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제 7 장: 영혼의 불멸성


제 7 장

영혼의 불멸성

우리의 삶은 영원하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며 비통에 빠졌을 때 위안이 된다.

조지 앨버트 스미스의 생애에서

조지 앨버트 스미스는 인생의 목적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축복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이 역경에 처했을 때 그들을 격려해 줄 수 있었다. 그는 자주 성도들에게 “우리는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라고 상기시키며, 영원은 이생이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필멸의 삶이 영원에서 필수적인 부분임을 일깨웠다. ”때때로 저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영원한 행복 또는 영원한 실망의 시작이다.’”1

스미스 회장은 아내와 여덟 아이들을 남겨 두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교회 축복사, 하이럼 지 스미스의 장례식에서 이러한 진리를 증거했다.

“이 장례식에서 말씀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이후로 저는 줄곧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차 주체할 수가 없었지만, 이 건물에 들어서자 제 영혼에 아름답고 감미로운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

저는 비통해하기보다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시대에 새롭게 계시해 주신,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복음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 삶이 영원하다는 지식과, 이 선한 형제가 삶의 목적으로 삼아 온 축복들이 영원토록 그의 것이 되리라는 지식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가 살아온 필멸의 삶은 끝났지만 이것은 영원한 삶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는 깊고 튼튼한 기초를 놓았으며, 그 위에 지금껏 쌓아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쌓아 갈 것입니다. 그가 지상에서 경험한 기쁨이 그 위에 더해질 것입니다. ……

이러한 장례식에 참석하여 사람들이 세상에서 경험한 바를 생각해 볼 때면 저는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깨닫게 되고 놀라게 됩니다. 한낮에 밝게 빛나는 태양처럼 저는 영생과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교 사업을 나가거나, 타국으로 이주하면 우리는 그들을 그리워합니다. 오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들이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가 올바로 이해한다면, 사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여읜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하기보다, 저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이날을 기뻐하고 싶습니다. ……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앞에 서서, 어쩌면 눈물을 흘려야 할 이 순간에, 제 영혼은 충만한 위안과 만족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의 삶에도 그와 같은 위안이 깃들기를 기도드립니다.”2 [77쪽 제언 1 참조]

조지 앨버트 스미스의 가르침

우리는 지상에 오기 전에 영으로 살았으며, 우리가 죽은 후에도 영은 계속 살 것이다.

우리는 이 삶이 영원한 삶이라고, 다시 말해 우리는 영원이란 시간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으며, 그러한 삶이 영원토록 이어진다고 이해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도 살았으며, 예지 혹은 영이라고도 하는 것은 현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영의 장막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 영체가 이 세상에 보내졌고, 이곳에서 육의 장막, 즉 눈에 보이는 몸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육체적인 부분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에 속한 것이지만[고린도전서 15:47 참조], 생명이 다할 때 몸을 떠나는 부분은 영적인 것이며, 결코 죽지 않습니다. 육의 장막은 무덤에 묻힙니다. 육체는 땅에서 난 부분이라 대지로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육의 장막 안에 두신 예지, 사유하고 생각하며, 노래하고, 말하는 힘이 있는 예지는 죽음을 알지 못합니다. 예지는 영원한 삶의 한 부분인 지상 생활에서 벗어나, 육의 장막이 성결하게 되어 재결합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우리가 합당하게 생활했다면 육의 장막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 영화로워진 것처럼 영화로워질 것입니다.3

시인의 입을 빌자면 “인생은 실재하고, 인생은 진지하며,” “무덤은 인생의 종말이 아닙니다.”[헨리 워드워즈 롱펠로, “인생 예찬”] 육의 장막에 거하는 영은 불멸합니다. 영은 무덤을 초월하여 삽니다. 몸은 썩어서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계속 삽니다.4

저는 이생이 끝이 아니라 영원의 한 부분이며, 이곳에서 우리가 받은 특권들을 잘 활용한다면, 이생은 더 훌륭하고 바람직한 상태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된다는 사실을 이 후기에 계시해 주시고 명백하게 알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5 [77쪽 제언 2 참조]

