라고 외치던 모습에 대해 회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구주는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를 이루기 위해 그가 해야 할 일을 용기 있게 행하셨습니다.10

시간이 흘러 예수님의 생명은 고통 속에서 꺼져 갔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분은 바싹 마른 입술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셨습니다]”(누가복음 23:46)

끝이 났습니다. 주님의 이생의 생명이 끝난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인간을 위한 속죄로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주님이 하셨던 약속은 잊혔습니다. 주님의 시신은 유대인의 안식일 전야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린 무덤에 급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눕혀졌습니다.11

부활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일찍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무덤 입구에서 돌을 어떻게 굴려 낼지 걱정하며 서둘러 그곳으로 갔습니다. 무덤에 도착한 여인들은 천사를 보았는데, 천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태복음 28:5~6)

이것은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빈 무덤은 인류 역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린도전서 15:55)12

이미지
텅 빈 무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태복음 28:6)

2

구주의 구속 희생을 통하여 모든 사람은 무덤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부활의 아침의 기적은 모든 인류를 위한 기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기적으로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은 모든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을 위한 사랑의 제물로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분은 사망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13

죽음보다 더 일반적인 것도 없지만, 불멸에 대한 확신보다 더 밝은 희망과 신앙도 없습니다. 모든 죽음에 따르는 절망적인 슬픔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사별로 생긴 고통은 그 첫 번째 부활절 아침에 하나님의 아들이 부활하셨다는 확신에 의해서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죽음의 차가운 손이 닿을 때마다, 그 시간의 슬픔과 암흑을 뚫고 견줄 수 없는 영원한 권세로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찬 모습이 빛을 발합니다. 그분은 세상의 구속주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다시 취하셔서 잠든 자들 가운데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은 다른 모든 왕들 위에 계십니다. 전능하신 분인 주님은 모든 통치자 위에 계십니다. 몸에서 영이 떠나 밤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를 덮을 때 그분은 우리의 평안, 곧 유일하게 참된 평안이 되십니다.

… 그리스도 예수님이 온 인류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14

한 친구의 장례식에서 말씀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친구가 보여 준 선함으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그의 미소와 친절한 말씨를 알았으며 그가 발휘했던 뛰어난 지성과 타인들에게 베풀었던 광범위한 봉사에 대해서도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토록 명석하고 훌륭했던 그 친구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생명이 없는 그의 몸을 바라보았습니다. 의식도, 움직임도 없었고 어떤 친절한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울고 있는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듯이, 그들도 이 지상에서 다시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낌이 평화와 확신을 가져왔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

더 나아가서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걱정 말아라. 이 모든 것이 내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단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거치게 되지. 내 사랑하는 아들조차도 십자가 위에서 죽었단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 그는 사망의 쏘는 듯한 고통을 소멸하고 무덤이 승리를 거두지 못하게 했단다.”

저는 마음속으로 주님께서 슬퍼하고 있는 마르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25~26)15

3

구주의 속죄 희생을 통하여 우리는 승영과 영생의 기회를 얻는다.

전능자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아들께서 죽음의 속박을 끊으시고 모든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 그분은 승리하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구속주이십니다. 그분의 구속 희생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무덤으로부터 일어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불멸뿐 아니라 영생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16

저는 그분의 속죄의 의미를 어느 정도만 이해합니다. 그것을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만인이 받을 수 있으나 그 효력은 개인적으로 적용이 되기에 이루 다 이해하기가 힘듭니다.17

그 속죄의 크기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입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곤 그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저와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뿐입니다. 구주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드릴 때 그 고난이 너무 크고 고뇌가 너무 격렬하였기에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얻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입니다. 온 인류에게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과 함께 구원의 축복이 허락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이 주어지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순종을 통해 승영과 영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그분, 또한 그분의 위대하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희생을 통해서입니다.18

모든 사람들은 다 회개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비로우신 용서를 빌고 그분의 모범을 따라야 할 방탕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신 구속주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십니다. … 주님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주신 말씀을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회개하기를 명하노니—회개하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 입의 막대기로, 또 나의 진노로, 또 나의 분노로 너를 쳐서 네 고난이 극심할까 하노라—얼마나 극심한지 너는 알지 못하며, 얼마나 격렬한지 너는 알지 못하나니, 참으로,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너는 알지 못하느니라.

