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제1장: 예수 그리스도—희망과 기쁨으로 가는 우리의 유일한 길


제1장

예수 그리스도—희망과 기쁨으로 가는 우리의 유일한 길

“우리의 삶과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회복된 복음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잘못될 수 없습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의 생애에서

하워드 더블유 헌터 회장의 가르침에서 두드러진 주제 하나는 참된 평화와 치유, 행복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따르려 노력할 때만 찾아온다는 것이다. 헌터 회장은 “그리스도의 길은 올바른 길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소망과 기쁨을 주는 유일한 길”1이라고 가르쳤다.

또한 헌터 회장은 구주의 신성한 사명에 대해 간증할 때 담대했다. 그는 이렇게 밝혔다. “저는 성임받은 사도이자 그리스도의 특별한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엄숙하게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간증한 메시야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희망으로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녀들이 규정된 예배 양식을 따르던 오랜 세기 동안 오시기를 기도했던 분이십니다. 

저는 성신의 권능으로 간증합니다. 저는 마치 제 손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실재하심을 압니다. 또한 신앙의 귀로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성령이 제 간증이 참됨을 확인해 주실 것을 압니다.”2

예수께서 성역을 베푸셨던 곳을 가보고 싶었던 헌터 회장은 20번도 넘게 성지를 방문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 장로는 이렇게 말씀했다. “그분에게 예루살렘은 마치 자석과 같았습니다. … 구주께서 걸으셨고 가르치셨던 곳에 있고자 하는 그분의 소망은 만족하기 어려운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분은 모든 풍경과 소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특히 갈릴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한 곳을 가장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전에 갔던 것처럼 동산 무덤으로 한 번만 더 가 봅시다.’ 그분은 마치 구주와 자신 사이에 놓인 휘장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거기에 앉아 명상하시곤 했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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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을 안고 계신 그리스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구주를 생각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깊이, 그리고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과 경배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생을 생각해 봅니까? 그분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심에 놓여 있습니까?”

하워드 더블유 헌터의 가르침

1

우리는 현재 알고 있는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하고, 현재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자주 그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들은 이 찬송가를 경건하게 부릅니다.

예수님 생각하오니

내 마음 기쁘네

당신과 함께 거하면

더욱더 기쁘리 …

…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구주를 생각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깊이, 그리고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과 경배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생애를 생각해 봅니까? 주님이 우리 삶에서 얼마만큼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우리는 하루 동안, 일하는 일주일 동안, 또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이 예수님을 생각합니까? 아마 우리 중에는 충분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우리가 더 기쁜 마음을 갖게 되면, 틀림없이 인생은 더 평화로워질 수 있으며, 결혼 생활과 가족이 조금 더 강화될 수 있고, 이웃과 모든 나라가 더 안전하고 더 친절하며 더 건설적으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더욱더 주님께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랑으로 가득 찬 주님의 모습을 뵙고 그 면전에 거할 수 있는 더 큰 기쁨과 더 큰 상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에서 매일마다 그리고 매 계절마다 … 오래 전 예루살렘으로 영광스럽게 입성하신 후에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마태복음 22:42).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밝히며, 그 사실에 대한 실재성이 우리 영혼을 더 자주 일깨워야 합니다.4

우리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하고, 현재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자주 그분을 기억해야 하며, 우리가 지금 섬기는 것보다 더 담대하게 그분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영생으로 솟아오르는 물을 마시고 또 생명의 떡을 먹게 될 것입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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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에게 가르치시는 그리스도

“우리 모두가 조금 더 헌신적이고 절제하는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분의 이름을 사랑으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소망과 영원한 기쁨의 유일하고도 참된 근원이다.

