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로운 삶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추도문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로운 삶

“오, 만일 내가 천사의 음성과 나팔을 가졌더라면, 온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며 살아 계시다는 것을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독생자이며, 약속된 메시야이며, 우리의 구속주요 구주이시며, 모범으로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선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신성한 사명은 여러분과 제가 그분께 나아오도록 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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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디 헤일즈와 그의 아내 메리

사진: 스튜어트 존슨, 데저렛 뉴스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가 1950년대에 미 공군 제트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던 때, 그가 속한 비행대대의 대원들은 더욱 열심히 복무하고자 모토를 하나 채택했다.

“비행기 측면에 쓴 우리 부대 모토는 ‘명예롭게 귀환하라’였습니다.” 1990년에 감리 감독으로 봉사하던 헤일즈 장로는 신권 소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이 모토는 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모든 임무를 성공리에 끝내고 본부 기지로 명예롭게 귀환해야 한다는 우리의 결의를 부단히 일깨워 주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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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조종사 로버트 디 헤일즈, 사업가로서의 헤일즈

명예롭게 귀환함에 대해 자주 말씀했던 헤일즈 장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가 이 모토를 삶에 적용함으로써 영생으로 가는 길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매일매일의 삶이 사명이기에,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으로 가족들과 함께 ‘명예롭게 귀환’하겠다는 영원한 목표를 기억해야 합니다.”3라고 가르쳤다.

헤일즈 장로는 남편이자 아버지, 회사 중역, 그리고 40년 이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총관리 역원으로 소임을 다하는 동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그는 필멸의 삶 내내 충실함과 순종, 근면, 봉사를 통해 부대 모토의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

우애가 넘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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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모님과 형제자매와 함께인 로버트 디 헤일즈, 어린 시절의 헤일즈

로버트 딘 헤일즈는 1932년 8월 24일 미국 뉴욕시에서 제이 룰론과 베라 메리 홀브룩 헤일즈 부부의 셋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로버트는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복음을 중심에 둔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부모는 스테이크 선교사를 비롯하여 교회의 여러 부름에서 봉사했고, 가족은 일요일마다 퀸즈 와드에 참석하기 위해 32km를 이동했다.

헤일즈 장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우애가 넘치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이 “성장하기에 아름다운 곳”이었고 그의 가족은 “그에게 항상 힘이 되어 주었다”고 말했다.4

그의 부모가 보여 준 훌륭한 모범은 좋은 추억이자 그의 삶을 인도하는 본보기가 되었다.5 “그분들은 복음대로 생활하셨고, 경전을 연구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간증하셨습니다.” 헤일즈 장로는 말했다. “또한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 대한 간증도 지니고 계셨습니다.”6

헤일즈 장로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강화하는 열쇠는 우리 가정에 주님의 영이 거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7

상호부조회에서 30년 이상 봉사한 그의 어머니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랑과 봉사를 가르쳤다. 8 뉴욕시에서 전문 화가로 일했던 헤일즈 장로의 아버지는 그에게 신권과 회복에 관해 잊을 수 없는 교훈을 가르쳤다. 언젠가 부친은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가 침례 요한에게서 아론 신권을 받았던 사스케하나 강으로 로버트를 데려갔다. 또 어떤 때는 그를 성스러운 숲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로버트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그 숲에서 함께 기도했으며 우리가 지닌 신권에 참되고 충실하고자 하는 소망을 표했습니다. 아버지는 후에 우리가 기도했던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 제게 주셔서 그날 우리가 했던 약속을 상기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지금 제 사무실에 걸려 있으며, 그 그림은 매일 하나님 아버지뿐만 아니라 지상의 아버지와도 했던 약속과 거룩한 경험을 잊지 않게 해 줍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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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야구 선수였던 로버트 디 헤일즈,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헤일즈

어린 시절 야구를 했던 헤일즈 장로는 후에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야구를 했으며 2007년에는 프로 경기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다.