이는 보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할진대, 그들은 나처럼 고난을 겪어야만 하나니,

그 고난은 만유 가운데 가장 큰 자 곧 하나님인 나 자신을 고통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하였으며, 육체와 영이 모두 고난을 겪게 하[였느니라.] …

내게서 배우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나의 영의 온유함으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는 내 안에서 화평을 누리리라.”(교리와 성약 19:15~18, 23)19

모든 것을 고려해 보고, 모든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고, 인간의 가장 깊은 생각을 탐구해 보아도 전능하신 분의 아들이자 하나님 왕국의 왕자, 인간에게 여호와로서 말씀하셨던 분, 지상에 강림하고 베들레헴의 아기로 태어나 모욕과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써 필멸의 운명에 처한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다시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신 그분의 그 은혜로운 행위만큼 훌륭하고 경이로우며 놀라운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우리 중 아무도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셨습니다. …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4~5)

이것은 놀라운 실제 성탄절 이야기입니다.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그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주님이 3년간 성역을 베푸신 것은 그 이야기의 서문입니다. 그 이야기의 장엄한 본문은 우리 모두의 죄를 속하기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완전히 비이기적인 행동 곧 그분의 희생입니다.

이 이야기의 맺음말은 부활의 기적으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22)는 확신을 가져다줍니다.

부활절이 없었다면 성탄절도 없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와 갈보리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이 없었고 또 부활의 승리가 없었다면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는 다른 아기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 그분보다 더 위해했던 분은 없습니다. 그에 필적할 만한 희생을 치르거나 그에 필적할 만한 축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구주이며 구속주이십니다. 저는 그분을 믿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절대적으로 그분의 신성을 선언합니다. 그분을 사랑합니다. 저는 그분의 이름을 경건함과 놀라움으로 부릅니다. 저는 그분의 아버지를 예배하듯이 그분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래전에 손을 내밀어 우리들 각자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하셨던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가 잠시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을 내어 이 하나님의 아들의 놀라움과 위대함에 대해 명상하고 조용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20

제가 … 간증드리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속죄 없이는 삶이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를 공고히 하는 종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 줍니다. 필멸의 삶은 미래에 있을 더 영광스러운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슬픔은 부활에 대한 약속으로 경감됩니다.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임된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을 낮추어 지상에 오셔서 구유에서 태어나셨고, 정복된 나라의 속박된 백성 가운데 오셨으며,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독생자로 육신을 입으신 장자, 그리고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속주이자 구주이시며, 그분의 속죄를 통하여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가능케 하셨습니다.22

학습 및 교수 제언

질문

  •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선물”로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1편 참조) 이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보이기 위해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관한 힝클리 회장의 간추린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들었는가?

  • 2편에서 힝클리 회장이 사망을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들을 그가 부활을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들과 비교해 본다. 이 단어들의 차이점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알게 되는가? 구주의 부활에 대한 여러분의 간증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힝클리 회장의 간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3편 참조) 속죄는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어떻게 축복이 되었는가? 구주께서 여러분을 위해 치르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구주에 관하여 “명상하고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계획한다.

관련 성구

이사야 53장; 요한복음 3:16; 11:25; 니파이후서 9:6~13; 앨마서 7:11~13; 34:8~10; 힐라맨서 14:13~19; 교리와 성약 18:10~12

교사를 위한 도움말

“여러분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을 준비할 때, 여러분은 특정 원리들을 강조하도록 인도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아이디어를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생활의 단순한 활동에서 사례, 소재, 영감을 주는 이야기 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에 도움이 될 특별한 사람을 초대하겠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여러분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담이 떠오를 수도 있다.”(교사, 가장 중요한 부름[1999], 48쪽)

  1. “살아 계신 그리스도: 사도들의 간증”, 리아호나, 2000년 4월호, 2쪽.

  2. “나의 간증”, 리아호나, 2000년 7월호, 83, 85쪽.

  3. “성탄절에 실제로 있었던 놀라운 이야기”, 리아호나, 2000년 12월호, 4쪽.

  4.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리아호나, 2002년 7월호, 101쪽.

  5. “사망을 이긴 승리”, 성도의 벗, 1997년 4월호, 4쪽.

  6. “사망을 이긴 승리”, 4쪽.

  7. “제가 알고 있는 것들”, 리아호나, 2007년 5월호, 83쪽.

  8. Teachings of GordonB. Hinckley (1997), 29-30.

  9. “사망을 이긴 승리”, 4쪽.

  10. “확신에 찬 생활”, 리아호나, 2001년 9월호, 2쪽, 4쪽.

  11. “사망을 이긴 승리”, 4쪽.

  12. “사망을 이긴 승리”, 4쪽.

  13. “사망을 이긴 승리”, 4쪽.

  14. “이 영광스러운 부활절 아침”, 성도의 벗, 1996년 7월호, 67쪽.

  15. “성탄절에 실제로 있었던 놀라운 이야기”, 4쪽.

  1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리아호나, 1999년 7월호, 85쪽.

  17. “성탄절에 실제로 있었던 놀라운 이야기”, 4쪽.

  18. “용서”,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84쪽.

  19.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 요구되느니라”, 성도의 벗, 1991년 11월호, 6쪽.

  20. “성탄절에 실제로 있었던 놀라운 이야기”, 4~6쪽.

  21. “제가 알고 있는 것들”, 84쪽.

  22. In Sheri L. Dew, Go Forward with Faith: Teachings of Gordon B. Hinckley (1996), 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