우리가 지상에 온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지상 생활을 마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자연이 빚어낸 작품을 들여다보고, 인간의 조직체와 완벽한 몸과 심장 박동, 유아기에서 성년기로의 성장 발달, 그 후 이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점진적인 쇠퇴 등을 연구하면서, 어떻게 사람이 아무런 삶의 목적도 없이, 오로지 남성이나 여성으로 성장하고, 노년기를 거치고, 죽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믿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있을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6

이생은 그저 오락시간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생을 주신 데에는 신성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공부하여, 진보하고 영생을 얻읍시다.7

후기 성도는 지상 생활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에 거하기에 합당해지기 위해 준비하고 발전하고 자격을 갖추고자 이곳에 있습니다.8

우리는 첫째 지체를 지켜서 지상에 올 특권을 얻었기 때문에 이곳에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자체가 이곳에 오기 전에 보였던 충실함에 대한 보상이며, 우리가 영의 세계에서 기울였던 노력의 열매들을 지상에서 누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곳을 떠나갈 때 거둘 추수의 씨앗을 오늘 뿌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영생이 전세와 현세와 불멸의 상태에서 연속되는 삶의 총합이며 끝없이 진보하고 증식할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생각과 확신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 인간처럼 하나님도 한때 인간이셨고, 지금 하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Lorenzo Snow, “The Grand Destiny of Man,” Deseret Evening News, July 20, 1901, 22 참조]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닮기를 바라고, 충실하다면, 하나님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 부적절하거나 불의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생을 다스리시는 아버지의 자연 법칙을 받아들이고 그 법칙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더욱 닮아가게 됩니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놓인 기회들을 활용한다면, 우리는 이생과 앞으로 올 세상에서 더욱 위대한 기회를 받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 시험의 시기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모든 오류를 피하고, 모든 진리를 받아 들이며, 진리를 삶에 적용하여 그분을 좀 더 닮아가며, 그분과 함께 살기에 합당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참으로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9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것은 중대한 사안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위대한 미래의 삶을 살 준비가 되었는지, 만일 내일 부름을 받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면 지상에서 한 일들에 대해 보고할 준비가 되었는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맞으시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칭찬하실 것 같은 지 살펴봐야 합니다.10 [78쪽 제언 3 참조]

이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영원한 가치를 갖는 것들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생에서 일시적인 만족감을 주는 몇 가지 것들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원하고 “가치 있는” 것들은 우리 각자가 구하고 준비하고 노력하여 붙잡는 영원한 것들입니다.11

세상이 태초부터 혈안이 되어 왔던 부나 권력과 같이, 사람을 안락하게 하는 모든 것이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습니까. 이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질 좋고 풍부한 의복,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음식, 과거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온갖 종류의 부로 넘쳐납니다. 우리의 집은 더욱 안락합니다. 복음이 지상에 온 이후로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들이 놀랄 만큼 증가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토록 갈망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 교육은 최고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이 지상에 속한 것들에 대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인류가 가장 가치 있다 여기며 태초부터 갈망해 온 모든 것이 오늘날 지상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를 의심하고 두려워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육체적 안락을 주는 것과 사람의 명예를 추구해 왔고, 이기심이 우리 영혼에 심은 것을 추구해 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높이고자 했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보다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12

이 세상 좋은 것들이 풍족하게 있다 하여 안주하고 속지 맙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었습니까?[마가복음 8:36 참조]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간과하지 맙시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노력합시다.13

살아가면서 보게 되는 슬픈 장면 중 하나는 누군가가 대지에 묻히면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더 큰 축복을 거절하고,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말 거품을 계속 붙잡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습입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게을리 하는가를 생각할 때, 저는 슬픔을 느낍니다.14

이 점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힘써 얻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은 예지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배우고 생활에 적용하는 진리, 여러분이 얻고 유익을 얻는 지식과 경험 말입니다. 본향으로 돌아갈 때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갈 것입니다.15

저 세상에 가서 우리가 찾게 될 보물은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한 아버지의 아들 딸들을 돌봄으로써 그곳에 쌓아 둔 것들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이를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다른 어떤 일보다 이웃을 섬길 때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16

얼마나 많은 귀중품을 지녔는지, 얼마나 많은 재산을 소유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는지 등, 세상에서 그토록 귀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다른 모든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은 해의 왕국에서 영생을 얻고, 지상에서 함께한 사람들과 더불어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와 영원토록 함께하는 기회입니다.17 [78쪽 제언 4 참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활할 것이다.

