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속죄, 회개와 수치스러운 죄
2003년 10월


속죄, 회개와 수치스러운 죄

주님은 우리의 옷을 그분의 피로 씻어 희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 그분은 개인적인 타락에서 우리를 구속하실 수 있습니다.

한 남자가 차를 몰고 멕시코의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갑자기 차 앞으로 달려 나온 개를 치어 죽였습니다. 그 날부터 그는 마을에서 “개를 죽인 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경위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그저 “개를 죽인 자”로 낙인이 찍혔던 것입니다. 후세대 사람들은 정황을 모른 채 그의 행위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만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소문이나 사실에 근거한 또는 별명으로 인한 세평을 지워 버리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수치스러운 문제는 공론화하지 말라”는 속담은 지혜로운 충고입니다. 개인적인 일이든, 가족의 일이든 그 실수나 죄를 폭로하여 공론화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부적절하며 불건전한 일입니다. 죄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회개나 변화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죄지은 자는 본능적으로 은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겠지만 죄가 은폐되어야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나 죄를 회개하기보다는 숨기려 합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깨달았던 것처럼 주님께 우리의 죄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1 그분은 모든 일을 낱낱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 그분은 우리가 불순종한 모든 행위를 알고 계시지만,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우리의 죄를 아시더라도 우리가 회개할 경우 다시는 죄를 기억하시지 않겠다는 특별한 약속을 주신 점입니다.3

수치스러운 죄를 씻는 것과 회개는 기본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죄는 주님 앞에 불결한 것이므로 해소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시기와 장소는 따로 있습니다. 죄의 성격과 크기에 따라 그 시기와 장소가 정해집니다. 사람들이 알도록 죄를 지었거나 공적인 신뢰를 저버렸다면, 대중 앞에서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 경우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종들과 우리가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회개를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우리의 옷을 씻는 것과 수치스러운 죄를 씻는 방법은 유사합니다. 우리의 옷을 청결케 하는 것은 그분의 속죄의 희생을 통해서입니다. 경전에서 칭한 옷은 우리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더럽혀질 때 청결케 하는 일이 필요하게 됩니다. 판단하고 용서하는 것은 구세주의 절대 권세에 속합니다.4 이는 그분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씻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냐민 왕이 제이라헤믈라 땅에서 설교를 했을 때5 성도들은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고6 온 나라에 화평과 번영이 따랐습니다. 세월이 흘러 앨마는 교회를 감리하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일부 회원들은 번영을 누리자 타락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범법자들이 그에게 끌려 왔을 때 앨마는 근심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문제를 처리해야 할지 몰라 그들을 모사이야 왕에게 데려갔지만, 왕은 그들을 되돌려 보내면서 앨마가 재판하도록 했습니다.

앨마는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심령을 다해 범법자 처리에 대한 응답을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주님은 앨마가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크나큰 소망을 가진 것을 보시고 그를 크게 축복하시고 영생의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동시에 주님은 재판의 해법을 알기 위해 간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앨마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이는 나의 교회라. 나의 이름으로 저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나의 희생으로 저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내가 저들의 심판자이니라.”7

우리는 심판할 권리를 가진 분을 얼마나 자주 망각합니까?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그분이시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수치스러운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경우 다음의 것을 명심합시다.

 

첫째, 주님을 찾고

둘째, 우리가 지은 죄의 피해자를 찾아가며

셋째, 필요한 경우 우리의 이스라엘 판사를 찾아가 그 문제를 맡기고,

넷째, 죄를 버립니다.

 

사적인 수치스러운 문제를 폭로하는 또다른 면은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과오를 폭로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욥이 무거운 짐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8 이런 오류가 가정 내에서 생기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생각에서 형제 자매나 자녀, 혹은 부모의 과오와 실수를 개인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자기 합리화의 형태로 교묘하게 낱낱이 폭로할 때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보듯이, 아들의 잘못이 아닌 아들의 가치를 보고 이야기했던 아버지가 탕자를 교화시킨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나 실수를 입에 담을 때 우리는 실제로 그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직원이 자신에게 부당한 임금을 요구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을 해고할 것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아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시다니 놀랍군요. 우리에게는 다르게 가르치셨잖아요.”

아버지는 근거 없이 비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임금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하지 말고 직원과 협의하여 이견을 해소하고 문제를 종결지어야 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9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께 끌고 오자, 그분은 몸을 굽혀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듣지 못하도록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발한 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물러가자, 그분은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0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1. 비판하지 마십시오. 완전한 재판관이신 주님께 맡기십시오. 사람들의 죄를 조사하거나 들춰내지 마시고 그들이 지닌 신성을 생각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관여하기보다는 그들의 덕의 크기를 파악하도록 하십시오.

