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관한 서한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관한 서한

교리와 성약 127, 12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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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 성전

주님은 조셉 스미스에게 대리 침례를 통해 죽은 자를 구속하는 교리를 회복해 주시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질문들에 답해 주시고 간절한 열망을 충족시켜 주셨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았던 무수한 사람들에게 현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논쟁해 왔었다. 조셉 스미스 자신도 정직하게 살았지만 침례를 받지 않은 사랑하는 앨빈 형의 운명에 대해 번민했었다.

1836년 1월에 조셉 스미스는 해의 왕국에 관한 시현을 보았는데, 그 시현을 통해 조셉은 앨빈 형과 같이 현세에서 복음의 충만함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받아들였을 사람들은 다음 세상에서 가장 큰 보상을 받는 데 배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님은 이 시현을 시작으로 여러 해에 걸쳐 조셉 스미스와 그의 후임자들에게 죽은 자를 위한 침례와 관련된 교리와 의식들을 조금씩 계시해 주셨다.

조셉의 시현은 하나님의 자비를 확인시켜 주었으나, 경전에 언급된 침례의 요건이 앨빈과 같은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또는 다른 방법으로 실현된다는 것인지에 대해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았다. 몇몇 후기 성도들은 그 점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지식이 부족함을 인식했다. 예를 들어 조셉 필딩은 “성약이 깨어진 상황에서 사망한 이들의 구속이라는 주제로 많은 생각을” 했으며 “아마도 이 마지막 시대에 신권을 받는 이들은 구주께서 오실 때에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했다.1

그러나 1840년 8월 15일 시모 브룬슨의 장례식에서 조셉 스미스는 지상에 사는 사람들이 죽은 친족을 대신하여 침례 요건을 이행할 수 있다는 원리를 가르쳤다. 성도들은 이 기회를 기쁘게 받아들여 거의 즉시 나부 인근에 있는 강과 개울에서 죽은 친족을 위해 침례를 받기 시작했다.

그 후 1841년 1월에 조셉 스미스는 나부에 성전을 건축하고 죽은 자를 위한 침례 의식을 항상 성전과 연계하라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계시를 받았다. “이는 그들, 나의 성도들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을 수 있는 침례반이 땅 위에는 없음이니—이는 이 의식이 나의 집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니라.]”(교리와 성약 124:29~30) 나부 성도들은 신속히 성전 건축을 추진했으며, 1841년 11월 무렵에 지하층이 완성되자 나무로 적당한 침례반을 만들었다.

죽은 자를 위한 침례 서한

이 새로운 의식에 대한 추가의 지시와 설명이 주어져야 했다. 1842년 8월에 조셉 스미스는 미주리의 전 주지사인 릴번 더블유 보그스의 살인미수 방조자로 기소되었다. 조셉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신뢰하는 친구들의 집에서 약 3개월간 대부분 숨어서 지냈다. 윌포드 우드럽은 일지에 “조셉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보이는 특권은 박탈되었으나 주님이 밧모 섬에서 요한과 함께하셨듯이 조셉과도 함께하고 계시다”고 기록함으로써 조셉이 공적 생활을 하지 못하는 중에도 영적 현시를 경험했음을 암시했다.2

8월 31일에 여성 상호부조회 회원들이 참석한 소규모 모임에서 말씀하기 위해 잠시 모습을 드러낸 조셉은 자신이 앞서 몇 주 동안 알게 된 것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다음과 같이 전달했다. “죽은 자를 위해 침례를 받는 모든 사람은 그 자리에 기록자를 참석시켜서 그 의식을 목격하게 해야 합니다. 대평의회에서 이런 것들이 입증되어야 할 것입니다.”3

그다음 날 조셉은 이후 교리와 성약 127편이 될, 교회에 보내는 서한을 쓰기 시작했다. 이 서한에서 조셉은 자신에 대한 고소 때문에 공석에 나가지 못함을 설명하며 “폭풍이 완전히 지나가고 나면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가겠다”고 성도들을 안심시켰다. 조셉은 주님이 자신에게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목격할 기록자의 필요성을 계시해 주시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고 말했다. “이는 너희가 기록하는 것이 모두 하늘에서 기록되게 하려 함이니, …… 그리고 또, 모든 기록을 정리하여 나의 거룩한 성전의 기록 보관소에 넣어 두어 대대로 기억되게 할지어다. 만군의 주가 이르노라.”(교리와 성약 127:7, 9)

조셉은 “그 주제에 관해 연단에서” 말씀하기를 소망하지만 “우편으로 보내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라는 말로 서한을 끝맺었다. 그래서 조셉은 에라스터스 더비에게 그 서한을 윌리엄 클레이튼에게 전달하게 하여 그 주 일요일인 9월 4일에 “그로브에 모인 성도들 앞에서 낭독하게” 했다. 조셉의 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만족감이 기록되어 있다. “이 서한이 형제들 앞에서 낭독되자 그들은 고무되었으며 용기를 내어 충실하고자 하는 힘을 얻었다.”4

9월 7일에 조셉 스미스는 같은 주제에 대해 “그다음 안식일인” 9월 11일에 “낭독하라고 지시한” 두 번째 서한을 구술했다. 이 두 번째 서한은 현재 교리와 성약 128편에 나와 있다. 이 서한에서 선지자 조셉은 기록 작성 관련해서 더 상세하게 기술했으며, 증인과 나부의 10개 와드 각각의 기록자, 모든 와드 기록을 수집하여 “전체 교회의 기록대장”(교리와 성약 128:4)에 올릴 교회의 총 기록 담당자가 필요하다고 명시했다.5

