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세스 소아레스 장로: 간교함이 없는 사람
    각주

    울리세스 소아레스 장로: 간교함이 없는 사람

    소아레스 장로 부부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선택하시던 성역 초기에 당신께로 오는 나다나엘을 보셨다. 나다나엘의 선량함을 곧바로 알아보신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1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마음이 순수하고, 의도가 정직하며, 위선이나 기만이 없는 사람임을 아셨다. 주님께서는 이 의로운 고결성을 사랑하셔서 나다나엘을 사도로 부르셨다.2

    울리세스 소아레스는 나다나엘과 같으며, 구주께서는 그 또한 사도로 부르셨다.

    “부모의 빛”

    네 명의 아들 중 막내인 울리세스는 1958년 10월 2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그의 부모인 아파레시도와 메르세데스 카레쇼 소아레스는 선교사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던 고결하고 근면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울리세스가 6세였던 1965년에 교회에 들어왔다.

    울리세스가 청남이었을 때 스테이크 회장으로 봉사했던 오시리스 카브랄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파레시도 형제님이 모임에 빠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메르세데스도 매우 충실했어요. 울리세스는 부모님의 성실함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어린 소아레스 장로와 그의 부모님의 결혼 사진

    울리세스 소아레스는 그의 부모인 아파레시도와 메르세데스 소아레스(왼쪽)의 “빛을 따르며 교회에서 성장했다.” 울리세스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신뢰함으로써, 구주와 그분의 복음을 굳게 붙잡는 법을 소년 시절에 배웠다.

    천성적으로 선했던 울리세스의 성품은 주님의 길을 배우면서 꽃을 피웠다. “저는 부모님의 빛을 따르며 교회에서 성장했습니다.”라고 소아레스 장로는 말한다. 그 빛을 따르면서, 그의 간증은 주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해졌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우리 학교에서 유일한 교회 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소년들이 항상 저를 끌어내리고 그릇된 일을 하도록 부추기려고 애썼지요. 저는 이런 도전에 맞서 어떻게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지 터득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항상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신뢰하며 어려움을 이겨 내도록 도움을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저는 만약 우리가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면, 주님도 당신의 역할을 다하시리라는 것을 청남 때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그분의 손과 그분의 복음을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울리세스가 15살이 되었을 때, 감독님은 그에게 주일 학교 청소년반을 가르치라고 했다. 그가 가르친 공과 중 하나는 복음에 대한 간증을 얻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울리세스는 그 전에도 몰몬경을 공부했으며, 교회가 참됨을 항상 느꼈고,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공과를 준비하면서, 그는 반원들에게 복음의 진실성에 대해 강하게 간증하고 싶었다. 소아레스 장로는 이렇게 회상한다. “저는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은 뒤에, 제 마음에 감미로운 느낌이 들었고, 제가 올바른 길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나 강해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울리세스는 자라면서, 만약 자신이 주님께서 기대하신 것이나 요청하신 것보다 더 많이 일한다면, 주님께서 자신을 풍성히 축복하시리라는 것을 배웠다. 그는 선교 사업을 준비하면서 그런 교훈 한 가지를 배웠다. 감독님은 울리세스를 접견하는 동안 계명에 순종하고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재정적인 준비도 강조했다.

    오늘날 브라질 출신의 선교사들은 모두 자신의 선교사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며, 많은 가족이 선교사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선교 사업을 할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울리세스는 자신의 선교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전액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작은 사업체에서 일하면서 배운 성실한 업무 자세와 빠른 타자 실력 덕분에, 그는 한 회사에서 급여 대장 준비를 돕는 일자리를 구했다.

