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
제7장: ‘순수한 신앙심’: 방문 교육을 통한 돌봄과 보살핌


제7장

“순수한 신앙심”

방문 교육을 통한 돌봄과 보살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법을 보여 주셨다. 엘리자 알 스노우 자매는 “우리 인도하시려고 길 예비하셨네.”1라고 표현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돌보고 강화시켜야 할지를 보여 주셨다. 주님께서 베푸신 성역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서라도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나서야 한다고 가르치셨으며2 한 사람 한 사람을 치유해 주시고 가르쳐 주셨고, 2천 5백 명이나 모인 무리 가운데서도 각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모두가 그분의 신성을 직접 보고 알 수 있게 하셨다.3

구주께서는 지상에서 성역을 베푸실 때 그분과 함께 일할 제자들을 부르시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좀 더 그분과 같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상호부조회에 속한 자매는 각자 방문 교육을 하며 자매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고 강화할 기회가 있다. 제15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 줄리 비 벡 자매는 이렇게 말씀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주님을 대신해서 서로 사랑하고, 알고, 봉사하고, 이해하고, 가르치고, 성역을 베푸는 이 성스러운 임무를 귀중하게 여깁니다.”4

방문 교육의 시작: 기부 물품을 수집하고 봉사 활동을 조직하다

1843년, 일리노이 주 나부에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후기 성도 교회는 네 와드로 나뉘었다. 상호부조회 지도자들은 그 해 7월 28일에 열린 모임에서 각 와드에 자매들 네 명을 지명하여 방문 위원회를 구성했다. 방문 위원회의 가장 두드러진 책임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고 기부 물품을 수집하는 일이었다.

기부 물품에는 돈이나 음식, 옷 등이 있었다. 방문 위원회는 매주 모은 기부 물품을 상호부조회 재정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이것은 궁핍한 사람들을 돕고 원조하는 데 쓰였다.

이러한 책임을 맡아 수행한 한 자매는 “우리의 구원은 궁핍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후히 주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말로 자신의 믿음을 표현했다. 또 다른 자매도 그 말에 동의했다. “주님께서는 그 점을 반복해서 확증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을 보이는 행위를 기뻐하십니다.”5

이러한 원조 활동은 20세기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일반적으로 방문 임무를 맡은 자매들은 손에 바구니를 들고 성냥이나 쌀, 베이킹 소다, 과일 병조림 등을 모으러 다녔다. 이러한 물품들은 대부분 그 지역에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일부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 쓰였다. 예를 들어 미국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오십만 벌이 넘는 옷을 모아서 분류하고 수선한 후 포장해서 유럽으로 보냈다.

방문 위원회는 기부 물품을 모으는 일 외에도 방문하는 가정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파악했다. 그런 후 그 사항을 상호부조회 지도자들에게 보고하면 지도자들은 원조 활동을 조직했다.

제6대 교회 회장인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은 상호부조회 자매들이 한 가족에게 비이기적이고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고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저는 얼마 전에 어느 외딴 지역에 위치한 시온의 스테이크를 방문하는 특별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 지역은 질병이 크게 번졌습니다. 우리는 여러 날을 여행하여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그곳에 도착했지만 곧바로 스테이크 회장님과 함께 몇몇 병든 사람을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병이 매우 위독한 상태여서 침대에 누워 몸도 가누지 못하는 가엾은 자매님을 찾아갔습니다. 우리가 갔을 때 불쌍한 그녀의 남편이 그 끔찍한 병에 거의 넋이 나간 상태로 아내를 돌보고 있었고, 곁에는 어린 자녀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가족은 찢어지게 가난해 보였습니다.

곧이어 한 친절한 부인이 그 어려운 가족이 먹을 음식과 몇 가지 간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 여성이 누군지 물어보았고, 그날 밤 그 병든 자매님을 보살피고 돌보아줄 와드 상호부조회 자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오자마자 어린 자녀들이 잘 씻었는지, 밥은 먹었는지 살피고는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을 청소하고 모든 물건을 그 아픈 자매님과 가족들이 쓰기 편하도록 정돈했습니다. 다음날에는 또 다른 친절한 자매님이 그녀를 돌보기 위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그녀의 건강이 회복되어 고통이 조금이나마 덜할 때까지 곤경에 빠진 가엾은 이 가족을 이런 식으로 날마다 친절히 보살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상호부조회가 잘 훈련되어 있고 조직적으로 잘 움직이기에, 이 지역의 모든 병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관심으로 도움과 위안을 주며 그들을 보살핀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거대한 조직의 효용성과 아름다움이 이처럼 분명히 드러난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영감을 주셔서 교회에 이러한 조직을 설립하게 하신 것이 참으로 자비로운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6

