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성한 불만족
2018년 11월호


신성한 불만족

신성한 불만족을 통해 우리는 신앙으로 행하고, 선을 행하라는 구주의 권유를 따르고, 우리의 생활을 겸손히 그분께 드릴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언덕 양옆을 가로지르며 구불구불하게 올라가는 포장길을 걸어서 하교를 했습니다. 또, 그 길 말고도 “남자애들 길”이라고 부르는 비포장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 길은 언덕 꼭대기까지 곧장 오르는 흙길이었습니다. 남자애들 길은 거리는 짧지만 경사는 훨씬 급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였던 저는 제가 남자아이들이 가는 그 어떤 길도 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제가 후기에 살고 있고, 개척자들처럼 힘든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 자신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포장길을 걷는 친구들에게서 일부러 뒤처져서 신발을 벗은 뒤, 맨발로 남자애들 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저는 그렇게 제 발을 단련시키려 했습니다.

어린 초등회 소녀였던 저는 그렇게 하면 제가 준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님을 압니다! 저는 맨발로 산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성신의 권유에 응함으로써 성약의 길을 걷도록 제 발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더 높고 더 거룩한 방법”으로 생활하고, 타인을 보살피며, “더 높은 곳으로 발걸음을 떼”도록 선지자를 통해 외치시기 때문입니다.1

행하라는 선지자의 이러한 외침이 더 잘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우리의 내적인 인식과 어우러지면,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께서 “신성한 불만족”이라고 부르신 것이 우리 안에서 생성됩니다.2 신성한 불만족은 “우리의 상태를 우리가 가능성이 있는 어떤 존재”와 비교할 때 생깁니다.3 자신에게 솔직하기만 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현 위치 및 됨됨이가 사실은 우리가 되고 싶은 위치나 됨됨이와 격차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지니고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딸이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느낌은 하나님에게서 오며,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긴박함을 불러옵니다.

우리는 우리를 더 높은 길로 부르는 신성한 불만족의 느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한편 사탄의 모조품, 즉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 낙담을 인식하고 피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낙담하게 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이 주시는 평안과 은혜를 추구하도록 이끄는 더 높은 길을 걷겠다고 선택하거나, 아니면 충분히 훌륭하고 부유하거나 똑똑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절대 못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쏟아붓는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불만족감은 신성할 수도 있고, 파괴적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으로 행한다

신성한 불만족과 사탄의 모조품을 구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것입니다. 신성한 불만족은 우리를 신앙심 어린 행동으로 이끕니다. 신성한 불만족은 우리에게 하기 편한 일만 하라고 권하지 않으며,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루지 못한 것들만 생각하며 버둥거리고 있으면, 발전하지 못하고, 영을 느끼고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4

조셉 스미스는 어린 시절에 자신의 결점을 통렬하게 인식했고, “[그의] 불멸의 영혼의 복리”를 걱정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 마음은 나의 죄를 확실히 알게 되고, … 몹시 낙담했습니다. … 나 자신의 죄와 세상의 죄 때문에 크게 애통했습니다.”5 따라서 그는 “진지한 묵상에 잠기는 한편 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6 익숙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결점 때문에 불안하거나 낙담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조셉은 행동했습니다. 그는 “종종, 어떻게 할 것인가? … 자문해 보았다.”라고 말했습니다.7 조셉은 신앙으로 행했습니다. 그는 경전을 펴고, 야고보서 1장 5절의 권유를 읽었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 결과로 받은 시현은 회복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저는 신앙으로 행하도록 조셉을 떠밀어 준 그 신성한 불만족이, 그 불안과 혼란의 시기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영의 속삭임을 따라 선을 행함

세상 사람들은 종종 불만족감을 핑계 삼아 오직 자기에게만 몰두하고, 내가 누구이고,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자기중심적이고 퇴보적인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신성한 불만족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신8 구주의 모범을 따르도록 우리를 고무시켜 줍니다. 제자의 길을 걷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는, 영의 부드러운 자극을 받게 됩니다.

몇 년 전에 들은 한 이야기는 제가 성신의 속삭임을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에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봉사하셨던 보니 디 파킨 자매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수잔은 바느질 솜씨가 좋았습니다. 수잔은 킴볼 회장님과 같은 와드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수잔은 킴볼 회장님이 새 양복을 입으신 것을 보았고,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 고급 실크를 사다 주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수잔은 그 실크로 킴볼 회장님의 새 양복에 어울리는 멋진 넥타이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에 넥타이를 만들었고, 종이 포장지에 정성스럽게 싸서 킴볼 회장님이 사시는 동네로 갔습니다.

그 댁 현관으로 가던 수잔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뭐라고 선지자를 위해 넥타이를 만들었지? 분명 넥타이가 많으실 텐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킴볼 자매님이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어머, 수잔!’

수잔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일요일에 킴볼 회장님이 새 양복을 입으신 걸 봤어요. 마침 아버지가 뉴욕에서 실크를 사다 주셔서, 회장님을 드리려고 넥타이를 만들어 보았어요.’