    어려운 입사 시험을 통과한 후, 밤에는 기술 고등학교에서 회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달 십일조를 바치고 남은 돈은 선교 사업을 위해 저축했다. 1년 후, 울리세스는 회계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렇게 선교 사업에 나갈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선교 사업을 떠나기 전 3년 동안 셔츠 한 벌, 바지 한 벌, 양말 한 켤레, 넥타이 하나, 여행 가방 하나 등 선교 사업에 필요한 물건을 매달 하나씩 샀습니다.” 또한 그는 부모와 지역 지도자들에게서 그가 필요로 했던 큰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울리세스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선교부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선교 사업 초기에 엘리오 다 호샤 카마르고 회장 밑에서 봉사했는데, 카마르고 회장은 나중에 브라질에서 부름을 받은 첫 번째 총관리 역원이 되었다. 울리세스는 1978년 초에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그해 말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이 상파울루에 라틴 아메리카의 첫 성전을 헌납했다.

    젊은 선교사 시절 소아레스 장로

    1980년 1월, 엔다우먼트를 받지 못했던 울리세스와 그의 동반자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버스를 8시간이나 타고 브라질 상파울루 성전으로 갔다. 울리세스는 그곳에서 부모 형제를 만났고, 소아레스 가족은 현세와 영원을 위해 인봉되었다. 울리세스는 상파울루 성전에서 보낸 그 다섯 시간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그날 늦게, 울리세스와 동반자는 선교 임지로 돌아왔다.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둠

    울리세스는 성공적으로 선교 사업을 마쳤으며, 그로 인해 간증이 더욱 강화되었다. 귀환 후, 그는 일자리를 찾았고 지역 대학에서 회계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집에 온 지 7개월쯤 되었을 때, 그는 연합 스테이크 무도회에서 “모르가도 자매”와 우연히 마주쳤다. 울리세스는 선교 사업 시절 그녀의 지역 지도자로 봉사한 적이 있었으므로, 두 사람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와 선교 사업 이야기를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3주 후, 그들은 교제를 시작했다.

    로사나 페르난데스 모르가도가 여덟 살이었을 때, 언니인 마르가레취가 그녀를 교회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충실하고 어린 두 구도자는 결국 침례를 받아도 된다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지만, 각자 17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로사나는 침례 허락을 받기 전까지 9년 동안 교회에 참석했다.

    울리세스는 상파울루 북부에 살았고, 로사나는 부모와 함께 상파울루 남부 지역에서 살았다. 대도시를 가로질러 가는 데만 버스와 지하철로 두세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도, 마르가레취와 남편인 클라우디오가 부모님 댁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칠십인인 총관리 역원 클라우디오 알 엠 코스타 장로는 후에 그의 동서가 된 소아레스 장로를 이렇게 회상한다. “울리세스가 로사나와 데이트하러 주말에 왔다가, 늦은 밤에 그렇게 멀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울리세스에게 데이트를 마치고 나면 자기들 집에서 자고 가라고 권했다. “우리가 잠시 그를 입양한 셈이었지요.”라고 코스타 장로가 덧붙였다.

    코스타 자매는 말한다. “그는 우리 집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곤 했어요. 우리도 당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여분의 담요가 없었어요. 우리가 가진 낡은 커튼을 덮고 자곤 했지만, 다음 날이면 로사나를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행복해했어요. 그는 여동생에게 잘해 주었고, 부모님도 그를 아주 좋아하셨어요.”

    울리세스와 로사나는 1982년 10월 30일에 브라질 상파울루 성전에서 결혼했다.

    소아레스 장로 부부

    소아레스 장로 부부와 잠시라도 같이 있어 보면,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흠모하고 존경하는지 금방 드러난다. 소아레스 장로에게 로사나는 “선함과 사랑의, 그리고 주님과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온전한 헌신의 모범[이다.]”3 소아레스 자매에게 울리세스는 “하늘이 준 선물”이다.

    소아레스 자매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언제나 책임감이 매우 강하고 의로웠어요. 가족도 항상 잘 보살폈고, 제게도 한결같이 잘 대해 주었죠. 교회에서 받은 모든 부름에도 최선을 다했어요. 그는 묵묵히 가서 행하는 사람이었어요. 자신의 삶에서 항상 하나님이 제일 먼저예요. 저는 그가 하나님의 일을 제일 앞에 둔다면 저도 제일 앞에 두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를 계속해서 사랑하게 됩니다.”