방문 교육, 영적 보살핌

방문 교사들은 늘 개인과 가족들의 현세적 필요를 돌보면서도 더 높은 목적을 지향한다. 제2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인 엘리자 알 스노우 자매는 이렇게 가르쳤다. “교사는 고귀하고도 거룩한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매들이 그 책임을 단지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물건을 구하러 다니는 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과 지혜, 겸손, 사랑의 정신으로 충만하고자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아무것도 내줄 것이 없더라도 여러분의 방문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노우 자매는 자매들이 방문을 마칠 때 “그 가정의 변화를 느끼기를” 바랐다.7 그녀는 방문 교사들에게 가정을 방문하기 전에 영적으로 잘 준비하여 그들의 현세적 필요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 사항을 파악하고 채워 주라고 권고했다. “교사는 … 반드시 주님의 영으로 가득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집에 들어갔을 때 그 가정의 영적 분위기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 [영]을 동반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성신께 간구하신다면, 그 집에 머무는 영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게 한다면 평화와 위안을 줄 말이 마음에 떠오를 것입니다. 만약 어떤 자매가 냉담하다면 마치 어린아이를 가슴에 껴안듯 여러분의 마음으로 끌어안아 주십시오.”8

이미지
사라 엠 킴볼

사라 엠 킴볼

1860년대 후반에 와드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봉사한 사라 엠 킴볼 자매는 와드 자매들에게 이와 비슷한 권고를 한 적이 있다. “교사의 의무는 [자신이 방문하기로 한] 자매들을 한 달에 한 번 방문하고, 회원들의 번영과 행복을 좇아 일하는 것입니다.”9 상호부조회 지도자들은 방문 교사들이 “물품들을 모으는 일뿐만 아니라 복음 원리를 가르치고 해설해야 한다.”10라고 강조했다. 1916년에는 방문 교사들이 현세적 봉사뿐만 아니라 매달 복음 주제 한 가지를 토론하도록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1923년부터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단은 매달 모든 방문 교사들이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도록 그 내용을 발표했다.

“새롭게 거듭난 방문 교육”—“여성들의 아름다운 경험

교회 복지 계획(5장 참조) 시행 8년째 되던 1944년에 제8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인 에이미 브라운 라이먼 자매는 기부 물품들을 모으러 다니던 방문 교사들의 책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라이먼 자매와 보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한 끝에 감리 감독단에게 “기금을 모으는 문제는 … 상호부조회보다는 총관리 역원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건의했다.

리그랜드 리차즈 감리 감독은 그 건의를 제일회장단에게 전했다. 그는 나중에 제일회장단과 [감리] 감독단은 “상호부조회가 방문 교사들을 통해 자선 기금을 모으는 일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한”11 것으로 여긴다는 뜻을 발표했다.

당시 라이먼 자매의 제2보좌로 봉사하던 벨 에스 스패포드 자매는 방문 교육에서 생긴 이 변화에 관하여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상호부조회 방문 교사들이 자선 기금을 모으러 다니는 일은 이제 더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선 기금을 조달하는 조직이 아니라 봉사 조직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 상호부조회 회장단과 서기, 그리고 위원회 위원들 두세 명이 함께 앉아서 모임을 하던 어느 날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모임에서 한 자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은 꼭 방문 교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들리는군요. 궁핍한 사람을 위한 물품을 모으러 가지 못한다면, 단지 방문만을 목적으로 누가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려 하겠습니까?’ … 이에 저는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애도의 종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방문 교사의 거듭남을 알리는 종소리라고 믿습니다. 사회 복지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가정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친근한 방문자로 그 집에 가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방문 교사로 봉사하기를 거절해 온 수많은 여성들도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나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금을 구걸하러 다닌다고 여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 가정에 영을 채워 주러 간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필요한 여성들에게는 아름다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 저는 한 순간이라도 이것이 방문 교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때 이후로 이 프로그램은 번영하기 시작했고, 전에는 봉사하지 않던 자매들이 방문 교사가 되겠다고 나섰습니다.”12