오른쪽 사진: 소냐 에딩스 브라운

젊었을 때 로버트는 야구를 무척 좋아해서 나중에는 유타 대학의 야구팀에서도 활약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야구부와 함께 첫 원정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중학교 3학년이던 그는 팀원들이 일삼는 몇 가지 언행에 충격을 받았다. 부친은 그런 로버트에게 힘을 주고자, 중세 기사의 그림을 그려 주었다.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시며 성구를 읽어 주셨는데, 그때 저는 어떻게 충실한 신권 소유자가 될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보호하고 지키는 그런 신권 소유자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그 말씀은 저에게 지침이 되었습니다.”(에베소서 6:13~17 참조)

그때 배운 교훈을 수년 후에 회고하며, 헤일즈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신권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 이 갑주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갑주가 필요합니다!”10

헤일즈 장로는 부친의 모범에서 또 다른 중요한 품성을 배웠다.

“저는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저희 누이와 고모들을 자상하게 보살피시는 모습에서 여성을 존중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헤일즈 장로는 모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부친이 그녀 생애의 마지막 두 해 동안 “소중한 아내를 사랑으로 보살피시던” 모범을 결코 잊지 못했다. “오십 년이 넘게 어머니께서 사랑으로 아버지께 헌신하신 것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버지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11

그의 가장 귀중한 보배

1952년 대학교를 다니다 잠시 집에 와 있는 동안, 로버트는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메리 크랜들이라는 젊은 여성을 만났다. 두 사람은 곧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를 만난 후, 저는 다른 누구와도 데이트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헤일즈 장로는 회상했다.12

여름이 끝나고, 둘은 학업을 위해 유타주로 갔다. 메리가 브리검 영 대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로버트는 유타 대학교에 다녔지만, 그 거리는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했다. 학기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1953년 6월 10일에 결혼했다. 그 후 5년간 그들은 두 아들, 스티븐과 데이비드를 얻는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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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날의 로버트와 메리 헤일즈, 아들들과 함께인 로버트와 메리

1954년에 커뮤니케이션 및 경영학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한 로버트는 미국 공군에 현역으로 입대해서 제트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거의 4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뒤, 그는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가족과 함께 플로리다 주에서 매사추세츠 주로 이사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학업이 버거워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는 장로 정원회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때가 그의 생애에서 교회 부름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던 유일한 시기였다.

그는 메리에게 말했다. “내가 장로 정원회 회장이 되면 학교에서 낙제할 수도 있어요.”

메리의 다음 대답은 로버트의 일생동안 그를 도와주었다. “여보, 전 하버드 대학의 석사 학위를 받은 남자보다 활동적인 신권 소유자가 제 곁에 있기를 원해요.” 그리고 헤일즈 자매는 두 팔로 남편을 감싸 안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둘 다 해낼 수 있을 거예요.”13

그리고 그들은 해냈다.

다음날 메리는 로버트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파트의 미완성된 지하실 한 모퉁이에 벽을 세워 공간을 만들었다.

30년이 지난 후 헤일즈 장로는 말했다. 부름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정을 내릴 때 제 자신을 주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 결정은 몇 해가 지나서 제가 십이사도 보조로 봉사하도록 부름받아 비즈니스 경력을 뒤로하고 떠난 일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14

수년 후에, 가족이 재정적으로 안정되자 헤일즈 장로는 메리에게 값비싼 코트를 한 벌 사 주려고 생각했다. 메리에게 이 생각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그녀는 이렇게 질문했다. “이 옷을 사려는 것이 저를 위한 건가요, 아니면 당신을 위한 건가요?”