    소아레스 장로는 그의 아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아내는 우리 가족의 진정한 영웅이며 영감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며 인내합니다. 아내는 우리 가족을 단결시키며,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냅니다. 제 삶에서 일어난 일은 상당 부분 아내 덕분입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에 부름을 받은 것에 관해 아내에게 농담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당신 탓이오. 당신이 내 인생에서 복음의 권능을 크게 너무 크게 키워 주었으니까 말이오.’”

    너그러운 마음

    소아레스 부부의 맏이인 구스타보는 소년 시절에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집을 살짝 빠져나가 상파울루 인근에서 열리는 페스타 주니나라는 연례행사에 갔던 밤을 기억한다.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방송으로 제 이름이 불리면서 앞으로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로 오신 아버지를 보았죠.”

    부모에게 엄청난 걱정을 끼쳤지만, 울리세스는 구스타보를 꾸짖기보다는 그를 꽉 껴안아 주었다.

    구스타보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제 잘못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부모님은 저를 존중해 주셨습니다. 저는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고, 부모님이 저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꼈어요.”

    울리세스는 가족에게 헌신적이다. 여러 해 동안 일도 바쁘고 여행 일정도 많았지만, 그는 자녀와 친해지기 위해 늘 시간을 냈다.

    소아레스 가족 사진

    2018년 3월 31일 소아레스 장로가 십이사도 정원회에 지지받았을 때, 아마 구스타보와 두 여동생 레티시아 카라벨로와 나탈리아 소아레스 아빌라보다 더 놀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 근면, 이해심, 겸손이 사도 직분에 필요한 자질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주님께서 왜 아버지를 부르셨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레티시아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부르셨을 때, 지식이 가장 많은 바리새인을 택하지 않고, 어부를 선택하셨어요. 제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와 같으세요. 부모님은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부모님이 사심도 없고, 기꺼이 열심히 일하고, 잘못을 고쳐 주면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겸손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부모님을 통해 당신의 사업을 이루시지요.”

    나탈리아는 아버지의 “너그러운 마음”이 구주의 특별한 증인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할 만큼 인정이 많으셔요. 하늘의 영향력을 느끼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하시죠.”

    “만사가 잘될 것입니다”

    소아레스 장로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포르투갈 포르투 선교부의 회장으로 봉사하는 동안, 포르투갈어 문구 “Tudo vai dar certo”—‘만사가 잘될 것입니다’를 자주 사용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선교사 중 하나였던 타이 베넷은 이렇게 회상한다. “회장님이 저희에게 그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회장님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기 바라시는 일을 우리가 행한다면, 만사가 잘되리라는 신앙과 낙천적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십니다.”

    또 다른 선교사였던 리처드 실즈는 소아레스 장로가 선교사들에게 어렵다라거나 불가능하다와 같은 말을 사용하지 말도록 가르쳤다고 말한다. “우리는 해야 할 일들을 ‘도전’이라고 불렀죠. 그 충고가 제 삶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일을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 보았으니까요.”

    그러한 믿음과 낙천주의가 편안한 생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소아레스 장로 부부는 가난에서 오는 좌절감, 오랜 일과 공부로부터 오는 피로감, 건강 악화의 어려움, 유산과 사산, 부모 형제의 죽음이 가져오는 상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삶의 여정 속에서 그들은 소아레스 장로가 좋아하는 다음 경전 말씀을 굳게 믿고 있다. “너는 겸손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손을 잡고 너를 인도할 것이요, 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네게 주리라.”4

    소아레스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도전은 진보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 중에 인내할 때, 삶의 어려움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울 때, 하나님께 충실할 때, 주님은 우리를 높이 평가하시며 당신이 약속하신 축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쇠막대를 굳게 잡을 때 주님은 우리를 홀로 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소아레스 장로는 다음과 같이 간증한다. “계속해서 계명, 복음, 경전 및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것은 우리가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영감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고 자신을 낮출 때, 주님께서는 우리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충실한 제자