스패포드 자매는 나중에 제9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봉사했다. 그녀는 방문 교육이 상호부조회 자매들 모두의 삶에 유익이 되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한 후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우리 방문 교사들과 상호부조회 회장님들은 상호부조회의 사자로서 영의 인도를 받아 부름을 수행합니다. 그들을 통해 매우 훌륭한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 이들은 어머니이었으므로, 다른 여성들과 그들의 슬픔을 인간적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 복지에 대한 개념을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을 돕는 일로 좁혀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주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부자도 가난한 사람과 똑같이 몸이 아프기도 하고 간호할 사람을 찾느라 힘든 때가 있지 않습니까? … 이것이 바로 상호부조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단순히 부름에 충실하여 가정의 어려움을 덜어 준 방문 교사들이 능숙한 손길에 관하여 끝없이 들려드릴 수도 있습니다.”13

특권, 의무, 그리고 결심: 온 세상에 방문 교육의 미래상을 나누다

제일회장단의 보좌인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방문 교육이 온 세상 사람들을 돕는 주님의 계획 중 일부라고 간증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이처럼 큰 교회가 도처에 필요한 원조와 위안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궁핍한 사람들 가까이에 있는 주님의 종들이 직접 그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상호부조회가 시작될 때부터 그런 때가 오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적절한 방식을 정하셨습니다.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다른 자매를 방문하는 임무를 주님으로부터 오는 부름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

상호부조회 회원들은 항상 신권을 소유한 지역 신권 지도자들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모든 감독과 지부 회장은 상호부조회 회장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상호부조회 회장에게는 각 자매의 어려움과 필요한 사항을 잘 아는 방문 교사들이 있습니다. 상호부조회 회장은 방문 교사를 통해 자매들과 그 가족들이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상호부조회 회장은 자매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개인과 가족을 양육하는 감독의 부름을 도울 수 있습니다.”14

방문 교육은 아이어링 회장이 언급했듯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 교회에 적합한 방식이다. 모든 후기 성도 여성은 이처럼 보살피는 방식을 통해 주님의 손에 든 도구로 쓰일 기회를 얻게 된다.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세계 도처에서 방문 교육을 확립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 왔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 교회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부분 지부에는 상호부조회가 없었고 그것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지역 지도자들에게는 상호부조회라는 조직이 생소했기 때문에 당시 선교부 회장인 윌리엄 그랜트 뱅거터 회장은 아내인 제럴딘 뱅거터 자매를 선교부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불렀다. 뱅거터 자매에게 브라질은 낯선 나라였고, 그녀는 아직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일곱째 아이를 갓 출산한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보좌들과 서기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매 선교사들의 통역 도움을 받으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서로 방문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파악하는지 자매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방문 교육에 대해 가르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

그들은 상파울루에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공단 지역 근처 작은 지부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회장단은 그 지부의 몇몇 자매들에게 미리 ‘이 날 저녁 이 시간에 교회에서 만납시다.’라는 말을 전해 놓았다.”

뱅거터 자매는 보좌 한 명과 함께 “인구가 천이백만 명이나 되는 그 도시를 가로질러 운전했다. 지부에 도착했을 때 … 겸손한 자매들 일곱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매들은 찬송과 기도로 모임을 시작했고, 뱅거터 자매의 보좌가 일어나서 방문 교육에 대해 가르쳤다. “그녀는 종이 쪽지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쪽지가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녀는 일어서서 준비한 메시지를 읽었다. 말씀은 5분 동안 이어졌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모두가 [뱅거터 자매]를 바라보았다. 뱅거터 자매는 ‘저는 포르투갈어를 할 줄 모릅니다.’라며 사양했지만 모두 그녀의 가르침을 듣고 싶어했다. 그 방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뱅거터 자매는 일어나서 자신이 아는 포르투갈어를 모두 동원해 말씀을 전했다. 그것은 다음 네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말씀이었다.

‘Eu sei que Deus vive.’ 저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압니다.

‘Eu sei que Jesus é o Cristo.’ 저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압니다.

‘Eu sei que esta é a igreja verdadeira.’ 저는 이 교회가 참됨을 압니다.