오 회개한 자의 소망

온유한 자의 벗

타락한 자에 친절코

선하시나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입니까? 참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기인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닙니까! 우리 가운데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희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더 큰 기쁨을 갈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욕구이자 염원입니다. 또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약속해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소망은 모든 “회개한 자”에게 주어지며, 기쁨은 모든 “온유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회개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회개는 우리의 교만과 무관심을 버릴 것을, 특히 죄를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2000년 전에 라모나이 왕의 부친이 알았던 것처럼, 이것은 바로 참된 희망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값입니다.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 내게 당신을 알려 주시겠나이까? 당신을 알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으며, 마지막 날에 구원을 받기 위하여, 나의 모든 죄를 버리겠나이다”(앨마서 22:18). 우리가 주님을 알고 따르기 위해 모든 죄를 기꺼이 버리려 한다면 우리 또한 영생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온유한 자란 어떠한 자입니까? 세상에는 위협을 가해 이기려 하고 최고가 되려고 고군분투하는 일들이 너무 만연하고 있어, 좀 더 온유하게 되는 것을 가르치는 책을 사려고 줄을 서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는 땅, 곧 참으로 놀라운 기업을 상속받게 될 것이며, 위협하지 않고도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중이 아닌 지금, 곧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길은 올바른 길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희망과 기쁨을 주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되길 간구합니다. 모든 무릎이 무릎을 꿇고, 모든 혀가, 부드러움이 잔인함보다 낫고, 친절이 억압보다 위대하며, 부드러운 음성은 분노를 가라앉힌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리고 가능한 한 곧 우리는 좀 더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

예수만이 우리 기쁨

우리 상 되시니

영원히 영광 당신께

있사옵나이다

바로 이것이 … 모든 세상 사람들을 위해 드리는 저의 개인적인 기도이며, 그들을 향한 저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기쁨의 유일하고도 참된 근원이시며, 우리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평안이 그분 안에 있음을 간증드립니다. 저는 주님이 우리 모두가 개인적으로 염원하는 영광, 그리고 사람들과 나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유일한 상, “우리의 영광”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분은 현세와 영원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상이십니다. 다른 상들은 어떤 것이든 결국 무익합니다. 다른 위대함도 어떤 것이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져 가고 산산이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결국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 우리가 모두 좀 더 헌신적이고 절제하는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모두 주님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분의 이름을 사랑으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유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먼저 축복하고 섬겨 그들도 그와 같이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6

3

온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구주와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적극적이고 충실한 신앙이다.

성경을 믿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까? 그분의 속죄 희생과 부활을 믿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 자신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고 교회도 시대에 뒤떨어진 곳임을 감히 밝힙니다. 주님께서는 믿으려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영생에 관한 원리와 교훈을 아주 단순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이런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분의 메시지에는 영원한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7

이전의 모든 세대와 앞으로 오게 될 모든 세대에서처럼 이 시대에도 온 세상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믿는 적극적이고 충실한 신앙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한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이 복음의 진실성을 증명하며 의롭고 선한 생활에서 비롯되는 힘과 평화를 모범으로 보여 주어야 하는 더 큰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기분이 상하고, 오해받거나 부당하고 불친절한 대접을 받을 때, 또는 무고하게 죄인으로 비난받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입거나 승진에서 밀리거나 거짓 고소를 당하거나 우리의 동기가 부당하게 비난받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럴 때 맞서 싸워야 합니까? 훨씬 더 큰 군대를 보내 응수합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는 과거의 신앙으로 되돌아갑니까? …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놀라운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 늘 확실한 약속이 따르는 많은 권고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학식 있는 자와 무지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 건강한 자나 병든 자 모두를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는 권능과 위엄으로 가르치셨습니다.8

예수 그리스도와 속죄에 대해 개인적인 간증을 쌓으려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공부하고 그분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믿는 간증을 갖는 것이 우리 각자가 추구해야 할 일입니다. 그분의 사명, 또 그분이 이룩한 속죄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그분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더 들게 될 것입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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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과 배에 계신 그리스도

구주께서는 우리 인생의 폭풍을 잠잠하게 하실 수 있다.

