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세 자매
각주

Hide Footnotes

테마

세 자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그리고 친구 여러분, 전 세계 자매들의 모임으로 연차 대회의 서막을 장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연령, 상황, 국적, 언어를 막론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신앙으로 하나가 된 자매들을 그려 보십시오.

최근 우리의 사랑하는 선지자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을 뵈었을 때 그분은 자신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몬슨 회장님이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와 주님에 대한 헌신에 참으로 감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옛날 아주 먼 나라에 세 자매가 한집에 살았습니다.

맏이는 슬픔이라고 했습니다. 슬픔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어느 곳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 했습니다. 슬픔이 하는 말은 간혹 어설프게 들렸고, 그러면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었습니다. 사람들이 비난하거나 “깜박” 잊고 자신을 불러 주지 않을 때면, 슬픔은 발개진 얼굴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고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왜 삶은 이렇게 절망적이고 암담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는 노여움이라고 했습니다. 노여움은 자신이 매우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학교에 가면 항상 자신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여움은 자신이 재미있고, 예쁘고, 유행에 앞서가며,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재미있고, 더 예쁘고, 유행에 더 앞서가며, 더 매력적인 사람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디서도 최고가 될 수 없었고, 노여움은 이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여움은 때로 사람들을 호되게 몰아세우곤 했으며, 항상 이런저런 일로 분통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습니다.

물론, 그런 모습은 더 큰 호감과 인기를 얻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노여움은 이따금 이를 앙다물고 주먹을 움켜쥐며 생각했습니다. “삶은 정말 불공평해!”

이 집의 막내는 언니들과 달랐습니다. 막내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막내가 기쁨이 된 것은 언니들보다 똑똑하거나 예뻐서 혹은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습니다. 기쁨도 무시당하고 소외당할 때가 있었습니다. 기쁨이 입은 옷이나 기쁨이 하는 말을 두고 놀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녀에 대해 악의적인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전부 개의치 않았습니다.

기쁨은 노래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썩 잘 하지는 못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노래를 그만두지는 않았습니다. 기쁨은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그 사람들의 생각 때문에 노래를 그만두지는 않겠어!”

막내가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 때문에 맏이는 슬퍼했고 둘째는 노여워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세 자매가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가 되었습니다.

삶에는 실망할 일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번번이 실감한 맏이는 슬프게 죽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이유로 싫은 것만 눈에 들어왔던 둘째는 노여워하며 죽었습니다.

그러나 막내인 기쁨은 평생 확신에 찬 미소를 띠고 온 힘을 다해 노래했고, 기쁘게 죽었습니다.

물론 삶은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사람들도 이 자매들처럼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적인 예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대부분 이들 중 한 명이나 두 명, 혹은 세 명 모두에게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세 자매를 각각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피해자

맏이는 자신을 피해자, 즉 다른 사람의 행함을 받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1 그녀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 탓에,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행위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휘둘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온갖 말은 바람처럼 사람을 흔들어 놓기 마련입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가 일상이 된 오늘날에는 그 바람이 거센 폭풍이 되어 몰아치곤 합니다.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왜 우리의 행복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리의 손에 맡겨야 합니까? 그들은 우리나 우리의 행복에 크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걱정이 되신다면, 해결책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왕국에 있는 고귀한 집안의 일원입니다. 그리고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늘 부모님의 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인 DNA를 가졌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적으로 창조될 때 받아서 기나긴 전세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발전시킨 특별한 은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비롭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셨고, 광활한 우주 전역에 별들을 흩뿌리셨으며, 행성을 두시어 정확한 궤도 안에 움직이게 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자녀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 손은 선량한 손.

사랑이 가득한 손.

보살피는 손입니다.