‘Em nome de Jesus Cristo, amém.’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방문 교사의 방문을 받아 본 적도 없고, 방문하는 것을 본 적도 없으며, 방문 교사가 되어 본 적도 없는 자매가 방문 교육에 관한 말씀을 5분간 전하고 [그에 이어 전하는] 복음에 대한 간증. 이것이 그 지부에서 열린 최초의 상호부조회 모임이었다.

… 브라질에서 그 작은 무리의 자매들과 그와 비슷한 다른 몇 명으로 시작된 모임은 훌륭하고 힘차고 충실한 여성들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여성들은 재능과 교양과 지성을 갖춘 탁월한 지도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들의 신앙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그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15

방문 교육은 전 세계 후기 성도 여성들에게 사랑하고 양육하고 봉사하는 방법,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슴 속에 심어 주신 연민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16 수단이 되었다.

헌신적인 방문 교사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봉사를 하라는 후기 선지자들의 부름에 응한다. 제12대 교회 회장인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를 주시며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개 타인을 통해서 필요한 도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왕국에서 서로 봉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17 제16대 교회 회장인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이렇게 말씀했다. “우리의 관심과 격려, 도움과 위안, 친절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북돋워 줘야 한다는 명을 받고 이 지상에 있는 주님의 도구입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가 그렇게 하기를 기대하십니다.”18

오늘날의 방문 교육: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

후기 성도 여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성약을 이행할 때, 어느 곳에서든 여성의 삶에서 방문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제일회장단 보좌인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훌륭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웃에게 온정 어린 봉사를 베풀 때 개인적인 유익을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봉사를 할 때, 왕이시지만 지위를 구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알아줄지에 대해서도 전혀 개의치 않으신 구주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타인과 경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도우려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하고, 대화하며, 그들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위대함이 외적인 부나 지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아셨습니다. 구주께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라는 교리를 가르치셨고 또 그 가르침대로 사셨습니다.”19

자매들은 해를 거듭하면서 방문 교육에는 결심과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방문을 할 때 영이 필요하다는 점도 경험으로 배웠다. 또한 진리를 가르치고 간증을 전하고, 사랑으로 현세적인 도움을 주고, 기꺼이 슬픔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며 짐을 함께 짊어질 때, 권능이 임하는 것을 목격했다.

결심, 헌신, 희생

킴볼 회장은 방문 교사에게 완전한 결심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여러분의 임무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가정 복음] 교사의 임무와 비슷합니다. 그 임무란 간단히 말해서 ‘교회를 항상 돌아보며’ 한 달 동안 단 20분만이 아니라 늘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힘을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문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으면서 고양시키고,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고,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 또한 ‘악행이 없도록, 서로 감정이 대립되는 일이 없도록, … 험담하는 일이나 비방하는 일이 없도록’ 보살펴야 합니다.”20 킴볼 회장은 아내인 카밀라에게서 그런 헌신을 보았다. 카밀라는 자신이 방문 교사로서 쏟은 노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느 때라도 너그러운 말과 행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그것을 억누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21

방문 교육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임무이다. 그것은 완전히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문 교사들은 종종 희생을 감수해야 하며 낙담에 빠져도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특히 캐시 험프리 이야기에서처럼 노력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 더더욱 그렇다.

“처음 방문 교육 교사로 부름 받았을 때 교회에 전혀 오지 않는 젊은 자매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달 충실하게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녀는 종종 안쪽 문을 열어 주었지만 방충망 문은 닫힌 채로 저를 맞았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냥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쾌활하게 바라보며 ‘안녕하세요, 저는 캐시예요. 자매님의 방문 교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늘 ‘오늘 우리의 메시지는 …’이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마음을 고양시키는 말들을 짧게 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제가 말하는 도중에 ‘고맙습니다.’ 하고 대꾸하고는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저는 그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순종하고 싶었기 때문에 갔습니다. 그렇게 한 지 일고여덟 달쯤 되었을 때 감독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캐시 자매님, 자매님이 방문해서 가르치는 그 자매님이 출산을 했는데 아기가 그만 겨우 며칠 만에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자매님과 남편이 묘지에서 간단한 장례식을 치르려 하는데 자매님이 와서 함께 있어 줄 수 있는지를 제게 물어 왔어요. 그 자매님 말로는 자매님이 유일한 친구라고 하던데요.’ 저는 공동묘지로 갔습니다. 그 자매님과 남편, 감독님, 그리고 제가 무덤가에 있었습니다. 네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 가서 겨우 몇 분 정도만 그녀를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방충망 문 때문에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서툴러도 희망을 안고 행한 저의 방문이 우리 두 사람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22

