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대회
마음이 함께 맺어지고
2021년 4월 연차 대회


마음이 함께 맺어지고

여러분이 친절과 배려, 연민을 보인다면, 여러분은 처진 손을 일으켜 세우게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게 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소개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 때로는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이 단순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이루어지는 점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오늘 저는 토끼를 표본 집단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얻게 된 발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970년대에 어떤 연구원들이 식습관이 심장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몇 달 동안 그들은 실험용 토끼들에게 고지방 음식을 먹이고 혈압, 심장 박동수, 콜레스테롤을 관찰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많은 토끼의 동맥 내부에 지방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연구원들은 이치에 맞지 않는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모든 토끼에게 지방이 축적되긴 했지만, 놀랍게도 한 그룹은 다른 그룹들에 비해 60퍼센트나 지방이 적었습니다. 마치 전혀 다른 두 그룹의 토끼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면, 과학자들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 토끼들은 모두 뉴질랜드에서 왔고, 품종이 같았으며, 사실상 유전자 공급원도 동일했습니다. 토끼들에게는 각각 똑같은 음식을 똑같은 양으로 공급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 연구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걸까요? 실험 설계에 결함이 있었던 것일까요?

과학자들은 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담당 연구원들에게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혹시 그 연구원들이 결과에 영향을 줄 만한 무언가를 한 게 아닐까요? 그들은 그 점을 추적하던 중, 지방이 적게 쌓인 토끼가 모두 한 연구원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연구원은 자신이 맡은 토끼들에게 다른 토끼들이 먹은 것과 똑같은 음식을 먹였습니다. 하지만 한 과학자가 보고했듯이, “그녀는 유난히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이었습니다.” 토끼들에게 먹이를 줄 때, “그녀는 토끼에게 말을 하고, 토끼를 껴안고 쓰다듬었습니다. …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우러나왔죠.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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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친절한 연구원

그녀는 토끼들에게 단순히 먹이만 준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극적인 차이의 원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연구팀은 그 외의 다른 가능성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실험을 한 번 더 반복했고, 이번에는 다른 모든 변수를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그들이 결과를 분석했을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애정 어린 연구자의 보살핌을 받은 토끼들은 건강이 훨씬 더 좋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연구의 결과를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지』에 발표했습니다.2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실험의 연구 결과는 여전히 의학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듯합니다. 몇 년 전에, 켈리 하딩 박사는 그 실험에서 이름을 딴 『The Rabbit Effect[토끼 효과]』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하딩 박사는 이렇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생활 방식이 건강하지 못한 토끼를 한 마리 데려오세요. 그 토끼에게 이야기를 하고 안아 주고 애정을 주세요. 그런 관계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 궁극적으로, 우리의 건강에 가장 의미 있는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과 삶의 방식,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3

세속적인 세계에서는 과학과 복음 진리를 연결하는 다리가 거의 없어 보이거나, 그 둘이 아주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에게,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후기 성도에게 이 과학적 연구 결과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라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 이것은 기본적이고 치유적인 복음 원리인 친절이라는 토대에 또 하나의 벽돌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여기에서 증명된 것처럼 신체적으로도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바로 그 원리입니다.

마음이 함께 맺어지고

구주께서는 “선생님 …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는 질문에 “네 마음을 다하[여] …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답하시며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고 덧붙이셨습니다.4 구주의 대답은 우리의 신성한 의무를 다시금 강조합니다. 한 고대 선지자는 “서로 다툼이 없어야 할 것과 단합과 서로에 대한 사랑 가운데 [서로]의 마음이 함께 맺어지고, … 앞을 바라볼 것”을 명했습니다.5 더 나아가, 우리는 “권능이나 영향력[이] … 온화함과 온유함으로, … 친절함[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 간교함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습니다.6

저는 이 원리가 모든 후기 성도, 즉 성인, 청소년, 어린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초등회 연령의 어린이 여러분에게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친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초등회 노래 중 하나인 “주 예수를 닮으려고”의 후렴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네 생각과 행동을 조심하여

가르치심대로 하라.7

그렇지만, 여러분은 때때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사는 김민찬이라는 초등회 소년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의 가족은 약 6년 전에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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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찬

“어느 날, 학교에서 반 친구 몇 명이 한 아이를 놀려 대고 있었어요. 저도 그게 재미있어 보여서 같이 놀렸어요. 그런 일을 몇 주 동안이나 계속 했어요.