4

우리가 구주를 믿는 신앙을 행사할 때, 그분은 우리 인생의 거친 파도를 잔잔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갑작스럽게 폭풍우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는 …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사납고 무서우며 파괴적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사회로서, 국가로서, 심지어는 교회로서 우리는 갑작스럽게 돌풍을 만나게 되어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마가복음 4:38] 하고 말하며 주님께 여러 가지 방법을 간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폭풍우가 지난 후 잠잠해지면 언제나 다음 음성을 듣게 됩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마가복음 4:40].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나오는 주님의 조용한 꾸짖음은 큰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며 받들어 온 이 위대하신 여호와는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창세기 1:6)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창세기 1:9)고 말씀하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른 땅 위로 지나갈 수 있도록 홍해를 가르신 분이기도 하십니다.(출애굽기 14:21~22 참조) 그분이 갈릴리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자연의 힘에 명령하실 수 있었다는 것에 굳이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생애의 거친 물결을 잔잔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신앙을 통해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생애에서 역경을 겪게 됩니다. 저는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은 사납고, 손상을 입힐 수 있고,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우리를 위해 구원의 힘을 갖고 계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약화시키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근심 걱정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 말씀은 단지 우리가 폭풍우가 부는 순간만이 아니라 전 생애를 경험하는 동안, 즉 인생 여정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10

5

삶의 중심을 구주께 둘 때 우리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걱정은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저는 여러분이 간혹 좌절한다는 것을 알 만큼 여러분의 생활이 분주하고 바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종종 걱정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압니다. …

오늘 여러분께 전하려는 메시지는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입니다. 인생의 위대한 축복들 속에서 기뻐하십시오. 복음에 따른 삶과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큰 전율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힘든 시기에도 인생은 멋진 것이며, 그 여정을 가는 도중에 곳곳마다 행복과 기쁨, 평안이 있으며, 길의 맨 끝에서 그것들은 영원할 것입니다.

물론 걱정이 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어떤 것은 매우 심각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 용어로 신앙과 소망,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풍성한 생활”이 바로 우리 후기 성도의 삶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실망과 걱정은 최소화하면서 축복과 기회를 강조하려 노력합니다. 경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찾으라. 항상 기도하라. 또 믿으라. 그리하면 … 너희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이 함께 역사하리라.”(교리와 성약 90:24) 그 약속을 여러분께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

이것 하나는 부디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의 삶과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회복된 복음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잘못 될 수 없습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 삶이 구주와 그분의 가르침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면, 어떠한 성공도 영원히 잘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지속적으로 그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픔과 질병은 필멸의 세상에서 지게 되는 짐 가운데 일부입니다. 신앙을 갖고 긍정적 태도를 지니십시오. 신권의 권능은 실재하며, 인생에서 우리가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인생에는 좋은 일이 정말 많습니다. 부활하면 부상이나 질병이 없으리라는 지식은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일들이 일부 유혹의 형태로 올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교육이나 직업, 또는 금전이나 결혼과 관련된 어려운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짐이 어떤 것이든, 여러분에게 필요한 힘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 문자 그대로 시작과 끝입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우리 인생에서 방관자가 아니십니다. …

우리를 위에서 짓누르는 멍에가 죄라고 해도, 저의 메시지는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그 죄의 무게를 다 아십니다. 우리 짐이 죄나 유혹이 아니라 질병이나 빈곤, 거부당함이라 할지라도 똑같습니다.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

그분은 우리 죄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겪으셨습니다. 이사야가 “질고를 아는 자”(이사야 53:3; 모사이야서 14:3)라 칭한 그분은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를 완전히 다 아십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모든 고통으로 생긴 그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겠다고 하셨었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많은 종류의 걱정과 어려움이 있고 또 있게 되겠지만 기쁜 마음으로, 또 충만한 신앙으로 인생을 받아들이십시오. 경전을 정기적으로 공부하십시오.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영의 음성과 선지자들에게 순종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십시오. 그런 과정에서 여러분은 커다란 행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영광스러운 날에 여러분의 모든 걱정은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리버티 감옥의 좁은 방에서 조셉 스미스는 고통을 겪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적어 보냈습니다.