    울리세스 소아레스는 유능하고 준비된 사람이다. 경영학 석사 학위를 비롯하여 그가 받은 교육 덕에 그는 브라질 소재의 다국적 기업에서 회계사 및 감사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 덕에 그는 교회 재정 부서에서 일할 준비를 갖출 수 있었으며, 31세에 교회의 최연소 실무 책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한 준비 과정은 그가 선교부 회장으로, 그리고 2005년 4월 2일에 칠십인 총관리 역원으로 부름받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소아레스 장로는 2013년 1월 6일에 칠십인 회장단으로 부름 받기 전에, 브라질 지역 회장단의 보좌와 브라질 지역 회장으로 봉사했으며 아프리카 남동 지역 회장단의 보좌로 봉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당시 칠십인 총관리 역원이었던 데일 지 렌런드 장로의 보좌로 봉사했다. 현재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인 렌런드 장로는 그들이 함께 보냈던 시간을 즐겁게 추억한다.

    렌런드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소아레스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활기차고 헌신적이며 충실한 제자입니다. 자신이 주님의 심부름을 하고 있음을 그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하라는 부탁을 받으면, 온 힘을 다해 그 일을 합니다.”

    전 세계의 성도들과 함께 있는 소아레스 장로

    소아레스 장로는 페루(왼쪽), 가나(아래), 또는 그가 섬기고 성역을 베푼 어느 나라의 성도들과 함께 있든지 간에 “사람들을 쉽게 사랑한다”라고 클라우디오 알 엠 코스타 장로는 말한다.

    그는 소아레스 장로가 아프리카 성도들과 쉽게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한다. 그 지역에서 그가 받은 첫 임무 중 하나는 콩고 민주 공화국의 카낭가에서 열린 스테이크 대회를 감리하는 것이었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선하고 헌신적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라고 렌런드 장로는 말한다.

    칠십인 회장단에서 소아레스 장로와 5년 반 동안 함께 봉사한 엘 휘트니 클레이튼 장로는 소아레스 장로를 합의 도출자라고 부른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에 자기 생각을 비추어 봅니다. 그는 회의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경쟁적으로 울리기보다는 조화를 이루어 나가도록 조율하는 데 주의를 기울입니다.”

    소아레스 장로는 포르투갈어, 영어, 스페인어 및 프랑스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해 겸손하다. 그 은사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교회에 축복이 된다고 클레이튼 장로는 말한다. 소아레스 장로는 교회 회원들 대다수와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

    클라우디오 코스타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울리세스는 소싯적부터 지도자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는 매우 지적이고 유능하며,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쉽게 사랑하죠. 그는 구주의 참된 제자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를 사랑하며, 그를 주님의 사도로 지지하게 되어 기쁩니다.”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십이사도 정원회를 대변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소아레스 장로는 순수하며, 간교함이 없고, 흠 없는 구주의 제자입니다. 그분의 용모에서 보이는 빛과, 따뜻한 미소와 자애로운 태도를 통해 수많은 개인과 가족이 구주를 따르고 그분의 복음이 주는 교훈에 따라 생활하려는 더 큰 소망을 지니겠다는 영감을 받았으며, 지금도 그렇게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손자녀, 아내와 함께 있는 소아레스 장로

    아내인 로사나와 함께 솔트레이크 성전 앞에서 찍은 사진, 크리스틴 머피, 데저렛 뉴스

    이 경륜의 시대에 주님은 에드워드 파트리지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그의 마음이 내 앞에서 순결함으로 인한 것이니, 이는 그가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는 옛날의 나다나엘과 같음이니라.”5 주님은 또 하이럼 스미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그의 마음이 고결하므로 또 내 앞에서 옳은 일을 그가 사랑하므로 나 주가 그를 사랑함이니라.”6

    울리세스 소아레스에 관해서도 주님은 똑같이 말씀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