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특별한 필요 사항, 특별한 교훈
2020년 6월호


특별한 필요 사항, 특별한 교훈

우리는 장애가 있는 딸 도라와 함께 살아오며 배운 것을 몇 가지 전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가 저희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기를 바라고, 또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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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퍼 장로와 딸 도라

파이퍼 가족이 제공한 도라 사진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딸 도라가 태어난 후, 우리는 그 이후로 며칠을 지내면서 도라가 뭔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3주 후에 도라가 의사의 검진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가고 나서야 도라의 출생이 우리 가족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전문가들이 도라의 상태를 진단하려 노력하는 몇 주와 몇 달을 겪으며 우리의 마음은 희망과 두려움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갔습니다. 새로운 이론이 제시될 때마다 걱정거리가 따랐습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는 한 가지 진단이 나오면 “아, 제발 그것만은 안 돼요. 도라를 잃을 수는 없어요.”라고 했다가 또 다른 진단이 나오면 “만약 도라의 병명이 그게 맞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말했습니다.

진단은 양날의 검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상황에 끝을 알리고 미래는 어떠할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기대에 부풀게 하거나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으로 한계를 그어 버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에 의사들이 온갖 이론을 검토하고 검사를 시도했지만 도라의 상태에 대해 명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었던 점에 감사를 느낍니다.

의료진은 우리에게 “도라가 생리학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정상이지만, 근육 수축력이 약하고 경련을 겪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28년간을 그 말에서 오는 불확실성, 복잡함, 역경, 그리고 기쁨과 가능성까지 그 모두를 안고 살았습니다. 어떤 길을 가게 될지도 몰랐지만, 구체적인 의학적 진단에 따라 한정되는 느낌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정의하는 법

지난 세월, 도라와 관련하여 가장 자주 받았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도라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어떤 장애가 있나요?” 그러면 우리는 보통 이렇게 답합니다. “음, 혼자서는 말하지도 걷지도 먹지도 입지도 못한달까요? 하지만 도라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아이예요.”

우리는 도라를 장애나 한계로 정의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도라가 잘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편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도라는 잘 웃습니다. 도라의 웃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됩니다. 한번은 공항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멈춰 세운 후, 도라의 웃음이 발하는 빛에 무척 감동했다며 도라와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은 적도 있습니다.

도라는 누군가를 안아 줄 수 있습니다. 운이 좋게 도라의 포옹을 받게 된다면, 여러분의 삶이 바뀔 것입니다. 한번은 운동경기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도라가 자연스럽게 다가가 길가의 노숙인을 안아 준 적이 있습니다. 표정을 보니, 그 사람에게 그날 있었던 일 중 가장 멋진 일이 도라의 그 포옹이었다는 게 분명했습니다.

도라는 여러분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 줍니다. 도라가 여러분과 한순간이라도 마주 본다면 여러분은 사랑과 감미로움에 취해 눈물이 고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사들을 가진 도라를 우리가 왜 굳이 “장애가 있는” 아이로만 정의하겠습니까? 도라는 자신의 존재 그대로 자기가 할 일들을 함으로써 수백 명의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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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파이퍼의 사진

하루씩 하루씩

자녀가 부모에게 평생 의존해야 하는 경우, 부모는 큰 부담을 느끼기 쉽습니다. 특히 자녀에게 계속해서 신체적, 정서적, 심지어는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러한 부담감은 더욱 커집니다. 아이에게 매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보살피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높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잠시 한 걸음 물러서서 ‘오늘은 이것만 하면 돼’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매일 해야 할 일과 그 기회들에만 집중하면 주어진 과제가 좀 더 해 볼 만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에 하루씩 하루씩 살아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하루 동안 누릴 기쁨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능력

지상에 보내진 영은 모두 “성장”하는 능력이 있습니다.1 우리는 모두 자기 능력이 허락하는 최대한으로 선택의지를 행사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누군가를 보살피는 사람들은 보살핌 아래에 놓인 이들이 신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성장하도록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봉사할 기회를 얻도록 돕는 것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마치 도라가 포옹을 해 주고 웃음을 짓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고, 가능하면 치료와 활동을 통해 이를 신장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는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계속 좌절을 맛본다면, 우리가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통해 가능하고 적절한 일들을 하도록 우리를 돕고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소해 보이는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정형외과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의가 도라는 절대 걷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년 간의 기도와 노력 끝에 도라는 도움을 받으면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라의 상태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도라가 성장하고 삶에서 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작은 기적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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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는 도라

치유를 받지 않을 신앙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가 어려움을 안고 우리의 가정으로 보내질 때 왜지? 하고 의문을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신앙이 있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그 아이의 상태가 치유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가능할지를 하나님께 여쭈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도라를 낫게 하실 수 있다는 분명한 신앙이 있으나, 그분은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도라를 우리에게 보내신 데는 그분 나름의 목적이 있으셨고, 그분께서 원하실 때에 도라를 낫게 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그날은 완전한 치유의 때, 즉 부활까지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소중한 이들의 치유를 지금 곧바로 실행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려면, 하나님께서 치유를 일으키실 수 있다고 믿는 것만큼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도라는 어떤 목적 때문에 우리 가정에 보내졌고, 우리는 하나님께 라는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기를 바라시는지를 여쭈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1928~2015)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는 거지? 내가 무엇을 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났지? 하고 묻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그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에서 무엇을 배우지? … 진짜 확신을 갖고 ‘당신의 뜻을 알게 하소서’라거나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면, 여러분은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최대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확고한 위치에 있게 됩니다.”2

우리는 종종 구주께서 지상 성역 동안 치유해 주셨던 자녀들의 부모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처럼, 그 부모들도 자녀가 어떤 목적으로 그들에게 보내졌는지 알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치유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면, 구주께서 그분의 치유하는 권능과 신성을 나타내 보일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 부모들은 이 사실을 구주께서 그 자녀들을 치유하신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치유될 날이 오리라는 신앙이 있습니다.3

우리는 그날을 고대합니다.

  1.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보내신 모든 정신과 영은 성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2007], 210쪽)

  2. 리차드 지 스코트, “주님을 신뢰함”,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17쪽.

  3. “치유받지 않을 신앙”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으려면, 다음 기사를 참고한다.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주님의 뜻과 그분이 정하신 시기를 받아들이는 것”, 『리아호나』, 2016년 8월호, 16~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