몇 주가 흐른 뒤, 그 아이는 … 저에게 … 그런 놀림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했지만, … 우리가 한 말 때문에 … 상처를 받았고 매일 밤을 울면서 보냈다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울컥했어요. 저는 몹시 미안했고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음 날 저는 그 친구에게 가서 어깨동무를 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게 놀려서 정말 미안해.’ 제 사과를 들은 그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그 친구를 놀려 댔어요. 저는 초등회 반에서 배웠던 이 말을 기억했어요. 옳은 일을 선택하라. 저는 … 반 친구들에게 그만하라고 말했어요. … 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도리어 저에게 화를 내었어요. … 하지만 그중 한 친구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그렇게 그 친구까지 해서 우리 셋은 모두 좋은 친구가 되었어요.

아직도 놀리는 아이들이 조금 남아 있긴 하지만, 제 친구는 이제 우리가 있기 때문에 전처럼 마음 아파하지 않아요.

저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돕는 … 옳은 일을 선택했어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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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찬 사진

이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본받아야 할 좋은 본보기가 아닙니까?

청남 청녀 여러분,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놀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괴롭힘의 산물로 불안, 우울증, 그리고 더 안 좋은 일들이 나타납니다. “괴롭힘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지만, 소셜 미디어와 기술은 괴롭힘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것은 더 지속적이고, 항상 존재하는 위협, 즉 사이버 폭력이 됩니다.”9

분명히, 대적은 이 괴롭힘을 이용해 여러분 세대를 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이버 공간, 동네, 학교, 정원회, 또는 반이 이런 괴롭힘의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소들을 더 친절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장소에서 소극적으로 관망하거나 대응한다면,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장로님께서 전에 해 주셨던 다음과 같은 조언보다 여러분에게 더 적절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증오와 험담, 무시, 조소, 악의,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길 원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 말대로 하십시오.

그만두십시오!”10

들으셨습니까? 그만두십시오! 여러분이 디지털로도 친절과 배려, 연민을 보인다면, 여러분은 처진 손을 일으켜 세우게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게 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초등회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말씀드렸으니, 이제 교회의 성인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말과 행동 면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품행을 가르치기 위해 기본적인 방향을 정하고 친절, 포용, 예의 바름의 모범이 되어야 할 주된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나 사회 계층을 비롯해 인간이 구분 지어 놓은 거의 모든 것들에서 분열이라는 두드러진 사회적 변화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것은 특히 중요합니다.

엠 러셀 밸라드 회장님은 후기 성도는 서로에게는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저는 회원들이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함으로써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런 일은 특히 우리 회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단지 그 이웃이 우리 교회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에게 이웃의 아이와 놀지 말라고 말하는 편협한 마음을 가진 부모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행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회원이 어떻게 그런 일들을 행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저는 … 다른 신앙을 가진 친구들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하고 인자하게 대하라고 이 교회 회원들에게 권고하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11

주님은 포용이 단합을 위한 확실한 수단이며 배제가 분열을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가 가르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인종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말을 들을 때면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저희는 최근 흑인, 아시아인, 라틴계 또는 다른 그룹에게 가해진 공격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편견, 인종 간의 갈등, 또는 폭력이 우리 동네, 지역 사회, 또는 교회 안에 자리 잡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연령에 관계없이 우리는 저마다 최선의 모습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원수를 사랑하라

여러분이 사랑과 존중과 친절을 보이려고 노력할 때, 다른 사람들의 나쁜 선택으로 상처받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일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는 주님의 훈계를 따릅니다.12

우리는 우리의 길에 놓인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손길이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켜 주기를 기도하면서 끝까지 견디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돕도록 우리 길에 두신 이들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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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노이주 퀸시에서 일어난 기적

저는 교회 초기 역사 자료에서 그런 사례를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1838년 겨울,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이 리버티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동안 후기 성도들은 미주리주에 있는 자신들의 집에서 강제로 쫓겨났습니다. 성도들은 가난하고 친구도 없었으며, 추위와 부족한 물자 등으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일리노이주 퀸시의 주민들은 그들의 절망적인 상태를 보고 동정 어린 우정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퀸시의 주민인 완들 메이스는 미시시피강가의 임시 텐트 속에 있는 성도들을 처음 보았을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몇몇은 작은 바람막이를 하려고 시트를 펼쳤고 … 아이들은 불 주위에서 몸을 떨고 있었지만 불이 바람에 흩날려 그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가난한 성도들은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13