킴볼 자매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는 자신의 손을 수잔의 어깨에 얹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잔, 베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말아요.’”9

저는 이 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베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말아요.”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 때 그것이 영의 속삭임인지, 아니면 그냥 내 생각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이런 말씀을 떠올립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끊임없이 선을 행하도록 이끌며 권유하나니, 그러므로 무릇 선을 행하도록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섬기도록 이끌며 권유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10

직접적인 영의 속삭임이든, 그냥 도와주고 싶은 충동이었든 건에 그 어떤 선한 행동도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까지나 [시들]지 아니”하며, 사랑으로 응하는 것은 절대 그릇되지 않기 때문입니다.11

봉사를 하기에는 때가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고, 우리의 작은 봉사가 미치는 영향력을 깨닫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였음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신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을 승인하신다는 표시임을 알고는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자매 여러분, 할 일 목록이 이미 꽉 차 보일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무엇을 행하여야 할지 모든 것을” 성신을 통해 보여 주시도록 간청할 수 있습니다.12 영의 속삭임을 느끼면, 우리는 설거짓거리나 당장 해결해야 할 많은 일을 제쳐두고, 자녀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친구를 방문하거나, 이웃집 아기를 봐 주거나, 성전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저는 목록을 만들고 완료 표시를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곧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 때 평온이 찾아옵니다. 불만족감을 느낄 때 영의 속삭임을 따르기로 결심하면, “내 시간”에 대한 저의 사고방식이 변화하고, 사람들을 방해물이 아닌 인생의 목적으로서 보게 됩니다.

신성한 불만족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

신성한 불만족은 자기 연민, 또는 늘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할 때 생기는 낙담이 아닌 겸손으로 이어집니다. 성약을 지키는 여성들의 가족과 인생 경험, 상황은 모두 다릅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신성한 잠재력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우리 혼자서는 충분할 수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복음이 전하는 기쁜 소식은 이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13 경전에는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나옵니다.14

우리의 약점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할 때 그것은 축복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진리입니다.15 자기 연민 속에서 망설이기보다는 부족함을 안고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불만족은 신성한 것이 됩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기적은 자주 부족이나 필요, 실패나 불충분을 인식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억하십니까? 각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는 수천 명을 어떻게 기적적으로 먹이셨는지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16 그 이야기는 음식이 부족한 것을 제자들이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말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17 제자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들은 음식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음식을 예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일을 하기에는 자신의 재능과 은사가 너무 보잘것없다고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노력을 그리스도께 드릴 수 있고, 그러면 주님께서 그 노력을 크게 키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한다면, 비록 여러분이 인간적인 연약함과 약점을 안고 있을지라도 그분께 충분히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한 세대 차이밖에 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8 여러 시대에 걸쳐 선지자들과 평범한 남녀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고자 하십니다.

시 에스 루이스는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살아 있는 집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집을 다시 짓기 위해 하나님이 오신다. 아마 처음에는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은 하수구를 고치고 지붕에서 물이 새는 틈새를 막는 등의 일을 하십니다. 이런 것들은 필요한 일이므로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그분께서 집을 마구 때려 부수기 시작하십니다. 그 과정은 지독하게 고통스럽습니다. … [사실] 그분은 여러분의 생각과 매우 다른 집을 짓고 계십니다. … 여러분은 자신이 꽤 괜찮은 조그만 오두막집이 될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그분은 여러분을 궁전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친히 그 궁전 안에 거하고자 하십니다.”19

우리 구주의 속죄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우리가 제자의 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정결하게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신성한 불만족을 통해 우리는 신앙으로 행하고, 선을 행하라는 구주의 권유를 따르고, 우리의 생활을 겸손히 그분께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Russell M. Nelson, in Tad Walch, “‘The Lord’s Message Is for Everyone’: President Nelson Talks about Global Tour,” Deseret News, Apr. 12, 2018, deseretnews.com.

  2. Neal A. Maxwell, “Becoming a Disciple,” Ensign, June 1996, 18.

  3. Neal A. Maxwell, “Becoming a Disciple,” 16; emphasis added.

  4. “낙담은 여러분의 신앙을 약하게 만든다. 여러분이 기대치를 낮춘다면 효율성은 줄어들고, 여러분의 소망은 약해지고, 점점 더 영의 인도를 받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선교사로서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선교 사업 지도서(2018), lds.org/manual/missionary).

  5.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28쪽.

  6. 조셉 스미스—역사 1:8.

  7. 조셉 스미스—역사 1:10; 강조체 추가.

  8. 사도행전 10:38.

  9. Bonnie D. Parkin, “Personal Ministry: Sacred and Precious” (Brigham Young University devotional, Feb. 13, 2007), speeches.byu.edu.

  10. 모로나이서 7:13.

  11. 고린도전서 13:8.

  12. 니파이후서 32:5.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14. 히브리서 4:16.

  15. “또 만일 사람들이 내게로 오면 내가 그들에게 그들의 연약함을 보일 것이라. 내가 사람들에게 연약함을 주는 것은 그들로 겸손하게 하려 함이요, 내 은혜가 내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진 모든 자에게는 족하니, 이는 만일 그들이 내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 나를 믿는 신앙을 가지면, 내가 그들을 위하여 연약한 것들을 강하게 되게 할 것임이니라.”(이더서 12:27; 강조체 추가)

  16. 마태복음 14:13~21; 마가복음 6:31~44; 누가복음 9:10~17; 요한복음 6:1~14 참조.

  17. 요한복음 6:9.

  18.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여러분의 족보가 얼마나 많은 세대가 쓰여 있든, 어떤 민족을 여러분이 대표하든, 여러분의 영의 족보는 하나의 계통으로 쓰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청녀 청남에게”,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69쪽)

  19. C. S. Lewis, Mere Christianity(1960), 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