영의 인도를 구하여

충실한 방문 교사들은 몇 번이고 영의 인도를 구했고, 또 인도되었다. 브라질에 사는 한 상호부조회 자매는 주님께 도움을 받은 경험을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저는 전화로 자매들과 연락을 주고 받지는 못합니다. 저희에게는 전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주에 제가 도와주어야 할 자매들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이 방법은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한번은] 우리 와드의 사랑스러운 한 자매님이 갓난 아기에게 입힐 옷이 없었습니다. 저는 출산 예정일이 언제인지 몰랐지만 가까워졌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저는 몇몇 자매들을 모아서 그 아기에게 줄 옷을 몇 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아기를 신문지로 싸서 집에 데려오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서로 전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는 기도를 했고, 언제 이 아기 옷을 가지고 병원에 가야 할지 응답을 받았습니다.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그 자매님이 막 아기를 낳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상호부조회 자매들이 만든 그 옷들을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23

자매들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방문 교사는 각 자매를 돕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성신으로부터 구체적인 인도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나이지리아에 사는 플로렌스 추크우라 자매는 그러한 인도를 받았다. 그녀는 “결혼 생활과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자매에게 방문 교육을 하라는 지명을 받았는데, 방문 교육을 하려면 시장에서 그 자매를 만나야 했습니다. 추크우라 자매는 이 자매의 어려운 처지를 눈과 귀로 보고 들은 후 도울 방법을 알기 위해 남편에게 신권 축복을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축복을 받은 후 십일조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라는 속삭임을 느꼈습니다. 추크우라 자매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수입이 적어 십일조를 내지 못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저는 둘이서 함께 말라기 3장 10절을 읽고 편안한 마음으로 둘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우리 집으로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녀는 동의했습니다. 이야기 후에 저는 그녀에게 신앙을 행사해 적어도 여섯 달 동안 십일조를 내 보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영으로써 그녀에게 간증했습니다.’

그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그 자매의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했습니다. … 딸이 장학금을 받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은 감독의 노력을 통해 활동화되어 부름을 받았으며, 재정 상태와 부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남편과 아내가 함께 노력했고, 마침내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그런 부부가 되었습니다.”24

진리를 가르치고 간증을 전하는 방문 교사

킴볼 회장은 방문 교사들이 복음을 나누고 간증을 전할 때 그것을 듣는 자매들은 구주를 더욱 잘 따르게 된다고 가르쳤다.

“두 자매가 한 가정을 방문[한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

제가 알기에 이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데는 강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격려와 사랑으로 운영됩니다. 우리가 수많은 사람을 사랑으로 변화시키고 영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계시로 말씀하신 것처럼 ‘경고하고, 해설하며, 권면하며, 가르치며, …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도록 권유해야’(교리와 성약 20:59) 합니다. …

단순한 방문과 친구로 사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 우정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생명과 구원에 관한 영원한 원리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좋은 사귐이 어디 있겠습니까? …

여러분의 간증은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합니다. … 여러분은 항상 공식적인 방법으로만 간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간증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

… 방문 교사는 … 더욱 월등한 힘과 통찰력, 사려 깊음,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25

한 젊은 어머니는 복음 생활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방문 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감사를 표했다.

“저는 오늘 저를 사랑하고 판단하지 않은 저의 방문 교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그들은 제가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며, 교회에 제가 있을 자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집에 왔고, 우리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어딘가를 가기도 했습니다. … [그리고] 그들은 매달 제게 메시지를 하나씩 남기고 갔습니다.

그들은 매달 저를 방문하면서 제가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고, 그들이 정말 저를 염려하고 사랑하며 인정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는 우리를 보러 와서 방문 교육을 하는 그들의 노력을 통해 마침내 다시 교회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지 돌아오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제게 와서 손을 내밀어 제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 방문 교사들은 제가 그 점을 깨닫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저는 성전에서 인봉받았습니다.”26

방문 교육은 자매들과 그 가족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져다주는 한 가지 경로가 된다. 제13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인 메리 엘런 스무트 자매는 이렇게 선언했다. “저는 우리 자매님들에게 전화, 분기 방문, 월례 방문 중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한지 등으로 걱정하는 대신 연약한 영혼들을 강화시키는 일에만 전념하라고 간절하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책임은 그들 내면에 복음의 불꽃이 계속 밝게 타오르도록 보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그들이 우리 구주의 사랑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27

또한 킴볼 회장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영적인 면에서 볼 때 누더기를 입고 사는 자매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 예복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 가정으로 찾아가서 누더기를 예복으로 갈아입혀주는 것은 여러분의 특권입니다.