헤일즈 장로는 메리의 이 질문이 “잊지 못할 교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이 선물의 목적이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한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능력 있는 남편이라는 것을 저에게 보여 주거나 세상에 뭔가를 증명하려는 건가요?’ 저는 그 질문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제가 아내와 가족보다는 저 자신을 더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15

헤일즈 장로는 아내가 가장 귀중한 보배라고 말한다.16 “아내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제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는 말한다. 저는 제 아내를 정말로 사랑합니다. 그녀는 영의 은사를 지녔습니다. 우리는 함께 경전을 공부하며, 제가 가르치는 개념 중 많은 부분이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기도한 탓에 배운 것입니다. 제가 오늘날과 같은 사람이 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17

헤일즈 장로는 자신과 아내가 이룬 일의 대부분이 부부 사이의 협동 관계 덕분이라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늘 한 팀이었으며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것입니다. 제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성신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것 다음으로 제 인생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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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앞에 선 로버트 디 헤일즈와 메리; 메리 그리고 킴볼 회장 내외와 함께

“여러 개의 선교부를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1960년에 로버트가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졸업하자, 출세 가도가 금세 열렸다. 향후 15년간 그는 미국 내 여러 이름 있는 회사에서 고위 간부로 근무했다. 그는 탁월한 업무 경력을 지닌 탓에 가족과 함께 미국 내 여러 도시뿐 아니라 영국, 독일, 스페인으로 옮겨 다녔다. 이렇게 이사하는 가운데서도 교회의 지도자 부름이 오면 로버트는 기꺼이 그 부름을 받아들였다.

그는 스페인, 독일, 미국 내 조지아 주와 매사추세츠 주에서 지부 회장단으로 봉사했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매사추세츠 주와 일리노이 주에서 감독으로 봉사했고 영국 런던 및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는 고등평의원으로 봉사했으며, 보스턴에서는 스테이크 회장단으로도 봉사했다. 미국 미네소타 주와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지역 대표로 봉사했다.

1975년, 어느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던 헤일즈 장로는 당시 제일회장단 제2보좌인 매리온 지 롬니(1897~1988) 회장이 통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쪽지를 받았다. 로버트가 전화를 받았을 때, 롬니 회장은 그에게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로버트는 그 부름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영국 런던 선교부 회장으로 임무를 맡기 전 그해 후반에 그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또 다른 전화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에게서 온 것이었다.

“형제님께 3년 이상 봉사하도록 요청해도 괜찮겠습니까?” 킴볼 회장이 물었다. 로버트가 괜찮다고 말하자, 킴볼 회장은 그에게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조로 부름을 주었다.

“제가 선교부 회장으로 나가길 원하기 때문에 총관리 역원 부름을 받아 실망한 걸 안다고 킴볼 회장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킴볼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로버트를 확신시키셨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제님은 여러 개의 선교부를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19

일 년 후, 헤일즈 장로는 칠십인 제일 정원회에 부름받았다. 그 직책에서 3년간 봉사한 후, 로버트는 다시 영국 런던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고, 그 후에는 유럽 지역 책임자로서 교회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은 여러 나라에 복음을 확립하고 동독에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토마스 에스 몬슨 장로와 함께 일했다.20

헤일즈 장로는 말했다. “제가 교회에서 봉사하는 동안 경험한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총관리 역원으로 부름받은 뒤 처음 3년 동안 27개의 지역 대회 기획을 도왔던 일입니다. 제가 제일회장단, 십이사도, 총관리 역원 및 기타 역원들과 여행하면서 그분들 내외를 알게 된 것은 대단히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선지자요, 선견자이자 계시자이신 그분들께서 나라마다 방문하시면서 성도들에게 복음의 참됨에 대해 간증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21

1985년, 헤일즈 장로는 감리 감독으로 부름받았다. 그의 전문직 경험과 상대를 존중하는 경영 및 협상 스타일,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는 그 부름에 적임자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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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베르크 성전 헌납식에서 사람들과 함께인 로버트 디 헤일즈와 메리

감리 감독으로 봉사하던 시절 헤일즈 장로는 동독에 성전이 세워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을 도왔다. 그와 메리 헤일즈 자매(가운데) 및 (맨 왼쪽부터 오른쪽으로)건축가 에밀리 펫저, 엘리사 워스린 자매, 조셉 비 워스린 장로, 프랜시스 몬슨 자매, 토마스 에스 몬슨 장로. 1985년 성전 헌납식에서 찍은 사진.