우리의 능력 안에 놓여 있는 모든 일을 기쁘게 행하자. 그러고 나서 우리가 최대한의 확신을 가지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며, 그의 팔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기를 바라노라.[교리와 성약 123:17; 강조체 추가]

[주님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주신 말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선을 행하라. 땅과 지옥이 연합하여 너희를 대적하게 하라. 이는 만일 너희가 나의 반석 위에 세워져 있을진대, 그들이 이기지 못할 것임이니라. …

무슨 생각을 하든지 나를 바라보라. 의심하지 말며, 무서워 말라.

내 옆구리를 찌른 상처와 또한 내 손과 발에 있는 못 자국을 보라. 충실하라. 내 계명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는 천국을 상속받으리라.[교리와 성약 6:34~37]11

학습 및 교수 제언

질문

  • 1편에 있는 헌터 회장의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중심에 둘 수 있겠는가? 가정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그리스도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수 있는가?

  •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소망과 기쁨, 평안을 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버릴 것이 요구”되는가?(2편 참조) 구주에게서 오는 소망과 평안, 기쁨을 느꼈던 적은 언제인가?

  • 왜 “온 세상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 나사렛 예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믿는 적극적이고 충실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가?(3편 참조) “기분이 상하고, 오해받으며, 부당하거나 불친절한 대접을 받았을 때, 누군가 우리에게 죄를” 지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는 우리의 신앙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가?

  • 두려움과 신앙에 대한 헌터 회장의 가르침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4편 참조)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신앙은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여러분이 구주를 믿는 신앙을 행사할 때 구주께서 여러분 인생의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던 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 5편에 있는 헌터 회장의 권고는 설령 우리가 슬픔과 실망, 병치레를 할 때도 “기쁜 마음으로 … 인생을 받아들이[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영원한 관점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 여러분이 더 풍성한 생활을 하도록 구주께서는 어떻게 도와주셨는가?

관련 성구

마태복음 11:28~30; 요한복음 14:6; 니파이후서 31:19~21; 앨마서 5:14~16; 7:10~14; 23:6; 힐라맨서 3:35; 5:9~12; 교리와 성약 50:40~46; 93:1

학습을 위한 도움말

“여러분은 공부를 하면서, 특별히 여러분이 가르치는 사람들에 관해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가슴에 와 닿는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2004], 18쪽) 여러분이 받는 느낌, 설령 그것이 현재 읽는 말씀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것을 기록하는 것을 고려해 본다. 바로 그 생각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일 수도 있다.

  1. “예수님 생각하오니”, 성도의 벗, 1993년 7월호, 65쪽.

  2. “사도의 그리스도 증거”, 성도의 벗, 1984년 8월호, 24~25쪽.

  3. James E. Faust, “Howard W. Hunter: Man of God,” Ensign, Apr. 1995, 27.

  4. “예수님 생각하오니”, 63~64쪽.

  5.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64쪽; 또한 “주님을 따르도록 우리에게 권유하심”, 성도의 벗, 1994년 10월호, 6쪽 참조.

  6. “예수님 생각하오니”, 64~65쪽.

  7. Eleanor Knowles, Howard W. Hunter(1994), 318.

  8. “평화의 항구에서 비치는 불빛”, 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18~19쪽.

  9. The Teachings of Howard W. Hunter, ed. ClydeJ. Williams(1997), 30.

  10. “주여 큰 폭풍우 일고”, 성도의 벗, 1985년 1월호, 34~36쪽.

  11. “Fear Not, Little Flock”(address given at Brigham Young University, Mar. 14, 1989), 1–2, 4–5; speeches.by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