… 여러분이 하는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많은 활동 회원들은 여러분이 그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새로운 시야와 통찰을 준 덕분에 활동적인 회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장막을 걷어서 그들의 시야를 넓혀 주었습니다. …

여러분은 이 자매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들의 남편과 가정까지도 구원하고 있는 것입니다.”28

사랑으로 현세적인 도움을 베풂

방문 교사들이 하는 현세적 봉사와 보살핌의 근원이 되는 힘은 바로 사랑이다. 자매들과 그 가족들은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실질적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나 가족이 병고에 시달리거나 상을 당했을 때 그럴 수 있다. 나부의 초기 상호부조회 자매들이나 솔트레이크밸리를 향해 서부로 가는 대이동에 참여했던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방문 교사들은 종종 가장 먼저 달려가 도움을 준다. 비에라 파이프라는 자매는 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진단했을 때 상호부조회에서 그러한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가족들이 그녀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법을 배우도록 격려해 주었지만, 집안일과 식사 준비가 걱정이었습니다.

하루는 딸인 노다 에밋이 어머니를 도와주러 왔다가 집에 방문 교사가 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방문 교사들은 집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해 놓았습니다. 어머니인 파이프 자매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돌았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노다는 방문 교사들이 한 수고에 몹시 난처해했고, 어머니에게 파출부를 고용해야지 방문 교사들에게 이런 일을 신세 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노다는 방문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사들은 그 가족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파이프 자매를 방문하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방문 교사들은 그녀의 긍정적인 태도가 그들의 눈을 밝혀 주었으며 그녀가 자신들의 가족 역사 사업을 도와주었다며, ‘저희들이 이런 축복을 받는 것을 막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했다.”29

이 방문 교사들은 파이프 자매가 직접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 주면서 사랑을 표현했다. 그리고 모두는 서로를 위해 봉사하면서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더욱 강해졌다.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짐을 함께 짊어지는 방문 교사

제12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인 일레인 엘 잭 자매는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는 방문 교육을 통해 서로에게 손을 내밉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손이 표현해 줄 때가 많습니다. 따뜻한 포옹 한 번으로 많은 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한 번 웃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나누는 순간들은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합니다. 곤경에 빠진 사람의 짐을 항상 들어줄 수는 없지만 어려움을 잘 견디도록 힘을 북돋워 줄 수는 있습니다.”30

최근에 미망인이 된 한 자매는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준 방문 교사들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이런 글을 썼다. “저는 다가가서 이야기할 사람, 누군가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 그런데 그들은 들어 주었습니다. 저를 위로했고, 저와 함께 울며 저를 껴안아 주었습니다. … 처음 몇 달간 외로워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제가 절망의 나락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31

또 다른 자매는 방문 교사에게서 참된 사랑을 받으며 느낀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자매님은 저를 단지 방문 대상자 명단에 있는 하나의 숫자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을 쓰는 것이 느껴졌습니다.”32

방문 교사에게도 큰 축복이 되는 방문 교육

자매들은 방문 교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자신도 축복을 받는다. 제11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인 바바라 더블유 윈더 자매는 이렇게 가르쳤다. “모든 자매에게 자신은 필요한 존재이며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고 생각해 준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방문 교사가 꼭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방문 교사가 사랑 가운데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매들에게 방문 교육을 하도록 지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을 발전시킬 기회를 줍니다. 그것은 그들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33

다음은 자매들을 방문하고 봉사하면서 큰 축복을 받은 어느 자매의 이야기이다.

“남편과 저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뉴저지로 이사했습니다. 의과대학 1학년이었던 남편은 밤 11시 30분 이전에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 저는 이사한 후로 친구를 빨리 사귀지 못해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새로 참석하게 된 와드의 감독님께서 제게 와드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회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것은 성찬식에서 통역을 하고, 복음 교리반을 가르치고, 상호부조회를 감독하는 일이었습니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외에는 제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유일한 자매였던 것입니다.