제일회장단 제1보좌인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헤일즈 장로와 함께 감리 감독단에서 봉사했다. 아이어링 회장은 헤일즈 장로가 현명하고 겸손하고 충실한 사업가이며 사람들을 세심히 대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헤일즈 장로님은 감리 감독단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때도 똑같은 자질을 보이셨습니다.”라고 아이어링 회장은 말했다.22

부인 메리는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이는 간교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분이세요. 마음이 티 없이 깨끗하고 그저 옳은 일만 하려고 하지요.”23

감리 감독으로서 헤일즈 장로가 강조했던 교리 중에는 복지 원리가 있었다. 그는 좋아하는 격언을 자주 인용하여 “당신이 나를 들어 올리면 내가 당신을 들어 올려 주고 그러면 우리는 함께 올라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24

그는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을 갖고 있음을 깨닫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게 되기를, 동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안을 받기를,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받기를” 기도했다.25

가르침과 간증

9년 후인 1994년에 십이사도 정원회로 부름받은 헤일즈 장로는 새로운 부름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사도가 된 후, 첫 연차 대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씀했다. “이제 저는 예순한 살인데, 다시 소년이 되었습니다. 이곳 단상에는 저보다 먼저 사도가 되신 분들이 앉아 계시며, 제 나이 반쯤에 사도가 되신 제일회장단 일원도 계십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 곧 “회개와 겸손의 과정이며, 가르침 받은 대로 자신을 돌아보고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한 용서와 힘을 간구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성도들에게 “제 음성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 간증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데 필요한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26

20년 이상, 헤일즈 장로가 사도로서 구주를 증거하고 회복된 복음에 대해 간증하는 것을 들으며 세계 곳곳의 후기 성도들은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의 설교에는 가족과 신앙, 시련과 간증, 사랑과 오래 참음, 봉사와 순종, 고결함과 선택의지와 같은 주제가 포함되었다.

헤일즈 장로는 선택의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에 관해 가르치며 그와 함께 공군에서 복무했던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훈련받는 동안, … 화재 경보등이 깜빡이고 비행기가 회전하면서 통제 불능일 경우 언제 비행기를 버리고 탈출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친구는 이러한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의 비행 훈련 도중 몰래 빠져나가 골프를 치거나 수영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이 비상 탈출 절차에 대해 전혀 배운 바가 없었습니다. 몇 달 후, 그의 비행기에 화재가 났으며 비행기는 회전하면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화재 경보등을 보고 그 경보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던 그의 후임 동료는 언제 탈출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낙하산으로 안전하게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던 제 친구는 비행기 안에 남아 추락과 더불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언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면 영원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헤일즈 장로는 덧붙였다.27

“저는 뉴욕에서 자란 소년으로서 수천 명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단지 두세 명의 교회 회원 중 한 명으로 자랐습니다. 최근에 가진 50번째 동창회에서 반 친구들은 제가 저의 가치관과 신앙에 따라 살았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제가 지혜의 말씀을 한 번이라도 어기거나 도덕적인 가치를 범했다면 친구들에게 ‘내가 믿는 건 이런 거야.’라고 말하거나 그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만 복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28

헤일즈 장로는 자신의 성역 중 마지막 몇 년 동안 성도들에게 “성신의 놀라운 은사”29를 받기에 합당하게 살라고 권했다. 그는 또한 교회 회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용기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굳게 서며,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더욱 나은 제자가 되라고 격려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시대 모든 기독교인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 내 양을 먹이라’, 즉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이와 주님의 복음을 나누고, 그들을 고취하고, 축복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발전시키고, 특히 우리와 생각과 믿음이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행하라고 하십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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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카우트를 방문하는 로버트 디 헤일즈