  2.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거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을 요구하노라.”11

  3. 잊어버리십시오. 불쾌한 기억은 활기찬 영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내버려두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죄를 폭로하고 싶은 유혹의 물결이 밀려오더라도 이웃이나 친한 친구에게 얘기하지 마십시오. 감독을 찾아가, 그에게 짐을 벗어놓으십시오. 필요할 경우, 민사 또는 형사 당국에 신고하고 거기에 맡기십시오. 저는 앨마가 받았던 소중한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수치스러운 문제와 관련하여 앨마가 지녔던 것과 똑같은 정신과 그가 취했던 행동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옳고 그들이 그르다면 어떻게 할까요? 사람들이 우리가 잘못했다고 비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입장을 대중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같은 난처한 상황에 대해 주님은 분명한 지시를 주셨습니다.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시야를 가리므로 남의 눈 속의 티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문제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공감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자극하고 키웁니다. 공감에는 동정이 아닌, 이해와 보살핌만이 있습니다. 공감은 참된 우정의 기초가 되며 존경심을 유발하고 가르침과 배움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수 족의 인디언은 기도에서 이런 위대한 원리를 말합니다. “위대한 영이시여, 제가 2주 동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활해 보기 전에는 결코 그를 비판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렇다면 수치스러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우선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구세주께서는 문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즉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12 우리가 할 일은 회개입니다. 깨끗하게 하는 일이 시작될 수 있도록 죄를 버려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옷을 그분의 피로 씻어 희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13 그분은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해 생명을 주시고 고통당하셨습니다. 그분은 개인적인 타락에서 우리를 구속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우리 죄의 대속물로 내어놓은 구세주의 속죄를 통해, 그분은 성신으로 하여금 불의 침례로 우리를 청결케 하십니다. 성신이 우리 안에 거할 때, 그분의 청결케 하는 힘은 더러운 죄를 태웁니다. 결심을 하는 즉시 청결의 과정은 시작됩니다.

주님에 대한 헌신은 우리가 그분께 초점을 맞출 때 시작됩니다. 최근에 우리는 일리노이 주 나부에 있는 한 스테이크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합창단의 음악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음악가이며 그 지역 대학의 교수인 지휘자는 합창단과 회중을 사로잡는 대가였습니다. 그의 동작 모두가 음악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지휘에 따라 정확하게 노래 부르고 싶었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습니다. 문득 구세주 생각이 났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을 닮으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우리가 넬슨 형제에게 기울인 혼신의 관심을 구세주께 쏟는다면, 우리는 빠르게 구세주의 형상으로 변형될 것입니다.

노래할 때 순간적인 변형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모두가 따르고자 하는 큰 소망을 지녔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그러한 열렬한 소망을 지니고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면, 그분은 우리를 감동케 하시고 그분의 면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청결케 하실 것입니다. 지휘자는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하지 않았으며 다만 우리가 그와 하나가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참된 회개는 구세주와 하나가 되었을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기도와 매일의 생각들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지휘를 했던 넬슨 형제에게 어떻게 우리의 혼을 빼놓을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이유는 없는가요?”라고 나는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것은 영의 차원에서 오직 영으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요? “만일 너희가 나의 영광만을 전념하여 구하면 너희 온 몸은 빛으로 충만하게 되어 너희 속에 어두움이 없으리니, 빛으로 충만하게 된 몸은 모든 것을 깨닫게 되느니라.”14 이러한 일은 우리가 회개를 통해 수치스러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문제를 청결케 한다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일 어나라 … 너의 아름다운 옷을 입으며 …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 너희의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 그 자비하심으로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리라 … 너희의 죄를 대속하사 흠이 없는 성스런 자가 되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언약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너희가 성결케 되리라”15라고 모사이야를 통해 주신 구세주의 약속의 은혜를 우리가 누리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창세기 4:9~10; 모세서 5:34~35 참조.

  2. 모세서 1:6 참조.

  3. 교리와 성약 58:42 참조.

  4. 앨마서 5:21~27; 교리와 성약 64:10 참조.

  5. 모사이야서 2~5 참조.

  6. 모사이야서 5:2 참조.

  7. 모사이야서 26:10~24 참조.

  8. 욥기 40:8.

  9. 마태복음 7:1~2.

  10. 요한복음 8:7, 11.

  11. 교리와 성약 64:10.

  12. 요한계시록 3:20 참조.

  13. 요한계시록 7:14 참조.

  14. 교리와 성약 88:67.

  15. 모로나이서 10:31~33.