그 도시에는 스페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었는데, 상호부조회 회장님은 저에게 그 구역에 거주하는 자매들 열두 명의 명단을 주시며 방문 교육을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 새로운 임무를 받고 마음이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부름을 수행하느라 바빴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몰라 걱정이 앞섰습니다. … 그래도 방문 교육 약속을 몇 개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두메즈 자매님의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메즈 자매님은 방에 들어오면서 ‘자매님이 제 방문 교사이신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희 집에 오셔서 너무 기뻐요. 2년 동안 방문 교사가 없었거든요.’ 그 자매님은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우리는 방문만 했을 뿐인데 그 자매님은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셨습니다.

제가 떠나기 전에 두메즈 자매님은 다섯 자녀에게 스페인어로 ‘난 하나님의 자녀’를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를 안아 주시고 손을 꼭 잡아 주셨습니다. …

그 첫 방문 이후로 늘 갈 때마다 기대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몇 달 동안 자매님들은 저를 항상 기쁘게 맞아 주셨고, 그래서 저는 방문할 날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더 깊이 알게 되면서 이들이 겪는 슬픔과 역경을 듣고는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자매님들과 그 가족의 삶이 조금이나마 더 편안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방문할 때 찜요리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 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나 시장을 보러 갈 때 차를 태워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저의 외로움은 순식간에 잊혀졌습니다. 처음에는 저와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 자매님들이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해 주는 아주 작은 일도 감사히 여기는 충실하고 변함없는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늘 제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담긴 전화와 선물을 자주 받았습니다. 한 자매님은 탁자 위에 놓을 깔개를 뜨개질해서 주셨고, 또 다른 자매님은 제 생일에 시를 한 편 지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부름을 수행해 왔는데, 언젠가부터 저는 제 친구들의 삶을 더 안락하게 해 주지 못하는 저의 부족함이 많이 답답했습니다. …

어느 날 밤, 그날따라 더 마음이 답답해서 저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자매님들이 좀 더 자립하고 서로에게 봉사하도록 돕기를 바라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서로를 고양시킬 힘이 있을지 의심이 들었지만, 저는 영의 속삭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스페인어권 상호부조회의 방문 교육 프로그램을 다시 짜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충실한 친구인 모레이라 자매님은 혼자서 여섯 자매들을 방문하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반대했습니다. ‘자매님, 차 없이는 이 사람들을 다 방문할 수 없을 거예요. 걸어가기엔 너무 거리가 멀어요.’ 하지만 그 순간 이들이 서로에게 봉사하게 해야 한다는 그 느낌이 기억났습니다. 저는 그 여섯 명을 모두 모레이라 자매의 새로운 방문 교육 명단에 넣었습니다.

모레이라 자매는 그 마라톤 같은 방문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영으로 충만해져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 발은 아팠지만 주님께서 짐을 가볍게 해 주셨고 마음을 밝혀 주셨다고 했습니다.

모레이라 자매님은 그렇게 몇 번을 더 방문하고 나서 함께 그 길을 걸어갈 자매 한 명을 정했습니다. …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하자 이 자매들이 스스로를 돕고 서로를 돕게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이 보였습니다. …

우리 와드 회원들 사이에서 일어난 커다란 영적 성장을 목격하기 시작한 바로 그때쯤, 남편과 저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 저는 이 사랑하는 친구들을 떠나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복음이 그들 삶에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마지못해 힘겨운 노동을 시작했던 제가 곡식단을 가득 싣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34

로렌조 스노우

제5대 교회 회장인 로렌조 스노우 회장은 상호부조회 자매들이 바로 순수한 신앙심의 모범이라고 가르쳤다. “사도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상호부조회 회원들은 이것을 진실로 받아들여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즉 순수한 신앙심의 가장 확실한 모범이 되어 왔습니다.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고아와 과부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 왔습니다. 저는 상호부조회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정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성들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35

상호부조회에 속한 정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매들은 창립 초기, 나부에서부터 지금까지 사랑과 영감에 찬 방문 교육을 통해 서로를 보살피고 강화해 왔다. 그것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베푸는 성역이다.

제7장

  1. 엘리자 알 스노우, “하나님 지혜와 사랑”, 찬송가, 107장.

  2. 누가복음 15:3~7 참조.

  3. 제3니파이 11:13~17; 17:5~25 참조.