사진: 제프리 디 알레드, 데저렛 뉴스

헤일즈 장로는 “교리적 논쟁이 없는 안전한 고지를 떠나 진흙 속의 신학적 논쟁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 관해, 후기 성도는 자신의 간증으로 그들에게 응답하고 구주와 함께 서도록 권고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악마를 무찌를 수 있는 유일한 힘이자 우리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비난을 돌리지 않고 대응하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나약한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용기입니다.”31

구주께서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던]”(이사야 53:3; 모사이야서 14:3) 것처럼, 후기 성도들도 오해, 비난, 거짓 혐의를 겪을 수 있다. 헤일즈 장로는 “그분과 함께 서는 것은 성스러운 특권입니다!” 라고 말씀했다.32

주님 편에서 기다리며

헤일즈 장로가 주님 편에서 기다리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이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심장 문제, 여러 번의 큰 수술 등 다시 불거진 건강 문제로 2011년 4월 연차 대회에서 말씀할 수 없었고 육체적으로 고통받았으나, 이로써 영적 통찰을 얻었다.

2000년에 받은 세 번의 큰 수술에서 회복된 후, 그는 후기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저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그리고 명상을 통해 주님께서 저에게 삶의 교훈을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지속적이고 격렬한 고통은 우리를 성결케 하는 놀라운 정화제로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에 더 가까워지도록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33

헤일즈 장로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이”가 계시기에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혼자 이겨 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34 “이따금 주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실 때, 저는 하늘 천사들의 방문으로 위로를 받았고 그들은 제가 어려울 때 위안과 영원한 평안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35

주님의 응답이 언제, 어떻게 올지는 알지 못하나 그분이 정한 시간에 그분의 방법대로 올 것이라고 헤일즈 장로는 간증했다. “어떤 응답은 다음 세상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주님에 대한 기대를 단념하지 맙시다. 그분이 주시는 축복은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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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한 로버트 디 헤일즈

“저는 이 지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형제들과 함께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가 감리 감독에서 해임되면서 했던 말씀은 사도가 되어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오른쪽 사진: 데저렛 뉴스 자료실 제공

사진: 스튜어트 존슨, 데저렛 뉴스

충실한 제자

헤일즈 장로가 감리 감독이었을 때, 그는 앨마 이세를 떠올리게 하는 간증을 전했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오, 만일 내가 천사의 음성과 나팔을 가졌더라면, 온 인류에게 그가 부활하셨으며 살아 계시다는 것을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독생자이며, 약속된 메시야이며, 우리의 구속주요 구주이시며, 모범으로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선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신성한 사명은 여러분과 제가 그분께 나아오도록 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37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부름받은 후 처음으로 말씀하는 연차 대회에서 그는 몰몬의 말을 인용하여 고대 선지자의 간증으로 자신의 간증을 대신했다. “보라,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 나는 그의 백성 가운데 그의 말씀을 선포하여, 그들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그에게 부름을 받았느니라.”(제3니파이 5:13)38

거의 40년 동안 총관리 역원으로 봉사하면서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말씀과 모범적인 삶을 통해 담대하고 강력하게 구주의 말씀을 선포했다. 그는 개인 생활 및 직장 생활, 교회 생활에서 자기 자신의 다음 권고를 유념했다. “충실히 순종하고 끝까지 견딘다면 우리는 언젠가 아버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면전으로 명예롭게 귀환할 수 있습니다.”39

헤일즈 장로와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후기 성도들에게,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는 본향으로 명예롭게 귀환한 것이다.

  1. 로버트 디 헤일즈,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성도의 벗, 1979년 10월호, 118쪽.

  2. 로버트 디 헤일즈, “아론 신권: 명예로운 귀환”, 성도의 벗, 1990년 7월호, 46쪽.

  3. “Fireside Commemorates Aaronic Priesthood Restoration,” Ensign, July 1985, 75.

  4.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101쪽.

  5. 로버트 디 헤일즈, “자녀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참조 성도의 벗, 1994년 1월호, 9쪽 참조.