성도들의 곤경을 본 퀸시 주민들은 힘을 합쳐 원조를 제공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새로운 친구들을 강 건너편으로 건네주는 일까지 도왔습니다. 메이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후하게 기부했으며, 상인들은 … 돼지고기, … 설탕, … 신발 및 의복 등 이 궁핍한 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모든 것을 누가 가장 아끼지 않고 넉넉하게 제공하는지를 두고 서로 경쟁했다.”14 오래되지 않아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고 개인적으로 큰 희생을 치르며 빈약한 물자를 나눠 준 퀸시 주민들보다 그 피난민들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15

많은 성도가 퀸시 주민들의 동정심과 관대함 덕분에 혹독한 겨울을 견뎌 냈습니다. 그 지상의 천사들은 고통받는 성도들에게 마음을 열고 집을 개방하여 목숨을 구할 영양분과 따뜻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정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퀸시에 머문 기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성도들은 사랑하는 이웃에 대한 감사의 빚을 결코 잊지 않았고, 퀸시는 “피난처 도시”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16

다른 사람들의 비판적이고, 부정적이고, 비열하기까지 한 행동 때문에 우리에게 역경과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은 “담대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인도하겠음이라.”라고 하신 그분의 권유와 약속에서,17 그리고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도록 여러분의 고난을 성별하겠다고 하신 그분의 약속에서 나옵니다.18

선한 목자

처음에 말씀드렸던 실험으로 돌아가 봅시다. 동정심을 지니고 동물들을 친절하게 보살폈던 연구원과, 그녀가 자신이 돌보았던 동물들의 마음을 치유하게 된 예기치 못한 결과를 생각해 봅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녀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렌즈를 통해 볼 때, 우리 역시 친절과 양육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자비로운 보호자의 보살핌 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한 목자는 우리 각자의 이름을 아시며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19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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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을 찾다

이 거룩한 부활절 주말에, 저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고21 그분은 우리 각자를 아시며 우리가 그분의 친절한 보살핌 아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지속적인 평안을 느낍니다 우리가 인생의 바람, 폭풍우, 질병, 부상과 맞닥뜨릴 때, 우리의 목자이자 우리를 돌보아 주는 분이신 주님께서 사랑과 친절로 우리를 양육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고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간증드리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주요 구속주이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1. See Kelli Harding, The Rabbit Effect (2019), xxiii–xxiv.

  2. See Robert M. Nerem, Murina J. Levesque, and J. Frederick Cornhill, “Social Environment as a Factor in Diet-Induced Atherosclerosis,” Science, vol. 208, no. 4451 (June 27, 1980), 1475–76.

  3. Harding, The Rabbit Effect, xxiv, xxv.

  4. 마태복음 22:36~39 참조.

  5. 모사이야서 18:21; 강조체 추가.

  6. 교리와 성약 121:41~42.

  7. “주 예수를 닮으려고”, 『어린이 노래책』 40~41쪽.

  8. 김민찬, “사과”, 『리아호나』, 2020년 1월호, 친10쪽.

  9. Frances Dalomba, “Social Media: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Lifespan, lifespan.org.

  10.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리아호나』, 2012년 5월호, 75쪽.

  11. 엠 러셀 밸라드, “포용의 교리”, 『리아호나』, 2002년 1월호, 41쪽.

  12. 누가복음 6:27~28.

  13. Wandle Mace autobiography, circa 1890, typescript, 32–33, Church History Library, Salt Lake City.

  14. Wandle Mace autobiography, 33; spelling and capitalization standardized.

  15. See Richard E. Bennett, “‘Quincy—the Home of Our Adoption’: A Study of the Mormons in Quincy, Illinois, 1838–40,” Mormon Historical Studies, vol. 2, no. 1 (Spring 2001), 110–11.

  16. See Susan Easton Black, “Quincy–A City of Refuge,” Mormon Historical Studies, vol. 2, no. 1 (Spring 2001), 83–94.

  17. 교리와 성약 78:18.

  18. 니파이후서 2:2 참조.

  19. 제임스 이 탈매지, 『예수 그리스도』(1916), 424쪽 참조.

  20. 요한복음 10:14, 15.

  21. 시편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