여러분에 관해 누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이는 바뀌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말은 하나님이 여러분에 관해 말씀하신 것에 비하자면 무의미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귀한 자녀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실수를 저지르고 그분께 등을 돌릴 때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길을 잃고, 버려지고, 잊혔다는 기분이 들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선한 목자는 여러분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데려오실 것입니다.2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이 신성한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겨 두십시오. 영원한 운명에 도달해야 하는 여러분에게는 슬퍼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세상의 구주께서는 여러분이 그 운명을 이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온 여러분은 그분의 제자입니다. 또한, 그분이 계시기에 여러분은 영원한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증오하는 자

둘째는 세상에 화가 나 있었습니다. 둘째도 슬픔에 가득 찬 맏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문제를 모두 다른 사람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 상사와 동료, 경찰과 이웃, 교회 지도자를 탓했고, 최근 패션 경향, 심지어는 뜨거운 태양과 단순한 불운까지도 원망했습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그저 스스로 방어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고 옹졸하며 증오로 가득 차 있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자신은 정의롭고 고결하며 사랑이 넘치는,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불행히도 둘째의 이러한 생각은 너무나도 흔한 일입니다 이는 경쟁 집단 간의 갈등을 다룬 최근의 한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입니다. 이 연구를 시행한 연구자들은 중동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미국의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결과, “각 집단은 자신들은 증오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움직인다고 답하면서도, 반대 집단과 갈등을 겪는 이유를 묻자 상대편의 증오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3

다시 말해, 각 집단은 자신들은 올바르고 친절하고 진실한 사람, 즉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경쟁 집단의 사람들은 무지하고 부정직하며 사악한 사람, 즉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해에 세계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 슬픔과 고뇌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은 제가 살던 나라의 한 무리의 사람들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특정 집단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증오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들을 모욕하고 악마 취급을 하며 인간 이하로 취급했습니다. 한 집단의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나면, 그들에 대한 폭력적인 말과 행위는 더 쉽게 합리화되는 법입니다.

20세기 독일에서 벌어졌던 일을 떠올릴 때면 끔찍합니다.

우리는 나와 입장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분명 그 사람이 틀렸다고 미루어 짐작하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칫하면 말과 행위에 가장 나쁜 의도가 담기기 십상입니다.

물론, 우리는 항상 옳은 것을 수호해야 하며, 그 명분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가슴속에 분노와 증오를 담은 채 상처를 주고 상대방을 부끄럽게 만들고 침묵하게 할 작정으로 그들을 몰아세운다면, 그것은 옳은 행동은 아닐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악의로 이용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되리니.”4

이것이 구주의 방법입니다. 이는 세상에 그토록 큰 분노와 증오, 분열,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장벽을 무너뜨릴 첫 단계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기꺼이 적을 사랑하겠습니다. 그쪽에서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요.”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대가로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바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는가와 별개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보이려고 노력하면 그들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선한 영향력을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우리의 다짐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인 우리는 적을 사랑할 것입니다.

분노와 증오를 이겨내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사랑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보살피려 도울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악의로 이용하고 박해한다 해도 말입니다.5

진정한 제자

막내인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를 상징합니다. 기쁨은 몹시 어려울 법한 일을 해냈습니다. 조롱받는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그녀는 주위의 경멸과 냉소 속에서도 신앙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즐거운 환경에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즐거운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삶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는 수많은 세력에 맞서, 어떻게 하면 충실한 자에게 약속된 영광스러운 행복만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을까요?

저는 수천 년 전 한 선지자가 꾸었던 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지자는 리하이라고 합니다. 귀하고 놀라운 책인 몰몬경에는 리하이의 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리하이는 꿈에서 광활한 들판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리하이는 큰 무리의 사람들이 그 나무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영광스러운 열매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그 열매가 큰 행복과 변치 않는 평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하며 그대로 믿었습니다.