구주의 의로운 삶은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모범이며, 그분의 부활은 우리도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것을 인류에게 알리는 첫 번째 확증이었습니다.18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셨을 때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영(하나님의 영혼에서 예지에 해당하는 부분)은 정결하게 된 예수님의 지상 장막을 다시 차지했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영화로운 해의 왕국의 존재가 되시고, 신회의 일원으로서 아버지의 우편에 자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다스리는 아버지의 모든 율법을 따르셨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권능이 있으셨으며, 죽음을 제압하고 길을 마련하셔서 온 인류가 부활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누구든지 하려고만 한다면 따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함으로써 영화롭게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19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순수함과 의로움과 덕으로 감옥 문을 여시고, 죽음과 무덤을 깨트리시고, 우리가 가기를 고대하는 하늘로 가는 길을 개척하셨습니다.20

교리와 성약 88편을 펴고 주님께서 부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주님께서는 구주의 부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날지도 말씀하셨습니다. …… 88편에서 우리는 다른 몸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며, 현재 이 장막에 거하고 있는 영이 정결하고 성결하고 불멸의 몸으로 거듭난 동일한 장막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배웁니다.[교리와 성약 88:14~17, 28~33 참조]21

세상에 있는 많은 선한 사람들은 부활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들과 친구들에게 부활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르쳐 줍니까? …… [구주의] 부활은 복음을 이해하는 후기 성도들에게는 명백하지만, 세상에는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목적은 모든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아오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상에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고, 의로운 자들이 그곳에 거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자 입법자가 되실 때를 대비하여 모든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22 [78쪽 제언 5 참조]

우리는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지식에서 영감과 격려와 위안을 받는다.

욥기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욥기 32:8] 그러한 숨결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영이 몸을 떠나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갈 때를 기다리며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23

죽음으로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슬프지 않겠습니까? 지상에서 인생살이를 마쳤을 때 더 이상 발전할 기회가 없다면, 이곳에서 마땅히 살아야 할 바대로 살도록 격려해 주는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이루는 모든 선과 모든 발전이 영원토록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켜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24

우리 모두는 저 세상으로 불려갈 시간을 향해 급속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래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받아온 영향보다 더 많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인생의 허무나 짜증스러움 외에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할 무언가가 없었다면, 저는 현세에서 사는 동안 겪어야 할 시련 속에서 지쳐 버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류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은사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셨습니다.25

주님께서는 그분이 살아 계시고 육신을 지니셨으며, 우리가 그분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사물의 본질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스스로를 사람의 자녀들에게 나타내 보이셨고, 고유의 개체성을 지니신 하나님이며, 우리가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우리 영은 그분이 주신 것이며, 우리가 그분의 면전으로 돌아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준비를 하도록 육의 장막을 주시고 지상에서 거할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만일 여러분이 제가 받은 증거를 받았고 제가 아는 사실을 안다면, 그런 확증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신앙을 세울 기초를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살아 계시다는 지식,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현신이란 확신, 문자 그대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게 되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여러분은 전 세계 곳곳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위안이 남아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이 바로 기초가 되는 진리입니다.26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곳보다는 저편에 더 많이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저 또한 그곳으로 오라는 소환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불안과 고통스러운 마음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가 필멸의 상태에서는 알 수 없는 행복과 장점을 증진시켜주리라는 희망과 확신으로 그때를 고대합니다.27

죽음은 영원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는 한 단계에 불과하며, 그분의 계획에 따른 것임을 깨닫게 되면, 사망이 쏘는 것은 사라지고 영생의 실재성을 직시하게 됩니다. 많은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이별을 고하라는 부름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한 이별이 닥칠 때, 죽음은 우리가 허락하는 경우,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우리 삶에 큰 슬픔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영의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보는 것에서 위안을 받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희망 없이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우리가 필멸의 삶을 사는 동안 그분의 조언과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영원한 행복을 얻으리라는 모든 확증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헛된 꿈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인 여러분에게는 이 이야기가 평범할 테지만, 사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손이 닿는 곳에 우리가 영원히 산다는 것을 가르치는 신성한 경전을 두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식을 지극히 이해하기 쉬운 말로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비통해하는 사람들이 위안을 받고, 우리가 이곳에 있는 목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을 주신 것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립니다. 만일 돌아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전진하라. 전진하라.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안겨 줄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하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일들을 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것들을 아무것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 못할 하늘에 보물을 계속 쌓을 것입니다.[마태복음 6:19~20 참조]

저는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고 있고, 죽음에 의한 일시적인 이별은 영원한 진보의 여정에서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충실하다면 결과적으로 행복해지리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28 [78쪽 제언 6 참조]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본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ⅴ~ⅶ쪽을 참조한다.