그런 후 조셉은 죽은 자를 위한 침례 의식과 기록자의 필요성에 대해 경전에서 찾을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길게 설명했다. 그는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이 세대들 사이에 필수적인 영원한 결속을 형성한다고 가르쳤다. “어떤 주제에 관하여 아버지와 자녀 간에 일종의 굳게 매는 연결이 없으면 땅은 저주로 치심을 당하리라 …… 보라, 그 주제란 무엇이던가? 그것은 죽은 자를 위한 침례니라. 이는 그들이 아니면 우리가 온전함을 이룰 수 없고, 우리가 아니면 그들도 온전함을 이룰 수 없음이니라.”(교리와 성약 128:18)

그는 행동을 취하도록 요청하고 고무시키는 다음과 같이 잘 알려진 말로 끝맺었다. “형제들아, 이 위대한 대업에 우리가 나아가지 아니하겠느냐? 전진하고 물러서지 말라. 형제들아, 용기를 내라. 승리를 향하여 나아가고, 또 나아가자. 너희 마음으로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땅은 소리를 발하여 노래할지어다. 죽은 자들은 세상이 있기 전에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그 옥에서 구속할 수 있도록 제정하신 임마누엘 왕에게 영원한 찬양의 노래를 부를지어다. 이는 옥에 갇힌 자들이 놓여날 것임이니라. …… 주의 거룩한 성전이 완성되는 때, 그 곳에서, 우리의 죽은 자의 기록이 실려 있는, 받으시기에 온전히 합당한 책을 바치자.”(교리와 성약 128:22, 24)

조셉 스미스가 보낸 이 두 서한은 1844년에 경전으로 받아들여져 그때 이후로 교리와 성약의 한 부분이 되었다. 성도들은 이 두 서한에서 주어진 지시를 정확하게 따랐으며, 각 와드에서는 기록자들이 부름을 받았다. 기록자들은 일반적인 증명서 또는 양식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침례를 기록했다. “나는 이 문서에 기록된 날짜에 일리노이 주 나부 시에 위치한 주님의 집 침례반에서 다음의 침례가 있었음을 보았고 들었음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빈칸]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하자면 [빈칸]과 [빈칸]이 침례 증인으로 참석했으며, 기록은 본인이 작성했고 틀림 없는 사실이다.” 6

‘말씀에 말씀을’

1844년 6월에 조셉 스미스가 사망한 후, 브리검 영은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으로서 교회를 인도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는 1844년~1845년 겨울에 죽은 자를 위한 침례 의식을 정교화하는 데 필요한 추가 사항을 가르쳤으며, 1845년 4월 대회에서 그 개선 사항을 설명했다.

성도들은 친족들을 위한 이 의식을 서둘러 해주고 싶은 마음에 성별도 개의치 않고 남성이 여성을 위해, 여성이 남성을 위해 침례를 받기도 했었다. 브리검 영은 이제부터는 성도들이 “남성이 여성을 위해, 여성이 남성을 위해 침례를 받으러 가는 모습을 결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전에 왜 이런 일이 지속되었을까? “무한한 존재는 자신의 유한한 피조물에게 율법을 줄 때 그 율법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능력에 맞게 주는데, 죽은 자를 위한 침례 교리가 처음 주어졌을 때 이 교회는 초기 단계였습니다. …… 주님은 항상 그분의 백성에게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주시는 방식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 주님은 그들의 지혜를 키워주셨으며, 조금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이들은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브리검 영은 조셉 스미스의 여러 서한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것이 처음 계시되었을 때 그것의 모든 순서가 알려진 것은 아니었으며, 그 후에 그것이 알려져서 기록, 서기, 한두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런 것들이 없다면 그것은 성도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끝마쳤다. “조셉은 그의 생애 동안 구속의 교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받지는 않았으나, 이 위대한 백성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해의 왕국에서 승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 법을 알고서 그것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이들에게 열쇠를 남겨 주었습니다.”7

  1. Joseph Fielding, Letter to the editor, 28 December 1841, Times and Seasons 3 (1 January 1842): 648–650.

  2. Wilford Woodruff, entry for September 19, 1842 in Scott G. Kenney, ed., Wilford Woodruff’s Journal (Midvale, Utah: Signature Books, 1983), 2:187.

  3. History of the Church 7:142

  4. Andrew H. Hedges, Alex D. Smith, and Richard Lloyd Anderson, eds., Journals, Volume 2: December 1841–April 1843, Vol. 2 of the Journals series of The Joseph Smith Papers, edited by Dean C. Jessee, Ronald K. Esplin, and Richard Lyman Bushman, (Salt Lake City: Church Historian’s Press, 2011), 133.

  5. 이 계시가 주어지기 전에도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대해 일부 기록이 작성된 것은 분명하나 그것들은 완전하지도, 서로 통일되지도 않았다.

  6. 이 엉성한 증명서는 다음 서적의 앞표지 안쪽에 끼워져 있었다. Baptisms for the Dead, Book C, September 1842-June 1843, 자필 증서의 마이크로필름 사본, 가족 역사 도서관,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7. Brigham Young, “Speech,” Times and Seasons 6 (July 1, 1845): 953–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