  4. 줄리 비 벡, “상호부조회: 성스러운 사업”, 리아호나, 2009년 11월호, 113쪽.

  5. Relief Society Minute Book, Nauvoo, Illinois, July 28, 1843, Church History Library, 101.

  6. Joseph F. Smith, “Address of President Joseph F. Smith,” Woman’s Exponent, May 1903, 93; 또한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에프 스미스 (1998), 186~187 참조.

  7. Eliza R. Snow, Relief Society Minutes, Sixth Ward, Salt Lake Stake, Aug. 16, 1868, Church History Library, 16; 철자 및 대문자는 현대 어법에 맞게 수정함.

  8. Eliza R. Snow, Mt. Pleasant North Ward Relief Society Minutes, Aug. 7, 1880, Church History Library, 56; 대문자는 현대 어법에 맞게 수정함.

  9. Sarah M. Kimball, 15th Ward Relief Society Minutes, 1868–1873, Church History Library; 구두점은 현대 어법에 맞게 수정함.

  10. Jane Richards, in “R. S. Reports,” Woman’s Exponent, Sept. 1907, 24.

  11. Minutes of General Board of Relief Society, Apr. 19, 1944, Church History Library, 39–40.

  12. Belle S. Spafford, interview by Jill Mulvay [Derr], Dec. 1, 1975, transcript, Church History Library.

  13. Belle S. Spafford, interview by Jill Mulvay [Derr], Dec. 8, 1975, transcript, Church History Library.

  14. 헨리 비 아이어링, “영원히 지속될 상호부조회의 유산”, 리아호나, 2009년 11월호, 123쪽.

  15. Julie B. Beck, “‘Strengthen Thy Stakes’: Strong and Immovable in Faith,” Awake, Arise, and Come unto Christ: Talks from the 2008 BYU Women’s Conference (Deseret Book, 2009), 86–87; 포르투갈어 번역 수정.

  16. Joseph Smith, Relief Society Minute Book, Nauvoo, Illinois, Apr. 28, 1842, 38.

  17. 스페서 더블유 킴볼, “작은 봉사 행위”, 성도의 벗, 1976년 12월호, 1쪽.

  18. 토마스 에스 몬슨, 리아호나, 2009년, 11월호, 84~85쪽.

  19.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행복, 여러분의 유산”,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120쪽.

  20. 스펜서 더블유 킴볼, “방문 교육의 목적”, 성도의 벗, 1978년 12월호, 2쪽; 또한 교리와 성약 20:53~54 참조.

  21. Camilla Kimball, Caroline Eyring Miner and Edward L. Kimball, Camilla: A Biography of Camilla Eyring Kimball (1980), 175.

  22. 캐시 험프리, “강한 손과 사랑의 마음”, 리아호나, 2004년 12월호, 26~27쪽에서 인용.

  23. Quoted by Mary Ellen Smoot, interview by Julie B. Beck, May 20, 2009, transcript, Church History Library.

  24. “강한 손과 사랑의 마음”, 29쪽.

  25. 스펜서 더블유 킴볼, “방문 교육의 목적”, 2~3쪽.

  26. 버지니아 유 젠슨, “잔물결”,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109쪽.

  27. 메리 엘런 스무트, 리아호나, 1998년 1월호, 12쪽.

  28. 스펜서 더블유 킴볼, “방문 교육의 목적”, 4쪽.

  29. Elaine Reiser Alder, “Visiting Teaching: The Multiplier Effect,” Ensign, Mar. 1985, 19.

  30. Elaine L. Jack, Jaclyn W. Sorensen, “Visiting Teaching Giving Selfless Service in a Loving Sisterhood,” Church News, Mar. 7, 1992, 5.

  31. Vivien D. Olson, “The Visiting Teacher Who Made a Difference,” Church News, May 15, 1982, 2.

  32. Hope Kanell Vernon, “The Visiting Teacher Who Made a Difference,” Church News, June 12, 1982, 2.

  33. 바바라 더블유 윈더, “함께 노력함: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단과의 대화”, 성도의 벗, 1985년 10-11월호, 11~12쪽.

  34. Robyn Romney Evans, “In the Vineyard,” Ensign, Mar. 2004, 21–23

  35. Lorenzo Snow, “Prest. Snow to Relief Societies,” Deseret Evening News, July 9, 1901, 1; 야고보서 1:27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