  6. 로버트 디 헤일즈,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드림”, 성도의 벗, 1992년 7월호, 64쪽.

  7. 로버트 디 헤일즈, “가족을 강화함: 우리의 거룩한 의무”, 리아호나, 1999년 7월호, 37쪽.

  8. 로버트 디 헤일즈,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드림”, 성도의 벗, 1992년 7월호, 65쪽 참조.

  9. 로버트 디 헤일즈, “자녀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8~9쪽.

  10. 로버트 디 헤일즈, “거룩한 곳에 굳게 서십시오”, 리아호나 2013년 5월호, 51쪽.

  11. 로버트 디 헤일즈, “자녀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9쪽.

  12. 라린 건트,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롭게 귀환함’”, 성도의 벗, 1995년 4월호, 31쪽.

  13. Robert D. Hales, “Celestial Marriage—A Little Heaven on Earth” (Brigham Young University devotional, Nov. 9, 1976), speeches.byu.edu 참조.

  14. 라린 건트,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롭게 귀환함’”, 29쪽 참조.

  15. 로버트 디 헤일즈,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 앞날을 예비하여 부양하는 자가 됨”,리아호나, 2009년 5월호, 710쪽.

  16. 로버트 디 헤일즈,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드림”, 65쪽 참조.

  17. Robert D. Hales, “Gifts of the Spirit,” Ensign, Feb. 2002, 19.

  18. 라린 건트,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롭게 귀환함’”, 32쪽 참조.

  19. 스펜서 더블유 킴볼, 라린 건트,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롭게 귀환함’”, 33쪽 참조.

  20. 라린 건트,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롭게 귀환함’”, 33쪽 참조.

  21.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102쪽.

  22.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과의 인터뷰, 2015년 6월 11일.

  23. 라린 건트,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롭게 귀환함’”, 53쪽 참조.

  24. 로버트 디 헤일즈, “의로운 선택을 함”, 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12쪽.

  25. 로버트 디 헤일즈,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복지: 인간의 복지를 위한 영원한 계획”, 성도의 벗, 1986년 7월호, 30쪽.

  26. 로버트 디 헤일즈,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메시지”,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78~79쪽.

  27. 로버트 디 헤일즈, “아론 신권 소유자들에게: 결정의 10년을 위해 준비함”, 리아호나, 2007년 5월호, 48~49쪽.

  28. 로버트 디 헤일즈, “삶의 지침이 될 열 가지 원칙”, 리아호나, 2007년 2월호, 38~39쪽.

  29. 로버트 디 헤일즈, “성신”, 리아호나, 2016년 5월호, 105쪽.

  30. 로버트 디 헤일즈, “더욱 더 그리스도와 같은 기독교인이 되어”, 리아호나, 2012년 11월호, 91쪽.

  31. 로버트 디 헤일즈, “그리스도인의 용기: 제자로서의 대가”,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73쪽.

  32. 로버트 디 헤일즈, “거룩한 곳에 굳게 서십시오”, 리아호나 2013년 5월호, 51쪽.

  33. 로버트 디 헤일즈, “침례 성약: 왕국 안에 있으며 왕국에 속해 있음”,리아호나, 2001년 1월호, 6쪽 참조

  34. 로버트 디 헤일즈, “영과 육신의 치유”, 리아호나, 1999년 1월호, 16쪽.

  35. 로버트 디 헤일즈, “침례 성약: 왕국 안에 있으며 왕국에 속해 있음”,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6쪽.

  36. 로버트 디 헤일즈, “주님을 소망하며: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리아호나, 2011년 11월호, 73쪽

  37. 로버트 디 헤일즈,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성도의 벗, 1979년 10월호, 118쪽.

  38. 로버트 디 헤일즈,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메시지”, 80쪽; 또한 로버트 디 헤일즈, “그리스도인의 용기”, 75쪽 참조.

  39. 라린 건트,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 ‘명예롭게 귀환함’”, 53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