  1. “조지 앨버트 스미스의 생애에서”(67~69쪽)를 읽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누군가를 위안하려 했던 때를 생각해 본다. 스미스 회장은 어디에서 위안을 얻었는가?

  2. 스미스 회장은 “이생이 끝이 아니라 영원의 한 부분”(70쪽)이라고 가르쳤다. 이 말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이 원리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선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받겠는가?

  3. 70쪽의 소제목 아래에서 시작되는 부분을 공부한다. 이 부분에 나오는 가르침은 세상에서 가르치는 인생의 목적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필멸의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속성을 닮[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

  4. 71쪽의 소제목 아래에서부터 시작하여, 특히 72쪽의 끝에서 세 문단과 73쪽의 둘째 문단까지를 살펴본다. 세상적인 것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말 거품을 붙잡으려” 하는 것과 같은 이유는 무엇인가?

  5. 74쪽에서 스미스 회장은 교리와 성약 88편에 나오는 부활에 관한 가르침을 언급했다. 88편 14~17절과 28~33절은 부활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자녀들에게 부활에 대해 가르칠 효과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6. 74쪽의 소제목 아래에서부터 77쪽까지 읽는다. 이 부분에서 가르치는 원리에 대한 간증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견디기 쉬운 인생의 시련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관련 성구:고린도전서 15:12~26, 35~42, 53~58; 니파이후서 9:6~13; 앨마서 12:24; 28:12; 교리와 성약 93:19~20, 29~34; 130:18~19; 아브라함서 3:24~26

교사를 위한 도움말: “반원들에게 흥미있는 부분을 선택하여 마음속으로 읽어 보라고 한다. 같은 부분을 선택한 사람 두세 명을 짝을 지어서 배운 내용을 토론하게 한다.”(이 책 ⅶ쪽에서 발췌)

  1. Conference Report, Oct. 1944, 94.

  2. Deseret News, Feb. 13, 1932, Church section, 5, 7.

  3. “Mormon View of Life’s Mission,” Deseret Evening News, June 27, 1908, Church section, 2.

  4. Conference Report, Apr. 1905, 62.

  5. Conference Report, Oct. 1923, 70–71.

  6. Conference Report, Apr. 1905, 59.

  7. Conference Report, Oct. 1906, 48.

  8. Conference Report, Oct. 1926, 102.

  9. “Mormon View of Life’s Mission,” 2.

  10. Conference Report, Apr. 1905, 63.

  11. Conference Report, Oct. 1909, 78.

  12. Conference Report, Apr. 1932, 44.

  13. Conference Report, Oct. 1906, 50.

  14. Conference Report, Oct. 1923, 70.

  15. “Mormon View of Life’s Mission,” 2.

  16. Deseret News, May 26, 1945, Church section, 6.

  17. Conference Report, Apr. 1948, 163.

  18. “President Smith Sends Greetings,” Deseret News, Dec. 27, 1950, Church section, 3.

  19. “Mormon View of Life’s Mission,” 2.

  20. Conference Report, Apr. 1905, 60.

  21. Conference Report, Apr. 1939, 122–23.

  22. Conference Report, Apr. 1950, 187–88.

  23. Conference Report, Apr. 1939, 121.

  24. Conference Report, Oct. 1921, 41.

  25. Conference Report, Oct. 1923, 71.

  26. Conference Report, Oct. 1921, 39.

  27. Deseret News, May 26, 1945, Church section, 4.

  28. “Some Thoughts on War, and Sorrow, and Peace,” Improvement Era, Sept. 1945, 501.

“이생이 끝이 아니라 영원의 한 부분임을 이 후기에 계시해 주시고 명백하게 알게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다른 모든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은 ……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와 함께 영생을 얻을 기회입니다.”

“구주의 부활은 우리도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것을 인류에게 알리는 첫 번째 확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