나무로 가는 길은 비좁았지만, 그 길에 이어진 쇠막대 덕분에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어두운 안개가 드리워져 있어서 길도 나무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은 근처의 크고 넓은 건물에서 요란하게 들려오는 조롱과 비웃음 소리였습니다. 놀랍게도, 나무에 다다라 경이로운 열매를 맛본 사람들 중 일부도 그 소리를 듣고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6

아마도 그들은 과연 생각했던 것만큼 나무가 아름다운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것의 실상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나무에서 등을 돌리고 사는 편이 더 쉬우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더는 조롱당하고 비웃음당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자신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퍽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혹여 나무를 버리면, 크고 넓은 건물에 모인 사람들이 자신을 환영하며 그런 판단력과 지성과 철학이 있다는 데 박수를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계속 길에 머무르십시오

사랑하는 자매와 친구 여러분, 쇠막대를 붙들고 확고부동하게 구원을 향해 걸어 나아가는 일이 힘겨우시다면, 확신에 찬 태도로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 때문에 흔들리신다면,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나 미처 이해하지 못한 교리로 혼란스러우시다면, 그리고 실망스러운 마음에 슬픔을 가누기가 어려우시다면, 부디 리하이의 꿈을 기억하십시오.

계속 이 길에 머무르십시오.

쇠막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손에서 놓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취했다고 해서 여러분을 부끄럽게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면, 무시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풍성한 축복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뜻을 행하는 법을 알게 된다면, 다시 그분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7

찬사와 용인을 앞세운 세상의 약속은 믿을 수 없고, 진실하지 않으며, 만족감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은 물론 영원히 확실하고 참되며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더 높은 관점으로 종교와 신앙을 바라보시기를 권고합니다. 크고 넓은 건물에서 주어지는 그 무엇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생활함으로써 얻는 열매에 비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생각하지도 못”하는 법입니다.8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제자로 살아가는 길은 기쁨으로 향하는 길임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안전과 평화로 향하는 길이며, 진리로 향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성신의 은사와 권능으로 스스로 이 진리를 알 수 있음을 간증합니다.

그렇게 가는 길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초등회, 청녀, 상호부조회 등 교회의 훌륭한 조직 안에서 피난처를 찾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 조직들은 길을 가다 잠시 머물 쉼터와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앞으로 걸어갈 여정에 대한 확신과 신앙을 재정비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소속감을 누리고 자매와 동료 제자들에게서 힘을 얻는 안전한 보금자리입니다.

초등회에서 얻는 배움은 청녀가 되어 더 많은 진리를 배우도록 준비시킬 것입니다. 청녀반에서 제자로서 걷다 보면 상호부조회의 우정과 자매애를 누리도록 인도될 것입니다. 이 길에 놓인 각각의 단계마다, 여러분은 신앙, 연민, 사랑, 봉사를 행하며 타인에게 사랑을 보일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의 길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행복을 누리고 여러분의 신성한 본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길에서는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지식과 창의력, 신앙, 고결성, 힘, 결단력, 사랑을 전부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여러분의 노력을 돌아볼 때, 이 길에 충실히 남아 믿음을 행사하고 이 길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없이 감사할 날이 올 것입니다.

멈추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세상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목적지를 선택하고, 그곳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많은 것을 선택할 힘이 있습니다. 삶의 변수가 되는 것은 많은 경우 능력이 아니라 선택입니다.9

상황 때문에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 때문에 분노하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딸이라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에 깊이 감사하시기를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명나무를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갈 것을 선택하시기를, 제 영혼의 애정을 다해 소망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목소리를 높여, 찬양이 담긴 영광스러운 교향곡을 부르듯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교회 및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가져다줄 경이로움 속에서 기쁨을 누리시기를 간구합니다.

참된 제자의 노래를 음정이 맞지 않는 소음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태초부터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귀하고 아름다운 노래는 없습니다. 그것은 구속의 사랑이 담긴 숭고하고 고결한 노래이자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이기 때문입니다.10

주님의 사도로서, 저는 여러분이 매일 기쁘게 영광스러운 제자의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의 딸로서 잘 성장할 힘과 용기를 찾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