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기적의 날이 그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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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날이 그쳤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주어질 수 있는 영적인 기적에 궁극적인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일 년 전에 저는 임무를 받고 캘리포니아 주로 가서 한 스테이크 회장과 함께 클라크와 홀리 페일즈 부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최근에 기적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자 클라크 형제는 등과 목과 팔에 보호대를 찬 상태로 몸을 가까스로 일으키려 애썼습니다.

불과 두 달 전에 클라크 형제는 그의 아들 타이를 비롯한 30명 가량의 청소년 및 지도자들과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의 하나인 4,322 미터 높이의 섀스타 산 정상을 오르는 스테이크 고지 탐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고된 하이킹의 둘째 날, 일행 대부분이 정상에 올랐습니다. 몇 달에 걸쳐 준비했기에 가능했던 감동적인 성취였습니다.

클라크 형제는 그날 정상에 가장 먼저 오른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클라크 형제는 정상 가장자리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발을 헛디디며 뒤로 넘어져 12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 추락했고, 이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얼음 덮힌 산비탈을 따라 91미터 가량을 굴러 떨어졌습니다. 놀랍게도 클라크 형제는 살아남았으나 심각한 부상을 입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클라크 형제가 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며 경험하게 된 기적들은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때마침”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등산객 중 산악 구조 가이드와 긴급 의료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클라크 형제가 쇼크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그의 몸에 담요를 덮어 몸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또 “때마침”, 이 등산객들은 새로운 통신 기기를 테스트하던 중이라 휴대 전화가 불통인 그 지역에서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서 작은 헬리콥터가 즉시 섀스타 산으로 출발했습니다. 헬리콥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도에서 위험한 착륙 시도를 두 번이나 실패한 후, 조종사는 위험한 바람과 맞서 싸우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착륙을 시도했습니다. 헬리콥터가 다른 각도에서 접근을 시도했을 때 “때마침” 바람이 바뀌어 잠시 착륙이 가능해졌습니다. 그 등산객들은 클라크 형제를 조종사 좌석 뒤의 작은 칸에 신속하고도 힘겹게 끼워 넣었습니다.

외상센터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클라크는 목, 등, 늑골, 손목 등에 다수의 골절상을 입었고, 폐에 천공이 생겼으며, 온 몸이 베이고 긁힌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때마침” 저명한 신경외상 전문의가 그날 근무 중이었습니다. 그는 일년에 단 몇 차례만 그 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이 의사는 척수와 경동맥에 그처럼 심한 손상을 입고도 살아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후에 진술했습니다. 의료진은 클라크가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원래의 상태로 온전히 회복될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했습니다. 자신이 불가지론자라고 밝힌 그 전문의는 클라크의 경우는 신경 손상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과학적 지식에 반한다며 오직 기적이란 말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클라크와 홀리가 전하는 이 강렬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단지 명백하게 드러난 그 기적 때문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더 큰 기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아내 홀리, 그리고 거실에서 부모 곁에 모여 앉은 아름다운 다섯 자녀들 각자가 그 날 클라크에게 생긴 일의 결과가 어떠했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결과에 상관없이 여전히 영적으로 굳건할 그런 신앙을 지녔다는 깊은 인상을 영적 증거로 받았습니다. 클라크와 홀리 그리고 자녀들 중 큰 아이 둘인 타이와 포터가 오늘 컨퍼런스 센터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페일즈 가족의 경험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앙으로 가득하고, 신권 축복도 받았으며, 끊임없는 기도하고, 성약을 지키는 가운데 굳은 희망으로 생활하지만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수많은 후기 성도들은 어떻게 된 걸까요? 적어도 그 과정에서 그들은 기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기적을 받는 듯한 그 과정에서 말입니다.

수년간이나 수십 년간 또는 평생토록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죽게 되는 아이들의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불과 두 달 전에, 성전 추천서를 가진 한 결혼한 부부가 전임 선교사인 세 명의 자녀들과 그외 다섯 자녀들과 함께 단거리 비행을 위해 소형 비행기를 타고 이륙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이륙 전에 안전을 위해 기도했으며 기체에심각한 기계적 문제가 생겨 추락하게 되었을 때 열렬하게 기도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선한 사람들과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들은 몰몬이 제기했던 대로 “기적의 날이 그쳤느냐?”1 라고 물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제한적인 제 지식으로는 왜 때로는 신성한 개입이 있고 다른 때에는 없는 것인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기적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흔히 우리는 기적을 의학적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치유되거나 분명한 영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비극적인 참사를 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기적을 “필멸의 존재가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권능을 통해 오는 은혜로운 사건”2으로 정의한다면 더욱 확장된 시각을 가지고 본질적으로 더 영원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 정의를 바탕으로 기적을 받는 데 있어서 신앙의 필수적인 역할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로나이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어느 때라도 신앙을 갖기까지는 아무도 기적을 행하지 못하였나니.”3 암몬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은 방편을 마련하사 사람이, 신앙을 통하여, 능한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하셨으니.”4 주님께서 조셉 스미스에게 계시하셨습니다. “무릇 나는 하나님이요, … 내 이름을 믿는 자 모두에게 기적…을 보여 주리라.”5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다음과 같이 위협하며 자신이 신으로 내세운 금 신상을 경배하도록 강압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라.]” 그런 다음 그는 조롱하며 물었습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6

이에 이 세 명의 헌신적인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7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실 수 있다는 완전한 확신을 가졌으며,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그들은 그분의 계획을 믿는 완전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님이 신권 축복을 요청하는 한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이 물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젊은 나이에 죽어 영의 세계로 옮겨져 그곳에서 계속 봉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여 낫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신앙이 있습니까?”8 우리는 이 지상의 고통에서 “낫지 않더라도” 영원한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은 “우리의 신앙을 어디에 두는가?”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지 고통과 고난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거룩한 계획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에 확고히 중심을 두고 있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 신앙을 갖는다면 우리는 영원을 위해 준비해 나아가며 그분들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는 기적에 대해 증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기적입니다.9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의 모양에 따라 육신을 받은 것은 기적입니다.10 구주의 은사가 기적입니다.11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기적입니다.12 영생을 얻을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13

필멸의 존재로 사는 동안 육체의 보호와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주어질 수 있는 영적인 기적에 궁극적인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종과 국적이 무엇이든, 회개의 조건 아래 우리가 무엇을 했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든, 우리 모두는 이런 기적을 얻을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적과 함께 살고 있으며, 더 많은 기적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