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수건 세 장과 25센트짜리 신문
2006년 10월


수건 세 장과 25센트짜리 신문

우리가 정직과 청렴이라는 성스러운 원리에 충실할 때, 우리는 우리의 신앙에 충실한 것이며 우리 자신에게 충실한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전세계의 청중들 앞에서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말씀을 시작하면서, 제 마음을 꽤 오랫동안 무겁게 짓눌렀던 한 주제를 소개하며 개인적인 고백을 한 가지 하겠습니다. 대학에서 첫 해를 마친 1955년 여름 저는 와이오밍 주 모랜에 새로 개업한 잭슨 레이크 호텔에서 일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14년 된 1941년식 허드슨을 몰고 다녔는데, 이미 10년 전에 폐기 처분했어야 할 정도로 낡은 차였습니다. 이 차의 특징 중 하나는 실내 바닥이 하도 심하게 녹슬어서 그 위에 합판을 깔지 않았으면 저의 두 발이 말 그대로 도로에 질질 끌릴 정도라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 시기의 14년 된 다른 차들과 달리 제 차는 오일 소모가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냉각장치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소비했지만 오일은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물은 어디로 사라지며 오일은 왜 점점 더 엷어지고 더 맑게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약 298킬로미터 정도를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저는 모랜 지역에 단 한 명 밖에 없던 기계공에게 차를 가져갔습니다. 잠시 살펴본 뒤 그는 엔진블록에 금이 가서 물이 오일 탱크로 새어 들어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것으로 물과 오일에 대한 의문점이 풀렸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물이 오일에 섞여 들어가게 하면 연비를 더 좋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고백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기적적으로 집에 당도했을 때, 제 아버지께서는 밖으로 나오셔서 저를 기쁘게 맞아 주셨습니다. 저를 안아주시고 반갑게 안부를 물으신 후, 아버지는 제 차의 뒷좌석에 놓여 있던 잭슨 레이크 호텔의 이름이 새겨진 수건 세 장을 보셨습니다. 물론 비매품들이었습니다. 실망스러운 얼굴로 아버지는 “내가 너에게 기대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라고 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수건들을 가져온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은 여름 내내 제가 고급 호텔에서 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과 의례와 같은 기념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건들 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신임을 잃은 기분이었으며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주말에 저는 차 바닥에 놓여 있던 합판을 다시 손보고 냉각장치에 물을 채운 후 왕복 595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달려 잭슨 레이크 호텔로 돌아가 그 수건들을 돌려주고 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왜 호텔에 다시 다녀왔는지 묻지 않으셨고 저도 그 이유를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일은 정직에 대한 값비싸고 가슴아픈 교훈이었으며 저의 일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슬프게도, 오늘날 사라져 버린 가장 훌륭한 가치 중에는 정직과 청렴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더 많은 경영인들이 부정직을 포함하여 다른 잘못된 행태를 드러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성실한 장기 근로자들이 생계 수단과 연금을 잃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집을 잃었고 교육받을 기회마저 잃었으며 다른 인생의 계획을 접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학습과 예습보다는 점수와 학위에 연연함에 따라 만연해진 부정행위에 대해 읽고 듣습니다. 우리는 부정행위로 의대를 졸업한 뒤 현재 환자들에게 복잡한 치료도 감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노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사기꾼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신들의 집이나 노후 자금을 잃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정직과 청렴의 결핍은 언제나 탐욕과 뻔뻔함과 무례함에서 비롯됩니다.

잠언에는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언 12:22)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앤타이-니파이-리하이 백성으로 알려진 개종한 레이맨인들에 대하여 몰몬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또 그들은 니파이 백성 가운데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백성 가운데 헤아림을 받았으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와, 또한 사람들에게 향한 그들의 열심으로도 구별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모든 일에 온전히 정직하고 올바르며, 또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 굳건하되, 참으로 끝까지 그러하였기 때문이었더라.”(앨마서 27:27)

30여 년 전 제가 기업인으로 몸담고 있던 시절 몇몇 사업 관계자들과 함께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을 거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근래에 수천 만 불을 받고 자기 회사를 매각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신문 자판기를 지날 때, 그는 25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자판기에 넣은 뒤 문을 열고서 마저 다 지불하지 않은 신문을 여러 부 꺼내어 일행 모두에게 돌렸습니다. 그가 제게도 신문을 건넸을 때 저는 25센트짜리 동전을 자판기에 넣으며,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요지를 섞어 다음과 같이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짐, 25센트만 내면 정직성을 유지할 수 있다네. 1달러라면 좀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25센트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지.” 여러분이 예상하듯 저는 수건 세 장과 거의 고장나기 직전인 1941년식 허드슨 자동차에 대한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몇 분 후 우리는 그 신문 자판기를 다시 지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짐이 우리 일행에서 벗어나서 그 자판기에 25센트짜리 동전들을 넣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 일화를 나누는 것은, 제 자신이 대단한 정직의 본보기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건 세 장과 25센트짜리 신문 한 부의 교훈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마음이 정직하지 않으면, 비즈니스의 세계나 학교, 가정이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정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하고도 영속적인 많은 교훈을 종종 수건 세 장이나 25센트짜리 신문 한 부처럼 간단한 예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정직에 관한 단순한 가르침들을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 마가복음 12:31 참조),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누가복음 6:31 참조) 같은 간단한 가르침 말입니다. 저는 일부 고위 경영인들이 일찍이 수건 세 장이나 25센트짜리 신문 한 부의 교훈을 배웠더라면, 오늘날 연금을 박탈당한 수천 명의 실직자들을 양산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직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기초가 되는 덕목입니다. 후기 성도들에게 정직은 주님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기 위한 중요한 요건입니다. 정직은 우리가 성전에서 맺는 성약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 우리가 구주의 살과 피를 대신하는 성스러운 상징물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기본적이고 성스러운 성약을 새롭게 합니다. 그 성약 안에는 정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후기 성도로서 수건 세 장과 25센트짜리 신문 한 부처럼 단순한 예에서 볼 수 있는 정직의 원리를 가르칠 책임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생활할 신성한 의무도 지니고 있습니다. 정직은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직과 청렴이라는 성스러운 원리에 충실할 때, 그것을 우리의 신앙에 충실한 것이며 우리 자신에게 충실한 것입니다.

후기 성도로서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들로 알려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앤타이-니파이-리하이인들이 “모든 일에 온전히 정직하고 올바르며, 또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 굳건하되, 참으로 끝까지 그러하였[다]” (앨마서 27:27)고 일컬음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